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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프랑스 혁명과 혁명의 심리학 - 귀스타브 르 봉

어빈2 2021. 8. 11.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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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귀스타프 르 봉

평점 10

 

개요

심리학자이며 군중심리의 대가인 귀스타프 르 봉의 1912년 발간된 역작 <프랑스 혁명과 혁명의 심리학>은 국민과 민주 주의에 대한 위대한 비판서이다. 1912년, 그것도 프랑스에 이 정도 수준의 책이 있었다는 데에, 그 높은 지성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한국인들 중 다수는 혁명을 굉장히 추종하고 상찬하는데, 대통령의 촛불혁명 사랑이 이를 잘 대표한다. 광주 5.18, 동학 사태도 일종의 혁명처럼 이해하고 혁명으로 만드려고 하는데, 이쯤되면 그냥 혁명 성애자라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이 모든 혁명 성애자들의 마음 속 고향은 프랑스 혁명이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은 교과서에서 조차 자유/평등/박애라는 이름으로, 대단한 것 처럼 서술되어있는데, 당대에 에드먼드 버크 같은 사람이 <프랑스 혁명 성찰>에서도 밝혔듯이 프랑스 혁명은 어리석은 민중의 광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 요즘은 지배적인듯 하다.

 

이 책은 혁명의 심리가 도대체 무엇이고 프랑스 혁명의 주체들의 심리가 어떤 것인지를 잘 밝히고 있다. 평소에 촛불혁명 좋아라 하고 다녔던 사람들에게는 정말 아픈 책일 수 있으며, 평소에 혁명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는 좋은 이론서다.

 

내용

이 책은 느낀점 보다는 내용이 주는 통찰이 중요하고 그 내용을 최대한 많이 공유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능한 이 책의 많은 내용을 그대로 옮겼고, 책에 좋은 문장들이 매우 많기에 문장 인용으로 대부분의 내용을 갈음 했다.

 

1부는 혁명의 심리학적 요소들을 분석하고 2부는 프랑스 혁명에 대해 분석한다. 마지막 3부는 프랑스 혁명의 유산들이 현대에 와서 어떤 폐해를 남기고 있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서론

서론에서 이 책의 목적을 설명하고 있는데, 프랑스 혁명이 발생한지 한 세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프랑스 혁명의 위대함을 추종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고, 혁명에 회의적인 사람들 조차 마치 혁명을 이성적으로 해석하려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데, 그런거 없고 혁명은 비이성적 광기이자, 신비주의/종교 심리학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혁명이 새로운 통치제도를 마련했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종교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p.13

 

1부

1부는 혁명에 대한 개론으로 우리가 이성적이라고 믿었던 혁명이 실제로 비이성적이며 종교개혁과 유사한 성격을 가졌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또한 혁명에 있어서, 현 정부에서 찬양해 마지않는 군중/민중이 어떤 존재인지를 증명하고 있다. 

어떤 혁명의 기원이 완벽하게 이성적이라 하더라도 혁명을 준비하는 과정에 촉발된 이성은 감정으로 바뀌지 않 는 이상 군중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군중이 혁명의 출발점은 아니다. 군중은 끌어줄 지도자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또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무정형의 존재와 같다.
p 22

정치적 믿음과 종교적 믿음의 형성에서 이성이 하는 역할은 아주 미미하다.
 
...어떤 믿음에 최면이 걸린 사람은 그 믿음의 사도가 되어 자신의 이익과 행복, 심지어 목숨가지도 바칠 준비가 되어있다. 그의 믿음이 안고 있는 모순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는 믿음이 매우 중요한 현실 자체이다.
 
...믿음은 절대적인 진리로 여겨진다. 바로 이런 사실 때문에 믿음은 반드시 편협하게 되어있다.
 
...종교개혁과 프랑스 혁명에서 폭력과 증오와 박해가 당연시 되었던 현상을 설명하기도 한다.
 
