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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어떤 양형 이유 - 박주영

어빈2 2023. 1. 3.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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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주영
평점 2

 


개요

판사가 쓴 책으로, 격무에 책을 쓰기 어려웠지만 어쨋든 낸 책이라고 한다.

상대적으로 대중에 노출이 덜 되는 사법부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책이다. 판사도 인간이기에 판결 하나에도 많은 고민과 고통이 있음에도 사람들은 내용을 모르고 사실 별 관심도 없어 양형에 오해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에 대한 일종의 변명을 담고 있다.

개인적으론 정치를 하고싶은 마음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내용

총 세장으로 구성되어있다. 여러가지 자신이 겪었던 비참한 사건을 소개하고 그 사건에 관련된 여러 법적 내용 또는 소회를 밝힌다. 그리고 자신이 양형 이유로 적었던 내용을 옮겨 적고 있다.

처음엔 이런 형식을 유지하다가 갈수록 수필처럼 느낌을 적는 방향으로 바뀌는데, 그때부턴 별볼일 없는 책이 되어버린다.

중간중간 정치적 이야기도 담겨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사실에 기반해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예를들어 기업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호소하면서 구의역 스크린도어에 끼어 사망한 젊은 기술자의 사망을 언급한다. 위험도 외주화하여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기업의 태도를 비판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판사라면 알텐데,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건의 가장 큰 원인은, 2인 1조여야 하는 팀에서 한 명이 노조 집회 참석을 위해 자리를 비웠기 때문이다. 이는 법원 판결문에 적혀있는 내용이다. 기초적 부분에 있어서 안전까지 디테일하게 기업이 손쓸 수 없다. 기업은 안전에 대한 규칙과 룰을 세팅하고, 실제 안전이 지켜지느냐 여부는 현장에서 근로자들이 이를 얼마나 따르냐에 있다.

 

 

‘구의역 청년 비극’ 뒤 민주노총 노조원 무단이탈 있었다 | 중앙일보

뒤늦게 법원 판결로 드러났다.

www.joongang.co.kr

 


느낀점

가족 범죄, 성범죄, 소수자 범죄, 어려운 사람들 등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여러 사례들을 소개하는데, 사실 이런 사례의 열거는 그리 좋은 방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새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일종의 신파 포르노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자신은 선량한 판사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본데, 이 책은 군데군데, 자신의 인간적 선량함을 강조하기 위해, 판사라는 정말로 독특한 직업의 윤리를 무시하는 경우들이 많다.

작가의 인간에 대한 연민을 자신의 업무에까지 끌고 와 담당했던 사건을 몇 개 소개하는데, 물론 보다 좋은 판결을 내린 경우들이다. 그러나 작가의 성향으로 평생 판사를 했다면, 아마도 소개되지 않은, 훨씬 안좋은 판결이 많은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사는 재판장 안에서 저승사자와 같은 존재가 된다. 누군가의 인생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판사의 직업윤리는 다른 직업과는 상이하다. 패거리를 짓지 말아야 하기에 취미도 골프같은 단체 운동은 지양되어야 한다. 양측 주장을 듣고 사실을 판단하는 객관성은 또한 바로 자신으로부터의 객관성이기도 하다. 어쩌면 판사라는 직업 자체가 인간이 할 수 없는 직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간이 필연적으로 지니고 있는 인간성은 판사가 늘 경계해야 될 부분이다. 겉으로 보이는 연민에 휘둘리면, 법적 양심은 높은 확률로 빗겨나가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판사는 법적 양심을 판사 자신의 양심이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법적 양심은 고도로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법적 판단이 내려졌을 때 법 조문에서 비로소 발현되는 것이지, 판사의 눈물어린 변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패거리를 짓지 말아야 한다는 부분에 대해서 첨가하자면, 이 책 곳곳에, 동료 판사와 친분이 언급되는데, 판사는 각각 독립적인 존재이기에 다른 곳에서는 지향될 연대가 지양되어야 한다.

누군가의 사진이 분실되었을 때, 얼마를 손해배상 해주어야 되는가라는 부분에서, 사진의 가치가 사람마다 다르기에 얼마를 해야되는지 다른 판사들과 식사하며 상의를 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바로 이런것을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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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갈수록 양형 이유에 대한 서술보단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적는 수필처럼 바뀌다보니 여러 문제점이 더 두드러진다.

정치적 이야기가 많아지기도 한데, 재밌는 부분은 사법농단에 대해 언급하는 곳이다.

자신이 평생 지방만 돌아다닌 향판이기에 중앙 무대가 어떤지 잘 몰라서 그러는지(작가 언급임), 아니면 성향이 있어서 부러 안보려는지 모르겠지만, 현재 윤석열이 집어넣은 사법농단 판사 13명 중 8명의 재판이 끝났고 전부 무죄가 나왔다.

이들을 집어넣은 윤석열이 지금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불이익을 감내하면서까지 팔이 안으로 굽는 판결을 한건지, 아니면 진짜 조사하니 아무것도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무죄다. 박주영 판사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렇게 사법농단이 가슴이 아프셨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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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p233쪽에 나온다. 그대로 옮겨보면 이렇다.

우리는 사법부가, 아니 판사 한 명 한 명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어떤 압력도 없는 진공상태에서, 오로지 법과 정의와 국민만 바라보며, 좋은 재판을 하기를 원하고 있지 않은가?
p233

 

뭐 좋은 말을 이어 써놓은것 같은데, 근래 본 책중에 가장 처참함이 도드라지는 서술이었다.

이는 바로 '국민만'이라는 표현이다. 무의식중에 넣은건지 모르겠는데, 이 사람은 판사를 해야될 사람이 아니라 정치를 해야될 사람이다. 그러나 이 분이 판사를 하고 있다는데서 사법부를 쳐다보는 우리의 절망이 확인되는 곳이라고도 하겠다.

법은 '국민만' 바라보면 안된다. 특히 한국은 떼법 마녀사냥 문화가 즐비하여 더욱 그러한데, 매우 높은 빈도로 대중이 어떤 생각에 휩쓸려 갈 때, 그 반대가 법적 정의에 부합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법이 국민만 바라본다면 이는 법이 곧 정치라는 얘기가 된다. 즉, 다수결이 법이라는 것이다. 다수가 동의해서 내가 나체로 운동장을 뛰라고 할 수 없는것처럼 다수결로 정할 수 없는 가치들이 있다. 법은 이를 보호함으로서 인류 보편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진실은 신의 속성에 가까우며, 그렇기 때문에 오직 '개인'이랑만 소통 가능하다는 것이 키에르케고르의 말 아닌가? 진실 속에 정의가 있기에 정의는 국민, 대중, 떼거리와는 상응이 불가능하다. 즉 법적 정의는 국민과 반대되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도 좋은말이랍시고 책에 적어놓은 작가의 수준을 보면, 사법부가 왜 이렇게 정치화가 되었는지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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