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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일본산고 - 박경리

어빈2 2023. 12. 8.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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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경리
평점 3

 


개요


이 책은 소설 <김약국의 딸들>, <토지>로 유명한 박경리 작가의 에세이 모음집이다.
 
1926년생인 작가는 일제시대에 청소년기를 보냈으며, 작가의 역작 <토지>도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고전으로 읽히고 있을 정도로 일본에 대해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토지> 이후 작가는 소위 '일본론'을 쓰기 위해 어느정도 노력했다고 알려져있는데, 이 책은 일본과 관련된 미발표 원고와 강의, 잡지 기고 등을 모은 책이다. 
 
그래서인지 출판사 또한 책을 일본의 본질을 파헤치는 거장의 날카로운 시선이라 소개하고 있다. 
 
독서토론 책으로 선정되어 읽게 되었으며, 작가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던 나는 아무 배경 지식 없이 이 책을 보게 되었다. 물론 책 표지에 나와있는 슬로건만 봐도 쎄했지만 말이다.
 


내용


총 3부로 구성되어있다. 
 
1부 '일본산고'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일본의 문화 자체가 출구가 없는, 그래서 많은 지식인들이 자살로 인도될 수 밖에 없는 일본 특유의 허무주의, 염세주의를 비판한다.
 
그 근원으로 일본의 신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와 스사노오' 등을 언급하며 신화에 선악의 개념이 없음을 가지고 일본이 추구하는 도덕적 가치가 없음을 지적한다. 
 
2부 '나는 반일 작가입니다'에선 일본이 독일처럼 자신의 잘못을 받아들이고 사과하지 못하는게 그들의 문화에서 기인한 '진실의 상자를 여는데 두려움을 느끼는 상태' 이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전히 현인神의 나라이기에 무오류성의 오류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3부 '일본 역사학자와의 지상논쟁'은 일본의 역사학자 다나카가 한국에 대해 쓴 '한국의 통속 민족주의에 실망합니다'라는 글을 먼저 소개하고, 박경리 작가가 '일본인은 한국에 충고할 자격이 없다'라는 글로 반박하는 내용이다. 
 
통속민족주의라는 말을 쓰고있는데, 쉽게 말하면 일본에 대한 근거없는 민족주의의적 비난을 뜻한다. 
 


느낀점


책이 상당히 횡설수설처럼 느껴진다. 여러 미필 원고와 강의, 잡지 기고문들을 편집한거라 그런지 비슷한 내용도 반복된다.
 
1부는 일본의 신화를 길게 설명하는데, 작가 특유의 현학적이고 호흡이 긴 문체는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기 어렵다. 
 
다 읽고나서 느낀거지만, 작가가 이렇게 횡설수설 하는건 이유가 있다고 느껴졌다. 이유는 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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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관통하는 박경리 작가의 논리는 이렇다. 일본은 우리를 비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작가의 인식은 한국인을 마치 로마의 지배 하에 핍박받고 메시아를 그리워했던 유대 민족처럼 여기고 있으며, 이는 작가가 천주교인 것과 관련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일본이 한국을 비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논리 전개는 저급하다. 한동훈 법무장관은 '조선제일혀'라 불리며 조롱받고 있는데, 실제로 그는 민주당 의원들의 질문에 대답은 하지 않고 너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냐는 논리를 자주 사용하여 민주당 의원들의 입을 막아버린다. 
 
물론 실제로 민주당 의원들의 자격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수준 높은 대화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달을 보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을 지적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극대화된게 3부 내용이다. 
 
3부에서 다나카는 한국의 통속민족주의를 비판하고 있는데, 박경리 작가의 대답은 '이런 허접한 글에 굳이 답변을 달자면, 일본은 우릴 비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어떤 질문도 방어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런 논의도 진행할 수 없다.
 
영화가 재미없다는 누군가에게, '답답하면 니가 만들어 보던가' 라는 사람과 무슨 대화를 더 할 수 있겠는가?
 
3부에서 다나카가 주장하는 통속 민족주의는, 이미 한국에서도 논란이 되었던 '반일종족주의'와 유사하다. 일본에 대한 근거없는 반일감정이 악순환의 몽타주를 만들어 전체적 수준에서의 인식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근데 이건 다나카의 주장만은 아닌데, 이미 한국의 역사학계는 세계의 한국학자들에게 '슈도 히스토리'라고 불린다.
 