...세상을 움직이는 정치적 및 종교적 믿음의 힘은 그 믿음이 감정적 및 신비주의적 요소들에서 비롯되는 까닭에 이성에 의해 창조되지도 않으며 이성의 지배를 받지도 않는다.
p 24-26
 
강력한 믿음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쉽게 관용을 베풀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된다. 

고대 세계에서 유일하게 관용을 실천했던 사람들은 다신교를 믿는 사람들이었다. 이 시대에 관용을 실천하는 국가들은 다신교 국가로 정의될 수 있는 나라들이다.
p 47

 

이처럼 혁명은 이성에 근거하지 않고 종교적 광신에 근거하고 있으며, 편협하기 때문에 반대 세력에 대한 대학살의 형태로 혁명이 표출된다는 분석은 정확한것 처럼 보인다. 

 

우리가 2008년 광우병 시위에서 목격했던, 광화문을 가득 메운 국민들에 대해 느꼈던, 이성은 없고 광기만 있는 그 모습이 바로 종교적 열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매우 타당해 보인다.

혁명은 오랫동안 이어져온 국민의 영혼을 바꿔놓지 못한다. 혁명은 이미 낡아서 쓰러지게 되어 있던 것들만을 바꿔놓을 뿐이다.
p 53

 

이것이 르 봉이 주장하는 혁명의 본질이며, 우리가 혁명을 조심해야하는 이유이다. 급진적인 개혁은 환원주의적 오류를 보여주는데, 어떤 것을 싹 쓸어버린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것은 대표적인 오류이다.

 

혁명의 심리를 분석한 다음, 르 봉은 혁명의 주체로 상찬받는 '국민/민중'이 어떤 존재인지 설명한다.

국민은 혁명을 구상하지도 않고 혁명을 이끌지도 않는다. 국민의 행동은 지도자들에 의해 촉발된다.

...대체로 국민은 영문도 모른 채 혁명을 받아들이고 어쩌다 국민이 그 원인을 이해하게 되는 대는 아마 혁명이 끝난 뒤가 될 것이다.
p 61-62

국민은 스스로를 희생자로 여기기 시작하며 나아가 약탈과 방화, 학살을 자행하고 나선다. 그러면서 국민은 자신이 어떤 권리를 행사하고 있다고 상상한다. 국민이 주권을 갖게 된 마당에 국민에게 모든 것이 허용되야 하는 것 아닌가?
 
...혁명 초기에 희망과 믿음을 진정으로 표현했던 자유와 평등, 박애라는 구호는 곧 자제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군중의 진짜 동기들, 즉 상류 계층에 대한 질투와 탐욕, 증오를 정당화하는 구실이 되어버렸다.
 
...군중이 자신들의 지원으로 수행되고 있는 혁명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군중은 지도자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려는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지도자들을 충실히 따르기만 한다.
p 63-64
 
국민은 행동에 대해 어떠한 이유도 제시할 필요가 없고 또 실수도 저지를 수 없는 속성을 지닌 최고의 주권자로 받아들여졌다.
 
...국민의 최하층을 이루는 이 사람들의 무리에, 혁명이 뭔지도 모르면서 다른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가니까 그냥 따라서 거리로 나온 게으른 어중이떠중이들이 합세한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소리를 외치니까 자기도 따라 소리를 지르고, 반란이 일어나고 있으니까 자기도 반란에 가담하고 있을 뿐이다. 구호나 혁명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다. 이들은 환경의 암시적인 힘에 완전히 최면이 걸려 그저 분위기에 휩쓸려 행동한다.
p 68-69
 
경솔한 사람들이 원초적 야만성을 억누르고 있던 속박의 끈을 끊어버리는 순간, 비열한 민중의 행동은 그런 식으로 나타난다. 민중은 온갖 면죄부를 다 받는다. 민중을 치켜세우는 것이 정치인들에게 이롭기 때문이다.
 
