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김지혜
평점 2
개요
이 책은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무의식적으로 저지르는 차별을 고발하면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책이다. 의도치 않은 차별을 '선량한'이라고 표현했으며, 장애인, 여성, 동성애 등 다양한 분야에 벌어지고 있는 차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내용
프롤로그 당신은 차별이 보이나요?
자신이 장애인 문제에 대한 토론회에서 사용했던 '결정장애'라는 말을 예시로 우리가 일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선량한'차별이 존재함을 얘기하고 있다.
1부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탄생
1장 서는 곳이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
남녀문제, 동성애, 이주민 문제를 거론하면서 몇 가지 통계를 들어 '다수자 차별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또한 특권이 무엇인지 정의하면서, 우리가 현재 속해있는 집단 자체가 특권임을 주장한다. 상대적으로 집단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집단에 대해 차별을 느끼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평등을 제로섬 게임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 나에게 손해이기 때문에 실질적 평등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2장 우리는 한곳에만 서 있는게 아니다.
예멘 난민에 대해 여성들이 극렬하게 반대한 것을 가지고 약자와 약자간의 연대가 실제로 잘 일어나지 않음을 지적한다. 그 이유로는 인간이 카테고리화 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테레오타입이 난민에 대해 편견을 주게 되어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집단을 가르는 편견을 경계가 분명하지 않고 때로는 경계와 카테고리가 만나는 경계에서 다양한 차별이 존재한다고 한다. 넌센스 퀴즈를 예로 드는데,
A회사의 직원 중 절반이 흑이고 여성이 절반이다. 그런데 흑인 여성이 한명도 없다 어떻게 된걸까? 답은 모든 흑인은 남성이고 모든 여성은 백인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경계와 카테고리가 숨겨져있는 차별을 만든다는 것이다.
3장 새는 새장을 보지 못한다.
낙인이론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여기서 재밌는 것은 앞서 프롤로그에선 여성이 남성에 비해 67%정도의 임금을 받고 있다는 잘못된 통계를 들어 남녀 차별을 설명하더니, 여기서는 그렇긴 한데 여성이 종사하는 직업 자체의 임금이 적기 때문에 그렇다는 얘기를 한다. 즉 남녀 차이가 아니라 직업 차이라는 것이다.
근데 작가는 나아가 여성이 임금이 적은 직업을 선택하는것 자체가 차별임을 증명하려고 하는데, 실제로 여성이 이공계에 재능이 없지 않으나, 사회적으로 여성이 이공계로 진출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즉 기회를 선택함에 있어서 구조적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67%임금이 남녀 차별이라고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2부 차별은 어떻게 지워지는가
4장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비는 이유
흑인 분장을 한 개그를 예시로 들면서 남의 약함, 불행, 부족함을 볼때 웃고 즐거워하는 인간의 본성을 설명한다.
또한 혐오표현도 언급하고 있다. 누군가를 혐오하는 표현을 권력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약자 집단에 대해 혐오스러운 표현을 사용하는것 자체가 권력이라는 것이다.
5장 어떤 차별은 공정하다는 생각
정규직 비정규직 예시를 들면서 사람들이 서로 다른 대접을 받는 것에 대해서 그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는 얘기를 한다.
그러면서 능력주의를 공격한다.
우리가 우리의 능력으로 현재의 지위에 올라있다는것 자체를 부정하는데, 그 예시로 개인의 능력을 측정하는 기준이 무지의 베일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음을 말한다. 예를들어 어떤기업이 채용 조건 중 토익을 넣어놨다면, 청각장애인은 리스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것이다.
6장 쫓겨나는 사람들
노키즈존, 인종 등 다양한 이유로 대중시설에서 쫓겨나는 사람이 있음을 언급한다.
7장 내 눈에는 안보였으면 좋겠어
퀴어 축제를 예시로 공공 공간에 입장할 자격이란 이름으로 차별이 자행됨을 지적한다. 여기서 또 권력을 얘기하는데, 공공장소에 누군가가 입장할 자격을 정하는 다수가 권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3부 차별에 대응하는 우리들의 자세
8장 평등은 변화의 두려움을 딛고 온다.