예를들어, 우리는 동학을 혁명이라 여기며, 마치 농민들이 인권과 자유를 위해 투쟁한 것이라 배우는데, 동학 1대 교주 최제우의 말을 모은 <용담유사>(2대 교주 최시형이 씀)를 보면, 동학은 유교적 근왕주의와 소중화를 위해 만든 안티-서학 종교다.

흔히들 폐정개혁안 12조를 말하며, 동학이 갖고 있는 근대성을 찬양하지만, 폐정개혁안 12조는 그 어디에도 사료가 없는 조작이다(유일하게 등장하는 곳은 '동학사'라 불리는 책인데, 이 책은 역사 소설이다)
 
그러나 우리는 교과서에서부터 이런 역사를 가르친다. 그러니 외국 학자들이 한국 사학계를 'pseudo'라 부르는 것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사실관계가 맞는게 별로 없고 거짓을 감정적으로 풀어내어 몽타쥬를 만들고 있다. 물론 시대가 시대인지라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다 변명할 순 있겠다. 그러나 사실관계가 밝혀졌을 때, 이미 거짓의 산이 시뮬라크르을 만들어 사고 깊은 곳에 점착된 채 증오를 양산하고 있는 작가의 사고를 바꿀 수 있을까? 상당히 회의적으로 보인다.
 
작가는 지나가는 말로, 일제가 박은 쇠말뚝 얘기를 하는데, 일제가 조선의 정기를 해치기 위해 산마다 쇠말뚝을 박은 것은 거짓말로 밝혀졌다. 
 
얘기를 더 해보자면, 쇠말뚝이야 말로 일제가 박은게 아니라 측량, 등산로 등 다른 용도로 박은거라는 당대 사람들의 증언이 있었음에도, 이를 무조건 일제가 한 것이라는 반일 집단 사고와 광기로 싸그리 무시하고 쇠말뚝을 뽑아 정신승리를 하던 사건이다. 
 
박경리 작가는 일본의 만세일계, 천황제가 일본 사람들의 생각을 강요하고 제한하여 행동을 비양심적으로 만든다, 전체주의적이다라고 지적하는데, 바로 한국의 민족주의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다른 용도로 말뚝을 박은 거라는 사람들의 증언은 무시하고, 왜? 자신들의 반일선동에 방해되니까, 그게 바로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흡사 나치와 비슷한 집단 광기이자 작가가 정확히 일본을 비판하는 논리와 동일하며, 다나카가 비판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반대로 한국은 일본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 작가에게 물어볼 만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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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를 읽어보면, 다나카의 말은 작가가 지적하는데로 비겁한 부분이 없잖아 보인다.
 
예를들어 다나카가 다른 사람의 말을 끌어와, 그것도 권위있는 말이 아니라 누군가의 경험담을 끌고와 한국이 방어적이고 피해의식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는 지적에, '할 말 있으면 니 입으로 하지 그런 근거도 없는 경험담 빌려와서 뇌까리지 말라'는 것은 분명 작가의 유의미한 지적이다.
 
그러나 다나카가 지적하는 한국의 민족주의는 분명 우리가 대답을 해야될 중요한 질문이다. 다나카를 공격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박경리 작가는 제대로 된 대답을 못하고 있다. 

여담으로 최근 bts의 성공 등으로 한국의 아이돌이 세계화 되면서 공장식 아아돌제도를 지적하는 외신들이 있는데,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안하고 메신저를 공격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우리가 대답을 해야될 질문은 대답하는게, 정직하고 용기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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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민족주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다. 민족은 무엇인가? 한국 민족은 무엇인가? 민족주의는 무엇인가에 대한 작가의 대답은 '일본이 있는 한 한국인은 민족주의자로 살아야 한다'이다.
 
민족주의는 농노를 시민으로 만들어가는 국민 통합적 역할을 한 부분이 있다. 같은 종교, 언어, 문화를 공유하기 때문에 한 민족이고 민족끼리 모여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담으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원인도 그 위로 올라가다 보면, 결국 민족국가 이슈가 나온다. 
 
