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멋대로/책

[책리뷰] 민족이란 무엇인가 - 에르네스트 르낭

어빈2 2022. 6. 19. 12:25
728x90
반응형

 

 


작가 에르네스트 르낭
평점 7

 


개요

이 책은 프랑스의 지성 에르네스트 르낭이 1882년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강연한 <민족이란 무엇인가>를 엮은 것이다.

1870년 보불전쟁(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이 발발하고 1871년 프로이센이 승리한다. 이어 프로이센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분열되어있던 독일이 통일되고 제국이 탄생했음을 선포한다.

승리한 독일은 프랑스로부터 알자스-로렌 지방을 뺏어가는데, 명분은 원래 독일 민족이 살던 땅이라는 것이었다. 독일은 민족을 종족으로 이해하는데, 이는 범게르만주의라는 말로도 잘 알려져있다. 그러자 민족 개념의 발상지인 프랑스의 지식인 르낭이 독일 니들이이 주장하는 종족 개념은 틀렸다라고 주장하는게 이 책의 요지다.

여담으로 프랑스 국민들이 느꼈던 패배감, 굴욕감 등이 예술로 남아있는데,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도 알자스-로렌 지방에서 더 이상 프랑스어를 쓰지 못하게 됨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짧은 책이라 2개의 글이 하나로 엮여있다.

하나는 1882년 <민족이란 무엇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1870년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 이라는, 보불전쟁이 막 개시되고 2달 뒤 <르뷔 되 데 몽드>란 잡지에 실린 글이다. 전쟁의 승패를 아직 알지 못할 때, 프로이센이 프랑스 둘 다 전쟁의 원인에 책임이 있음을 밝히고, 정복자들이 늘 실패해왔음을, 프로이센이 군사주의와 정복욕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들과 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라 얘기한다.



내용


1.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전쟁이 시작됐다.

프랑스 혁명을 통해 유럽 전역에 민족의 개념이 전파되었다. 그렇기에 독일이 민족국가가 되고자 하는 열망은 바람직한 일이고 막을 수도 없다. 군사적인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독일이 통일되어 민족 국가가 된다 하여도 프로이센이 독일화 될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정복에 대한 야망은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만약 독일이 프로이센화 된다면, 프로이센의 광신도들은 다른 민족을 정복하고자 하기에 유럽은 연맹을 만들어 대비해야 한다.

모든 제국이 그랬던것 처럼 다른 민족을 정복한 나라들은 자신의 민족성을 잃게된다. 독일이 정복을 할 수록 오히려 독일 민족은 사라지는 딜레마에 빠질 것이다.

 

2. 민족이란 무엇인가

로마 제국이 몰락한 이래로, 더 구체적으로는 샤를마뉴의 제국이 붕괴한 이래로 서유럽은 민족국가로 분열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p 74

고대에는 민족국가라는 것을 겪지 않았습니다. 중국 시민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집트 시민이라는 것도 없었습니다.
p 76

 

민족이 고대적 개념이 아니라 근대적 개념임을 지적하고 있다. 즉 우리는 '저 단군 이래로부터 우리는 한민족' 처럼 민족을 고대의 의미로 받아들이지만 사실은 근대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민족이란 대체 무엇입니까?

어째서 하노버 왕조나 팔로마 대공국은 한 민족이 아닌 반면, 네덜란드는 하나의 민족입니까?

어째서 스위스는 세 개의 언어, 두 개의 종교, 서너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으면서도 하나의 민족이라 할 수 있단 말입니까?
p 86

 

민족이란 무엇일까? 종족일까? 독일은 민족을 종족의 개념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종족의 개념이 모호하기 때문에 종족을 근거로 삼는 것은 공상일 뿐이다.

 

프랑스는 켈트족이기도 하고 이베리아족이기도 하면 게르만족이기도 합니다.

독일은 게르만족이기도 하고 켈트족이기도 하며 슬라브족이기도 합니다.

영국의 여러 섬들은 대체로 켈트족과 게르만족의 피가 혼합되어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비율을 명확하게 밝히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p 94

 

순수한 종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유럽의 중요한 민족들은 본질적으로 혼혈 민족이며, 이 개념이 처음에는 중요했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지고 약해질 것이라 작가는 말한다.

언어도 민족을 구분지을 수 없다. 스위스는 서너개의 언어를 쓰면서도 한 민족을 유지하고 있으나, 같은 스페인 말을 사용하는 남아메리카는 그렇지 않다.

 

언어는 역사적인 부산물로,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혈통에 대해서는 말해주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p 102

 

종교는 처음엔 분명 민족적 성격이 있었지만, 로마 이후 보편을 추구하게 되면서 더 이상 국가 차원의 종교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어떠한 종교의식도 행하지 않으며서 각기 프랑스인, 영국인, 독일인이 될 수 있습니다.
p 107

 

뿐만 아니라 지리, 이익동맹, 왕조는 민족을 구분짓는 정의가 될 수 없음을 서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르낭이 생각하는 민족이란 무엇일까?

 

하나의 민족은 하나의 영혼이며 정신적인 원리입니다.

