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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멋대로/사회 150

'북핵' 이라는 프레임

남북관계에 대한 진단이 이렇게도 갈릴까. TV에는 온갖 칭찬 일색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 회담 추진 칭찬, 지지율이 70퍼센트라는 칭찬, 김정은의 '깜짝' 외교무대 데뷔라는 칭찬, 미북회담이 대통령 공이라는 칭찬...내가 일하는 곳은 우익 단체이기에 여기서 들려오는 건 정반대다. 문재인 대통령의 헛발질 등. 외신도 내가 보는 외신과 TV가 보여주는 외신이 반대다. 무엇이 진실일까? 진실을 흐리게 하는 것은 좌익 프레임 전술 때문이다. 그리고 남북 문제의 프레임 전술은 전쟁이냐 평화냐, 구체적으론 핵에 대한 이슈다.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는 대를 이은 거짓말을 증명하듯 북한은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핵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다 대고 북한의 체제와 안전을 보장해준다면 핵을 보유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내멋대로/사회 2021.10.05

노노재팬 사건과 타임라인

1. 이해해야 할 전제 조건들 1)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1951년 연합국과 일본 사이에 맺어진 평화조약인 샌프란시스코 협약에서 한국은 일본에서 분리된 지역이라고 명명. 이로 인해 일본과 한국은 전쟁배상금 또는 식민지 배상금이 아닌 서로 동등하게 청구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확정. 10년간 한일 청구권 협정이 교착상태였던 이유도 일본의 역청구권 주장 때문. 1946년 한반도의 재산 중 85%인 56억 달러가 일본인의 재산이었고 이 중 절반 가량인 22억 달러가 남한에 있었음. 10년 간의 교착 상태 결과 서로가 서로의 청구권을 모두 해소하기로 하고 일본은 3억달러 지원과 2억달러 차관을 한국에 지원. 협정 제 2조 : 두 나라는 양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두 나라 및 그 국민 간의..

내멋대로/사회 2021.10.04

[페이스북 펌] 한국 경찰 역사의 뿌리가 상해 임시정부라고?

페이스북 진명행 글 펌 ----- 의경대 출신들은 대부분 임시정부에서 파견한 대원들이며, 이중에는 각 파벌로 둘러싸여 김구와 대립하거나 임시정부 전복활동에 가담한 자도 있고, 일제에 투항하여 밀정이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중에 끝까지 임시정부 밑에 있던 사람은 소수입니다. 4. 1925년 이승만 대통령 탄핵 이후 임시정부가 내홍을 겪으며 그 활동이 침체되자 김구 선생은 1932년 스스로 의경대 장이 되어 독립투쟁을 이끌기도 했었죠. => 임시정부가 내홍을 겪은것은 이승만 탄핵 전인 1921년부터입니다. 정확하게 쓰셔야죠. 김구가 의경대장이 된 것은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라 국민당 정부의 명령에 의한 것입니다. 즉, 南만철총재를 암살하기 위해 김구를 대장으로 임명하고 이 계획과 실행을 위하여 임시정부금 수..

내멋대로/사회 2021.10.04

[페이스북 펌] 영화 '사르빈 강에 노을이 진다'로 본 1960년대 한국인의 위안부 인식

페이스북 박유하 세종대 교수 글 펌 ----- 기억은 재구성된다. 개인의 기억이든 집단의 기억이든. 1965년,한일수교가 다시 시작될 무렵 공개된 '사르빈강에 노을이 진다'라는 영화는 버마를 배경으로 한 일본군 조선인 학도병들의 이야기이다. 집안 좋은 '친일파'장교(신영균役)와 그 장교의 모습이 못마땅한 친구들의 이야기이면서 저항운동을 하는 버마인 여성과의 로맨스까지 담고 있는 이 영화는 여러가지로 흥미로운 영화인데 특히 '위안부'가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이 영화는 이하의 맥락을 갖는다. 1. 그녀들은 '데이신타이', 즉 정신대라고 불렸다(이미 정신대=위안부의 착각이 정착). 2. 1960년대 한국사회는 그녀들을 '순진무구한 소녀'가 아닌 '때묻은 창녀'로 인식했다(장교가 자신의 막사로 안내된 여..

내멋대로/사회 2021.10.04

일본의 위안부에 대한 사과

우남위키에 제가 쓴 글을 옮겨놓은 것입니다. ----- 위안부 문제는 70년대 일본인 기자에 의해서 처음 세상에 알려진 이후로 한국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이후 90년대 들면서 위안부가 본격적으로 이슈가 되었고 이에 일본은 90년대 초부터 사과를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사과의 진정성을 언급하는데, 타당한 지적인지는 의문이지만 할 수는 있다. 주관적 평가는 개인에 속하기 때문에 내가 진정성을 못느끼면 그만이니까. 그러나 일본이 사과를 한적이 없다는 식으로 얘기하는건 틀렸다. 1992년 1월 1일 미야자와 기이치 수상위안부에 관하여, 난 내 마음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 사과합니다.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던 분들에게 유감을 느낍니다.(기자회견) 1992년 1월 17일 미야자와 기이치 수..

내멋대로/사회 2021.10.04

위안부에 대한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편지

이번에 일본정부와 일본국민이 협력하여 만들어진 아시아평화여성기금을 통해서, 종군 위안부들에 대한 우리나라의 국민적 속죄가 이루어질때 즈음 하여 저의 심정을 표명해드립니다. 소위 종군 위안부 문제는 당시의 군의 관여 하에서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을 깊히 손상한 문제입니다. 저는 일본국의 내각 총리 대신으로서 종군 위안부로서 수 많은 고통을 경험하시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하여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과와 반성의 심정을 표현해드립니다 우리는 과거의 잘못으로부터도 미래에 대한 책임으로부터도 회피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로서는 도의적 책임을 통감하면서 사죄와 반성의 심정을 토대로 하여 과거의 역사를 직시하고 올바로 이것을 후세에 전함과 동시에 부당한 폭력 등여성의 명예와 존엄..

내멋대로/사회 2021.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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