2018년 장애인 시위가 시민들의 불편함을 야기한 것을 갖고 직접행동에 대해 상찬하고 있다. 법이 부당하다면 그 법의 부당함을 주장하기 위해 다소 대중의 불편함을 야기하는 것이 원래 시위의 본래 형태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작가는 시민불복종이라 하고 있다.
9장 모두를 위한 평등
사람들은 같은 것을 같게 취급하는 형식적 평등으로 세상이 평등해질 것이라 믿지만, 실질적 평등이 필요함을 주장하고 있다. 예를들어 블라인드 채용 법을 만드는 등을 말한다.
또한 화장실 문제도 언급하고 있는데, 남녀 뿐 아니라 다양한 성적 정체성이 있으니, 모두를 위한 화장실 또는 모든 젠더 화장실이 필요하다고도 주장한다.
10장 차별금지법에 대하여
한국 헌법은 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상징의 의미로라도 법제화된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차별금지법 지정에 대한 여러 문제점도 같이 언급하고 있다. 예를들어 차별을 누가 정의할 것인가, 법에 모든 차별을 명시할 수 있느냐 등이다.
또한 잠정적 우대조치에 대해서도 '적극적 조치'라고 '우대'가 아니라 주장하면서 주장하고 있다.
느낀점
사실 읽기가 두려웠던 책이다. 제목과 프롤로그만 봐도 전혀 동의할 수 없는 책이라 느꼈지만, 이런 종류의 책은 읽는건 쉬워도 반박하려면 이 책보다 몇 배는 두꺼운 지식을 갖고 있어야 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러 반박을 생각하고 메모해놨지만, 내가 이 책이 주장하는 근본적인 주장에 대해 반박할 지식이 있는지 의심이 된다.
어쨋든 아는 만큼은 반박을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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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 전반에 걸친 문제점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1) 차별 그 자체가 악이기 때문에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모든 수단은 정당화 되는가에 대한 문제가 있겠다. 차별을 반대하는것 자체가 선이기 때문에 차별 반대라는 외피를 걸치면 뭐든 옳다고 생각하는 언더도그마적 뉘앙스가 책 전반에 깔려있다.
2) 어떤 갈등이 발생했을 때 기본적으로 우리가 가져야하는 관점은 그것이 개인대 개인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대부분의 갈등을 집단 대 집단의 갈등으로 치환하고 있다. 예를들어 강남역 살인사건을 남녀 간의 집단 간 갈등으로 치환하고 있으며, 예멘 난민 반대도 예멘 난민과 남자, 여자의 집단으로 치환하고 있다.
작가는 우리가 너무 쉽게 카테고리화하고 편견을 갖게 됨을 지적하는데, 바로 모든 문제를 집단 구도로 바라보는 것이 카테고리화와 편견의 대표적 예가 아닌가 싶다.
강남역 살인사건에서의 여자 집단과 예멘 난민을 반대하는 여자 집단을 동일 집단으로 볼 수 있는가? 그런 조사를 했다는 내용은 이 책에 나와있지 않다. 서로 동일한 집단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여성'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있다고 해서 단순 비교를 하고 있는 것이다.
3) 이 책에서 작가는 자유를 얘기하지만, 그 방법은 모두 자유로운 언어를 차별의 이름으로 제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상 누구도 불편하지 않는 언어생활이란 가능할까? 작가는 책에서 예시로 단순하게 6가지의 카테고리 만으로도 인간을 수 천개의 범주로 구분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 그 수천개의 범주가 모두 불편하지 않는 언어생활이 과연 가능할까? 만약 우리가 우리의 의견을 표현함에 있어서 누군가 불편해 할 수 있다는 것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언어란 그저 '날씨가 좋지요? 밥이 맛있나요?'같은 언어일 뿐일것이다.
누군가를 모욕할 의도가 있다 하더라도 인간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바로 표현의 자유다. 모욕은 모욕대로 민사에 의해 해결되면 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4) 작가는 해결책으로 차별금지법을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단지 기표이자 상징일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니다. 법이 제정되면 그 법에 맞는 조항들이 만들어져야 하고, 법의 목적은 처벌에 있기에 집행됨으로써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다.
