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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위대한 퇴보 - 니얼 퍼거슨

어빈2 2022. 3. 22.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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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니얼 퍼거슨
평점 4

 


개요

영국의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젊었을때 부터 천재로 유명했는데, 저서로는 <시빌라이제이션> 등이 있다. 이 책은 '법치주의와 적'이라는 제목으로 BBC 라디오4에서 방송된 강연을 엮은 것이다.

 


내용

니얼 퍼거슨은 서양 문명이 왜 몰락하는가라는 큰 주제를 4개의 챕터를 통해 분석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문명이란 현대를 견인했던 대의정치, 시장경제, 법치주의, 시민사회를 뜻한다.

1~3 챕터에선 대의정치의 몰락, 시장경제의 위기, 법치주의의 파괴를 말하고 있으며, 챕터 4에서 그 해결법으로 무너져가는 시민사회의 원상복귀를 주장한다.

경제사학자인 만큼 '제도'를 조명하고 있다. 서양문명의 몰락도 제도가 어떻게, 왜 망하고 있는지를 통해 밝히고 있다.

첫번째 챕터를 시작하면서 서양과 동양의 격차가 산업혁명 시기 크게 벌어졌다가 왜 지금 다시 좁혀지고 있는지를 주목하고 있다. 그러면서 두 가지 국가의 패턴에 대해 언급한다.

제한적 접근 패턴
- 느린 경제성장
- 비교적 적은 수의 민간 조직
- 국민의 동의없이 운영되는 작은 중앙정부
- 개인 및 왕가의 혈통에 따라 조직되는 사회관계

개방적 접근 패턴
- 빠른 경제성장
- 다양한 조직을 갖춘 풍요롭고 활기찬 시민사회
- 크고 분권화된 정부
- 법치주의처럼 비개인적 힘에 지배되는 사회적 관계, 안정적인 재산권과 공정성, 이론뿐일지라도 보장되는 평등

 

쉽게 말하면 제한적 접근 패턴에서 개방적 접근 패턴을 시도한 국가들이 빠르게 성장했으며, 그 반대의 경우 쇠퇴한다는 것이다.

개방적 접근 패턴으로 가면서 왕으로부터 절대 권력을 뺏어오고, 개인의 재산권을 보호하며, 대의정치를 발달시키는 방향으로 역사는 움직였다. 이를 영국의 예를 들어 잘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대의정치가 무너지고 있음을 지적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몰락을 얘기한다(여기서 대의정치는 사실 민주주의 그 자체를 뜻한다). 그리고 그 이유로 니얼 퍼거슨은 '공공부채'를 꼽고 있다.

갑자기 뭔 공공부채냐 하겠는데, 여기서 말하는 공공부채는 포퓰리즘을 가르킨다.

이 책은 강의를 엮어놓은 책이기 때문에 배경 지식 없이 보면 니얼 퍼거슨의 말이 겉돈다고 느껴지는데, 짧게 지나가는 문장에서 요구하는 배경지식은 바로 '보수주의'다.

대중의 입맛에 맞게 퍼주겠다는 정책을 시행하면, 결국 그 공공부채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의 소득으로 부터 끌어오게 되는데, 문제는 국가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만의 결사체가 아니라 선배 세대와의 파트너쉽이자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들과의 파트너쉽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거대한 영혼의 강을 연상케하는 이 표현이 보수주의의 핵심이고, 보수주의가 기독교와 깊게 맞닿아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쨋든, 불황이랍시고 돈을 계속 퍼주는 정책을 하다보면 공공부채는 세대간의 사회적 계약의 붕괴를 가져온다. 그리고 이는 곧 민주주의(대의정치)의 붕괴를 뜻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 국가란 모든 세대와 세대간의 합의인데, 공공부채를 통해 다음 세대의 소득을 갖고(그들이 원하지 않는) 현재 세대가 빚잔치를 한다면, 그 계약은 자연스럽게 거부될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챕터에선 정부규제가 어떻게 시장경제를 망가뜨리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 챕터에선 비교적 분명하게 작가의 성향이 드러나는데, 작은 정부와 심플한 규제, 그리고 엄격한 처벌, 자유주의 우파라고 하겠다.

과도하게 복잡한 규제는 처방이 아닌 그 자체가 질병이라고 믿는다.

p. 82


경제사학자 답게 우리가 알고 있는 시장실패의 사례들이 정부실패임을 밝히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를 중심으로 설명하는데, 금융위기가 터진것도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서브 프라임)들이 주택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한 정책 때문에 정부가 그들의 신용을 보증하게 되었고, 그 구조가 무너지면서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사실상 우리가 '신자유주의의 병폐'라고 부르는 대부분 시장실패는 정부실패인 경우가 많은데 겉으로 그럴싸하게 떠드는건 늘 정치인이기 때문에 대중들은 시장실패라고 알고있는 경우가 많다.

어떤 케이스는 조금만 파보면 진짜 시장실패가 맞아보이긴 하는데, 알고보면 신자유주의적 논리랑은 거리가 먼 인간 행동 그 자체의 실패인 경우도 많다.

세 번째 챕터에선 법치주의의 붕괴를 설명한다.

이 챕터에서 대륙법계와 영미법계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통해 영미법계가 더 우수함을 말하고 있다.