...이처럼 충동적이고 악랄한 민중이지만 어떤 강력한 권력이 나타나 자기들에게 반대하고 나서면 언제나 쉽게 지배당하는 사람들도 바로 그들이다. 민중의 폭력이 무한하다면, 그들의 노예근성 또한 무한하다. 
p 71

 

르 봉의 국민에 대한 저주는 소름끼칠 정도로 정확하고 날카롭다.

 

이후 3부에 서술되지만 이런 국민들을 기초로 한 민주주의가 과연 이성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제도인가에 대한 그의 물음은 바로 잔인하리만큼 정확한 국민 분석에 기초하고 있다.

 

혁명의 심리와 국민이 어떤 존재인지를 분석한 다음, 르 봉은 실제 프랑스 혁명에서 나타난 다양한 개인과 군중, 그리고 그 동기를 설명한다. 

사회적 환경이 변하지 않을 때에는 안정 상태를 꽤 지속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반란의 시기와 같이 환경이 크게 변하면, 이 안정 상태가 깨어진다. 이때 해체된 성격적 요소들이 새롭게 결합하변서 새로운 인격을 형성한다.
p 74

격한 증오의 감정이 일어나는 주된 원인의 하나는 격노한 이 파벌들이 스스로를 절대 진리의 소유자로 여기는 까닭이다.

...신비주의적 또는 감정적 확신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그 믿음을 강요하려는 욕구를 수반하며, 절대로 설득 당하지 않으며, 대학살을 자행할 수 있는 권력을 쥐었을 때에는 그 행위를 자제하지 못한다.
p 77

자코뱅파는 자신의 믿음을 이성의 바탕 위에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믿음에 맞춰 이성을 다듬는다. 그리고 그의 연설이 합리주의에 흠뻑 젖어있다 할지라도, 그의 사고와 행동은 합리주의를 거의 따르지 않는다.

...스스로 이성의 안내를 받고 있다고 상상할 때에도, 그를 이끄는 것은 열정과 신비주의이다.
p 91

군중의 일원이 될 때, 사람은 고립된 개인으로 있을 때와는 몰라보게 달라진다. 그의 의식적인 개성이 군중의 무 의식적 성격에 묻혀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군중 속의 개인은 문명의 수준을 따지자면 아주 낮은 단계로 추락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지적인 영역에서 군중은 고립된 개인보다 언제나 열등하다. 도덕적 및 감정적인 영역에서는 군중은 개인의 상 관이 된다.

...집단에 속한 사람은 혼자 고립되어 있더라면 감히 꿈도 꾸지 못했을 법을 통과시키고 평결을 내렸다.
p98, 100

 

2

2부에선 1부에서 설명했던 혁명의 심리, 혁명 주체들의 심리들을 가지고 실제 프랑스 혁명 과정에 세밀하게 대입하여 분 석한다.

 

바스티유 감옥 습격 이후로 제헌 의회, 입법 의회, 국민 의회, 총재 정부에서 나폴레옹으로 넘어가는 매 순간마다 각 의회를 구성했던 존재들의 심리를 분석하고 있다.

 

2부 시작 부분에서 르 봉은, 프랑스 혁명에 대해 냉철한 잣대를 들이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왜냐하면 프랑스 혁명을 회의적으로 연구하는 최근의 움직임에서 조차 여전히 성역을 건드릴까봐 조심해하는 학자들의 소심함이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프랑스 혁명을 이성의 잣대로 분석할 때 발생하는 오류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는데, 혁명 자체가 이성에 근거해있지 않기 때문에, 혁명 주체들의 행동을 이성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오류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치 그 시대의 혁명은 필연적이였다는 식의 '운명론'은 프랑스 혁명에 대한 무지를 가리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혁명을 날카로운 메스로 후벼야 됨을 설명한 다음, 본격적으로 프랑스 혁명 분석을 기원을 분석하며 시작된다. 

