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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이성적 낙관주의자 - 매트 리들리

어빈2 2024. 2. 23.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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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매트 리들리
평점 8

 


개요

 

영국의 과학자이자 상원의원인 매트 리들리의 책이다. 옥스포드에서 동물학으로 박사를 받았고, 인간 본성에 대한 다양한 저서로 유명하다. 매트 리들리는 다양한 분야의 저술로도 유명한데, 그의 전공인 <게놈>부터 <이타적 유전자>, <본성과 양육>, <붉은여왕> 최근에 나온 <혁신에 대한 모든 것> 이르기까지 굵직한 작품들이 있다.

특히 <본성과 양육 - 인간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는 당대 여러 논쟁을 낳은 책으로 알려져있고 <붉은여왕>은 인간 진화의 목적이 자손 번식이라는 주장을 한 문제작이었다.

이 책은 그의 과학자적 전공에서 살짝 벗어나, 우리 세상이 왜 좋아지고 있는지를 밝히고 있는 책이다.

 


내용


이 책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뉘어있다.

첫 번째 파트는 우리의 세상이 실제로 좋아지고 있다는 그의 주장과 이에 대한 증명이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 인간이 교환을 하는 성향이 있어서 그렇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 파트는 세상이 좋아짐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비관하는 종말론자들(환경주의자, 멜서스주의자) 등의 주장을 비판하는 부분이다.
 
프롤로그 아이디어들이 섹스할 때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동물은 그들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생활양식에 변화가 없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이런 일은 선사시대 어느 시점에 뇌가 크고 문화적이며 학습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서로 물건을 교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교환이 진행되자 문화가 누적적인 성격을 띄었으며, 경제가 진보하게 되었다.

교환함으로써 노동의 분업을 발견하게 되었고 전문화가 등장했다. 전문화는 혁신을 촉진하고 가치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행동은 문명을 진보시켰다.

1장 더 나아진 현재_전례 없는 번영

예컨대 1800년 서유럽 어떤 지역을 상상해보자. 통나무로 지은 집 안의 화덕 주위로 가족들이 모여든다. 아버지가 큰 소리로 아이들에게 성경 구절을 읽어주는 동안, 어머니는 쇠고기와 양파를 넣은 스튜 요리를 차리고 있다. 우는 아기는 누나 중 한명이 어르고 맏아들은 물주전자의 물을 탁자 위의 질그릇에 따른다. 큰 딸은 마구간에서 말에게 사료를 주고 있다...

미안하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겠다. 이 집은 마을에서 잘 사는 축에 든다. 하지만 아버지의 성경 읽기는 자꾸 중단된다. 기관지염으로 인한 기침 때문이다. 그가 53세에 폐렴으로 죽게 될 전조다.

아기가 지금 우는 것은 천연두에 걸린 탓인데, 이 때문에 머지않아 죽게된다. 그의 누나는 곧 결혼해 주정뱅이 남편의 노예가 될 것이다. 맏아들이 따르고 있는 물에서는 소 냄새가 난다...

스튜는 회색이고 걸쭉하지만 오늘처럼 고기가 들어있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촛불은 너무 비싸서 실내에 빛이라고는 장작불에서 나오는게 전부다.

p 33

작가는 재미있는 예를 들면서 이에 맞는 통계들을 제시한다. 그리고는 이 때보다 지금이 유례없이 살기 좋은 세상임을 말한다.

전기, 에너지, 교통, 환경 모든 분야에서 인간의 기술 발전은 우리 모두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해줬다고 주장한다. 이는 교환의 시작 덕분이며, 때문에 교환하지 않고 자급자족 하자는 주장은 빈곤으로 가는 지름길이라 말한다. 신토불이란 말이 얼마나 허무한 말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2장 집단지능_20만년 전 이후의 교환과 전문화
이 파트는 유인원들, 예를들어 호모 에렉투스의 경우 에슐리안 손도끼를 사용했는데, 에슐리안 손도끼를 100만 년 간 모양하나 바꾸지 않고 사용한 것을 말하면서 언제부터 '역동적인' 인간이 출현했는지를 밝히고 있다.

