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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인간실격 - 다자이 오사무

어빈2 2022. 7. 20.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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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다자이 오사무
평점 7

 


개요

독서토론 책으로 선정되어 고전 중의 고전 '인간실격'을 읽게 됐다. 사실 사놓은지는 꽤 오래되었으나, 미시마 유키오, 오에 겐자부로 등 그간 일본 소설에 치인게 많아서 아예 뽑아 볼 생각도 안했던 책이다. 여기서 치였다 함은,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고, 유명만 듣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가 그 문장과 내용의 난해함에 머리가 아팠던 것을 뜻한다.

인간실격은 제목부터 풍기는 오라가 이를 함축하고 있어서 두려움이 있었던것 같다. 읽고 나니 다행히 문장에 있어서 어려움은 없어서 마음은 편했다. 그러나 아니나다를까 내포된 내용에 내 이해력이 도달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 머리가 지끈거리는 책이었다.

그래서 독서토론에도 딱히 할 말도 없었던...

 


내용

액자 구성을 취하고 있다. 작가가 요조라는 사람의 사진과 수기를 입수하게 되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말미에 수기를 마무리하는 짧은 작가의 말로 책은 끝난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p 13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삶을 나 vs 세상의 구도로 바라보는 요조. 모든 인간을 처세와 면피의 대상으로 바라보던 요조가 개인 vs 개인의 구도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서 결국 처세 대상이 의미가 없어져버리는, 그래서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느낀점

독서토론에서 공통적으로 동의하던 바는, 이 책이 인간의 가장 밑바닥을 가감없이 드러냈다는 것인데...난 이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잘 모르겠다. 그러나 다행히 책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할 수는 있었다.

 


1) 실격이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테마는 '순수성'이다. 순수성의 범위는 상당히 넓게 나오는데, 그래서 순수성이 부딛히는 곳은 현실 뿐만 아니라, 실용, 관습, 전통도 포함하고 있다. 즉 '상식'과 부딛히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묘사는 꽤 나온다.

육교가 선로를 건너기 위해 만들어진게 아닌 정거장을 보다 놀이터 처럼 재미있고 즐겁게 하려고 설치했다는 표현, 이불 등이 단순히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다는데 서글픔을 느끼는 표현, 삼시세끼를 왜 먹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거부감 등, 주인공은 첫 조우에서 느낀 가장 원초적인 감정과 실제하는 실용성 또는 관습성과의 거리가 크다는데에 의문을 표하고 실망감을 많이 느낀다.

그래서 주인공은 모든 세상을 '처세'의 대상으로 본다. 실제 목적성을 띈 개체들과 자신 생각의 괴리가 심해 주인공은 다른 사람에 공감할 수 없다는 공포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세상의 '상식'에 자신의 생각이 부합하지 못한다는 불안을 느끼는 것이다.

처세의 방법으로 주인공이 택한것은 '익살'이다. 세상의 상식과 자신의 생각은 융합될 수 없고, 긍정적인 방법으로 극복하기 보단 불안을 느끼고 도망가는 방법으로 이겨내보려고 한 주인공은, 융합이란 과정을 차단하기 위한 방어막으로 남을 웃기는데 전력한 것이다. 익살이라는 거짓의 위장이다.

보통 사춘기를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물론 전문적인 의견이 있겠지만, 나는 '자아'가 '세상'과 맞닥드리기 시작한 시점, 그리고 이것이 형태를 갖추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아기는 자아가 없이 순수하게 관계성에만 의존하여 생존할 수 있다. 그러나 10세 정도가 되면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하는데, 여기서 자아와 세상이 충돌하고 있음을 느끼게 되고 이것이 불안으로 다가온다.

자신 안에 형성되고 있는 자아를 알지 못하고, 자아의 등뼈인 '가치관'이 형성되어있지도 않은 상태에서 부모, 형제, 학교, 친구, 사회, 공동체 등 벌거벗은 자아가 마주하는 '세상'은 혹독하게 다가온다. 이 불안감이 일탈로 표현되는 과정에서 사회의 상식과 내 가치관이 소통될 수 있는 형태로 자리 잡아가는게 사춘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조는 이 과정이 뒤틀려있다. 물론 요조가 갖고 있는, 나아가 작가가 갖고 있는 예민한 감수성이 간극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최선으로 선택된 방법이지만, 어쨌든 소통과 융합을 거짓으로 대체함으로써 타인과 진지한 관계로 엮일 수 없는 첫 단추를 끼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요조만의 문제일까?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느끼는 것은, 거짓된 모습은 우리가 늘 안고 살아가는 세상의 진면목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까지만 이라면 '실격'이란 제목은 어울리지 않다고 하겠다.