부르주아 계급 위에서 군림했던 귀족 계급과 성직자 계급에 대한 부르주아 계급의 뿌리깊은 적대감이 프랑스 혁 명의 중요한 요인의 하나였다.
p 139


중산층에 의해 시작된 운동은 재빨리 그들의 희망과 욕구와 포부를 벗어났다. 중산층은 자신만을 위해 평등을 요구했지만, 다른 국민도 또한 평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리하여 혁명의 목표는 처음에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국민의 통치가 되었다.
p 142

철학자들이 프랑스 혁명의 기원에 실제로 끼친 영향은 일반적으로 그들에게로 돌려지고 있는것 만큼 크지 않았 다.
p 147

철학자들에게 민주주의는 그리스 역사에서 그랬던 것처럼 대체로 아주 못마땅하게 받아들여졌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 이미 민주주의를 "몇몇 선동적인 웅변가들의 지배를 받으며 압제자처럼 행세하는 군 중이 모든 것을, 심지어 법까지도 좌우하는 국가"로 정의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p 151

 

르 봉은 혁명에 철학자들이 끼친 영향이 거의 없고, 혁명은 앙심, 분노, 증오, 질투에 의해 진행됐다고 분석한다.

 

유일하게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 루소에 대해서 르 봉은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데, 혁명이 루소가 말했던 '지상낙원과 같았던 자연상태로의 회귀'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오류였다고 설명한다.

루소는 사람들이 시공을 불문하고 똑같으며 또 사람들이 똑같은 법과 제도에 의해 통치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것이 당시의 전반적인 믿음이었다. 이보다 더 심각한 실수는 없을 것이다.
p 155

 

이후 프랑스 혁명이 시작되고 정권을 잡았던 여러 정파들(지롱드, 자코팽, 산악파 등), 그리고 그 정파들이 구성했던 제헌 의회, 입법의회, 국민의회 그리고 총재 정부의 심리를 각각 분석한다. 또한 프랑스 혁명의 가장 추한 모습이었던 혁명 중 일어났던 광기와 폭력에 대해서 심리적 원인들을 설명하고 있다.

프랑스 혁명을 종교적 믿음의 형성으로 보지 않는다면 그에 대한 명확한 이해는 불가능하다.

...믿음에는 이성과 별도로 작용하면서 사람들의 사고와 감정을 한쪽 방향으로만 몰아붙이는 힘이 있다. 순수 이 성은 그런 힘을 절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이성에는 절대로 강한 인상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의 믿음은 감정의 영역에 속하는 집단 감정과 열정과 이해관계를 새로 일으킨다. 그러고 나면 이성이 모든 것을 두루 덮으면서 사건들을 정당화하려 하지만, 정작 이성이 이 사건들에서 한 역할은 하나도 없다.
p 167, 169
 
인도주의적이고 감상적인 혁명 이론들은 자유와 박애를 찬미했다.
 
...실제로 보면 어떠한 자유도 용납되지 않았으며 박애는 금방 광적인 대학살로 바뀌었다.
p 212
 
심문과 변호, 증언 등이 모두 무시되었고 도덕적 증거, 즉 단순한 의심만으로도 혁명 재판소는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있었다.
 
...혁명 재판소는 그 정신이나 목적이 종교 재판소와 비슷했다.
p 216-217

 

파리에서 혁명 세력들이 혁명 재판소 등을 만들어 광기의 대학살을 진행하는 동안, 오히려 프랑스의 혁명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다른 나라들의 침략에 맞서 혁명 군대는 엄청난 성과를 올리고 있었다. 이를 보통 프랑스 혁명 세력들의 공으로 치하하곤 하는데, 르 봉의 분석에 따르면 혁명군대와 파리의 혁명 세력들은 그 접점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마치 같은 시간대에 완전히 다른 공간에 사는 것 처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 못했는데, 혁명세력의 의회가 무정부 상태였다면 기율이 유지되고 있던 군대는 질서정연하게 단합되어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르 봉의 보수주의적 태도가 잘 드러나며, 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에 나온 내용과도 일치하는데, 종교(도덕)이 없다면 인간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이 주는 통찰 중 하나는 이와같은 보수주의에 대한 이해이다.

