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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연평해전(2015)

어빈2 2021. 5. 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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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김학순
출연 이현우, 진구 외
개봉 2015년 6월 24일
평점 2

개요
이 영화가 개봉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 가장 먼저 든 느낌은 '감독이 말 하려는 내용이 뭔지 알겠다.' 였다. 그 생각은 태극기가 한가운데 휘날리는 포스터를 보고 확고해졌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왜 우리나라는 분명 건국 이후 성공한 역사였고 세계에서도 유례없이, 전쟁 후 핏덩이 속에서 활짝 날개를 펼친 나비가 되었지만 그에 대한 영화가 없는가였다.

현대사를 주제로한 영화는 크게 독재정권, 남북관계 이 두가지에 대한게 주류인데 대부분의 영화는 북한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가지고 있고 독재정권의 잔혹함에 억울하게 피해받은 사람을 주제로 한다. 그것이 사실을 말하는 영화이던 픽션이던 분명 보는 이로 하여금 의도하는 바는 명확하다.

 

때문에 우리나라의 현대사 영화를 계속 본다면 가지고 있는 역사관이 편향될 가능성이 크다고 느꼈고 그 결과로 대한민국의 건국과 역사를 부정하는 사고방식을 갖게되지 않을까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연평해전이라는 다소 최근의 사건에 대한 영화가 나왔고 기회가 되어 보게되었다.

연평해전은 1차 연평해전과 2차 연평해전이 있는데 1차연평해전은 1998년 일어났던 해전이고 이 영화의 배경인 2차 연평해전은 2002년 한일 월드컵 기간에 일어났던 사건이다.

 

당시 월드컵에서의 성공이라는 축제 때문에 묻힌 사건이 연평해전과 미선, 효순 장갑차 사건이었는데 월드컵 이후 미선 효순 장갑차 사건은 크게 이슈되었지만 연펑해전은 군인들만의 추모행사에서 그쳤었다. 그렇지만 그 이후 여러번의 북한의 대남도발 사건으로 연평해전이 계속 재조명되었으며 결국 영화로도 나왔다고 생각한다.

영화 초반부에 나왔지만 NLL은 north limit line의 약자로 북방한계선이란 뜻인데 한국전쟁 이후에 서해의 영해를 구분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연합군 측에서 제안한 선이다.

 

1953년 휴전협정 당시 '현위치에서의 군사접촉선을 휴전선으로 한다'고 협정에 합의하게 되어 육지에서의 휴전선은 남북한이 합의했다. 그러나 바다에서 문제가 있었는데 당시 북한은 배가 모두 파괴되었기 때문에 북한의 영해는 모두 연합군의 영해였다. 그래서 휴전협상중 합의가 아닌 일방적으로 연합군측에서 돌려주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러나 1973년 부터 북한에서 NLL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했고 결국 1991년 53년 7월에 그어졌던 선과 이 시점까지 남북이 관할한 곳까지를 경계선으로 한다고 합의함으로써 NLL선은 확정되었다.

이후 꾸준히 NLL근처에서 남북간 소규모 분쟁이 있었고 1998년 1차 연평해전이 발생하게 되어 국군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 집권 이후 햇볕정책의 일환으로

1.NLL을 지키고
2.선제공격을 하지말고
3.상대가 먼저 발포할 경우 교전수칙에 따라 격퇴 할것
4. 전쟁으로 확산키지 말것
(출처:위키백과)

으로 이루어진 4대 교전수칙을 지시하게 되고 해군에서는 교전 수칙에 차단기동이라는 발포는 하지않되 접근하여 북측 함선이 내려오지 못하도록 길목을 차단하는 단계가 강화되면서 영해 침범시 선제사격을 못하게 되었다.

 

1차 연평해전 당시에도 차단기동이라는 밀어내기 방식의 5단계의 교전수칙이 있었는데 2차 연평해전에서 차단기동 도중 북한에게 사격당하면서 이후 교전수칙은 바뀌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월드컵 4강이라는 성공에 빠져 알지못했는데 어렴풋이 이름으로만 들어 알고있던 도중에 그 사실을 제대로 알리고자 한 영화가 개봉된 것이다.

내용
영화는 윤영하 대위가 참수리357호에 오게되면서 부터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인 박동혁 상병의 시선을 통해 월드컵의 열정과 그 열정에 가려진 연평해전을 통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하게 하고 있다. 또한 애국주의의 입장에서 만든 영화기 때문에 북한에 대해 올바른 시각을 제시해 줄 수 있다는 점과 과거 친북성향의 정부가 옳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현재 성역화 되다시피 한 김대중 노무현 전 정권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제가 연평해전이 아니었다면 흥행에 성공하기는 힘들었다고 생각한다. 해전 전까지의 장면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월드컵 기간이었다는 것 밖에 없으며 대원들 간의 관계도 불분명하고 그들 사에이 일어나는 에피소드가 그리는 큰그림도 존재하지 않았다.

연평해전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배경 아니었으면 해전 전 까지의 장면만 봤을때 이게 무슨 영화인지 파악이 잘 되지 않는 영화였다. 그리고 꽤 긴 러닝타임의 해전 장면도 전투 장면보다는 대원들의 영웅적인 죽음을 강조하면서 눈물샘을 자극했지만 그것이 과도하게 길어지면서 오히려 지루함이 느꼈졌다.