어느 시점에(작가는 285,000년 전이라고 함) 교환을 시작한 현생인류가 등장했고, 그들이 아프리카를 벗어나 세계 각지로 퍼져나가면서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peopleing the earth).

화식(익혀먹는거)이 시작되고 교환이 시작되면서 성별 분업과 전문화가 진행되었다. 교환하고자 하는 성향은 점점 확대되었고 심지어 혁신을 촉진하기 까지 하였다.

3장 덕성의 형성_5만 년 전 이후의 물물교환, 신뢰, 규칙

최후통첩 게임을 비롯한 유사 게임 수백 가지가 주는 교훈은 동일하다.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선량하다는 사실이 실험을 할 때마다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놀라운 교훈이 있다. 현대 상업세계의 집단지능에 더 많이 젖어 있을수록 아량이 더 크다는 사실이다.
p 140

이 장은 시장이, 즉 우리가 자본주의라 부르는 시스템이 인간의 도덕을 증진시킨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사실 이 얘기는 우리가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데, 예를들어 한국의 경우 KTX를 무검표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다. 표도 없고 표검사도 하지 않는다. 그럼 무검표 시스템을 할 수 있는 국가는 어떤 나라일까? 약간의 오차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세계 1인당 gdp 순위와 비슷할 것이다.

스위스-룩셈부르크부터 싱가폴, 일본에 이르기까지는 무검표 시스템을 할 수 있을것 같고, 안타깝지만 중국, 필리핀, 남미는 못할 것 같지 않은가?

시장은 반복되는 죄수의 딜레마이기 때문에 뒤통수를 치거나 사기를 치는 사림이 공동체에서 살아남는 것은 어렵다. 즉 우리의 이타심 때문이 아니라 이기심을 지속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해서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는 뜻이다.

환경은 어떨까? 좋은 자연 환경을 구성하는 것도 하나의 미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세계에서 나무가 푸르고, 공기가 맑고 물이 좋은 자연환경을 갖고 있는 나라는 어디일까? 스위스-룩셈부르크부터 싱가폴, 일본에 이르기까지라는 대답을 또 할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작가는 시장이 도덕을 형성하는 기능이 있고, 그 시작은 바로 교환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4장 90억명 먹여살리기_1만 년 전 이후의 농업
이 장에서 작가는 농업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농업이 생기고 발전하는 것도 교환이 없으면 어렵다고 한다.

사실 이는 북한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농업이 발전하려면 단순히 땅과 씨앗만 있어야 되는게 아니라, 농기구(철제), 농업기계, 비료(화학), 비닐하우스를 만들 비닐과 쇠파이프와 온도/습도를 조절하는 기계들까지, 산업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심지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과일들이 100년전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는데, 이는 교배와 유전자 변형으로 먹기 좋게 변형되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하였던 90년대가 벌어진 이유는, 일제가 남겨준 공장, 기계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오직 동원할 수 있는 것은 노동력 뿐이었던 시기에 식량 소출을 늘리기 위해 사람들로 하여금 산을 개간하게 했기 때문이다.

산이 헐벗게 되자 비가 오면 산에서 내려온 토사들이 농지를 덥쳤고 그게 기근의 원인이 되었다는 분석이 있다.

작가는 비료의 발달, 집약 농업, GMO 등을 설명하면서 교환을 통한 농업 생산성의 고도화가 어떻게 혁신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을 먹여살릴 수 있었는지를 설명한다.

5장 도시의 승리_5천 년 전 이후의 교역
이 장은 역사적인 대도시들이 어떻게 발전하였고 그 원인이 왜 교환이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역사적으로 부흥했던 대도시들을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그들이 그렇게 된 이유는 교역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대부분 정부의 약한 간섭이 상업을 촉진시켰다고 주장한다.