그리고 기표라는 말을 계속 쓰고 있는데, 우리가 궁금한 것은 기의의지 기표가 아니다.
5) 굳이 필요없는 부분에서 너무나 많이 외국인들을 인용하고 있다. 거의 한 페이지마다 외국인 인용이 들어가 있고 그래서 이 짧은 책에 각주가 한무더기 있다. 작가가 아는 것이 별로 없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책에 어설픈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외국인이 이렇게 말했으니까 내 말이 사실이야 라는 뉘앙스를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단순히 전문가의 권위에 깃댄 것 이상이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학자의 인용은 거의 대부분 외국인이었다. 외국인들을 잔뜩 데리고 온다는 점이 사대주의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6) 차별금지법이 법제화 되면 결국 누군가가 무엇이 차별인지에 대해 정해줘야 한다. 과연 누가 누구한테 이건 차별이라고 정의할 권능을 갖고 있을까? 또한 특정 말을 쓰면 처벌한다는 발상은 <1984>와 비슷해 보인다.
차별을 정의하는 사람은 결국 소수 집단화된 정치 세력이 될 것이 뻔하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사악함이 엿보이는 책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차별금지는 당연하니까 그정도 법은 있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근데 차별금지법은 무슨 동성애를 차별하지 맙시다! 같은 한가한 얘기를 하는 법이 아니다.
중고등학교 성교육 시간에 남녀간의 성관계가 아니라 남자간의 항문성교, 여성간에 기구를 사용하는 성교도 가르치라는게 바로 우리가 직면한 차별금지법의 현실이다. 동성애를 차별하지 않는다면서 교실에서 이성애만 가르치는건 차별아닌가? 그런데 과연 학부모들이 이렇게 될걸 예상하고 차별금지법을 지지했을까? 이처럼 차별금지법은 디테일 곳곳에 악마가 숨어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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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문제점은 이렇고 이제 페이지 별로 내가 느낀점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ebook의 문제점은 장서의 페이지가 표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본 이북 기준의 페이지로 표시한다. 참고로 내가 본 이북으론 총 335페이지의 책으로 되어있다.
1) p26-27, 92 여성임금통계 오류
여성 임금통계의 오류는 작가도 주장하다시피 성별의 차이에서 오는 임금 격차 아니라 직업의 차이에서 오는 임금 격차다. 어떤 회사가 신입으로 남녀를 뽑았을 때 여성이라는 이유로 임금을 67%만 준다면, 그런 회사를 보신적 있으신가?
신입사원들한테 한번 물어보라. 여자 동기와 내 임금이 약 33%의 차이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냐고.
남자들이 이공계, 화학에 관련된 일을 많이 하기 때문에 임금 격차가 남녀 문제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이공계 화학에 관련된 일을 하는 여자는 그렇지 않은 남자보다 돈을 33% 많이 번다.
다시 말하지만, 개인 대 개인의 문제지, 집단 대 집단의 문제가 아니다.
2) p43 장애인 버스문제
장애인이 버스를 타는게 어려운데, 자신의 제자가 장애인들이 타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장애인들은 돈을 더 내야 하는게 아니냐라고 했다는 말을 언급하면서, 이를 평등이 제로섬 게임이라 인식하는 사람이 많음의 증거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장애인들의 생각은 어떨까? 확실히 바쁜 시간대에 지하철이나 버스에 타는 장애인은 별로 없다. 그들에게 그런거 없이 다 평등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고 하면,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권리라 생각하면서 이용할 수 있을까?
도시는 고도로 발달해 있는, 속도가 중요한 장소다. 물론 그렇다고 장애인들을 배제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장애인들만 이용할 수 있는 수단들을 통해 우리는 어느정도 서로 타협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부분에서 작가가 차별 그 자체를 악으로 보기 때문에 모두 불로 정화해야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느낄 수 있었다.
3) p52 카테고리화의 문제.
