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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왓치맨(Watchmen)

어빈2 2021. 6. 27.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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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잭 스나이더

출연 재키 얼 헤일리, 빌리 크루덥, 제프리 딘 모건

개봉 2009년

평점 9

 

줄거리

"Who Watchs Watchmen"

 

히어로의 활동을 금지하는 법이 통과된 이후에 히어로로 활동하며 자경단의 역할을 해 온 왓치맨들은 해산하게 되었지만 로어셰크는 히어로 활동을 계속한다.

 

그러던 중 히어로였던 사람중 한명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살인사건을 조사하던 로어셰크는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라 뒤에 거대한 음모가 있음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리고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느낀점

새벽의 저주와 300으로 잭 스나이더 감독의 팬이 되었다.

 

그 감독이 왓치맨이라는 영화를 제작하였다 해서 히어로 영화를 어떤 느낌으로 만들었을까 하는 마음에 보게되었다.

 

이 영화는 만화책이 원작으로 DC코믹스 만화책인 왓치맨은 휴고상이라는 과학소설이나 환상문학 작품에 수여하는 과학소설상을 수상할 정도로 작품성이 있는 만화책이다.

 

만화책과 영화의 결말은 살짝 다르긴 하지만 영화의 평이다 보니 영화의 결말을 선택하여 적으려고 한다. 

 

영화는 감독판을 기준으로 두가지로 나누어서 평을 쓸수있는데 하나는 왓치맨 자체의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왓치맨 내부에 있는 또다른 에피소드에 대한 내용이다.

 

영화의 내용이 주제이지만 그 두가지를 어떻게 엮는가도 새로운 재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인터넷에서는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하는것이 정의인가 같은 주제로 얘기를 풀어나가기도 하는데 틀린것은 아니지만 너무 결론부분에 집착한 해석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는 조금 다르게 인물에 주제를 부여해서 감상해 보았다.

 

일단 왓치맨은 히어로들 로어셰크, 코미디언, 오지맨디아스, 닥터맨하탄 네명을 이해하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중에서 왓치맨에서 말하고자 하는건 코미디언이라고 생각한다. 

 

로어셰크는 절대로 타협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리고 결국 그것 때문에 죽게되는데, 로어셰크는 자신의 목숨이나 자신의 행동의 수단이 어떠한가를 따지지않고 자신의 정의를 위해 행동한다. 공리주의, 정의론, 의무론 같이 이론적인 정의가 아닌 로어셰크의 정의는 인간이냐 아니냐 이것이고 그것 때문에 온갖불법행위를 저지른다.

 

코미디언은 왓치맨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데 코미디언은 로어셰크와 같이 인간의 가장 추악한 본성을 알고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로어셰크가 그 추악한 본성을 자신의 폭력과 추악함으로 고치고 단죄하려고 했다면, 코미디언은 조금 다르게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인식하고 거기에 회의를 느낀다. 이는 영화 내에서 로어셰크가 코미디언의 농담에 대해 회상하는 장면에서 명확하게 나오는데

 

어떤 사람이 의사에게 상담을 받으러 가서 말했다.
"의사선생님 너무 우울하고 죽고싶고 힘들고 그럽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그러자 의사가 말하길 간단합니다.
"옆 동네에 팔리아치 라는 최고의 광대가 와서 공연하는데 그걸 보세요 금방 힘이 날 것입니다"

그러자 광대가 울면서 대답하길
"의사선생님 제가 팔리아치 입니다"

 

 

코미디언은 히어로 활동을 하는데 로어셰크와 같이 폭력과 비인도적인 방법으로 히어로 활동을 한다. 그리고 로어셰크와 같이 추악한 인간을 추악한 방법으로 고치는데 일반 대중들은 히어로에 열광한다. 

 

코미디언은 바로 이러한 모순을 견디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이름을 코미디언이라고 한 것이다. 그는 회의를 느끼고 대중이 열광할 수록 더 추악해졌다.

 

왓치맨 영화 초입부에 등장하는 Who watchs watchmen 은 코미디언 때문에 이 영화의 주제가 되는 것이다.

 

누가 왓치맨들을 감시할 것인가. 왓치맨은 추악한 인간들을 감시한다. 

 

그러나 왓치맨의 추악함은 과연 누가 감시하는가. 이것이 감시 되지 않았고 묵인되어왔기 때문에 대중은 코미디언 즉, 히어로에게 열광했다. 그러나 코미디언은 그 추악함을 감시하는 것을 닥터 맨하탄이 해주기를 바랬다.

 

즉 신에게 의탁한 것인데 영화중에 닥터 맨하탄에 대해 이런 대사가 나온다. 코미디언의 대사는 아니지만 '슈퍼맨이 미국인이라는게 아닙니다. 신이 미국인이라는 겁니다' 즉 신에게 나의 추악함을 감시해 달라고 해도, 결국 신도 나에게 추악함을 시키고 묵인해주며 열광해주는 이해관계자 입장에서 합리화 되고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코미디언은 거기에 절망하고 회의를 느낀것이다. 

 

오지맨디아스는 일찍이 인간의 본성을 알아봤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거시적으로 노력한 유일한 히어로이다.

 

닥터 맨하탄은 거의 신과 같은 존재로 나오는데 그 또한 당연히 신과 같은 존재이므로 인간의 본성을 알고있다. 그러나 그는 모든것을 다 바꿀수는 있어도 인간의 본성만은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아무런 흥미도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다.

 

결국 인물 네명이 인간의 본성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냐를 정리해보면

 

인간의 추악함을 인간의 추악함으로 고치려고 했던 로어셰크

인간의 추악함을 신에게 의탁하여 고치려고 했지만 그 또한 불가능하여 추악함에 편승한 코미디언

인간의 추악함을 거짓으로 동기부여를 해 고치려고 했던 오지맨디아스

인간의 추악함은 결코 바뀔수가 없기 때문에 아무런 감정없이 인간을 대했던 닥터맨하탄

 

영화에서 보여주는 현실은 오지맨디아스의 방법대로 흘러가고 있다. 거짓된 토대위에 거짓을 쌓고 있으며 추악한 본성은 결국 희생이라는 이름 하에 이루어진다. 그리고 코미디언을 살해하고 닥터맨하탄을 추방함으로써 그 방법이 어쩔수 없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 또한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감독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만서도 조금이나마 로어셰크의 손을 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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