이 부분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대륙법계에서 판사란 법에 나와있는 대로만 재판하는 영혼이 없는 존재여야 한다. 체사레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별>에 잘 나와있는데, 판사가 임의대로 판단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사법부의 입법부 침해임은 물론이고, 원칙이 없기 때문에 재판장에서 판사가 군림하는 절대 악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케이스를 법에 명기해놓을 수는 없다. 법이 현실을 못 따라가는 경우 법적 공백은 부정의를 뜻하기도 하다.

반면 영미법계는 '보통법'이란 원칙 하에 판사가 선배 세대들의 다양한 판례들을 보고 재판을 한다. 올리버 웬델 홈즈나 브랜다이스 판사처럼 미국 유명 판사들의 주옥같은 판례가 지금도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이유는 바로 영미법계의 전통 때문이다.

그러나 판사의 주관적인 의견이 들어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기준의 모호성이라는 문제가 남는다.

작가는 결과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 평등을 더 잘 지켜온 것은 영미법계라고 주장하면서 영미법계가 더 우수하다는 설명을 한다. 사실 영미법계의 전통은 영국과 미국 오직 두 나라, 즉 자유주의-시장경제 묶음 전통을 갖고 있는 나라에서만 가능했다.

그러나 작금엔 입법부가 사법부에 관여를 많이 하게 되면서 법치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는게 챕터 3의 골자이다.

그 사례중에 하나로 정치권에 법조인의 진출이 너무 많음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한국도 완전 똑같은 문제를 갖고 있다(검찰 출신 대통령,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이 판검사 출신 등).

챕터 4에선 자신의 시민단체 경험을 설명하면서 사실상 이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건전한 시민사회라는, 정답이지만 동시에 나이브한 주장을 한다.

자유주의-시장경제의 묶음이 영미에서만 가능했던 이유는 그들이 기본적으로 교회를 통해 시민단체적 형태로 마을 단위에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시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부 영화를 보면 늘 보는 장면이 황야의 마을 한가운데 작은 개척교회가 하나 세워져 있는 건데, 그게 바로 미국 민주주의의 뿌리이다. 교회에 매주 모여 예배드리고 공동체를 형성하며, 마을의 대소사를 결정하면서 자유민주주의가 형성된 것이다.

그래서 니얼 퍼거슨이 다시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적 서양 문명의 재건을 위해 건전한 시민단체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은 교과서적인 정답이다.

그러나 그게 가능할까?

 


느낀점

건전한 시민단체의 성립 또한 니얼 퍼거슨이 앞서 말한 이유로 방해받는다. 사리사욕만을 생각하는 사람들, 포퓰리즘적 선동, 규칙의 자의적인 해석 등...그 중 건전한 시민단체를 방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돈이다.

한국의 경우 좌익 시민단체는 활발한데 비해 우익 시민단체는 찾아볼 수가 없는데, 돈 때문이다.

박원순이 좌익 시민단체의 대부로 불렸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참여연대 활동으로 대기업들을 찾아가서 후원금을 내라고 협박한다. 안 내면 사회적 이슈를 펑펑 떠뜨린다고 말하는데 이러면 대부분의 기업들은 돈을 갖다 바친다. 그 돈으로 좌익 시민단체의 생태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여성가족부도 폐지의 옳고 그름을 떠나 본질은 돈 문제다. 여가부가 눈 먼 돈을 많이 쓰는 이유는 그 돈으로 좌익 시민단체, 즉 페미니즘 단체들의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가부는 예전부터 정체성정치를 해왔다. 박원순과 오거돈, 안희정에 침묵하던 페미 단체들이 윤석열이 당선됐다고 '애 안낳아 줄거다'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와같이 여성의 권리엔 별 관심이 없고 정파적 이해에 따라 움직인다는걸 알 수 있다. 이유는? 여가부 폐지=밥그릇 걷어차기이기 때문이다.

반면 우익 시민단체는 돈 안줘도 경제적 자유라는 신념에 따라 친기업성향을 띄는데, 그러다보니 기업들이 아무 신경을 쓰지않게 되었다. 결국 고작 있는거라곤 전경련에 기생하는 실체없는 안보보수단체들 뿐이다.

기업들이 좌익 시민단제에 속수무책 당하는 것은 평소 자신들의 논리를 대변할 인물과 단체를 키우지 않은데 대한 업보이기도 하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좌익 시민단체만 득세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게 아니며, 그래서 니얼 퍼거슨의 해결법이 나이브하다는 것이다.

시민단체 자체적으로 자정작용이 되려면 시민단체를 이루는 국민들의 수준부터 높아야되는데, 한국은 그 수준에 도달해있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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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래서 낮은 평점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첫째 나이브한 해결방법 제시.

둘째, 개인적으로 니얼 퍼거슨의 분석과 주장에 모두 동의하지만, 이는 나도 비슷한 의견을 갖고 있으며 관련된 여러 책을 봤기때문이다. 이 책은 너무 짧기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들이 그의 주장에 동의하기엔 설득력이 부족하다.

예를들어 대의정치, 즉 민주주의가 붕괴되고 있다. 무엇때문에? 공공부채 때문에.

이렇게 주장을 해버리면 사람들이 용두사미라고 생각하게 된다. 갑자기 너무 디테일해지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붕괴되는 이유는 작가의 말처럼 직접민주주의성, 인민민주주의성, 즉 사회주의적 경향성이 민주주의를 포퓰리즘으로 타락시키기 때문인데, 이를 설명하지 못하고있다.

그러나 니얼 퍼거슨의 다른 책들은 꼭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동의할 만한 작가의 큰 주장의 틀을 알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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