작가는 x축에 성별, 나이, 직업, 종교, 성적지향, 출신국가, y축에 여성, 남성, 트랜스젠더 남성, 트랜스젠더 여성을 두고 4000개의 구분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몇 가지 조건을 더하면 아마 수만, 수백만 가지의 범주가 나올 수 있다. 사실 우리 모두가 다른 개인이기 때문에 디테일하게는 인구수 만큼의 범주가 있다고 해야한다.
문제는 그렇게 범주화 했을 때 그럼 서로가 불편해하지 않을 언어를 사용한다는것이 과연 가능하냐는 것이다. 또한 서로가 불편해하는 언어를 과연 우리가 정할수 있냐는 문제도 발생한다.
4) p76, 86 낙인이론
작가는 명문대 본캠과 지방캠의 예시를 들면서 낙인이론을 설명한다. 그런데 이런 예시는 세상을 정태적으로만 보는 터널 비전이란 생각이 든다.
경제학에 신호이론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누구나 선택받기 위해 유능하다는 신호를 퍼블릭에 주려 하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스펙을 만들고 어필한다는 것이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가고, 누군가는 못간다. 그러나 못간 사람에겐 기회가 없을까? 아니다. 대학에 가고나서 뒤늦게 여러가지 전문적인 스펙을 쌓으면서 자신이 노력했음을, 자신이 유능함을 자격증을 가지고 증명하는 것이다.
작가가 말한 낙인이론의 사례는 동시에 신호이론이기도 하다.
5) p94 구조적 차별
여성이 고임금을 주는 이공계, 화학 관련 직업에 상대적으로 적게 가는 것은, 어렸을 때 부터 여성은 수학을 잘 못한다는 구조적 차별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근데 그런 구조적 차별이 없으면 어떨까? 과연 여성은 더 많이 이공계, 화학 관련 직업으로 갈까?
아마 갈 것이다. 그리고 남녀 비율은 개선될 것이다. 근데 그렇다고 여성이 더 많아지거나 남성과 비슷한 숫자가 되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취향만 가지고 우리가 직업을 선택한다고 했을 때, 남자와 여자는 갖고있는 본성이 다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선호하는 직업에 차이가 생긴다.
그것이 스웨덴의 사례 아닌가? 남녀가 평등해질수록, 남녀간의 격차는 오히려 커진다.
우리가 고쳐야 하는 것은, 어떤 직업이든 선택에 있어서 차별을 없애는 것이지, 결과적으로 그 직업에서 나타나는 남녀 비율을 시정하는 것이 아니다.
6) p102 인종차별 코메디
코메디의 기능은, 사회적으로 부정적이고 터부시 되는 것을 웃음으로 승화시켜 그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갈등, 분노를 낮추는데 있다. 그리고 이는 작가도 명시하고 있다.
이건 생각의 차이라고 생각하는데...나는 누군가가 인종으로 개그를 할 때, 오히려 그 코메디언이야말로 진정으로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부정적 개념을 중립적으로 승화한다 함은, 그 개그를 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내가 인생을 살면서 깨달은 점이기도 한데, 도덕과 정의를 누구보다 주장하는 인간일수록 비도덕하고, 누구보다 인종차별에 분노하는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인종차별을 저지르는 것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에게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점을 누구보다 강하게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7) p127 공정한 차별
작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대우 차이를 예로들며 공정한 차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주장한다.
작가는 이 책에서 고대 그리스의 정의의 원칙을 인용없이 사용하는데, 즉 '같은 것은 같게'라는 말이다. 근데 이 말의 풀 텍스트는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이다. 이게 공정이라는 것이다.
근데 작가는 '다른 것은 다르게'를 모두 차별로 상정하고 있다.
8) p130 능력주의
기업이 채용할 때 토익을 요구하는 것이 청각장애인에 대해선 차별이 될 수있다고 주장한다. 난 이 생각은 한번도 안해봐서 확실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근데 이런 관점을 보면서 리비히의 법칙이 생각났다.