문제는 요조를 둘러싼 요조 외의 사람들, 심지어 가족조차 거짓된 모습으로만 요조를 정의한다는 것이다. 요조는 '익살꾼' '장난꾸러기'와는 정반대의 인간이지만, 사회는 요조에 대한 판단을 끝냈다. 자신의 생각이 상식과 소통될 수 없다는 것이 요조의 불안이고 이를 감추기 위한 '익살'이었지만 가족마저도 거짓의 요조와만 소통이 가능한 것이다. 갈수록 요조가 술과 담배, 마약에 찌드는 모습은 그래서 자연스럽게 예정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요조의 순수성과 그것이 사회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 형태가 거짓이라는데 오는 간극이 바로 '실격'의 출발이다. 실격은 요조 뿐만 아니라 요조를 둘러싼 인간 일반에 대한 표현이며, 순수성이란 결국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은 실격될 수 밖에 없는 원죄를 가진 존재라는 다음 내용의 논거가 된다.

 


2) 개인 對 세상에서 개인 對 개인으로


요조가 딸을 가진 여자와 시즈코 동거를 시작하는 부분이 이 책의 절정이다.

"시게코는 하느님한테 무엇을 부탁하고 싶은데?"
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화제를 바꿨습니다.

"시게코는 말이야, 진짜 아빠가 갖고싶어"

화들짝 놀라고 아찔하게 현기증이 났습니다. 적(敵). 내가 시게코의 적인지, 시게코가 나의 적인지. 어쨌든 여기에도 나를 위협하는 끔직한 인간이 있었구나. 타인. 불가사의한 타인. 비밀투성이 타인. 시게코의 얼굴이 갑자기 그렇게 보였습니다.

'시게코 만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시 이 아이도 '갑자기 쇠등에를 쳐 죽이는 소꼬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p 91

 

순수성은 모순을 갖고 있다. 시게코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지만 무지에서 나오는 순수성이란 의도하지 않은 '적의(敵意)일 수도 있다. 그래서 순수의 영어단어인 innocent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무지의 뜻도 있다.

요조는 아내 요시코의 티끌없는 신뢰에서도 위안을 얻는데, 시게코의 '진짜 아빠'를 갖고싶다는 바람에서 처음으로 배신감과 적의를 느끼고, 이어 아내가 강간당하고 자신을 대하는 장면에서 순수한 신뢰에 대한 믿음이 깨지게 된다.

여기서 영화 <에일리언>이 생각났는데, 영화 <에일리언>을 보면 애쉬라는 인물이 나온다. 인조인간인데 그의 대사에 순수성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아직 그 생명체에 대해 모르는군. 완벽한 생명체야. 완벽한 구조와 어울리는 잔인성. 그 순수성을 존경하지. 질긴 생명력. 양심에 전혀 방해받지 않으며 도덕에 얽매이는 일도 없지"
- 영화 <에일리언> 중 애쉬가 에일리언을 묘사하는 대사

 

순수성이란 무엇일까? 에일리언의 순수성이란 자신의 본성대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뜻한다.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본성에 가장 충실한 것이 순수성이라면, 에일리언에겐 파괴와 살인이다. 근데 그것이 우리의 관점에서 본다면 과연 순수한 것일까? 순수성이 본질적으로 모순을 가졌다면, 순수성이 순수성을 배신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실존하는 자신 본연의 생각이 상식과 다르다는 간극을 페르소나로 극복하려한 요조한테 벌어진 첫 가치관의 붕괴다.

바로 다음 요조의 친구 호리키가 찾아오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그나저나 네 난봉도 이쯤에서 끝내야지. 더 이상은 세상이 용납하지 않을 테니까"

세상이란게 도대체 뭘까요. 인간의 복수(複數, 둘 이상의 수)일까요. 그 세상이란 것의 실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무조건 강하고 준엄하고 무서운 것이라고만 생각하면서 여태껏 살아왔습니다만, 호리키가 그렇게 말하자 불현듯 "세상이라는 게 사실은 자네 아니야?"라는 말이 혀끝까지 나왔지만 호리키를 화나게 하는 게 싫어서 도로 삼켰습니다.

