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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모순 - 양귀자

어빈2 2022. 6. 6.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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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양귀자
평점 5

 


개요

<원미동 사람들>로 유명한 양귀자가 98년에 발표한 장편소설로 주인공 25살 여자 안진진을 통해 삶의 모순을 깨닫게 되는 내용의 책이다. 오랜만의 지정도서 독서모임을 하게되어 읽게 되었다.

 


내용

어느날 자다가 불현듯 울면서 벌떡 일어난 안진진은 소리친다.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그리곤 25살까지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설명하는데 책 분량의 1/3정도를 쓰고 나머지 2/3은 1년 동안 일어나는 일들을 서술하고 있다.

 


느낀점

양귀자 작가의 책은 처음 읽어봤는데, 중등 교과서에 실려있는 <원미동 사람들> 정도만 익히 들어 알고있는 정도였다.

쉽게 읽히는 책이지만 큰 갈등이 없고 미시적인 일상사를 나열하는 방식을 사용하는 소설이기에 뭔가 읽고나면 먹먹한 생각이 드는 소설이다.

이 책은 안진진의 눈물어린 호소로 시작하면서 강렬하게 몰입을 유도한다.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안진진의 호소는 간데없고 그냥 그 시대 작가들이 항용 읊조리는 씁쓸한 소시민의 삶이 서술된다.

처음에는 일종의 맥거핀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선을 모았던 돌입부는 사라지는데, 책 후반부에 그 호소를 다시 꺼집어내는거 보니 맥거핀이 아니라 작가의 스토리텔링 능력 부족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오히려 거창하게 외쳐놓고 결국 인생이란 뜻대로 되는게 별로 없는,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라는 또 다른 모순을 드러낸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설명하라면, '90년대 최진실이 주인공으로 나온 드라마'라고 하는것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아무 스펙없이 그저그런 회사에 다니는 주인공, 한량처럼 살다가 죄짓고 감옥에 들어가는 남동생, 술만 먹으면 아내를 패고 역마살이 껴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빠, 시장 바닥에서 양말을 팔면서 생계를 책임지는 엄마, 이런 집안의 주인공을 좋아해주는 두 남자, 엄마랑 쌍둥이지만 결혼을 잘 해 유복하게 사는 이모...그리고 이 모든 것이 다 각자의 이유가 있어서 무작정 비난을 할 수만은 없는 상황.

뻔해서 웃음이 나오는 설정이다. 그러나 98년 책이니 그러려니 하자!

이 책은 <오발탄> 같은 허무주의는 아니다. 각자의 삶 속엔 인생의 모순이 있고, 주인공이 알면서도 모순을 선택하는 것으로 책은 끝난다. 소시민의 기구한 삶을 소재로 결국 인생은 원래 그런거야...라는 주제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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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러 인물들을 통해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

이를 드러내는 큰 기둥 두개는 안진진의 양다리 남자친구 두 명과, 쌍둥이인 엄마와 이모다. 엄마와 이모의 서사는 똑같은 사람이 하나의 계기로 데칼코마니같이 정반대의 삶을 산다는 모순을 보여주고, 남자친구들의 서사는 엄마와 이모의 삶은 보면서도 '이모의 삶을 줄 수 있는' 즉, 알면서도 삶의 모순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모순'을 보여준다.

엄마와 이모의 경우 부모조차 구별할 수 없고 둘이 꼭 붙어다녔다는 묘사가 계속 나온다. 그리고 결혼을 기점으로 둘의 인생은 확연히 달라진다. 엄마는 역마살이 낀 아빠를 만나는 바람에 말그대로 불행한 인생을 살게된다. 반면 이모는 견실한 이모부를 만나 평생을 고생없이 유복하게 살게 된다.

가족 구성원도 아빠, 엄마, 안진진, 안진모 이렇게 4명이고 이모, 이모부, 주리, 주혁 4명 구성으로 마치 뫼비우스의 띄 처럼 철저하게 양면을 드러내기 위한 계산된 설정이다.

엄마는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시장바닥에서 양말을 팔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불행한 인생 속에서 엄마는 어떻게든 생존하는 법을 터득했고, 매사에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큰 문제가 닥쳤을 때는 그 문제를 이겨내고 어떻게든 삶을 이어가려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 이모는 부족함이 없이 살았지만, 결국 삶의 의미를 잃고 자신의 딸 주리보다 더 사랑한 안진진에게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게 된다. 이모는 유서에 엄마의 삶을 오히려 부러워 했음을 고백하는데, 아무 불편함이 없으니 동기부여가 될 인생의 기복과 재미가 없고 결국 마지막 선택은 자살밖에 남지 않았던 것이다.

누구보다 불행하게 살았지만, 그래도 삶을 이어가는 엄마, 누구보다 유복하게 살았지만 스스로 삶을 중단시킨 이모. 둘은 엄마와 이모라는 설정이지만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프로도와 골룸처럼 원래는 한 사람인데 인격을 둘로 쪼개놓은거라 생각하는게 맞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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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안진진의 아빠였다. 아빠는 역마살이 껴 있는데, 늘 술을 마시면 엄마를 때리곤 했다. 안진진은 그런 아빠를 증오하지 않고 오히려 남편은 아니더라도 아빠로서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데, 뭐 가스라이팅일 수도 있겠다.

사실 이는 전형적인 천재형 케릭터다. 인간을 초월한 가치를 추구하는 예술형 인간에서 자주 나타나는 설정인데, 인외의 가치를 추구하지만 자신은 어쨋든 인간이란 육체의 한계에 갖혀있기 때문에 늘 자신의 정신적 욕망과 육체적 욕망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리고 이는 폭력으로 표출된다.

<금각사>나 <달과 6펜스>에서도 잘 나타나는 설정이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서사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진짜로 술 마시면 아내를 때리는 개차반이기만 했다면, 안진진이 아빠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빠가 바로 그 지점에서 고뇌하고 절망한 사람이기 때문에, 드문드문 보이는 아빠의 '아빠다움'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그 부분에 대한 묘사가 아예 빠져있어서 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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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벗어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주제인, 인생은 모순투성이라는 명제는 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늘 모순적인 삶을 살며 모순되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모순을 이해함에서 한 단계 성숙한 사람이 되고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 문제에 있어서 사람들은 모순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굉장히 높은 수준의 도덕과 정의의 잣대를 들이대어 재단하려고 하는데...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모순이듯,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이뤄진 사회가 무결할 것이라는 생각은 어찌보면 참으로 순진한 사고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삶의 모순을 이해하는게 어른으로 가는 길인것 같이, 역사와 사회에 대한 모순을 이해하는 것 또한 시민적 덕성이 성숙해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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