페니키아, 로마에서부터 이탈리아 피사, 베네치아까지. 심지어 현대 중국까지 결국 자유로운 상업을 선택한 국가들이 교환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대도시들을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만들게 됐다는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책 중에 베네치아를 다룬 <바다의 도시 이야기>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에 따르면 당시 베네치아가 쓰던 화폐 두가트는 신용이 높아 중동에서도 두가트로 결제하고 싶어했으며, 심지어 재판 조차도 베네치아에서 받고 싶어했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보면, 우리는 유대인 샤일록의 악독해보이는 행위가 '심장은 떼어가되, 피는 한 방울도 흘리면 안된다'라는 판결에 의해 참교육 당하는 걸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지만, 베네치아에선 가장 하층민이었던 유대인이 당대의 귀족을 상대로 공정하게 재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알 수 있다.

이처럼 상업이 발달한 나라는 신뢰, 도덕, 그리고 대도시를 만들어낸다.

6장 맬서스의 함정을 피해_1200년 이후의 인구
이 장은 맬서스 트랩을 설명하면서 실제로 역사에서 벌어졌었던 인구 감소 현상에 대한 오해를 풀고 있다. 예를들어 1800년대 일본의 인구가 왜 감소했는가 등이다.

1800년대 이미 일본의 인구가 충분히 많아져서 더 이상 농사 지을 땅이 없어지는 현상이 벌어진다. 갖고 있는 자원에 비해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이 파괴되는데,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한정된 땅의 소출을 늘리기 위해 땅을 더 깊게 파는 농업을 한다. 소나 말이 끄는 쟁기로는 땅을 깊게 팔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이 괭이를 들고 땅을 파기 시작했으며, 실제로 이 시기에 일본인의 키가 줄어들고 인구도 정체된다.

어쨋든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식량 생산이 못따라온다는 맬서스 트랩이 잘못됐다는 건 둘째 치고, 전 지구적으로 출산율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에 지구 인구의 증가는 어느 선에서 멈출거라는 것이다.

식량이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것도 틀렸지만,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것도 틀렸다는 것이다.

7장 노예 해방_1700년 이후의 에너지
석탄의 이용과 전기의 발견으로 인간의 삶이 얼마나 개선되었는지, 산업혁명을 어떻게 이끌었는지를 설명하는 장이다.

또한 바이오 에너지가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문제가 있는 산업인지 또한 비판하고 있다.

8장 발명의 발명_1800년 이후의 수확체증
수확체증은 수확체감의 반댓말로, 생산요소를 투입할수록 산출이 지수함수처럼 늘어나는 것을 뜻한다.

1800년 이후 수확체증이 되는 이유를 작가는 아이디어들은 교환한다고 고갈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에게 아이디어를 전달받는 사라은
내 아이디어를 감소시키는 일 없이 가르침을 받는 것이다.
내 촛불에 양초 심지를 대는 사람이
나를 어둡게 만들지 않으면서 불을 댕기듯이 말이다.

p 374 토마스 제퍼슨이 아이작 맥퍼슨에게 쓴 편지


산업혁명 시기에 수 많은 발명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오는 것을 설명하면서 그것의 주된 원인이 교환임을 밝히고 있다.

물론, 지적재산권, 자본, 과학의 힘 또한 존재했지만 그것의 영향이 주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즉 이 파트는 교환이 혁신을 촉진함을 설명한다.

9장 전환점 소동_1900년 이후의 비관주의
우리 사회가 전환점에 도달하여 곧 망할거라는 비관주의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현대의 비관주의 중 가장 대중화되어있는 관념은 환경근본주의이다. 10년전만 해도 지구 온난화를 말했지만, 지금은 기후 변화라는 말을 쓰고 있다.

그러나 그 기후변화가 인간에 의한건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지구의 나이 46억년 동안 기후가 늘 스테디했을 거라는 가정만큼이나 답없는 발상이 있을까?

