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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 오에 겐자부로

어빈2 2022. 6. 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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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오에 겐자부로
평점 6

 


개요

일본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가 2007년에 발표한 소설로, 책 껍데기의 설명에 따르면 '상처받은 이들의 아픔을 치유하며 그들과 함께 써나가는 <새로운 형식>의 소설'이다.

역자는 오에 겐자부로의 새로운 형식의 소설임을 말하고 있지만,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특이한 소설이긴 하다는 것이다.

 


내용

화자인 나(오에 겐자부로)는 아들 히카리와 함께 노구를 이끌고 보행 연습을 하고 있다.

"What! are you here?"

30년 동안 연락을 끊고 지냈던 동창 고모리가 갑자기 보행연습 장소에 나타나고, 사쿠라의 전언을 들으며 소설은 30년 전으로 돌아간다.

30년 전, 덴마크의 소설가 클라이스트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여 전세계적인 영화 제작 프로젝트가 발족한다. 통칭 M계획. 그의 작품 <미하엘 콜하스>를 주제로 각 나라의 특징이 잘 드러나도록 각국에서 영화를 만드는 프로젝트다. 미하엘 콜하스는 종교개혁 시절 영주의 폭정에 저항한 농민들의 봉기를 다룬 내용이라고 한다(로빈 훗이나 홍길동 같은 케릭터라고 생각한다).

영화 프로젝트의 시나리오 작업 의뢰가 당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던 나에게 들어왔고 동창이었던 프로듀서 고모리, 여배우 사쿠라를 만나게 된다.

일본 버전 '미하엘 콜하스'를 메이지 유신 시대 '메이스케'라는 사람의 농민 반란과 연결시켜 만드려고 했고, 메이스케의 봉기의 조연이었던 메이스케 어머니 역할을 사쿠라가 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쿠라의 창조적인 재해석으로 메이스케의 어머니가 주체적인 여성으로 우화하였고, 봉기를 이끈 주인공도 메이스케 시나리오에서 점차 어머니로 변경된다. 사쿠라의 열정에 나 또한 공감하기 시작한다.

사쿠라는 전쟁 직후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미국인 장교 데이비드에게 거둬들여져 후원을 받아 미국으로 건너가 배우가 되었고, 데이비드와 결혼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무의식적 트라우마에 인생을 지배당하고 있었다. 트라우마의 원인을 기억하진 못했지만, 자신이 소녀일 때 데이비드가 촬영했던 <애너벨 리>라는 앨런 포의 시를 주제로 한 영화 때문이 아닌가라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영화를 찍었을 때의 기억은 단편적이고 촬영 도중에 깊이 잠이 들었다가 깨고 보니 영화가 끝나있던 기억 밖에 없다.

사쿠라와 동향이었던 나는 어렸을때 미국 문화원에서 <애너벨 리> 영화를 본 적이 있었고, 사쿠라는 그 영화를 보지 못했기에 조심스레 흥미를 갖고 물어보기 시작한다. 특히 사쿠라는 자신이 하얀 옷을 입고 풀밭에 누워있는 장면을 물어보는데, 왜냐하면 풀밭에 눕는 장면 이후 잠이 들어 그 부분의 기억이 없기 때문이었다.

사쿠라는 자신이 하얀 옷을 계속 입고있었는지, 흐트러지지 않았는지 물어보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사쿠라에게 숨긴 것은, 그 부분에서 영화가 어색하게 편집되어있다는 점, 그리고 그 영화를 같이 봤던 선배가 나중에 그 풀밭 장면이 찍혀있는 사진을 주는데 하얀 옷이 아닌 나체였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M계획을 위해 일본에 들어왔던 캐나다 촬영팀이 사고를 친다. 촬영팀이 영화에 나오는 춤을 연습하기 위해 발레를 하고 있던 소녀들을 집요하게 촬영하고 있다는 것이 당국의 귀에 들어간 것이다. 조사를 하니 실제로 미하엘 콜하스 영화 외에 아동 포르노를 만들 자료를 수집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결국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일본 버전 M계획은 취소 수순을 밟는다. 그러나 사쿠라는 계속 영화를 찍고 싶어한다.

이에 고모리는 사쿠라에게 '무삭제판' <애너벨 리>를 보여주기로 한다. 그의 주장으로는 사쿠라의 트라우마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지만...나는 그때가지만 해도 어떤 영화인지 짐작을 하지 못한 채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곤 사쿠라와 같이 영화를 보게 되는데...하얀 옷을 입고 나와야 하는 장면에서 수면제로 잠든 나체의 사쿠라가 데이비드에 의해 성적 훼손을 당하는 장면이 나오고, 사쿠라는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영화 계획을 취소하고자 사쿠라를 폐인으로 만들려는 고모리가 저열한 방법을 썼다고 생각한 나는 고모리와 의절을 하게 되고 그 이후 30년이 지나 고모리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고모리는 나에게 사쿠라가 M계획의 시나리오 대로 영화를 만들고 싶어한다는 의견을 전달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선 사쿠라가 주도적으로 다시 영화를 추진하고 영화를 촬영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느낀점

부끄럽지만 이 책은 현재의 내 수준에서 이해하고 리뷰를 할 수 있는 소설이 아니다. 너무 어렵다.

