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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 오찬호

어빈2 2022. 8. 2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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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오찬호
평점 1

 


개요

이 책은 사회학을 내세운 실천 인문학 책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오찬호 작가는 스스로를 '생생한 사례와 함께 독자의 옆구리를 훅 파고들어 한국 사회의 갑질을 폭로하는 작가'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책이 상당히 부정적이다. 물론 저자도 이걸 알고 있으며, 그럴 때 마다 저자는 '부정적인게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는 거에요'라고 얘기한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을 누가 뭐라할까? 그러나 우리가 물어봐야 할 것은, 작가가 진짜로 현실을 직시하고 있으며, 그것이 평균이 될 수 있냐는 것이다. 왜냐하면 작가 스스로가 사회학을 '개인이 아무리 간절해도 꿈을 이루지 못한 평균치가 함의하는 객관적인 불평등을 드러내는 것'이라 정의하기 때문이다.

즉, 성공한 소수의 사람을 조명하여 제반 사회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개인이 노력만 하면 되는것 처럼 얘기하는 것은 틀렸고, 성공하지 못한 대다수의 원인을 살펴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사회학이라 정의함으로써 그 원인이 불평등한 사회 때문이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럼 작가가 지적하는 것은 과연 그 '평균치'에 합당한지를 물어보는 게 당연해진다. 그리고 이에 성공했냐 묻는다면 '아니올시다'이다.

 


내용

내용이 상당히 여러 주제를 아주 가볍게 다루고 있다.

차별, 꼰대, 아동폭력, 기울어진 운동장, 남성성/여성성, 외모지상주의, 소비 등...가볍게 다루었다 함은, 대체적으로 짧게 쓰면서 서술하는 태도가 "아 그거 진짜 아닌데, 진짜 나쁜건데 그걸 모르네...아 진짜 아닌데"라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왜 나쁜지를 인문학적으로 검증하는 파트는 별로 없다. 그래서 상당히 강한 표현을 사용한다. "예외는 없다", "100%다" 이런 류다. 내가 맞으니까 넌 닥쳐라는 것이다.

결국 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래서 자본주의는 나쁘고, 개인은 나쁘다는 것이다.

 


느낀점

저자는 집단주의를 비판하고, 개인주의를 주장하면서 동시에 마이클 샌델류의 공동체주의를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을 나쁘게 본다고 얘기할 수 있다. 작가가 개인주의를 집단주의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얕게 설명하고 있는데, 현대사회의 문제는 집단주의 vs 개인주의가 아니다. 개인의 탄생이 근대 문명의 탄생이기에 이미 그 질문은 의미를 잃었다.

물론 한국은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전통이 없고 집단주의적 문화가 아직 남아있으니 현존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지만, 전세대의 유물처럼 남아있는 집단주의는 개선되고 있고 MZ세대는 이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과거에 있었던 집단주의적인 사례를 가져다가 지금 집단주의가 팽배해있다는 식의 서술은 틀렸다. 그러나 작가는 마지널한 부분에서 존재하는 여러 극단적인 사례를 마치 평균인것처럼 가져와서 사회 그 자체를 공격하고 있다.

예를들어 층간소음 문제에서 '내 집에서 내가 층간소음 내는 건 아무 문제 없다'는 얘기를 한 사례를 가져와서 사유재산권과 자본주의를 공격하는 식이다.

사실 진짜 문제는, 집단주의가 공동체주의라는 외피를 새롭게 걸쳐 개인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외피는 도덕과 공익, 공동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있다. 작가는 바로 이를 무기로 개인을 위협하고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공동체적, 집단적 향수를 갖고 있다. 그래서 집단주의가 없어지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집단주의가 개인의 근본적인 자유를 침해하기에,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데 대부분이 동의한다. 그런데 그 해결책으로 마이클 샌델류의 공동체주의를 들고나온다면, 우리는 똑같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과연 공익을 누가 정하는가? 공동선은 누가 정하는가? 사회가 도덕을 만들어서 개인에게 강요할 수 있는가?

집단주의에서 나오는 문제랑 동일한 문제들이다. 작가는 더 나아가 절대 악과 절대 선을 구분하고 이를 성역화하여 이에 의문을 품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데, 개인의 탄생이 바로 절대 선과 절대 악을 정해놓고 계급과 신분의 카테고리로 인간을 규정하던 카톨릭 질서에 대한 저항 아니었던가? 작가야말로 누구보다 꼰대스러운 말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생각을 우리는 PC주의라고 부른다. 한마디로 도덕완장질이라는 것이다.

작가가 말하는 개인주의의 수준이란, 대충 모두가 예스할 때 '노'하는 사람이 되어라 정도인데, 내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개인의 자유는 언제나 국가/집단/공동체로부터의 자유라고 봤을 때, 작가가 얘기하는 공동선은 퇴행적인 사고 방식이다. 그리고 마치 이를 인문학인것 처럼 포장한다면, 이는 그저 좌익에 다름 아니다.

사회가 '선'이라는 목표를 갖는다면, 개인은 소멸하게 된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집단주의는 공동체주의와 같은 말이 된다. 작가가 집단주의를 비판하고 개인을 강조하지만 공동체주의를 주장한다면 그건 그냥 집단주의를 주장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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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부분에선 그래서 해결책으로 그냥 '헌법'을 지키면서 살아도 충분하다고 한다. 그 사례로 사유재산권은 보호되지만 헌법에 '재산권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해야 한다'는 규정을 들어 사유재산권을 규제해야됨을 얘기한다.

근데 사유재산을 행사하는데 왜 공공복리에 적합해야 하는가? 예를들어 내가 내 돈으로 쓰레기를 잔뜩 사서 강에다 붓는다면, 이는 환경을 해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니까 규제해야 한다는데 동의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밥을 먹거나, 미술관을 가거나, 영화관을 가거나, 쇼핑을 하는데 왜 '공공복리'를 생각하면서 재산권을 행사해야 하는가? 사실 저 조항은 상당히 문제가 많은 조항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 문제는 아예 생각하지도 않고 그냥 헌법이니까...이런 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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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틀렸다고 생각한다. 악의 평범성은 우리가 그 위치에 간다면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식의 상대주의가 아니라, 악이 악마의 형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일상에서 일상의 형태를 띈 채 너무나 평범하게 일어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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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자신의 생각을 매우 가볍게 써놓은 것이라 실제로 자본주의에 대한 인문학적, 철학적 비판은 없다. 그냥 자본주의는 나쁜거야 라는 전제를 아예 깔고 책을 썼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엔 '위대하신 자본주의'라는 말처럼 자본주의를 조롱하는 표현들이 나온다.

많은 비도덕적 사례를 끌어다가 자본주의를 '위대하신'이라고 모욕하려면 그 전제에, 자본주의 이전에는 그런 문제가 없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물론 자본주의 이전에는 층간소음 문제가 없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이전엔 고층 건물이 없었으며, 서민이 집을 갖는다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근데 그런 식의 사고방식, 즉 남이야 어떻게 되던 말던 나만 편하면 되고, 내 것만 제일 중요하다는 이기주의적 사고방식이 과연 자본주의 이전엔 없었을까? 루소처럼 사유재산이 탄생하기 전엔 마치 모두가 행복한 유토피아가 존재했다고 생각한다면, 참 눈물나게 안타까운 수준이라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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