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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펌] 영화 '사르빈 강에 노을이 진다'로 본 1960년대 한국인의 위안부 인식

어빈2 2021. 10. 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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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박유하 세종대 교수 글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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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재구성된다. 개인의 기억이든 집단의 기억이든.

 

1965,한일수교가 다시 시작될 무렵 공개된 '사르빈강에 노을이 진다'라는 영화는 버마를 배경으로 한 일본군 조선인 학도병들의 이야기이다.

 

집안 좋은 '친일파'장교(신영균)와 그 장교의 모습이 못마땅한 친구들의 이야기이면서 저항운동을 하는 버마인 여성과의 로맨스까지 담고 있는 이 영화는 여러가지로 흥미로운 영화인데 특히 '위안부'가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이 영화는 이하의 맥락을 갖는다.

 

1. 그녀들은 '데이신타이', 즉 정신대라고 불렸다(이미 정신대=위안부의 착각이 정착).

 

2. 1960년대 한국사회는 그녀들을 '순진무구한 소녀'가 아닌 '때묻은 창녀'로 인식했다(장교가 자신의 막사로 안내된 여성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자 여성은 '더러워서요?'라고 묻는다).

 

3. 여성들에게 있어 병사들에게 배정되는 일은 '지옥'이고 장교에게 배정되는 일은 좀 나은 상황으로 간주되었다. 어느쪽이든 여성들의 생활은 자살을 꿈꿀만큼 힘든 것이었다.

 

4. 장교는 이들을 '지원'한 것으로 간주하지만 여성은 '간호부'가 되는 것으로 알고 왔다.

 

5. 여성은 '상부가 강제로' 끌어갔느냐는 장교의 말은 부정하지만 자신을 그런처지에 빠뜨리게 한 주범을 '일본제국주의'라고 인식한다.

 

이 당시는 학도병 체험자들도 아직 40. 그들의 기억과 이미지는 이런거였다.

 

중요한 건 5. 물리적 강제성과 구조적 강제성의 차이를 1960년대 한국은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로부터 30년후의 한국은 '위안부'를 새롭게발견하고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게 되지만.

 

사진은 막 도착한 위안부들과 장교막사로 안내된 위안부. '친일파'장교를 그녀들은 조롱하고 경멸하기도 할 만큼 씩씩한 모습을 보인다.

 

나중에 이 장교는 회심하고 버마의 독립운동을 돕지만 결국 버마인 손에 죽는다는 이야기. '친일파의 죽음'을 욕망하던 시대의, 흥미로운 영화다.

 

영화전체는 여기. 25분부터 32분 사이에 캡처장면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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