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멋대로/사회

천주교의 역할이란

어빈2 2021. 8. 23.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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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시점 2016년 1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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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을 다닌지 8년 정도 됐다. 원래 절대자를 믿는 것에 회의적이었기 때문에 성당을 다니면서도 동네 공동체로서 장점 때문에 나간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은 그 때보단 신심이 생겼고 이는 음악의 힘이 컸다. 그러다 보니 종교의 의미가 커졌다.

 

그런데 어제 밤 신심을 부숴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종교를 진심으로 대했지만, 그 모습이 내가 바라는 모습은 아니더라도 내가 경계했던 모습은 아니길 바랬는데, 그 본 모습을 직면했을 때 받은 느낌은 분노 보다는 허탈감과 슬픔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천주교에선 11월을 위령성월이고 한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한 달이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속해있는 청년 성가대에서 특송 프로그램을 짰다. 그런데 새로 만든 악보의 표지가 세월호 리본이었다.

 

세월호 리본은 정치색을 띄고있다. 노란 손수건이나 노란 리본이 미장병들을 전쟁에서 돌아오라는 의미로 쓰였기 때문에 노란색 근조 리본이 됐다고 하지만 근조는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의 명복을 비는 것이지 다시 살아 돌아오라는 뜻이 아니다. 굳이 다시 살아 돌아오라는 말을 하고 싶으면 오히려 근조 리본이 쓰이면 안되는 것이다.

 

또한 전통적으로 검정색 바탕에 흰색이 근조의 색이다. 이는 만국 공통이기도 한데, 그만큼 장례에 쓰이는 색이 같다는 것은 검은색과 흰색이 주는 힘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게 봤을 때 노란색은 장례에 적합한 색이 아니다.

 

노란색에서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는 노무현이다. 실제로 노란색은 노무현 대통령을 대표하는 색이고 사회적으로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어서 노란색이 쉽게 정치적인 선동을 위해 사용될 가능성이 높은데,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노란색 리본이 온 나라에 퍼지면서 세월호에 정치적 의도가 포함된 채 사회에 스며들게 되었다.  

 

 

세월호 사건 당시 애도를 위해 각 포털 사이트는 로고를 바꿨다. 좌익을 스스로 선언한 다음과 정치색을 갖고있지 않은 네이버의 로고는 많이 다르다. 노란색 근조 리본이 정치성을 띄고 있기 때문에 각각 세월호를 애도하는 포털사이트의 로고에 노란 리본이 쓰이지 않은 것이다. 

특정 정치색을 갖고 있는 그림이 종교의 영역에서 일방적으로 사용된다면 그 정치색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폭력이다. 그러나 성가대만 보는 악보고 보편적으로 쓰이는 상징이기에 너무 민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같은 그림으로 성당에 포스터를 붙이고 주보의 속지로 넣는다는 것은 얘기가 다르다. 성당에 오는 모든 사람들이 보기 때문이다.

 

성당에 오는 신도들 중 단 한 명이라도 그것을 보고 불편해 한다면 애초에 위령들을 위로하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은 그 사람한테 있어서는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되어버린다. 또한 불편해하는 단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아무도 불편해하지 않는 다른 상징을 쓰면 되는 것을 굳이 세월호 리본을 써서 문제를 만들 필요는 없다.

 

그래서 이에 대한 얘기를 성가대에 했는데 말귀를 잘 못알아듣는것 같았다. 돌아온 대답은 '내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교회는 세상에 아픔에 공감해야된다, 세상을 떠난 이웃, 조상들을 함께 생각하고 기도하는데 있어서는 하느님 안에서 어떠한 조건도 어떠한 경계도 무의미하다' 였다.

 

맞는 말이지만 내 말은 아픔을 공감하지 말라는게 아니라 정치색을 빼라는 것이었다. 내가 불편한걸 떠나서 천주교가 특정 정치색을 지녔다는 것 처럼 보인다는게 탐탁지 않아서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 '택시 기사들은 운전을 험하게 한다'고 말하는 것은 특정 택시기사가 그런 것이지만 모든 택시기사가 그런 것 처럼 얘기 한다. 개개로 기억하기 어렵기 때문에 카테고리화하고 번들로 기억하는게 인간의 자연스러운 점인데, 그렇기 때문에 천주교를 믿는 사람은 천주교의 정치색에 동의하는 것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며, 천주교를 믿는 사람은 그저 그 종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비판 대상이 되고, 심지어 비판하는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갖음에도 불구하고 프레임씌워져 비난받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는 그 자체로 부정의하다.

 

이미 언론에 의해서 정의구현사제단을 필두로 천주교의 정치성을 지적받는 마당에 다른 방법이 있는데 그 의심을 굳이 추가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근데 아무도 그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는것 같아서 마음이 안좋았는데 보좌신부의 강론이 결정타를 날렸다.