느낀점
이 영화를 보면서 영화 외적으로 느낀것이 3가지가 있는데

첫번째는 2002년 이후 밥먹듯이 일어나는 광화문, 시청 광장에서의 시위이다.

그 전까지 광장을 점령하는 시위는 드물었는데 지금은 일상 다반사가 되었다.

 

민주주의는 광장에서 머리띠 묶고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을 보면 국회는 광장에서의 결과에 도장을 찍어주는 곳이고 정치는 광장에서 하는 것이라는 일종의 행동패턴이 있는거 같은데 광장은 가족들이 와서 이야기하고 연인들이 데이트를 하고 친구들끼리 놀고 토론을 하는 곳이며 그런 이들이 조용하고 아름다운 장소를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장소이지 다수 대중을 동원하여 점령하고 시위를 하는 곳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는 다수 대중들이 우리가 다수니까 괜찮아 식의 막무가내가 아니라 조용한 삶을 누릴 소수의 권리도 존중해 주는 것이며 그것이 가능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사람들이 깊은 생각을 통해 이루어 질 수 있는 제도이다.

그러나 광장에서 광기와 열정에 휩쌓여 촛불을 키고 스스로가 시대를 밝히는 양심의 촛불인 것 처럼 하는 것은 대중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 광장민주주의 이며 이는 인민민주주의 또는 대중독재라고 불리는 공동체주의 또는 전체주의적인 행동 패턴이다.

 

우리는 이 결과가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나치즘, 스탈리니즘, 중국의 홍위병이라는 것을 잘 알고있다.

자유민주주의는 열정과 광기가 아니라 합리적인 무관심과 합리적인 관심을 통해 이루어 지는 것이다. 투표에 참여하는 합리적인 관심과 누군가의 '빠'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정치인의 말과 공약, 정당의 이념을 판단하고 선택하는 합리적인 무관심이 적절하게 있어야 자유민주주의가 가능한 것이다. 단적으로 정치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누가 정치를 해도 우리가 별로 신경 쓸 일이 없는 상태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지 않으면 곧 나라가 망할 것 처럼 행동하고 다른 후보가 당선되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떻게든 흠을 집어내어 깎아 내리려고 하고 이를 당선되지 못 한 후보나 그 당은 선동하는데 이는 결코 옳지 못하다는 것을 영화를 보고 다시 느꼈다.

두번째로는 국가간 스포츠의 위험성이다.

국가스포츠는 국민의 마음을 흥분시키고 환호하게하며 때로는 격분하게 하는데 그 상태를 우리는 조심해야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일전이 대표적인 위험한 국가스포츠인데 우리는 한일 대표팀이 축구를 할 때 축구를 보지 않는다. 한국을 응원하며 일본선수가 반칙을 하거나 그 경기에서 진다면 냉철한 판단력을 잃고 분노에 휩쌓이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 알수 있는 것은 국가스포츠는 민족주의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2008년 베이징 올림픽때 중국의 태동을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으며 히틀러의 베를린 올림픽때 전 국가가 숨죽여 본 이유이다. 민족주의는 필연적으로 전체주의로 연결되고 우선적으로 우리 안의 불결하다고 판단되는 것을 제거하는 것으로 시작되며 이는 결국 다수에 의한 소수에 대한 학살로 나타났던 것이 현대 인간사의 현실이다.

2002년 월드컵도 전 국민이 월드컵이라는 축제에 빠져들어 광장에서 경기를 관람하고 그로 인해 교통이 혼란에 빠지는 불편함이 있었으며 조용한 밤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의 권리를 묵살했었지만 이것이 축제의 일부분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용인되었다.

 

그러나 월드컵의 광기가 연평해전의 아픔에 대해 눈을 가리고 그 광기를 그대로 연결시켜 미선이 효순이 장갑차 사건을 통해 반미시위로 확산된 것은 용인될 수 없는 것이다.

세번째로 평화는 전쟁의 부재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평화의 정의를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라고 규정해서는 안된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전쟁이 나지 않도록 하는 모든 행위를 정당화 하게 되는데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에 거액의 돈을 준 것이 이에 해당한다.

얼마전에 개봉한 <아메리칸스나이퍼> 라는 영화를 보면서 느낀것은 미 해병대에 대한 영화고 다분히 팍스아메리카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클린트이스트우드 감독의 장점인 차가움이 묻어났다는 것이다. 즉 영화를 통해서 누가 착하고 잘못한게 아니라 사실만을 그려내며 그 판단은 본인이 하라는 것이다.

모든 사건은 정태적이지 않고 동태적이며 수 많은 요소가 얽혀있기 때문에 옳고 그름의 경계는 결코 명확하지 않다. 이번 연평해전은 그에 비교하면 차가운 영화는 아니었다. 눈물샘을 자극하고 신파극이 느껴지는 연출이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영화를 우리가 냉철하게 바라보고 영화를 통해 진실을 알 수 있으며 영화 제작자도 자신의 이념을 강요하는 영화가 아닌 사실을 전하고 그 판단을 관람객에게 맡기는 그런 과정이 있다면 충분히 우리사회에 건강한 영화라고 할수있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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