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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제국의 위안부 - 박유하

어빈2 2024. 3. 7.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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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유하
평점 7


개요

이 책은 일제시대 위안부 문제를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바라본 책이라 할 수 있다. 다만 현재 우리가 접하고 있는 극단적 페미니즘이 아니라, 분명 우리가 윗세대가 겪어왔던 가부장적 남성중심을 비판하는 정상적 범주의 페미니즘으로 보인다.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는 이 책을 발간하고 난 뒤,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現정의기억연대)와 나눔의집 할머니들로부터 명예훼손 법적 소송에 시달렸고, 최근 7년이 넘는 공방 끝에 대법원으로 부터 무죄를 선고 받았다. 
 

 

[판결] '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무죄 취지 파기 환송… 대법원, "명예훼손 아냐"

기자회견 하는 박유하 명예교수 <사진=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원심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됐다. 대

www.lawtimes.co.kr

 
 

내용

이 책은 총 2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위안부란 누구인가? 이며, 2부는 위안부 문제란 무엇인가? 이다.


1부 위안부란 누구인가

 

1장 강제연행과 국민동원 사이

 
1) 강제로 끌어간 건 누구인가

위안부란 도대체 어떤 이들일까? 아직 어린 10대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가 노예처럼 성을 유린당한 조선의 소녀들. 우리가 아는 위안부란 그런 존재다.
P 17

 
그러나 위안부는 1973년 센다 가코라는 일본 언론인의 고발로 처음 알려진 문제라고 한다. 또한 위안부의 증언들을 보면 위안부의 모습이 우리에게 알려진 단 하나의 이미지 뿐만 아니라 다양한 측면을 지녔다고 한다. 
 
그리고 보통 우리는 일본의 책임을 묻지만, 그 사이에 위안부를 실제로 모집하고 관리했던 조선인 포주들, 관리인들 또한 비판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특히 실제 위안부의 증언 등에 따르면 일본군이 '강제로'끌고간 것은 소수며, 대다수의 증언이 포주들의 인신매매, 감언이설 등으로 끌려간 경우이기 때문이다. 
 
당시에 위안부 모집에 관한 신문 광고가 실리기 까지 했는데, 이를 통해 위안부가 우리가 아는 이미지 대로가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위안부의 강제성 아래에 깔려있는 그 당시의 가부장적 사회와 식민지 제국주의 국가의 문제를 가장 우선적으로 언급해야 한다. 
 
2) 위안부의 전신 '가라유키상'
일본군에 의해 위안소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일본, 조선의 해외 성매매 실태를 밝히는 파트다. 일본엔 근대부터 딸을 팔아 외국으로 성매매하러 가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들을 가라유키상(가라: 외국, 유키: 가는 사람)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 중국, 시베리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공창과 사창이 존재하였다고 한다.

일찍부터 국가의 확장과 함께 존재했던 매춘시설을 이용하다가 주둔병력이 많아지자 군이 장소를 늘리고 관리하기 위해 지정했던 곳이 이른바 '위안소'였다.
p 38

 
즉 만연하던 공창과 사창 중에 일본군이 직접 지정하고 관리한 것이 위안소라는 것인데, 이는 위안소가 일본군이 갑자기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식민지 정책으로 인한 확장과 딸을 팔거나 매춘을 하도록 허락하는 가부장제가 근본적인 원인임을 말한다. 
 
3) 우리 안의 협력자들

정신대건 위안부건, 그들이 그렇게 동원되는 과정에 조선인이 깊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묵과한 것이 '위안부 문제'를 혼란에 빠뜨린 원인이기도 했다.
p 41

 
 
4) 강제로 모집된 정신대

정신대와 위안부는 분명히 다른 존재다. 그러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애매하게 겹쳐지면서 정신대와 위안부를 혼동한 결과로 만들어진 기억이 우리 안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p 43

 
이 부분에선 정신대와 위안부를 혼동된 것을 지적하고 있는데, 정신대란 남성들을 전쟁에 보내 노동력이 부족해진 일본이 여성들을 공장 등의 일반 노동력으로 동원하기 위해 만든 근로동원제라고 한다. 

강조된 강제연행은 우선은 정신대에 관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중략

여성들을 군이 주체가 되어 '강제로 연행/납치'한 것은 일반적으로는 전쟁터에서 개인 혹은 집단이 자행한 글자 그대로의 '강간'의 경우였다. 또 그 대상은 기본적으로는 조선인 여성이기보다는 타국 여성 - 적국의 여성이었다. 