 

이 책은 혁명이 실제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 주장하는데, 그 과정에서 전통에 대한 르 봉의 깊은 이해를 알 수 있다. 실제로 프랑스 혁명이 이성에 입각하여 불합리해 보이는 구체제를 모두 부정하고 수 많은 것을 창조하려고 했지만, 정작 10년간의 혁명 기간이 지나고 나서 부정하려고 했던 전통과 민족혼을 구심점으로 프랑스는 다시 질서를 찾았다.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로 구성된 군중이 파리와 전선에서 너무나 다르게 행동하고 있었다.

...기율이 사람을 바꿔놓았다. 기율에서 해방되는 순간, 사람들과 군인들은 야만적인 집단이 되어버린다.
 
...우리는 민중의 충동을 다스릴 방법을 배우지 않고 늘 변화하는 민중의 충동에 점점 더 굴복하고 있다. 군중에게는 따를 길을 제시해줘야 한다. 길을 선택하는 것은 군중의 몫이 아니다.
p 232-232
 
인류의 진정한 안내자는 조상들이 세운 도덕적 기반이라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민의회와 총재정부의 역사는 뿌리 깊은 구조를 박탈당한 가운데 오직 불충분한 이성에서 나온 인공적인 조 치들만을 길잡이로 택하는 국가가 무질서에 얼마나 심각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P 258

 

혁명 정부가 가져온 무질서는 공포정치를 낳았고 이는 프랑스 사람들이 깊은 피로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결국 총재 정부를 지나면서 프랑스의 모든 사람들은 질서를 회복시킬 정도로 강력한 인물의 등장을 바라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때 혁명 군대를 이끌며 큰 전공을 세우고 있던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은 국민들에게 영웅으로 인식되고 있었으며, 이 호응에 의해 통령이 된 나폴레옹은 혁명을 끝내는 것이 아닌 혁명이 가지고 온 이론적 원칙들을 승인하고 강화함으로써, 혁명세력과 구체제 옹호세력들의 조화를 이끌어냈다.

 

사실 이 부분은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와도 맞닿아 있다.

 

지금은 이승만-박정희로 이어지는 건국의 역사를 독재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저평가하고 공격하지만 이는 그 당시 우리가 겪었던 정치적 혼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지금의 잣대로만 판단하는 오만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오히려 혼란을 종식시키고 질서를 가져올 사람을 기다렸다는 점은 르봉의 분석대로, 실제 군중이 그런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한국의 건국사도 설명될 수 있다. 

보나파르트는 혁명을 파괴하기는 커녕 승인하고 더욱 강화했다.

...보나파르트의 전제정치를 싫어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봐야 한다. 그의 통치가 열광적으로, 또 매우 신속하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구체제 하에서 프랑스 사람들은 온갖 종류의 전제 정치를 다 지지했으며, 공화국은 군주제도의 폭정보다 더 가혹한 폭정을 펼쳤다. 당시엔 독재가 정상적인 조건으로 여겨졌으며, 특별히 무질서를 수반하지 않을 경우에는 어떠한 항거도 불어일으키지 않았다.

...군중 심리학의 한 법칙은, 군중이 무정부 상태를 일으킨 다음에 거기서 빠져나오게 해줄 지배자를 찾는다는 사실이다.
P 268-271

 

3부

3부는 프랑스 혁명 이후 혁명이 남긴 '평등'이라는 유산이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계승되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다.

 

비록 혁명은 10년간 지속되었지만, 혁명이 남긴 평등의 의미는 현재에 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르 봉의 분석이다. 그러나 혁명의 가치였던 자유와 박애는 사라지고 오직 평등만이 더 강화된 채 이어져 오고 있는데, 이는 혁명의 종교적 성격이 결국 민주주의로 모양새만 바꾼 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통렬한 비판이자 작금의 현실에 대한 정확한 예측이기도 하다. 

평등의 원칙이야말로 프랑스 혁명의 진정한 유산이 되었다.

법 앞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부에서도 평등하고 싶은 갈망은 민주주의의 마지막 산물인 사회주의의 핵심이다.