위대한 일을 함께 이루었고 여전히 그것을 함께하고자 하는 것이야말로 한 인민이 되기 위한 본질적인 조건들인 것입니다.
p 111

 

민족은 과거세대의 전통과 유산을 계승한 현대 세대가 같이 살며 미래를 위한 계획을 공유하는 융합체를 말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 '너는 어떤 민족이야'라고 규정짓는 것은 불가한데, 어떤 민족이 되고자 하는 그 사람들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두 개로 요약해 보자면,

첫째, 민족은 민족성이란 속성을 가진 단위의 사람들을 뜻한다. 여기서 민족성이란 왕조가 없이도 유지될 수 있는 추상을 뜻한다.

예를들어 어느날 한국의 입법, 행정, 사법부가 증발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래도 여전히 우리는 한국인처럼 살아갈 것이다. 이처럼 하나의 문화적 특질을 민족성이라 하고 이를 공유하는 범위까지가 민족인 것이다.

둘째, 사람들의 자유의지가 중요하다. 알자스-로렌 지방의 사람들이 프랑스가 갖고있는 서사와 추억, 미래에 대한 계획에 같이 하고싶다면 그들은 프랑스 민족인 것이고, 독일에 가깝다면 독일 민족인 것이다.

 


느낀점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은 확실히 잘 쓴 글은 아니다. 글의 중심이 없고 흐름이 일관되지않아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먹기가 힘들다.

르낭은 보불전쟁 이전까지 칸트, 괴테를 낳은 독일의 수준을 굉장히 높게 평가했는데, 자신이 경외하던 국가가 자신이 가장 염려하던 일을 벌인데 대하여 미련을 버리지 못하기에, 뭔가 정신을 못차리고 조심스럽게 말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느낌이다.

게다가 당시 시대상에 대한 배경지식을 많이 요구하고있다. 마치 2200년의 한국인이 오늘 2022년 6월17일의 어떤 신문의 '오늘의 정치' 칼럼을 보고 당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당연히 귀담아들을 얘기도 있다.

르낭은 민족주의를 근대국가로의 이행으로써, 신민 > 시민 > 국민에 이르는 통합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통합의 기준은 사람들의 자유의지라고 얘기한다.

프로이센이 독일화 될것이란 그의 분석은 틀렸지만, 독일의 광신적 민족주의 정복욕이 결국 다른 유럽 국가들의 동맹을 촉발하여 독일이 망할거라는 분석은 20세기에 들어맞게된다.

또한 같이 평화롭게 살고자 하는 유럽 사람들의 의지가 유럽을 하나의 민족국가화 할거라는 그의 통찰도 EU라는 이름으로 증명되었다. 물론 의지로 통합된다는 수준의 나이브함이란 대게 결과가 안좋지만 말이다.

2부 <민족이란 무엇인가>는 상당히 명징하게 쓰였다.

민족이 종족의 개념이 아니며, 지역사람들의 선택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은 얼핏 순진해보인다. 그러나 강제로 땅을 빼앗겼을 때 도덕과 양심에 호소하는 것은 꽤 유효한 전략이다. 독일의 지성은 아마 양심이 찢어지는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


르낭의 민족에 대한 개념을 현실에 대응하면 어떨까?

내가 알기로 북아일랜드가 영국에 편입될 때, 북아일랜드가 아일랜드에 속할지 영국에 속할지에 대한 국민투표가 있었다고 알고있다. 르낭의 말대로 그 지역 사람들의 의지가 관철된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어떨까? 푸틴의 말대로 우크라이나는 존재했던 나라가 아니었고, 돈바스 지역은 친러시아계 사람들이 많은 지역으로 알려져있다. 그렇다면 돈바스 지역이 러시아에 편입되고 서방이 보증하는 형태로 정전 협상 또는 항복 협상이 일어나는게 맞는걸까?

누군가의 자유의지가 중요하다면, 각 개인의 자유의지가 단순히 투표로 표현되거나, 아니면 일반의지처럼 하나의 의지화되는 것이 가능할까?

-----


우리나라 또한 독일과 비슷하게 종족 또는 혈족 개념으로 민족을 이해한다. 제 1호 민족국가는 미국이라 알려져있는데, 우리의 민족 개념으론 미국이 민족 국가라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민족을 동일한 주권을 가진 집단으로 이해한다면 미국이 민족국가라는 의견이 있다.

민족이란 말은 한국에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소개되었다. 어떤 명사란 그에 대한 개념이 존재했을 때 만들어지기 때문에 민족이란 개념은 그 전까지 한국에 없었다. 다만 종족의 개념이 있었는데, 그래서 부여씨족이었던 고구려, 백제, 그리고 부여의 귀족문화를 갖고있던 왜가 합종한 것을 거란씨족이었던 당과 신라가 연횡하여 부순거라는 주장도 있다.

우리는 고구려, 신라, 백제를 한 민족이라 이해하지만, 정작 연개소문과 김춘추가 만났을 때 통역사를 데리고 갔을까? 라는 질문을 접하게 되면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처럼 한국인이 아는 민족의 개념은 소개된지 100년 남짓이지만 고대적으로 받아들여지는데, 허상이지만 피를 끓게하고 선동력이 강하다는 것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기 쉽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