리비히의 법칙이란 식물이 자랄 때 어떤 영양소를 아무리 많이 줘도, 가장 적게 준 영양소가 식물의 성장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채용에 리스닝이 안되는 청각 장애인이 문제라면, 왜 그게 청각 장애인만일까?
예를들어 우리가 패럴림픽을 볼 때, 다 같은 장애인이라는 카테고리에 있지만, 두 다리가 있는 장애인과 다리가 없는 장애인은 다르다. 둘이 같은 종목에 진출한다면, 그것이 공정한가?
이런 관점에서 보면 결국 사회의 모든 기준은 가장 열등해 보이는 사람을 기준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다리가 두개 있는 장애인과 하나 있는 장애인과 둘 다 없는 장애인은 다 다르니, 결국 다리가 아예 없는 장애인을 기준으로 수렴하게 되는 것이다.
기업은 어떨까? 청각장애인보다 불리한 조건에 있는 장애인은 없는가? 그럼 그 모든 것을 상정하여 기업의 채용 조건을 정한다면, 그 기업이 과연 지속가능할까? 또한 누군가 가장 열등하다는 것은 누가 정할 것인가? 장애인 등급으로 정하면 되는가?
9) p143 교육차별
작가는 특별반과 일반반의 구분이 청소년에게 차별 의식을 낳고 열등감을 심어준다는 말을 인용하고 있다.
물론 교육 문제는 훨씬 깊어서 교육 문제를 언급하려는 것은 아니고,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의 상당부분이 다 '기분'에 관련되어있다는 것이다.
위축되고 소외감을 느끼며, 어린시절의 차별 경험 등...정책은 냉철한 국가 이성으로 결정되는 것이지 기분과 관련되면 위험해진다는 생각이다.
10) p146 노키즈존
앞부분은 흑인은 입장할 수 없는 인종차별 시절의 예시를 들고, 뒤엔 노키즈존을 말한다. 병렬로 놓을 수 없는 예시다.
11) p169 퀴어축제
공공장소에 입장할 수 있는 자격을 결정짓는게 곧 권력이라는 말을 하고있다. 이 책에서는 여러번 권력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즉 남성은 여성에 대한 우월한 입장에서 권력을 갖고 있고. 길거리에선 퀴어에 대해 다수가 이상한 눈초리를 보내는 권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공공장소에 입장할 자격이라는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생소함을 전부 권력으로 치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권력이라는 분석이 어느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의 분석인지는 모르겠으나, 궁금한게,
만약 길거리에서 손을 잡고 가는 게이를 봤을 때 내가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본다면 나는 무슨 권력을 갖고 있는 것일까? 무의식적으로 그들은 우리와 다르다는데서 오는 권력인가? 그럼 무의식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건 가능할까?
예를들어 '비토 꼴리오네가 누군가에 대해 참 버릇이 없다라고 말했는데 다음날 그 사람이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근데 비토 꼴리오네는 그 사람을 죽이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가정해보자. 위계질서가 있는 집단에서는 지도자가 무의식적으로 한 태도나 언사에 부하 직원들이 지레 짐작해서 과도한 충성으로 권력이 행사되는 경향이 있다.
그럼 내가 넌지시 게이들에 대해 눈초리를 보낸다면 그것이 무슨 권력이 될까?
내가 길거리에서 손잡고 가는 남자 두 명을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봤을 때, 그 남자 둘이 나한테 와서 시비를 걸면, 그때 권력은 어디에 있는가?
권력은 위계질서와 집단화에서 나오는 것이지, 아무런 커넥션이 없는 다수 대중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즉, 작가는 그럼 이성애자이면서 남자인 내 권력이 무엇인지를 먼저 증명해줘야 하는 것이다. 2030 남자들한테 아무런 권력이 없다는 것이 지금 젊은이들 사이에 번지고 있는 극단적인 남녀차별 문제의 핵심 아닌가.
12) p177 사적 성적 취향을 공개하는것에 대하여
쿼어축제 얘기를 하면서 누군가가 '왜 성적 취향을 공공에 공개를 하냐'고 질문하는 것은 참 어처구니 없다는 식으로 작가는 적고 있다. 즉 권력관계가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하위에 있는 사람이 공공에 드러내는 것은 그 반대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의미인 것이다.