평소에 일본 문학을 좋아하고 특유의 미학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은 늘 이질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책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에서도 느꼈지만, 그의 소설은 나에겐 뿌연 느낌이 든다.

아마 내가 지금 내 수준에서 이해할 수 없기에 그 뿌연 느낌이 가득한 것일까?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도 소설에서 벌어지는 내용을 알거 같으면서도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작가가 디테일하면서 동시에 추상적인 묘사에 담겨있는 거대한 감정과 메세지존재할 것이라는 추측을 어렴풋이 더듬고는 있는데, 내가 느낀건 너무 단순하기에 그 괴리에서 발생하는 마뜩찮은 뿌염이랄까...

이 책도 비슷하다.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큰 문제가 있진 않았다.

주제도 간단하게 느껴졌다. 책의 뒷 커버에 나온것 처럼, 상처받은 이들을 치유하기 위한 문학이라는 것이다.

전후 일본이 미군에 점령당했다는 상황, 무기력감 속에 어떻게든 삶을 이어나가야 했기에 여성들이 겪을 수 밖에 없었던 운명적 한의 '넋두리'를 영화 제작이라는 과정을 통해 주체적이고 강인한 여성이 구축됨으로써 치유하는 것이다.

사쿠라의 성적 훼손이라는 트라우마는, 무의식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러나 의식적으로는 그 끔찍한 일들을 잊어야만 하는 전후 점령군의 성적 노리개로서의 여성들을 나타낸다.

그리고 트라우마를 직시하게 된 사쿠라는 배우에서 은퇴하고 오랜 기간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데, 이 부분은 저항하지 못하고 다만 그렇게 되어버리고만 역사를 받아들여야 하는 일본 여성들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30년이 지나고 그녀는, 이미 큰 투자는 받을 수 없는 상황이기에, 그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즉 메이스케 어머니의 넋두리 장면만이라도 만들고 싶어한다. 그 과정에서 고모리와 나의 역할은 거의 없고 사쿠라가 주도적으로 이끌게 되는데, 이는 처음에 메이스케의 봉기의 주인공이 '어머니'라고 재해석 했던 사쿠라의 의도와 부합하면서 치유 소설로서의 완성을 보여준다.

소설 내에 메이스케의 어머니가 당하는 역경들이 나오는데, 그 장면에서 사쿠라는 이렇게 얘기한다. 이 얘기가 아마 전후 여성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불굴의 저항심을 가진 여성이 한 번은 봉기하여 승리했지만, 다시 한 번 새 시대의 권력인 대참사와 싸우지 않을 수 없었던거지요. 그 싸움에서도 이겼지만, 함께 봉기한 무리들과 헤어지고 나니, 아들은 구세력에 의해 돌에 눌려 죽고, 자신은 강간, 윤간을 당한겁니다.

절망감으로 탈진해 누워있는 여성에게 '좋았느냐고' 묻는 남자가 있었던 거에요...이후로도, 세상이 어떤 식으로 변하더라도 여인들에게는 변하지 않는 고난이 이어지는 거지요.

처음부터 그렇게 각오한 한 여인이 '환생한 메이스케'를 말에 태우고 숲속으로 올라간,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요.

p 171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홀로 일어선 여성의 모습에서 전후 일본 전역을 드리웠던 무력감, 점령군의 행패에 저항할 생각도 하지 못했던 그들이, 그리고 메이스케의 어머니로부터 알 수있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이미 알고 있는 그들이, 그럼에도 불굴의 정신으로 스스로 일어나 위대하게 되었다는 것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게 아닐까.

어쩌면 불굴의 정신이 원래 내재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그들이 재탄생 할 것 또한 그렇게 될 운명이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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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의 작품에 나오는 성적 표현들은 더럽지만 동시에 '아 이게 문학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굳이 말하자면 '성의 평범성'같은 느낌이다. 그의 표현은 우리 마음의 가면을 다 찢어발기고 나면 나올것 같은 더러운 성욕들을 가감없이 드러내는데, 그것이 컨텍스트 속에서 문학으로 승화되는 느낌이다.

예를들어 <새싹 뽑기 어린짐승 쏘기>에서 젊은 청년들이 길거리의 여성을 보고 가감없이 성기를 드러내고 자위를 하는 모습을 묘사한다던가, 이 책에서는 사쿠라가 성적 훼손을 당하는 부분과 메이스케의 어머니가 나중에 당하는 성폭행 등이 너무나 평범하게 그려지고 있어서 지금 내가 뭘 본거지? 라는 생각이 잠깐 스치게 만든다.

그런 모습들이 오히려 극현실주의적 느낌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걸 데카당 문학이라고 해야되는건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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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제목이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일까?

나는 애드가 엘런 포의 <애너벨 리>라는 시를 모른다. 모른다는 것은, 읽어도 뭔 말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도 당췌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나의 수준에서 적자면, '아름다운 애너벨 리'는 전후 미군에 의해 규정된 여성의 이미지이자 오리엔탈리즘이고, 애너벨 리가 싸늘하게 죽음으로서 오히려 부활의 뜨거운 불꽃을 품은 것과 대조가 되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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