그때 이후로 저는 '세상이란 개인이 아닐까'하는 생각 비슷한 것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p 93
세상. 저도 그럭저럭 그것을 희미하게 알게 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세상이란 개인과 개인 간의 투쟁이고, 일시적 투쟁이며 그때만 이기면 된다...노력의 목표는 언제나 개인. 개인을 넘어 또 다시 개인.

세상의 난해함은 개인의 난해함. 대양(大洋)은 세상이 아니라 개인이다, 라며 세상이라는 넓은 바다의 환영에 겁먹는데서 다소 해방되어 예전만큼 이것저것 한도끝도 없이 신경 쓰는 일은 그만두고, 말하자면 필요에 따라 얼마간은 뻔뻔하게 행동할 줄 알게 된 것입니다.
p 97

 


세상이 개인임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은, 사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개인만 존재한다는 것의 깨달음을 뜻한다. 요조는 평생을 자신과 사회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가에 대해 처세하고 실패해온 사람이었는데, '무섭고 강하고 준엄한' 추상으로서의 세상이 사실은 개인이란 실제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요조가 그간 해온 실패의 대상이 모두 다음으로 넘어가기 위한 무의미로 바뀐 것이다.

이제 금제는 깨졌다. 결국 세상이라는 것에 평생 메달려 온 자신의 모든 행동이 의미가 없어지면서 겉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가는 것이다. 그가 술과 담배, 마약을 넘어 네크로필리아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바로 거짓으로나마 자신과 세상을 붙잡아 놨던 끈이 끊어져버렸기 때문이다. 두 번째 가치관의 붕괴다.

이제 모순되지 않은, 유일하게 남은 순수성은 무엇일까? 가치에 대한 동경을 갖고 살았던 요조한테 남은 순수성이란 결국 죽음 뿐이다.

인간실격.

이제 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p 131

 


3) 원죄에 대한 다자이 오사무의 해석


책 내용 중 난해한 부분중 하나가 요조와 요조의 친구 호리키가 하는 '반댓말 놀이'에서 이어지는 '죄'에 대한 서술이다. 여기서 요조가 말하는 죄란, '원죄'를 뜻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는 기독교적 내용이 상당히 중요하게 언급되는데, 특히 마지막에 가서 요조가 자신이 동경하던 것에 배신감을 느끼면서 '죄'에 대해 끊임없이 묻는 장면이 나온다.

호리키와의 대화에서 죄의 반의어가 법인지, 선인지를 얘기하면서 악과 죄가 다르다는 얘기를 한다.

"설마...죄의 반의어는 선이지. 선량한 시민. 즉 나 같은 것이지"

"농담은 그만두자고. 그러나 선은 악의 반의어지 죄의 반의어는 아니야"

"악과 죄는 다른가?"

"다르다고 생각해. 선악의 개념은 인간이 만든 것에 지나지 않아. 인간이 멋대로 만들어낸 도덕이라는 것을 말로 표현한거지."
p 113

신에게 묻겠습니다. 신뢰는 죄인가요?

무구한 신뢰심은 죄의 원천인가요?
p 118

신에게 묻겠습니다. 무저항은 죄입니까?
p 131

 

사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어렴풋이 느낀점은, 우리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들이 결국 우리를 '실격'상태로 인도하는 모순의 집합이라면, 인간이란 존재가 결국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원죄'를 가진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격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이 결국 죄이기에 그것은 인공의 선과 악을 넘어서 근원에 존재하는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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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어려운 책이다. 이 외에도 책에는 여러가지 언급할 만한 얘기들이 많다. 그러나 큰 틀에서는 이런 구조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해설을 찾아보진 않았지만 독서토론에서 나오는 말로는 실존주의니, 전후 일본인에 대한 자화상이니 등 말이 많았지만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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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때 느낀 생각을 마구잡이로 써놓아서 사실 무슨 말인지 나도 이해가 안간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써놓는 이유는 언젠가 다시 보게 될 <인간실격>에서 느낀점이 지금의 수준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기록하려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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