위안부 중에는 함께 있던 일본군이 중국인 여성을 강간하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죽의 기본적 관계는, 그렇게 중국인과 일본군의 관계와는 달랐다. 
p 49

 
 
5) 소녀 20만의 기억
위안부 수가 20만명이라는 인식은 정신대와 위안부의 혼동 등이 이유이며, 당시 위안부 여성들의 평균 연령이 25세 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대표적인 위안부상이 '소녀'로 정착된 것은 일반적이지 않은 사례를 일반화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신대와 위안부를 혼동한 탓도 있지만 앞서의 20만명 설과 마찬가지로 그런 상상이 우리의 피해의식을 키워주고 유지하는 데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p 51

 
 

2장 위안소에서 풍화되는 기억들

 
1) 일본군과 조선인 위안부 - 지옥 속의 평화, 군수품으로서의 동지

 '주둔부대의 일원'이자 '부인같은 느낌'이었다는 위안부들. 사실은 이것이 조선인 위안부에게 요구된 역할이었다. 남자들로만 구성된 군대에 투입되어, 회사에서 일하는 남성을 여성이 집에서 일하며 다시 회사에 나갈 수 있도록 보살피는 역할을 맡았던것 처럼, 군인들이 전쟁을 수행하는 동안 거기에 필요한 갖가지 보조작업을 하도록 동원된 것이 위안부였다. 

그런의미에서도 전쟁터에서 강간의 대상이 된 '적의 여자'와 위안부는 군과의 관계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였다. 
p 57

거듭 말하지만 사랑과 평화와 동지가 있었다고 해도 '위안소'가 지옥같은 체험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p 76

그들은(일본군과 위안부) 양쪽 다, 국민동원이라는 국가 시스템 속에서 함께 움직여진 장기말이었다. 그들은 둘 다 성과 생명을, 그것을 담는 신체를 '국가를 위해' 바쳐야 했던 한 마리 '개미'들이었다. 
p 79

 
 
2) 전쟁터의 포주들
위안부가 될 이들을 위안소까지 데려간 주체는 대부분의 경우 중개업자나 포주들이었는데, 군이 요청을 하면 군과 계약된 업자들을 중심으로 여성을 모집하고 위안소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많은 위안부들의 증언에서 나오듯이 여성들을 강제노동에 가깝게 혹사시킨 것은 군인뿐 아니라 업자들이기도 했다고 한다. 
 

위안부 모집을 위한 신문 광고

 
 

3장 패전 직후 - 조선인 위안부의 귀환

 
1) 일본인에서 조선인으로
패전 이후에 많은 위안부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군에 의해 학살되었다는 기억이 우리에게 전해진다.
 
그러나 여러 위안부들의 증언에 따르면 일본이 패전했고, 당시 중국,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의 위안소 여성들 또한 현지인들에게 '적'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빠져나오는게 쉽지 않았다고 한다. 빠져나온다 해도 자신의 재산을 잃은 경우가 있으며 이는 빠져나오는 일본군과 동일한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2) 극한 상황속에서
위안부들의 직접적인 죽음은 대부분은 미군과 연합군의 폭격에 의해서라고 말한다. 

귀환 여부는 그녀들이 처했던 상황에 따라 달라졌겠지만, 대부분이 돌아오지 못했다거나 돌아오지 못한 이유가 학살당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사실과는 많이 다르다. 

아마도 지금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은 누구보다도 이들이 아닐까. 전쟁터의 최전선에서 일본군과 마지막까지 함께하다 생명을 잃은 이들 - 말없는 그녀들의 목소리에. 

일본이 사죄해야 하는 대상도 어쩌면 누구보다도 먼저 이들이어야 할지도 모른다. 언어와 이름을 잃은 채로 성과 생명을 '국가를 위해' 바쳐야 했던 조선의 여성들, '제국의 위안부'들에게. 
p 104

 
 

제 2부 기억의 투쟁 - 다시, 조선인 위안부는 누구인가

 

1장 지원단체의 위안부 설명

 
1) 근본적인 오해
위안부 문제 발생 이후 한국의 공통인식을 만들어 온 것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이다. 실제로 정대협 홈페이지에는 위안부를 '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1945년까지 일본 정부에 의해서 강제로 연행, 납치되어 일본군의 성노예 생활을 해야만 했던 여성들'이라고 설명한다 한다(2012년 7월).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정신대와 위안부는 다르다. 

일본 국가가 필요로 했고 식민지가 되었기 때문에 그 구조 속에 휘말려 들어갔다는 점에서는 일본 국가의 '강제성'은 존재했다. 그러나 소녀들을 '위안부'로 만들기 위해 '강제로 끌어간' 직접적인 주체는 대부분 포주이거나 업자였다. 그런데도 정대협은 '위안부'를 "일본 정부에 의해서 강제로 연행, 납치되어 일본군의 성노예 생활을 해야만 했던 여성들"이라고만 설명한다. 
p 111

 
 
2) 정보 은폐와 '공적 기억' 만들기
정대협이 설명하는 누가 위안부로 끌려갔는지, 왜 조선인 여성들이 많았는지, 위안부들이 왜 현지에서 많이 죽었는지, 그리고 임신한 채로 버려졌는지 등을 놓고 정대협이 말하지 않는 문맥들이 있음을 지적한다. 
 
