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멋대로/책

[책리뷰] 소년이 온다 - 한강

어빈2 2024. 6. 19. 19:51
728x90
반응형

 


저자 한강
평점 4
 

개요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유명한 작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광주 5.18 사태를 주제로 한 소설이다. 광주 5.18에 대한 관점은 여러개고, 대한민국은 공식적으로 이를 '민주화운동'으로 상찬하고 있다. 실제로 민주화 성격이 있다하더라도 현대사는 온전한 '역사'의 영역이 아닌 '정치'의 영역이기 때문에 객관어인 '사태'라고 쓰는게 가장 중립적인 표현이라 생각한다. 
 
여튼 한강의 책은 독서모임 책으로 선정되어 읽었으며, 다양한 화자가 등장하나 짧은 책이라 읽는데 시간이 걸리진 않는다. 
 

내용

 
5.18 광주사태 때 시민군의 일원이었던 고등학생 동호의 관점에서 첫 장을 시작한다. 그리고 동호와 관계된 다양한 사람들, 그의 친구, 아는 누나, 아는 누나의 친구, 할머니 등의 시선에서 각 장이 쓰여져있다.
 
이를 통해 당시 광주 사태를 다각도에서 바라보고 있으나, 그 각도의 크기는 180도에 한정되어 있다. 즉, 시민의 입장에서 쓰여있다는 것이다. 
 
 

느낀점

 
한강 작가의 책은 처음 읽어봤는데, 우선적으로 좋았던 점은 확실히 현재 인기를 모으고 있는 80년대생 여류 작가들과는 수준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 정세랑의 <지구에서 한아뿐> 등 사실상 책이라기 보단 굿즈에 가까운 상품들과는 다르게, 한강은 '작가'가 맞다. 
 
특별히 재미있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화자의 시점을 2인칭으로 적는 등 신선한 모습들이 있었다. 처음엔 2인칭 화법이 상당히 거슬렸으나, 그것도 나름 이유가 있어서 이해할 순 있었다. 
 
또한 다양한 화자가 등장하지만, 주제의 일관성을 잃지 않고 있는데(6장 제외) 그러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작가의 내공이 돋보였다. 
 
그러나 작가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자극적으로 피해상을 늘어놓고 있는데, 이는 작가의 이름값에 어울리는 표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 소설이 다루는 '역사' 는, 특히 현대사는 '정치'의 영역이기 때문에, 잔혹한 서술들은 문학이 가지고 있는 '승화'의 기능보단 '고발'의 기능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며, 고발하는 것 자체는 괜찮으나, 이는 늘 정치 영역에서의 분노와 선동이 된다. 그리고 이는 작가도 아는 바일테다.
 
그럼에도 이렇게 쓰는 이유를 에필로그에 나오는 작가의 말로 추측해볼 수 있는데, 작가는 5.18 사태란 큰 비극을 두고 이를 직시하지 않은 채 어떻게 사람들은 그 토대위에서 행복하게 웃으며 살 수 있는지를 지적한다. 
 
이는 북한을 바라보는 내 시선과도 비슷한데, 북한을 우리 동포라 부르면서, 정작 우리 머리 위에 존재하는 아우슈비츠에 대해 단 하나의 도덕적 판단도 안하는 주제에, 무슨 인권이니를 떠드냐는 것이다. 
 
여튼 작가는 5.18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에 대해 분노하고 있으며, 이를 돌려보기 위한 장치로서 잔혹한 표현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제목도 <소년이 온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시무시한 진실과 아픔을 등에 업은 소년이 오고 있으니, 죄인들은 그 앞에 무릎꿇고 회개하라라는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
 
소설은 마치 신채호의 <꿈하늘>같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 책에서 개인은 없고 시대에 희생되는 존재로서의 주인공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로지 시대의 희생자라는 서사 속에서 수동적으로 반응하고 '한'의 정서에 충실한 주인공들을 보며, 이런 형태의 서술은 반동적이라거나, 전근대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
 
작가가 바라보는 5.18에 대한 시선은 어떨까?
 
나는 5.18은 대한민국 통치의 정당성을 두고 벌어진 내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전이 아니라는 반론에는 5.18 광주 시민군이 정권을 탈취하는 등의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고 하지만, 결국 내전의 형태를 띈건 사실이며, 그 당시에는 시민군이 패배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는 것은 결과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전이기 때문에, 당시 정권을 잡았던 신군부와 시민군 사이에 정통성이라는 명분을 두고 벌어진 것이며, 여기에는 누가 옳고 그름이 없다. 오로지 승자가 옳을 뿐이다. 
 
문제는 여기서 작가가 바라보는 5.18과 내가 보는 5.18이 달라지는데, 작가는 5.18을 피해자의 역사, 슬픔과 비극, 패배의 역사로 본다. 
 
그러나 내가 볼 땐 5.18은 분명 1980년 당시에는 패배한 것 처럼 보이나, 결국 대한민국의 역사는 5.18이 승리한 역사라는 것이다. 5.18은 광주가 승리한 역사고 이는 1987년 소위 말하는 87체제로 완성되었으며, 대한민국은 지금도 87체제에서 만들어진 틀 속에 영속되고 있다. 
 
신군부의 통치 정당성은 부정되었으며, 광주의 역사가 '正史'가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5.18을 단지 피해자와 패배의 역사로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에는 크게 동의가 안된다.
 
승자도 승자 나름의 품격을 지녀야 하는 법이다. 예를들어 작가가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했던 군인이나 경찰의 관점도 같이 차용하여 이 책을 썼다면,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의 슬픔을 이해하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의도로 비쳤겠지만, 이 책은 철저히 피해자의 관점에서 쓰여져있다. 
 
과연 그런가? 40년이 지난 지금, 수도 없는 진상조사를 했음에도, 아직도 광주는, 앞으로도 광주는 피해자에만 머물러 있을 것인가?
 
사태를 바라보는 이 관점의 차이의 크기만큼, 5.18이 한국에서 갈등의 중심이 되는 빈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