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멋대로/경제

보이지 않는 손과 자유주의

어빈2 2021. 9. 19.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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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손'은 스코틀랜드의 계몽주의 도덕 철학자인 아담 스미스로 유례된 말로 흔히 시장에서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는가를 잘 설명하는 경제적인 개념으로 이해된다. 말의 뿌리는 이렇다.

 

세계 어느 곳이나 인간의 이기심과 이타심에 대한 논쟁은 있었다. 유교에선 신독이라는 말이 있다. 인간이 혼자 있어도 과연 도덕적일수 있냐는 것이다. 플라톤의 <국가>에는 자이제스의 반지 혹은 기게스의 반지라는 내용이 나온다. 반지의 제왕의 모티브가 되기도 이야기로 농부가 손에 끼면 투명해지는 반지를 얻게되고 반지를 이용해 결국 왕비까지 차지하는 내용이다. 플라톤은 몸이 안보이는 상황에서도 도덕적일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

 

이처럼 동서양을 가리지않고 과연 인간은 도덕적인가에 대해서 물어왔고, 보통 이는 '이기심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라는 명제로 논의되어 왔다.

 

기독교는 인간을 이기적이라고 봤다. 인간은 원죄를 가지고 있으며 구원받기 위해서는 신에게 회개해야 한다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그래서 도덕으로 이기심을 억제하게 만든다. 교회를 통해 끊임없이 이타적인 교육을 세뇌받았으며 이를 통해 이기심이 나쁘다는 생각을 뿌리깊게 갖었다.

 

그러나 아담 스미스는 인간이 이기적인 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보이지 않는 손'이란 개념이다.

 

인간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사익을 추구한다. 그리고 사익의 추구는 종종 갈등을 만든다. 그래서 아담스미스의 이기심은 개인주의의 안에서 정의된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같은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개인주의란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강조하는 사상이다. 개인은 자유를 추구할 무한한 자유가 있지만 이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할 자유를 포함하고 있지않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주의는 오히려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데에 뿌리가 있으며 이는 이타주의와 유사하다.

 

개인이 사익을 추구한다는 것이 종종 선을 넘으면 타인에게 피해를 있기 때문에 보통 이기심에 대한 이미지가 나쁜 것이다. 또한 우리가 살면서 버는 보다 고고하게 살으라는,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라는 말을 워낙 많이 듣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이기심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아담스미스는 다르게 봤다. 인간이 이기심에 따라 사익을 추구했으며 누구도 자신의 사익을 추구했을 익을 위하지 않았는데 그것이 지나고 보니 사회 전체의 공익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개인의 후생의 증진이 사회 전체 후생을 증진시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담스미스는 이를 '보이지 않는 손'이라 했고,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에 대해서 후대에선 (God) 간지라는 표현을 하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스미스로 부터 출발하는 자유주의, 현대에 와서는 70년대 대처와 레이건을 위시한 신자유주의로 불리는 사상은 인간의 사익 추구를 장려하고 근원으로 개인주의를 지향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충돌하는 사익에 대해선 국가가 최소한의 제도로서 작용하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것이다.

 

이런 인간에 대한 이해 속에서 '보이지 않는 손'은 실물 경제의 개념으로 확장될 있다.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 소비자의 경우 좋은 물건을 지불 있는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하게 되고 공급자는 수용할 있는 가장 금액을 요구한다. 차이를 좁혀가는 과정이 균형을 이루는 과정이고 각자가 이익을 추구한 행동이 결국 소비자 후생과 공급자 후생을 최대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이처럼 자유주의 사상은 인간에 대한 믿음과 긍정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는 경제뿐만 아니라 세계관 전체를 의미하며 세계를 어떻게 것인가를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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