예를들어 현지에서 죽은 위안부들이 미군과 연합군의 폭격에 의해서, 또한 현지의 적대적인 태도 때문일 수도 있는데 정대협은 그런 얘기를 하지 않고 마치 할복을 강요당하거나 학살당했다는 식으로만 표현한다는 것이다. 
 
3) 억압으로서의 '성노예'상

조선인 위안부는 분명 식민지가 된 나라의 백성으로서 일본의 국민동원과 모집을 구조적으로 거부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일본의 노예였다.

그러나 우리가 상상하는 '노예'가 '감금해놓고 언제든 군인들이 무상으로 성을 착취했다'는 식의 것인 한 '조선인 위안부'는 그런 성노예와는 다른 존재다. 그런 상황에 노출된 이들이 설사 있었다 해도, 그것이 처음부터 위안부에게 주어진 역할은 아니었다. 
p 117

 
4) 박물관의 위안부
정대협 뿐만 아니라 2012년 5월 5일에 문을 연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역시 위안부에 대한 기본 이해와 설명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5) 소거되는 기억들

위안부들의 쉼터인 '나눔의 집'에서 100미터쯤 떨어진 곳에 혼자 나와 사는 '위안부' 할머니가 있었다. 그녀는 개를 키우며 혼자 살고 있었는데, 나눔의 집이 싫다고 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착오로 일본 군인과 헤어지게 된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할머니에게 나눔의 집이 불편했떤 것은, 그 공간이 사랑의 기억을 품어주는 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말해 '완벽한 피해자'의 기억만이 필요한 공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의 보상금을 받은 위안부들이 아직껏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피해의 기억만이 필요한 곳에서는 화해의 기억은 배제된다. 
p 122

 
 

2장 하나뿐인 '조선인 위안부' 이야기

 
많은 문학작품, 영상 작품 등에서 실제 위안부의 모습이 아닌 우리가 보고싶은 것만을 반영한 위안부 서사를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1990년대 초의 한국에서 결정적인 '위안부'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은 아마도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일 것이다. 열일곱 살에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연행'된 것으로 나오는 드라마 주인공 윤여옥은 '독립운동가의 딸'이다. 앞에서 본 것처럼 위안부가 된 이들의 대부분이 가난하고 교육을 못 받은 이들이었다는 점에서는 이 드라마는 실제 '위안부'의 보편적인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독립운동가'의 딸이라는 설정은 '위안부'에게 바람직한 '우리 민족을 대표'시키려는 욕구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p 126

 
 

3장 공모하는 욕망들

2012년에 '위안부' 대신 '성노예'라는 단어를 공식적인 명칭으로 하자는 제안이 나왔을 때 당사자들이 거부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중략...그 이름이 자신들의 '과거'의 모든 것을 표현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성노예'라는 호칭은 분명 '위안부'를 나타내는 중요한 부분이지만, '위안부'의 전부가 아니다. 

'성노예'라는 단어는 위안부들의 또 다른 기억을 억압한다. 그 이름으로 남아있는 것은 위안부 자신의 기억이라기 보다 개념화된 '식민지의 기억'이자 우리의 민족주의가 요구하는 기억일 뿐이다. 
p 131

 
 

4장 일본인 지원자들의 문제

1) 페미니즘의 모순

결국 페미니즘 정신에 바탕을 둔 운동이었음에도 '일본' 비판에 더 무게가 실리면서 위안부 문제를 보편적인 '남성과 국가와 제국'의 문제로 다루는 일을 어렵게 하고 말았다. 
p 137

'성노예'라는 단어는 '조선인 위안부'가 처한 그런 복잡한 상황을 보지 못하게 한다. '동지'적 관계를 직시하는 것이 꼭 '일본군'을 면책하는 일은 아닌데도 이 부분에 대해 무관심했다는 것은, 일본의 지원자들이 이런 사실을 충분히 보지 못했거나(일본인 기자 등)한국의 정대협과 마찬가지로 '운동'에 불리한 사실로만 판단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p 138

 
 
열심히 내용을 쓰다가 박유하 교수가 직접 요약한 <제국의 위안부>요약본을 발견했다. 저자의 의견이 그대로 반영된 요약본이 훨씬 유의미하다 생각해서 이 링크를 그대로 첨부한다.
『帝国の慰安婦』要約(KR) (parkyuha.org)

 

『帝国の慰安婦』要約(KR)

위안부 문제 제대로 이해하기 박유하 세종대 국제학부 교수 위안부 문제에 오래 천착해 온 박유하 교수가 말하는 위안부의 모든 것 위안부 문제는 도대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여전히 한일(韓

ptkks.parkyuha.org

 
또한 박유하 교수의 홈페이지에 <제국의 위안부> pdf 판이 그대로 올라와있으니 이 또한 첨부한다.
 
