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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파친코 - 이민진

어빈2 2023. 1. 4.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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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민진
평점 3

 


개요

이 책은 한국계 미국인인 이민진 작가가 쓴 소설로 한국 현대사를 연대기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일제시대 영도 출신 선자와 그녀의 가족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현대사에서 외면받아 온 재일 교포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제목 <파친코>는 일본에서 2등 시민으로서 살아간 재일교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파친코' 밖에 없었음을 뜻함과 동시에 책의 주제인 '시대가 주는 한계 속에서 바둥거리며 사는 인생'을 뜻하기도 한다.

 


내용

두 권에 이르는 긴 서사이기에 내용을 다 옮기지는 않겠지만, 간단히 설명하자면,

부산 영도 출신 선자가 일제시대 주막을 운영하는 어머니 밑에서 아무 미래 없이 세월을 보내던 중, 일본과 사업을 하는 한 세련된 조선인 한수와 사랑에 빠진다. 한수와의 성관계로 선자는 아이를 갖게 되나, 한수는 일본에 이미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었다. 이대로라면 당시 분위기로는 거의 매장될 처지에 놓인 선자는 다행히 주막에 머무르고 있던 젊은 목사의 도움을 받아, 그 목사의 아내가 되어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다.

두 아들 노아와 모세를 얻게 되고, 그들이 일본에서 고군분투 하는 모습을 시간 순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느낀점

인물을 중심으로 한 미시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소설 <토지>와 비슷하다는 평을 듣고 있는데, 물론 난 읽어보진 않았지만, 이 책을 <토지>에 비교하는 것은 <토지>에 대한 모욕임을 읽어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이 책은 굉장히 과대평가 되어있는 책으로, 나오는 인물은 매우 평면적이고 내용은 클리셰 범벅이라 아무 생각없이 보기 딱 좋은, 그 이상의 책이 될 수 없다.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들을 다 한데 모아놓은 책이며, 그래서 영화 <국제시장>을 보는 느낌이 들었는데, 영화에 비해 다행인 점은 쿨하게 쓰여져있어 영화처럼 질릴듯한 신파가 나오진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는 단점이기도 한데, 나쁘게 말하면, 인간의 깊은 내면 또는 사회문제를 파야 되는 부분을 모조리 사전에 차단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순종적이고 평면적이며 아무런 갈등이 없는 스테레오타입적인 사람들. 그런 인물로 소설을 썼으니 별로 느껴지는 소설적 감정, 즉 딜레마나 갈등이 별로 없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평면성의 예로는, 선자가 있다. 선자는 극을 주도해나가는 인물임에도 매우 수동적인데, 시대의 한계라 변명해줄 여지가 있지만, 나중에 가서는 뒷전에 있는 자애로운 어머니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선자를 통해 어머니 세대를 보여줄 의도였을까? 대부분의 인물이 이런식으로 그려진다는 점에서 작가의 역량 미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클리셰의 예를 들자면, 키다리 아저씨가 있다. 한수는 선자의 가족이 위기에 쳐할때 마다 나타나 조건 없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다. 뭔 놈의 야쿠자가 못하는게 없고 예측이 빗나가는 경우가 없는데, 이런 클리셰가 현대 소설에 사용된다는게 충격적이다.

스토리상의 엉성한 구성의 예는, 어려움과 갈등 없는 성공신화를 들 수 있다. 이 책을 보면 참 재밌는게, 정말 비루하게 살던 조선인들이 '파친코'를 통해 자기 손으로 밥벌어먹고 사는, 비로소 제대로 된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분명 시대의 한계로 재일교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파친코'처럼 일본인이 하지 않는 불법과 합법 경계에 있는 일이라고 해놓고선, 빌어먹을 그 일을 통한 어려움은 단 한글자도 나와있지 않으니, 동시에 그냥 종사만 하면 죄다 성공한 선한 사람으로 그려지는데, 그럼 '파친코'가 나쁜 이유는 도대체 뭔가? 소설에서 어른들이 파친코 사업에 종사하지 말라는 식의 부정적 견해를 드러내는데, 그 어른들은 다 선하고 파친코로 성공한 사람들 뿐이다.

'파친코'로 의도한 이미지와 실제 소설에서 드러난 파친코는 정반대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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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왜 제목을 파친코라고 지었을까?

파친코란 제목이 내용을 대변하진 않는다. 파친코에 대해 부실하게 서술되어있고, 파친코를 하면 죄다 성공을 해버리기 때문에, 사실 성공한 이후의 삶이 소설적 대상이 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파친코는 소설 2권째의 마지막에 가야 등장하는 정도다. 그래서 작가가 파친코란 제목을 쓰고 싶어서 마지막에 어거지로 파친코 내용을 넣은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러나 파친코를 시대가 주는 굴레 또는 한계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잘 지은 제목임엔 틀림없다.

우리는 누구나 시대가 주는 한계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자유롭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심지어 광고를 봐도 impossible is nothing이란 슬로건이 등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능력과 재능의 한계, 사회의 한계, 더 나아가 시대가 주는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각각의 한계 속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려는 노력이 인생이라 한다면, 파친코는 이를 잘 나타내는 제목이다.

-----(스포일러)


이 책에서 가장 극적인 부분은 첫째 아들 노아가 자살하는 부분이다.

노아는 선자의 첫째 아들이지만 선자의 남편인 목사 아들이 아닌, 유부남 한수의 아들이다. 물론 목사와 선자는 이를 숨기고, 목사 또한 노아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화목한 가정을 이루어 잘 살았다. 노아에겐 말 못할 본심이 있었는데 이는 진짜로 일본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도쿄에서 하숙하던 시절에 결국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노아는, 모든 가족과 의절하고 잠적해버린다. 수 년간 노아를 찾을 수 없었던 선자는 한수의 도움으로(그는 노아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고 있었기에 노아와 선자에게 지속적으로 도움을 준다) 노아를 찾게 된다.

노아는 조용한 시골에서 일본인 여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완벽하게 일본인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선자가 노아를 찾아오게 되고, 어머니와 다음에 만날 약속을 정한 후 홀로 조용히 자살하여 생을 마감한다.

 

노아가 왜 자살했을까?

 

노아는 평생을 일본인이 되고 싶어했다. 그래서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여 일본인으로서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러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후 그는 절망에 빠졌고 마지막 기회라 여기고 연고 없는 곳에서 정말로 일본인이 되었다. 물론 자신의 출생이 주는 한계를 절감하였기에 거기서 파친코 사업에 종사한다.

 

그러나, 어머니가 자신을 찾을 후, 어디에 숨어살던 정말로 일본인이 되려고 한들, 그 저주받은 씨앗을, 자신을 옥죄고 있는 시대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음을 다시금 느꼈고 결국 마지막 남은 길은 자살밖에 없다는 것이 노아가 내린 결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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