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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사일런스(Silence)

어빈2 2021. 5. 10.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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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마틴 스콜세지
출연 앤드류 가필드, 아담 드라이버, 리암 니슨, 아사노 타다노부, 고마츠 나나 외
개봉 2016년 11월 29일
평점 9

개요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을 원작으로 한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사일런스는 종교인이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신앙적 딜레마를 주제로 한다.

놀라운 것은 기독교를(이 글에서 사용하는 '기독교'는 예수를 믿는 종교 일반을 뜻함. 천주교, 개신교 등을 모두 포함) 주제로 한 세계적인 소설이 일본에서 나왔다는 점인데, 아직도 기독교 볼모지인 일본이라는 점에서 문화적, 신앙적 경외감이 들 정도다.

오히려 종교가 신성 불가침 영역이 되어 종교 비판 뿐 아니라 신앙에 대한 천착조차 말하면 싸우게 되는 주제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이를 다루는 선순환이 마비된 환경을 갖고 있는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실제로 한국에서 나오는 종교적 서적이란 목회자들의 자기계발서 수준의 싸구려 책에 불과하다는 점이 이를 잘 방증하고 있다.

 

 

내용
17세기, 자신의 스승인 페레이라 신부(리암 니슨)이 일본에 선교하러 갔다가 오히려 신앙을 버리고 일본인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로드리게스 신부(앤드류 가필드)와 가루페 신부(아담 드라이버)가 그를 찾아 일본으로 간다.

둘은 아주 힘들게 일본에 도착함과 동시에 일본에서 자행되는 기독교인에 대한 끔찍한 박해에 절망하게 된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고 순교를 택하는 수 많은 일본인들이 어떻게든 신부들을 지켜주고 신부에게 신앙을 갈구하는 모습을 보고 신부들도 마음을 다잡고 자신의 신앙심을 단련한다. 일본에서도 기독교가 뿌리 내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일본인 신도들을 위해 비밀스럽게 여러 동네를 돌아다니며 미사를 집전하던 신부들은 결국 일본 관군에 의해 붙잡힌다.

그러나 영리하고 영악한 일본 관헌은 신부를 죽이거나 고문하지 않고, 오히려 신부를 신앙적으로 완전히 굴복시키기 위해 신부 앞에서 다른 일본인 신도들을 고문한다. 특히 자신의 입으로 신앙을 부정하거나 아니면 성화(예수가 그려져 있는 그림)을 밟고 지나가도록 하는 행위를 강요한다.

 


로드리게스 신부와 다른 신도들도 박해 속에서 신앙의 빛을 잃게 된다. 고문당하는 신도들의 비명을 들으며 감옥에 갖혀 있던 로드리게스 신부는 '이처럼 큰 고통의 순간에 하느님은 도대체 왜 침묵하십니까'라는 말을 하며 배교하게 된다.

느낀점
이 영화의 주제는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하고 가질 수 있는 의문을 보여준다. '이처럼 큰 고통의 순간에 하느님은 어디 계신겁니까'라는 발칙한 신성모독에 대해 그 상황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이를 경박한 질문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그리고 엔도 슈사쿠의 <침묵>은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로드리게스 신부의 고민인 '신도들에게 순교할 것을 요구하느냐, 아니면 자신이 배교함으로써 신도의 목숨을 구할 것이냐'는 대척관계가 아니라는것이다.

일본 관군들은 성화를 밟는 행동(후미에)이 기독교인들 각자에게는 양심과 신앙을 짓밟는 행위이겠지만 동시에 다만 형식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로드리게스 신부가 고민을 하며 신도들이 고문 받고 고통받는 것을 내버려두고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막말로 밟는 척만 하고 배교를 안하면 그만 일테니까.

로드리게스 신부는 결국 깨달음을 얻는데, 개인의 신앙적 고결함을 위해 타인의 고통을 용인하는 것은 기독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화를 밟으면 그 순간 개인의 양심에 큰 상처가 나겠지만 그 대가로 사람들의 고통이 끝나고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예수가 십자가에 메달렸을 때의 정신이라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로드리게스 신부가 결국 나이가 들어 죽을 때 고요하게 손에 작은 십자가 하나를 쥐고 화장당하는 것도 그렇게 보면 해석이 가능하다. 자신이 신앙을 숨기고 전향한것 처럼 하고 살아야 다른 신도들이 고문받지 않기 때문에 오직 양심으로만 자신의 신앙을 지키고 끝까지 자신의 신앙을 숨긴 것이다.

또한 이 부분이 천주교와 개신교가 달라지는 부분이기도 하며 책의 주제이기도 하다. 책을 쓴 엔도 슈사쿠는 책 뒤에 자인의 프로테스탄트적 성향을 고백하고 있는데, 그 점이 바로  개신교는 믿음으로, 천주교는 믿음의 실천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차이점이다.

문제는 믿음의 실천이 도대체 무엇이며 그 행동은 누가 정할것이냐는 것이다. 즉 행동은 개인-하느님의 직통 전화가 아니라 실천을통해 드러나는 신앙적양심이 사회나 공동체에 의해 평가 받아야하고 누군가가 정해준 '선함'의 기준에 따른 실천지침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성화를 밝지 않고 순교하는 것이 누군가 정해놓은 믿음의 '실천'이다. 그러나 로드리게스는 내 믿음은 오직 나와 하느님의 것일 뿐 그걸 판단하는건 내 행동으로 드러난 것만 보는 타자가 아니라 오로지 개인일 뿐이라는 것이다.


로드리게스 신부 앞에서 신도를 고문하며, 신부가 하느님을 부정한다면 신도들을 풀어주겠다는 장면에서 로드리게스 신부는 결국 자신의 발 아래 놓인 성화에 떠오른 예수를 바라보며 그 답을 얻는다. 이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가장 슬프면서 또한 희열의 장면이자 모든 기독교인에게는 하나의 답이 될 수 있겠다.

괜찮으니 나를 밟아라.  

나는 너희들의 고통을 공유하기 위해 났으며 내가 십자가를 진 이유는 그 고통을 짊어지기 위함이라.  

나를 밟고 지나가라.

 

 

책에선 이렇게 표현되어있다.

 

밟아라. 성화를 밟아라.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존재하느니라.

밟는 너의 발이 아플 것이니, 그 아픔만으로 충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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