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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미션(The Mission, 1986)

어빈2 2024. 10. 22.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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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롤랑 조페
출연 로버트 드 니로, 제레미 아이언스, 리암 니슨 外

 
개요

 
영화 <미션>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남미에서 열심히 식민지 경쟁을 올리고 있을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86년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을 받았으며, 이 때가 롤랑조페 감독의 처음이자 마지막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이후 감독의 작품은 사실상 폭망으로 <미션>을 제외하곤 초라한 필모그래피를 남기게 되었다. 
 
사실 감독의 미숙함은 영화 곳곳에서도 드러나는데, 영화가 뭔가 엉성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게 옛날 영화라 그런가 싶다가도, 감독을 생각해보면 역량 부족이라는 느낌도 든다. 
 

내용

 
때는 18세기,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남미에 열심히 식민지를 개척하던 시대, 예수회를 중심으로 한 많은 신부들이 남미에 '선교지'라는 이름으로, 원주민들에게 그리스도교를 전파하고 있었다. 
 
가브리엘 신부(제레미 아이언스)는 최근 과라니 족(원주민)에게 그리스도교를 전파하기 위해 파견되었던 여러 신부들이 죽거나 연락이 끊긴 것을 알고 본인이 직접 밀림 속 과라니 족을 만나러 간다. 그들에게 진심을 보이는데 성공한 가브리엘 신부는 과라니족을 밀림에서 데리고 나와 선교지를 만들어 같이 살게 된다. 

 
그러나 해당 선교지가 있는 곳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탐내던 곳이었고 이에 서로 의견이 충돌하게 된다. 
 
전직 군인이자 노예 사냥꾼인 멘도자(로버트 드 니로)는 자신의 애인과 바람이 난 친동생을 죽이게 된다. 그러나 이 살인은 정식 결투로 인정되어 멘도자는 처벌받지 않는다. 죄책감에 멘도자의 정신은 파괴되고, 폐인으로 살아가던 중 가브리엘의 인도로 과라니족에게 선교하기 위한 고행길에 오른다.
 
과라니족을 사냥하던 노예사냥꾼의 진심 어린 참회에 과라니족도 그를 받아들이게 되고, 마음에 안식을 얻는 멘도자는 정식으로 신부가 된다. 
 
그러나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경쟁은 결국 그들이 과라니족의 선교지로 만든 곳의 영토를 위협하기에 이르렀고, 과라니족을 보호하기 위해 강력하게 저항하려는 멘도자와, 무력으로 저항하면 안된다는 가브리엘의 의견 충돌이 발생한다. 
 
그러나 저러나, 결국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선교지에서 과라니족을 몰아내기 위해 쳐들어 오게 되고, 멘도자는 결사적 항전을 하게 되는데...
 

느낀점(스포일러)

 
정말 어렸을 때 본 영화였는데, 이번에 아내랑 같이 다시 보게 되었다. 나나 아내나 둘 다 신앙인이었기에, 이 영화가 서로에게 주는 인사이트가 있을 것이라 봤고, 그래서 추천했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는 영화적으로 엉성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신앙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깊은 감동을 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실제 역사에서 예수회 신부들은 선교지란 이름으로 자신들의 '우월한'문명을 원시부족에게 전달하려고 했고, 그것이 이권이나 권력과 결탁하면서 부패 문제도 많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그래서 실제 역사적 사실을 떼어놓고, 신앙의 관점에서 과연 멘도자의 길이 옳은 것인가, 가브리엘의 길이 옳은 것인가를 보면 좋을 것 같다.
 
멘도자는 혼자서라도 총과 칼로 결사적 항전을 하려 한다. 압도적인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군세에 멘도자는 함정도 만드는 등 여러 준비를 하지만 결국 총탄에 사망하며 과라니족의 몰락을 자신의 죽음과 같이 목도하게 된다. 


반면 가브리엘은 위 사진과 같이 카톨릭 정신을 표현한 종교 상징들을 앞세워 과라니족과 함께 행진할 뿐이다. 그들 근처에는 불화살이 떨어지고 총탄이 날라다니며, 같이 행진하던 과라니족들도 하나 둘 픽픽 쓰러진다. 결국 가브리엘 신부도 총탄에 사망한다. 
 
불의에 저항하는 방식에는 무력으로 결사적 저항을 하는게 있을테고, 아니면 실력을 키우다가 때를 기다려 한방에 몰아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한국의 독립운동과 비슷한데, 무장투쟁, 실력양성운동, 외교론 등 모두가 시점의 차이만 있을 뿐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같다. 
 
그러나 가브리엘의 방식은 이를 초월한 행동 방식이다. 그는 작중에서 멘도자를 꾸짖으며, 신부면 신부답게 행동하라고 한다. 즉 사랑을 전하고 폭력을 멀리하는 신의 대행자로서 태도를 갖추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가 세속과 신앙이 갈라지는 부분이다. 
 
신약 루카 복음서를 보면 돌아온 탕아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아버지의 말을 잘 듣고 열심히 일을 한 첫 째 아들보다, 방탕하게 집을 나가 흥청망청 살다가 모든걸 탕진하고 다시 아버지한테 돌아온 둘 째 아들에게 아버지는 거하게 잔치를 베푼다. 이에 첫 째 아들이 자신의 노력이 보상받지 못했다고 생각하여 아버지에게 항의하지만, 아버지는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모두 네 것이 아니냐? 그런데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왔으니, 잃었던 사람을 되찾은 셈이다. 그러니 이 기쁜 날을 어떻게 즐기지 않겠느냐?"라는 스토리다. (루카 복음 15장 11절 - 32절)
 
세속의 논리에서 보면 귀빵맹이를 맞아야 하는 애를 오히려 사랑으로 보듬어준다는, 아예 다른 차원의 얘기이다. 
 
그러나 세속과 신앙이 갈라지는 부분이 과연 장기적으로도 그럴까? 
 
엔도 슈사쿠의 <사해 부근에서>라는 책에서 어느정도 인사이트를 얻은 것이 이 영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바로 가브리엘의 방식은 다른 차원의 신앙적 방법이었고, 그 당시에는 무의미해 보이지만, 결국 가브리엘의 방법이 예수의 길이며 그것이 세속과 신앙이 장기적으론 통합되는, 아니 오히려 신앙이 긴 시간 동안 등대처럼 서있음으로써 세속이 도달하게 되는 길이란 것이다. 

빌라도 : 그렇다면 그대는 저 의원들 말대로 민중을 선동했다는건가?
예수 : 나는 다만 사람들의 슬픈 인생을 하나한 지켜보고 그것을 사랑하려 했을 뿐입니다.

빌라도 : 황제는 오래가지 못하리라고 했다면서?
예수 : 황제보다 예루살렘보다 로마보다 오래오래 영원히 계속하는 것이 있습니다.

빌라도 : 로마보다 오래오래 영원히 계속되는게 무엇인가?
예수 : 사람들의 인생에 내가 닿은 흔적, 내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스치면서 남긴 흔적, 그것은 소멸되지 않습니다.

p 224

 
이건 너무나 큰 확대해석일 수도 있겠지만, 바로 그런 정신이 지금 남미가 가장 많은 카톨릭 신자를 보유하고 있는 이유일 수도 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의 예수상

 
P.S
1. 이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는, 과라니 족과 처음 조우한 가브리엘 신부가 오보에로 넬라 판타지아를 부는 장면이다. 이 영화를 위해 작곡된 곡이라고 한다. 
 
2. 젊은 시절 리암 니슨을 볼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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