여튼, 민족은 상당히 고대적으로 들리지만 근대적 개념이기 때문에 상상된 공동체이기도 하다는게 민족주의에 대한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우리는 한민족이 단군의 자손이라 생각하며 역사가 4천년이 넘은 민족인 것 처럼 알고 있지만, 정작 한반도에 '민족'이란 말이 들어온 것은 20세기 초반이라는게 역사적 사실인것 처럼 말이다.
 
이처럼 민족주의는 구심력을 강화하는 주체적인 성격을 띄고 있는데, 작가가 말하는 민족주의는, 일본의 존재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존재하는 개념의 민족주의다. 일본이 없으면 한국 민족도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어떤 존재의 유무가 다른 존재의 유무를 결정하는게 과연 건전한가? 그렇다면 한국인은 정말로 민족적으로 실재하는 존재라 볼 수 있는가? 오히려 반대하기위한 반대일 뿐인 악순환 아닌가?
 
다나카는 바로 이를 지적하는 것인데, 작가는 일본은 그런 말 할 자격이 없으며, 너네한테 실질적으로 폐 끼친거 없으니까 신경쓰지마 라는 식으로 대답하고 있다. 참으로 '지식인' 다운 대답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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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는 왜 이런 일본론을 주장할까?
 
소설 <파친코>의 주인공, 선자의 첫째 아들 노아는 일본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조선인이다. 노아는 늘 마음 깊히 간직한 소망이 있는데, 바로 진짜 일본인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징용갔다온 사람들의 증언을 보면, 처음에는 돈도 못받은채 지옥같은 곳에서 일했다라고 말하지만, 말을 계속 하다보면, 주말에 영화보러가고, 팥죽 먹으러 다니고, 데이트를 했다는 증언을 한다. 그건 무슨 돈으로 한건가?
 
그리고 2년 계약인데 계약을 연장하였다는 말도 한다. 무급여인데 계약연장은 왜 하는가? 마지막으로 그들은 은연중에 그들이 얼마나 일본을 가고싶었는지를 밝히기도 한다. 
 
즉, 박경리는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일본을 동경하고 있는 것이다.
 
그 동경이 역사적인 현실, 일제의 패망으로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기에 그 반대급부로서 오히려 비논리적이고 감정적인 방법에 기대어 일본을 비난하는 방향으로 드러난 것이 아닐까?
 
박경리는 일본의 근대화된 문명을 비난하고 있지만, 그녀가 주장하는 자연주의는 일본의 자연정령주의, 즉 신토에서 온 것이 아닌가? 
 
박경리는 일본의 신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언급하며 일본의 만세일계를 비판하고 있지만, 내 눈에는 창조설화조차 없는 조선인의 가련한 투정처럼 보였다. 일본의 신화는 창조 신화가 포함되어있는 반면, 조선의 단군신화는 창조 신화가 없다. 수준이 더 낮은 것이다. 
 
그녀가 스스로를 반일작가라 하면서 굳이 그들의 주목을 받으려 하고, 그들로부터 당혹스러운 표정을 자아낼 때, 그것이 어린아이의 투정처럼 보이는 것은, 동경하던 대상이 잘못된 길로 나아가 스러져버린 것에 대한 작가의 실망과 허무감이 드러나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니 그녀의 이 책은 횡설수설에 논리가 명확하지 않고 그나마 존재하는 논리도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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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산고>는 편집자의 주장과는 다르게 철두철미하게 일본을 파헤치고 있지도 못하고, 지금 시점에선 역사적으로 맞지 않는 얘기들도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신채호가 했다고 알려져 있는 이 말은, 책 겉표지 상단에 떡하니 붙어있지만, 신채호가 이 말을 바로 한국인들에게 했다는 것을 우린 잊으면 안된다. 
 
독서모임 회원의 지적이기도 했는데, 박경리 개인의 경험과 생각을, 그녀가 죽은 뒤 '거장'이란 타이틀을 붙여 그녀의 일본론을 성역화 함으로써, 오히려 이미 죽은 그녀에게 너무나 큰 짐을 지우는게 아니냐는 비판은, 상당히 탁월하며 날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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