첫째, 작가의 말이 맞다고 해도 퀴어축제랑은 별 관련이 없어보인다.
이미 퀴어축제는 그들의 내밀한 성도착증을 내보이는 장소로 변질되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그들이 퀴어가 맞든 아니든, 누군가 길거리에 속옷만 입고 돌아다니는 것을 안 볼 권리가 있다.
둘째, 누군가의 성적 취향은 사적 영역에 속한다. 이 말은 우리가 누군가에게 함부러 그것을 물어볼 권리가 없다는 것을 뜻하며, 동시에 그것을 강제로 보거나 듣지 않을 권리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퀴어축제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하면 된다. 근데 굳이 모두가 쉽게 접근 가능한 시청 일대에서 하는 이유가 뭘까? 이미 그들은 자신들을 인정해달라는 영역을 넘어선 행동들을 한다고 생각한다.
셋째, 퀴어 축제가 정당화된다면, 다른 성적 취향의 축제는 어떤가? 사디스트와 마조히스트가 축제를 하는 것이 긍정될 수 있는가? 잘 모르겠다.
13) p180 싫어할수 있는 권력
작가는 동성애에 대해 우리가 혐오를 표시하는 것 자체가 싫어할 수 있는 '권력'이라고 얘기한다. 즉 내가 오늘 친구랑 점심을 먹을 때 '난 그 음식은 별로야'라고 말한다면, 그 음식에 대한 권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우선 '나'라는 개인이 동성애자들 보다 어떤 우위의 권력을 갖고 있는지 증명해줘야 한다.
앞선 글에서도 언급한적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집단화되지 않은, 동성애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동성애를 극단적으로 싫어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은 다수가 아니라 소수일 뿐이다. 즉 동성애 문제에 대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충돌은 소수자 집단 대 소수자 집단이다.
이 둘 간의 권력관계를 분석하는 것은 의미가 있어보인다.
그러나 아무런 관심이 없는 다수 대중이 동성애자에 대해 싫어할 수 있는 우위의 권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려면, 그것을 먼저 증명해야 하는것이 아닐까?
14) p185 문재인의 말
문재인이 토론 장소에서 동성애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을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이 비판에는 동의한다. 왜냐하면 문재인은 그 당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 상태였고, 국가의 최고 권력자가 동성애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해버리면, 그것이 영향력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지만 이 문제는 복잡하다고 생각한다. 개인 문재인이 동성애를 싫어하는 것과 대통령 문재인이 동성애를 싫어하는 것은 다르기에 결국 결과가 말해준다는 생각이다.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동성애를 차별하는 정책을 방기하거나 조장한 적이 있는가? 내가 볼땐 없다.
동성애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동성애는 이미 존재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누군가가 지지하거나 지지하지 않는다고 그들의 존재가 부정되는 것도 아니고 정체성이 규정되는 것도 아니다. 지금은 동성애를 수용소에 잡아 넣는 나치 시절이 아니다.
15) p188 한국의 이민자, 현대판 노예제
한국의 이민자에 대해 그들의 지위가 고용주에 의해 노예처럼 다뤄진다고 말한다. 이민자가 체류 기간 외에 일을 더 하고 싶으면 고용주가 그 이민자가 필요하다고 신청을 해야 되기 때문이다. 난 고용허가제라는 제도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
작가는 한 사회 안에 서로 다른 권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집단을 얘기하면서 '사회적으로 죽은 사람들' 이라는 표현을 쓴다. 소외된 현대판 노예라는 것이다.
누군가가 자유롭지 못한 노예 상태에 있을 때, 그것을 용인하거나 그들과 공동체를 이루거나, 그들은 인정하는 사람은 작가의 관점에선 부정의한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나도 100% 동의한다.
그럼 작가는 중국 위구르, 북한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 부분을 언급하는 것은, 보통 이런 사람들의 분석은 이상하게도 중국, 북한에 전혀 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16) p209 시민불복종
작가는 전국장애인연합회의 지하철 시위를 예를 들면서, 소위 시민불복종이란 불특정 다수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취지로 얘기한다. 그들은 소외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의견을 표시할 길이 없다면 그런 방법이 저항권으로서 정당화된다는 뜻이다.