...전적으로 평등의 정신과 근로자들의 운명을 개선하겠다는 욕망을 추구하면서, 민중 민주주의는 박애 사상을 부정하고 자유를 전혀 염원하지 않는다.

민중 민주주의는 독재정치 외에는 그 어떤 정부도 상상하지 못한다.
p 297. 299

 

평등과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은 현대 민주주의 타락 현상에 대한 아주 정확한 분석이다. 특히 존 롤즈 식의 정의론이 가져 온 '평등'의 개념을 르 봉은 비판하고 있는데, 이 책이 1912년에 나왔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주 놀랍다. 

자연은 평등같은 것을 모른다.

자연은 천재성과 건강, 미, 활력, 지능 등을 불공평하게 분배하고 있으며, 그런 것들을 가진 사람들이 동료들보다 우월하도록 만들고 있다. 어떤 이론도 이 같은 모순을 바로잡지 못한다.

...자연은 언제나 연속적 차별을 통해서, 말하자면 불평등을 심화시키면서 진보를 이루어 왔다.
 
... 현대적 진보의 조건은 평등 이론에 적대적인 자연법의 편에 서있다.
 
...민중 계급 중에서 가장 우수한 개인들을 선택하는 민주주의의 형식은 종국적으로 지적 귀족을 낳게 되어있다.
 
...법과 제도가 개인들의 평준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문명의 발전이 개인들 사이의 차이를 더욱 키우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다.
 
...문명 국가들과 야만적인 민족들이 개인들의 평균 수준에서 서로 비슷하다고 가정한다면, 문명 국가들의 우수성은 단지 그 국가들 안에 존재하는 탁월한 사람들의 덕분이다. 미국은 이 점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p301-303

 

르 봉은 혁명을 지탱하는 심리인 신비주의적 종교적 열정이 결국 그 대상을 바꾸어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에 깃들어있다고 한다. 인간은 원래 종교적이기 때문에, 원래 이성이 아닌 신비주의적 감성에 이끌려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의 종교적 대상이 새롭게 바뀔 뿐, 그 광신적 태도의 깊이와 크기는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이 통찰이 놀라운 점은 바로 현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준다는데 있다. 

(혁명의 종교적 성격을)민주주의 사상과 사회주의 사상에 적용한다면, 이 사상들이 확고한 바탕을 전혀 갖고 있 지 않다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확인된다.

...이 사상들의 결과가 재앙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같은 결과를 막지 못한다.
 
...새로운 교의의 사도들이(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사도를 뜻함)자신들의 포부를 뒷받침할 이성적 근거를 찾으려 애쓴다면 이는 시간과 노력의 낭비일 뿐이다.
 
...새로운 교의의 힘은 사람의 가슴에 본래부터 있는 종교적 성향에 있으며, 이 종교적 성향은 세월이 흐르면서 그 대상만을 바꾼다.
p 305-307

 

또한 혁명을 이끌어온 자코뱅파의 심리가 현대에 어떻게 전해지고 이어지고 있는지를 분석하고 있는데, 이 또한 대한민국 지식인들의, 정부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정치인들의 부패와 타락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아래 이 책의 인용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지칭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586 세대의 도덕적 타락과 내로남불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자코뱅의 불관용은 낮은 계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혁명의 최악의 폭력은 교양있는 부르주아 계급, 즉 예절을 순화할 목적의 고전 교육을 받은 교수와 변호사 등 의 짓이었다. 그런 경향은 지금이라고 해서 옛날보다 절대로 덜하지 않다.
 