물론 사서 읽어야 되는 책이라 pdf를 여기에 올리는게 적합한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서 책을 공개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첨부파일로 pdf 를 업로드해놓는다.
 

제국의 위안부.pdf
15.39MB

 

느낀점

 
이 책은 사람에 따라선 굉장히 불편한 책일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 가장 큰 금기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에 대해 가능한 책의 본문을 그대로 인용하는 방식을 취했다. 물론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올린 부분이 또한 악마의 편집이 되어서 작가의 의도를 왜곡할 수 도 있겠지만말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가능한한 이 책을 다 읽어보고 판단하는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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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예비군 동원 훈련 갔을 때 2박 3일간 뭐 하나 읽을까 해서 가져갔던 책이다. 첫 직장 때 일이니까 아마 2015년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미 그때 34곳을 삭제하라는 법원의 명령을 받고 삭제판을 낼 정도로 이슈가 됐던 책이며, 사실 그래서 더 읽고싶었던 책이기도 하다.

동원 훈련이야 뭐 훈련하는 척 하곤 나머진 빈둥거리는 시간 뿐이니 책읽기는 참 좋았으나, 그땐 좀 어렵게 느껴졌다. 사실 박유하 교수는 책을 좀 어렵게 쓰는 사람이다.

2013년 즘부터 내 가치관과 관점이 뚜렷해지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의 현대사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고, 이 책은 위안부 문제에 있어선 그런 니즈를 충족시켜줬던 좋은 책이었다.

그래서 한번 더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독서 토론 책으로 추천하였고, 선정되어 다시 읽게 되었다.

이 책이 선정되고 일주일도 안되서 박유하 교수의 대법원 무죄 판결이 떴다. 이슈가 될 걸 미리 알고 추천하는 선견지명이란.

다시 읽어본 책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으며, 내가 허투루 독서생활은 한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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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가장 큰 쟁점은 위안부가 과연 매춘인가? 와 위안부는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였는가? 이다.

사실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1.위안부의 실제 모습, 2.정대협의 위안부 투쟁의 문제점인데, 고소당하는 바람에 저 위의 질문이 가장 큰 '쟁점'이 되고 말았다.

위안부가 매춘인가와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였는지는 책을 직접 읽어보고 각자 판단하면 좋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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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참으로 못난 나라에 사는거라는 생각이 드는 책리뷰이기도 한데, 이 책을 써서 거의 10년 가까이를 법정에서 고통받는 사람이 우리 사회의 지적 권위자인 교수임을 본다면 한낱 일반인 블로거가 솔직하게 위안부는 어떤존재다 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한국이 위안부 문제를 직시하지 않는 한 이 나라가 앞으로 나아가긴 어려워보여 늘 위안부에 관심을 두고있다. 그래서 다양한 책을 보고 의견을 듣기도 했기에, 위안부가 매춘인가? 또는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가 있었는가?에 대한 내 생각이 없을까. 그러나 그걸 쓰지 못하게 하는 이 나라의 진리독점, 성역화, 마녀사냥이 참으로 역겹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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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에서 가장 화가 나는것은, 위안부는 조선인 뿐만 아니라 일본인, 중국인 등을 대상으로 참혹한 '여성' 인권 유린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우리는 조선인 위안부에만 모든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박유하 교수의 주장대로, 조선인은 2등 일본 시민이었으며, 중국 여성, 네덜란드 여성과 같은 일본의 적국 여성과는 대우가 달랐다. 
 
가장 많은 피해를 본 사람은 일본인 여성임에도 조선인만이 오직 피해자인것 처럼 얘기하는 것은, 또한 50년대 한국군에도 위안부가 있었고 이후 미군 부대 소위 '양공주'들의 정부 공식 명칭이 '위안부'인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위안부 문제는 한국 현대사에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일본에 당한것 만이 유일한 위안부 문제인것처럼 인식하는 것은, 오히려 일본 여성이 일본군의 위안부 생활을 하는 건 괜찮고, 한국 여성이 한국군, 미군의 위안부 생활을 하는건 아무 문제 없다는 식의, 여전히 남아있는 가부장적이고 반여성적인 사고방식 아니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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