이 책은 2018년에 나왔는데, 최근에 전장연의 지하철 점거 시위가 있어서 논란이 되었기에, 같이 엮어서 이야기해보면 좋을것 같다.
직접행동은 간접민주주의의 결손을 메우기 위한 방향으로서는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나 직접행동은 결국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1인 1표의 원리를 넘어서는 것이기에 정당화에는 몇 가지 원칙들이 있다.
정말로 그들의 소통 채널이 존재하지 않았는가? 그들이 개선을 위해 납득할 만큼 노력을 했는가? 그럼에도 사회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는가? 등이다.
작가는 고약하게도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마틴 루터 킹 시절의 흑인 차별을 예로 들었는데, 전국 장애인 연합회의 시위와 흑인 차별 반대 시위가 정말 동등하게 비교될 수 있을까?
흑인 차별은 작가가 말한대로 국가 제도적, 법적으로 근거를 갖고 있었다. 법이 차별을 정당화 한 것이다. 이 경우 그들의 시위는 정당하다고 역사가 판단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 장애인을 차별해도 된다는 법이 단 한줄이라도 있을까? 장애인들의 권리가 개선되지 않고 있었을까?
전장연의 소통은 이미 정치권에 닿아 있었고, 그들이 주장하는 이동권은 계속 개선되어 왔다. 그런데 그들의 시위가 마치 흑인 인종차별 시위와 같은 정도의 지위와 정당성을 갖고 있는것 처럼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17) p227 모두의 화장실
성별은 여러개이기 때문에 화장실의 종류는 계속 늘어날 것이며 아무리 늘어다고 실제적으로 분화되는 성별을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에 차별이 존재하게 된다. 예를들어 A라는 성별을 위한 화장실을 만들었을 때 B라는 성별이 생기면 B는 차별하고 있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의 성별 화장실이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유럽이나 미국에선 '모든 젠더 화장실'이 이미 성공적인 것 처럼 말하고 있다.
근데 사실 이 부분은 잘 모르겠다. 남자와 여자의 의견이 다른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자야 별 관심없이 화장실을 쓰지만, 여성들은 여성이 아닌 다른 성별이 같이 화장실을 쓴다면, 결국 그 어떤 여성도 그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게 될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결국 평등을 위한답시고 여성을 차별하는 결과가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18) p 233 BLM
작가는 차별금지법 챕터에서 BLM을 예를 들어 black lives matter 의 안티 테제인 all lives matter 이 갖고 있는 보편성에 숨겨진 차별을 지적하고 있다.
즉 all lives matter 로 가면 실제적으로 차별을 겪고 있는 흑인에 대한 차별 문제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왠 생명 존중 운동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근데 black lives matter 이란 문구 자체도 문제가 많다.
다분히 정체성 정치의 영역에 있는 문제를 생명 존중 문제와 엮어서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생명을 경시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이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인종차별 때문에 벌어진 일인지 그 당시에는 아무런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냥 인종차별이라 가정하고 폭동이 일어났다.
그럼 그 폭동에 당연히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근데 그런 사람들은 모두 생명을 경시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all lives matter이란 구호가 나온 것이다. 자신들은 단지 미네아폴리스에서 벌어진 폭동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지 생명을 경시하는게 아니라는 뜻이다.
19) p 233 다르다의 의미
작가는 다르다라는 의미가 어떤 맥락에서는 주류집단에서 일탈된, 비정상을 상징하기도 한다고 주장하는데...잘 모르겠다 비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 p 245 차별금지법 제정
작가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어려움에 봉착해있음을 지적한다. 동시에 이미 헌법 등에 차별을 금지하고있지만, 기표이자 상징의 의미로 법을 제정하자고 한다.
사실 우리는 굳이 차별 금지법이 없어도 차별을 하면 안된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차별이 벌어지면 지금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처벌 받는다. 근데, 작가는 그걸 알면서 하나의 상징으로서 법을 제정하자고 한다.