...그처럼 많은 행운을 누린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무서운 증오를 품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그들이 이타주의의 뜨거운 열정에 불타고 있다는 확신을 준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들을 좀처럼 신뢰하지 못 할 것이다. 그들이 글을 통해서 권하는 폭력을 보면 시대의 힘 있는 인물로 인식되려 하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인 기를 쌓으려는 노력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사회적 처지나 부나 지능면에서 평균 이상을 향한 이런 증오는 오늘날 근로자 계급에서부터 부르주아 계급의 상류층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급에 걸쳐 두루 나타나고 있다. 그 결과 시기와 험담, 공격, 비방, 박해, 그리고 모든 행동을 저급한 동기로 돌리려는 버릇이 생겨났으며, 청렴과 공평과 지능에 대한 믿음을 거부하려는 경향도 두드러지게 되었다.
p308-310

 

르 봉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인 보통선거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다. 

군중이 통치할 능력을 갖춘 사람들을 선택할 수 있고, 또 도덕성이 변변찮고 지식이 부족하고 마음이 편협한 사 람들이 단순히 숫자만을 바탕으로 후보자를 판단할 재능을 갖고 있다고 믿는 사상은 분명히 놀랄만한 사상이다.

...보통선거는 실제로 보면 픽션에 지나지 않는다.

군중은 매우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도자들의 의견 외에는 아무런 의견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p314-315

 

책의 마지막은 작가의 보수주의적 심리학 연구 결과와 진정으로 평등을 찾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방법을 제시하면서 끝난다. 

개혁은 규제들이 아니라 개인들과 그들의 방법들이 국민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아직 아무도 이해하지 못 하고 있는것 같다.

효과적인 개혁은 혁명적인 개혁이 아니라 세월이 흐르는 과정에 매일 축적되는 사소한 개선들이다. 중대한 사회적 변화는 중대한 지질할적 변화처럼 사소한 원인들이 매일 축적되어 일어난다.

...미국처럼 진정으로 민주적인 국가들은 오직 재산만이 구분의 바탕이 될 뿐이다.
 
...순수하게 금융적인 귀족 사회는 질투도 그다지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누구나 자기도 언젠가는 귀족 사회의 일 원이 될 것이라는 꿈을 꿀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스스로 평등하게 믿는것은 모두가 노력하면 자유롭게 똑같은 위치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군주 정치와 민주주의의 결과를 다르게 만드는 것은 오직 인간들의 변화가능한 사고방식이다.
 
...통치제도의 가치는 언제나 통치를 받는 사람들의 가치에 좌우될 것이다. 어떤 국민이 국가의 순위를 결정하는 것이 통치제도가 아니고 각 개인들의 개인적 노력의 총합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그 국민은 위대한 발전을 신 속히 이룰 것이다.
p319-321

 

느낀점

이 책은 무서운 책이다. 이 책은 혁명/국민/민주주의에 대한 저주이자 그 자체로 날카로운 메스와 같은 책이다.

 

프랑스 혁명 속 민중들의 심리를 아주 정확히 분석하고 있는데, 좋은 책엔 줄치면서 읽는 습관이 있는 나로서는, 정말 오랜만에 책장을 넘길 때 마다 줄 쳐야 했던 책이었다.

 

평소에 혁명적 심리 또는 광기가 문제인 것은 알았지만 어떤 심리가 내재되어있는지, 또 주도적 역할을 하는 민중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고 있었는데, 이 책은 이를 아주 잘 정리해놓고 있다.

 

또한 문장들이 촌철살인이라, 다시 곱씹어봐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말들이 많다.

 

장점

▶혁명에 대한 소름끼치는 분석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혁명의 정신이 현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전해지고 있는지를 보고 있으면 한국과 너무 비슷한 모습에 또한 등골이 서늘해진다.

 

▶프랑스 혁명이 왜 인간의 무지와 광기의 집합체였는지 알 수 있다.

 

▶민중/군중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가질 수 있다.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촛불혁명을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현대의 민주주의도 결국 이성적 근거에 바탕한 것이 아니라 신비주의적 종교에 바탕한 것이기 때문에 그 결과가 재앙을 가져올지라도 우리가 막을 수 없다는 분석은 너무나 절망적인데, 이는 그것이 사실로 보이기 때문이다.

 

단점

▶작가의 단호하고 단정적인 어조가 어떨 때는 작가조차도 자코뱅의 불관용에 함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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