누군가는 그래도 인간에 의해서 이정도로 급격하게 온도가 올라간 적은 없다고 한다. 근데 과연 그럴까? 중세시대에는 영국 북부에서도 포도가 자랐으며, 그린란드는 원래 그린이었다. 지금 지구가 따뜻해지면서 그린란드의 얼음이 다시 녹고 있는데, 원래 모습 찾아가는 것이다.

과학의 발견은 놀랍게도 100만 년 전 기후 같은 것도 밝혀내고 있는데, 아프리카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멸종까지 몰렸을 때 기후를 보면 사하라 사막이 1000년 단위로 숲이 되었다가 사막이 되었다가 그랬다는 분석도 있다.

작가는  DDT, 환경, 핵전쟁, 암 발생률, 기근, 자원고갈, 공기오염 등 다양한 비관주의를 하나하나 비판하고 있다.

10장 오늘날의 양대 비관주의_2010년 이후의 아프리카와 기후
비관주의 비판의 심화 파트로, 아프리카가 왜 이렇게 못사는지에 대한 비관론을 정부의 문제로 비판하고 있다.

또한 기후 변화에 대한 작가의 의견을 말하는데, 즉 비관론자들이 말하는 극단적 기후 변화의 가능성은 매우 낮으며, 그 전제 위에 우리가 하려고 하는 환경 보호 정책들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지금 이순간에도 말라리아로 죽는 사람들이 있는데, 100년 후 기후 변화로 인한 약간의 피해 때문에 지금 돈을 환경에 사용하는 것은 너무나 비효율이라는 것이다.

또한 더 온난하고 부유한 세계가 환경을 보호하는데 더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11장 카탈락시_2100년을 바라보는 이성적 낙관주의
카탈락시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용어로 교환과 전문화가 만들어내는 창발적 질서를 뜻한다.

우리의 세상이 자유로운 교환을 미덕으로 보는 한 세상은 훨씬 좋아질 것이고 모든 분석을 통해 우리는 '이성적'인 낙관주의자가 될 수 밖에 없다고 하면서 책을 마무리 한다.

 


느낀점


올해 벽돌책을 좀 읽어보려고 해서 처음 시작한 책이 이 책이다. 500페이지 정도의 순한맛 벽돌책이었으나 중간 부분이 상당히 지루했어서 읽는데 오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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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과거가 더 좋았다는 식의 원시 시대에 대한 향수를 갖고있다. 그래서 현재가 과거에 비해 더 나빠진다는 사고경향을 띈다.

예를들어 재학생이 올해 들어온 신입생들을 보고 '요즘 신입생들이 개판'이라던가, 신병을 보고 상병이 투덜대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는 많이 알려졌지만 이런 행태는 고대 그리스의 기록에도 나오는데, 누구였드라, 어쨋든 요즘 애들은 희곡같은것만 좋아하고 공부를 안해서 망조가 들었다는 식의 말을 한 기록이 있다.

이처럼 인간은 과거에 대해 좋은 것만 기억하는 편향성이 있고 이를 추억이라 부른다. 시간이 지나면 용서못할 일도 없다라는 격언은 이를 잘 나타낼것이다.

그러나 실제 세상은 그럴까?
 
최근에 이슈가 됐던 책 중에 <팩트풀니스>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실제 세상은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밝힌 책이다. 다만 이 책이 아쉬웠던 점은 세상이 좋아지고 있는건 알겠는데 도대체 왜 좋아지고 있는지를 밝히고 있진 않다. 
 
그런면에서 <이성적 낙관주의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간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세상이 왜 더 좋아지고 있는가?
 
과거엔 비참했던 인간이 교환성향, 특히 아이디어의 교환을 통해(작가는 난교라고 표현함)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존재(혁신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자유가 인간의 문명을 진보시킨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실증분석을 보여줌으로써, 이성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세상을 낙관할 수 밖에 없는 결론에 다다른다는게 이 책의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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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론 머스크를 중심으로 미국의 대학에서 강력한 이념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이전에 트위터를 인수하면서 밝혔듯이, 네크로필리아적 철학(일론 머스크는 Death cult라고 함)이 정신을 타락시키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를 확산하고 있는 대학들과 싸우고 있는데, 이를 Anti-DEI라고 부르는듯 하다.