법의 목적은 처벌이다. 일단 만들어지고 나면, 누군가를 처벌하기 위한 규정이 만들어져야 되고 그 법에 의해 판결이 나면 실제로 그 처벌이 이루어짐으로서 법적 정의는 실현된다.
그렇기 때문에 상징의 의미로 법을 만들자는 소리는 미친 소리다.
그리고 기표라는 말을 계속 쓰고 있는데, 사실 우리가 관심이 있는 것은 기의이지 기표가 아니다. 작가의 기의는 무엇인가?정말로 상징적 의미로만 받아들이려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 모두의 삶에 무엇이 차별인지를 일일이 선별해주는 최고의 권력을 가진 기득권 집단이 되고 싶은 것인가?
21) p 254 평등한 민주주의
작가가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방식이 드러나는 곳이다.
민주주의를 우리는 왜 하는가? 어떤 가치를 지키려고 우리는 민주주의를 하는 것일까? 작가는 평등한 민주주의를 바란다. 집단간의 합의가 아니라 인권과 정의를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라는 뜻이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이다.
나는 국가가 어떤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목표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오직 '자유'민주주의만 정당화 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국가권력과 개인의 자유 사이에서 부당한 침해가 일어나지 않기많을 바라지 이상적 국가 모델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평등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인권과 정의를 중심으로 이를 쌓으려면, 첫째 무엇이 평등한 상태인가를 정의해야 하고, 둘째, 결과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뱡향으로 가는 경향이 있으며, 셋째, 인권과 정의는 정치적으로 이미 오염된 언어이기 때문에 편향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2) p 256 적극적 조치
작가는 소위 잠정적 우대조치라고 번역되는 afirmative action을 적극적 조치라고 부르면서, 우대가 아닌데 우대라는 말을 붙여놨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드는 예시가 비례대표 여성 50%할당제 같은 것인데...
누군가에게 조치를 해줄 때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 피해를 본다면 그것을 특권이라고 부른다. 국회의원 비례대표는 국정을 수행함에 있어서 대중성은 부족하되 전문성이 있는 사람을 국정에 참여시키기 위한 제도다. 여기에 성별이 끼어들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국정에 가장 적합한 전문성이 요구될 뿐이다.
근데 그걸 여성은 무조건 50%라고 한다면, 주객이 전도되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잠정적 '우대'조치가 맞는 번역이다.
23) p 260 기업의 사회적 책임
작가는 요즘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존재로 이해된다고 주장하는데, 이건 그냥 작가 생각일 뿐이다. 그리고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투자를 많이하고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다. 몇 십억, 몇 백억을 사회에 환원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그 돈으로 투자를 하고 일자리를 만드는게 사회 효용을 늘리는 것이다.
사회에 대한 환원은 세금 걷어다가 정부가 해야될 일이다.
24) p 261 평등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작가는 계속 평등을 제로섬 게임으로 이해하면 안된다고 주장하는데, 내가 볼땐 실제로 제로섬 게임이 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혼동하여 말하면서 모든 평등을 정당화하고 있다.
제로섬 게임이 되는 평등은 결과적 평등이고, 서로 윈윈이 되는 평등은 기회의 평등이다.
예를들어 여성에게 투표권을 줘야 한다는 주장의 평등은 기회의 평등이다. 그러나 여성에게 비례대표 50%를 무조건 줘야된다는 것은 결과의 평등이다.
그 두개를 완전이 혼동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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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문제가 많은 책이다. 작가의 의견도 설익었다는 생각이 들고, 그것을 사대주의와 권위주의에 기대어 얼기설기 엮어놓고 있다. 어려운 말처럼 보이는 것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니 듣는 입장에선 '그래 그래'라고 할 법하지만, 디테일하게 들어가보면 대부분이 논쟁의 여지가 있으며 틀린 얘기도 많다.
인간은 매일 매순간 선택하며 산다. 선택의 다른 말은 차별이다.
차별 그 자체는 언제나 악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부당하게 '행사'될 때 우리는 그것을 나쁘다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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