 

21:5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21:6 “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21:7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21:8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 내가 그리스도다.’, 또 ‘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21:9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21:10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21:11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21:12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앞서,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21:13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21:14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21:15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21:16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21:17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21: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21:19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카톨릭 성경 루카복음 21장 5~19절

 

내용인 즉 언젠가 아름다운 돌과 예물로 꾸민 성전이 허물어 질 날이 오는데, 그 날이 오면 혹세무민과 전쟁과 반란의 혼락 속에서도 정신차리라는 뜻이다.

 

이 복음을 통해서 신부가 한 강론의 골자는 이러하다.

 

'신부와 수녀는 원칙적으로 정의구현사제단같이 정치활동을 하면 안된다. 그러나 원래 그런 일은 평신도들이 해야 할 일 이지만 평신도들이 하지 않아서 사제들이 직접 나서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의구현사제단을 욕하지 말아라. 또한 평신 도들은 정의를 위해서 시위도 나가고 해야된다.

 

그리고 이 발언의 근거를 천주교 사목헌장 76에서 찾는다. 

(중략)
참으로 지상의 사물과 또 인간 조건에서 현세를 초월하는 것들은 서로 긴밀히 결합되어 있다. 그리고 바로 교회는 그 고유의 사명이 요구하는 범위 안에서 현세 사물을 활용한다.

그러나 교회는 국가 권력이 부여하는 특권을 바라지 않는다. 더 나아가서, 어떤 정당한 기득권의 사용이교회 증언의 진실성을 의심받게 한다든지 새로운 생활 조건이 다른 규범을 요구하게될 때에는 정당한 기득권의 행사도 포기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언제나 어디에서나 참된 자유를 가지고 신앙을 선포하고, 사회에 관한 교리를 가르치며, 사람들 가운데에서 자기 임무를 자유로이 수행하고, 인간의 기본권과 영혼들의 구원이 요구할 때에는 정치 질서에 관한 일에 대하여도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정당하다.

이때에 교회는 오로지 복음에 일치 하고 다양한 시대와 환경에 따라 모든 사람의 행복에 부합하는 모든 방법을 사용한다.

바티칸공의회문헌 <사목헌장> 76. 정치 공동체와 교회

 

세월호 사고는 해상 교통사고지만, 어떤 사람들에 의해 즉각 정치화 되었고 지금도 세월호 7시간이니 뭐니 하면서 세월호 가지고 난리부리는 사람들이 많다. 아직도 진실이 안밝혀졌다나...즉, 세월호가 이 정도로 정치색을 띔에도 불구하고 그 표피에 도덕을 입었기 때문에 이를 명분으로 떠드는 것은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정의로운 행동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신부의 말을 보자면, 노란 근조 리본을 성당에 붙이는 것은 괜찮다라는 뜻이고 이는 종교 본연의 역할을 완전히 부정한 것이 된다.

 

물론 그 신부가 그런 것이지 천주교가 그런건 아니다라고 할 수 있지만 천주교는 교파가 하나밖에 없다. 게다가 성당은 한 지역에 하나만 지어진다. 즉, 적어도 한 지역에 사는 천주교를 믿는 사람한테는 그 성당의 신부가 천주교의 공식 대리인이자 대표다.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갖고 이것이 천주교 전체의 생각은 아니겠지 하고 신부한테 내 생각을 물어봤는데 교황이 한 말을 인용한 것이고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천주교에서 절대성의 근원이 교황인지 하느님인지 순간 헷갈렸다.

 

종교의 역할은 무엇일까?

 

성완종의 자살에서 가장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 중 하나는 진경이란 중이 성완종을 데라고 점치러 갔다는 것이었다. 조계종 총무원장까지 지냈다는 승려가 교도를 데리고 점을 치러 갔다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성완종이 점 친 후 몇달 뒤 자살했다는 소식을 통해 성완종이 그 당시 느꼈떤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불교는 그 사람의 마음에 평안을 주고 석가의 말씀으로 과열된 상황을 냉철한 판단이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 역할 아닐까?

 

모든 종교가 그렇다. 광화문 광장에서 시위하는 것은 일종의 저항권으로 긍정될 수 있다. 그럼 거기서 천주교의 역할은 불안한 시국에 평안을 주고 평화를 바라며 진정시켜주는 큰 스승같은 역할이 되어야 한다.

 

나서서 시위하러 나가라고 할거면 도대체 종교는 정치랑 왜 분리되어있는 것이며, 성직자와 정치인은 무엇이 다를까?

 

또 다른 문제는 천주교가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 항상 옳은 판단을 했냐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척 한다고 해서, 자신의 몸뚱아리 위에 성직자의 옷을 걸쳤다고 해서, 그들의 행동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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