여기서 DEI란, Diversity(다양성), Equity(공평성), Inclusion(포용성)으로, 용어에서 느껴지다시피 PC주의의 골자이다. 여기다 사회적 가치인 ESG(환경, 지속가능성, 거버넌스(민관협력))를 더하면 PC가 완성되는데, 이미 ESG는 유행이 끝나서 무너졌고, 남아있는 것은 DEI다.

영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DEI는 affirmative action by 1961년, 한국어론 잠정적 우대조치라 불리는 법에 의해 등장한 용어라고 한다. 잠정적 우대조치란 예를들어 흑인들이 과거에 부당한 인종차별을 받았으니, 현재시점에 일부 보상받아야 된다는 류의 정책을 뜻한다. 대학 입학 때 흑인 쿼터를 두는 등 차별받아온 사람들에 대한 균형을 맞춘다는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이는 필연적으로 역차별을 낳는데, 예를들어 대학에 흑인 쿼터 때문에 성적으론 들어갈 수 있는 비-흑인들이 입학을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정책으로 피해를 많이 본 인종이 아시아인으로 알려져있다. 평균적으로 공부를 많이 하는 아시아 학생들의 특성 상 성적으론 들어갈 수 있는데 흑인 쿼터때문에 못들어간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 본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를 설명하면서, 이 도시가 마약에 찌들어 망가지고 있음을 말하면서, 그들 근저에 흐르고 있는 철학이 곧 네크로필리아의 철학임을 주장한다.

즉, 인간은 세상을 더 나쁘게 만드는 존재이고,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자 동물과 별반 다를게 없기 때문에 문명을 포기하거나, 더 나아가 멸종하는 것이 지구에 더 좋다는 식의 발상이 삶을 무가치하게 만들고, 인간 존재를 부정하며, 그렇기 때문에 멸종으로 향하는 네크로필리아가 퍼진다는 것이다. 작가가 비판한 종말론적 비관주의인 것이다.

이런 철학적 조류는 극단적 상대주의, 즉 DEI에서 연원한다는게 일론 머스크의 주장같다. 절대적 진리란 없고, 절대적 가치도 없으며, 그러므로 옳고 그름도 없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상대주의는 우리의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다양한 요소들을 타락시킨다.

이에 대한 비판이 등장하면 '너는 인종차별주의자니? 너는 나치니?' 등의 도덕적 프레임을 씌우는게 PC주의 완장질인데, 그들이 내세우는 단순한 수량적 평등주의는 오히려 그것이 하나의 절대적 가치가 되어버림으로써 스스로의 모순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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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 리들리는 이러한 풍토에 대해 과학적-경제적 관점에서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자원고갈론부터 해서 환경주의에 이르기까지, 해가 바뀔 때 마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비관주의에 대해 인간의 역사는 번영의 역사며 자유주의와 시장경제가 인간을 더 높은 문명으로 인도하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주장한다.

즉, 우리 인간은 교환하는 존재고, 이를 통해 문명을 발달시켜 왔다. 발달시켜왔다는 말의 전제는, 인간이 좋은 것과 나쁜것을 취사선택하는 존재라는 것을 뜻한다.

얼마전에 올린 니체의 말에 따르면, 가치평가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비관주의자들은 가치의 상대성을 주장하면서 인간 무가치의  총합이 지구를 멸망으로 이끈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매트 리들리의 비관주의 분석에 따르면 그런 종류의 인간들은 역사 때 마다 존재해왔으며, 그들은 예측이 틀렸다고 해서 단 한번도 사과한 적이 없고, 그들의 예측이 옳았덕 적도 없었음을 잘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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