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멋대로/사회

북한의 토지개혁과 농민공 문제

어빈2 2021. 7. 23.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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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교 근현대사 시간에 우리는 북한의 토지개혁과 남한의 농지개혁에 대한 하나의 문장을 접한다.

북한은 무상 몰수, 무상 분배를 하였고 남한은 유상 몰수, 유상 분배를 하였다.


그럼 사람들은 '북한은 가난한 민중들을 위해 못된 지주들의 토지를 뺏어 공짜로 베푼 반면 남한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 받고 팔아서 지주의 이윤을 보장해 줬구나.' 라고 생각하게 된다. 결국 김일성의 토지 개혁은 잘 된 것이고 이승만의 토지 개혁은 잘못이라 생각하게 되는 대한민국 부정 역사관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남한은 농지개혁을 못 했고 북한이 잘했을까?

북한의 토지개혁에 대한 교과서의 서술은 대체로 이러하다.

광복 당시 대다수 농민들은 농사 짓는 사람이 땅을 소유하는 경자유전의 원칙이 실현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에 1946년 3월 북한은 무상몰수 무상분배 방식으로 토지개혁을 단행하였다.
(중략)
이에 자극받은 농민들은 토지개혁을 요구하였다. 미군정도 더이상 토지개혁 요구를 외면 할 수 없게 되었다. 마침내 1949년 제헌 국회는 경자유전을 원칙으로 하는 농지개혁법을 공표하였다. 농지개혁 방식은 북한과 달리 유상몰수 유상분배였다. 그러나 농지개혁을 하기 전에 적지않은 지주들 이 땅을 팔았고 농민들은 토지대금을 제때 갚지 못해 땅을 다시 팔기도 했다.

- 두산동아 근현대사 중

이 기술만 보면 남한은 북한보다 뒤늦게, 어쩔 수 없이 한것 처럼 되있고 그마저도 부작용이 심한것 처럼 되어있다.

반면 교육부의 자료를 보면 경작권만 주어졌고 저당, 소작, 거래는 금지되었기 때문에 무상분배가 아니라는 비교적 맞는 기술을 하고 있다.

그런데 교육부의 자료도 비교적 진실에 가까울 뿐 정확하지 않다.

어떤 권리라고 하는 것은 포기, 양도 혹은 계약에 따라선 대체도 가능한 것을 뜻한다. 즉 상호 계약에 명시된 것 만큼 권한을 갖는다는 것으로 자유권의 범주 하에서만 권리는 성립한다.

그러나 북한의 토지 개혁을 통한 경작권이 상호간 계약의 결과일까?


북한 주민들은 거주이전의 자유가 제한되있어 공동소유의 땅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경작권의 포기가 불가능했는데, 즉 농사에 대한 권리라 함은 농사를 안짓는 것도 포함되어야 함에도 농사를 지어야하는 의무만 있는 것이다.

또한 국가에 25%의 소출을 냄으로써 지주가 국가로 변경된 국가소작제였는데, 일종의 현대판 농노제인 것이다.


토지를 분배하였다는 말은 소유권의 온전한 이전을 뜻하는 것인데 거래, 소작, 저당이 불가능하고 오로지 자신이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점에서 분배란 말도 틀린말이다.

결국 무상몰수 무상분배라는 교과서 서술은 틀렸다.

반면 남한은 유상몰수 유상분배의 방식을 통해 95.7%의 소작농이 자작농으로 전환됐다. 국가에서 토지 1년 소출의 150%에 해당되는 금액으로 토지를 사들였고 농민들에게 5년분할 상환 방식으로 유상 분배함으로써 온전히 소유권을 이전했다. 원래 지주들은 소출의 300%를 주장하였지만 정치권에서의 양보와 타협의 결과로 150%에 해당되는 지가증권을 발행하여 주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발발 후 지가증권의 급락 때문에 증권 가치가 20%대로 떨어져 결국 지주들은 원래 받아야되는 지가의 33%만 받게 된다.


물론 토지의 소유권 이전 과정에서 5년 분할 1년 소출의 33퍼센트를 갚지 못 한 농민들 중 땅을 되파는 사람도 생겼을 수 있고 농지개혁 전에 땅을 파는 지주들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이런 방법이 그럼 사유재산권을 보호하는 방향이냐? 라고 본다면 그렇진 않다. 남한의 토지개혁은 미국 국무부의 주도로 진행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어쨋든 남한의 농지개혁은 북한의 무상몰수-무상분배에 비해 비교적 나았다는 것이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성공을 뜻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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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토지개혁이 와닿지 않는다면 현재 중국을 보면 된다. 중국의 경제시스템과 정치시스템이 부딛히는 가장 대표적 인 문제는 농민공 문제다.

농민공이란 농민이지만 공장 노동을 하는 사람을 뜻하는데, 이게 무슨 말이냐면 중국도 북한 처럼 농민들의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하고 토지에 농민들을 묶어놓는 정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시장경제시스템을 도입하면서 도시에 노동자가 필요하게 되었고 돈을 벌기 위해 농민들이 도시로 몰리게 된다.


그러나 농민들은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도시에 주민등록 이전이 되지 않아 도시복지의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하게 된다. 심지어 출산 후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는 것도 주민등록이 되지 않기 때문에 주민등록이 있는 고향의 유치원에 보내야 되는 상황이라 한다.

우리나라는 좁으니 고향이 가깝지만 중국은 하루만에 못 가는 경우도 수두룩 하다. 결국 농민공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는데 농민공의 숫자가 2억명이 넘어가면서 국가적인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2013년 3차 중앙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공동소유였던 토지를 소유한 농민 수만큼 1/n로 하여 분배하고 거래, 소작, 저당이 가능하도록 하여 농민공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원래 공동소유였고 도시로 떠난 농민의 땅을 기존의 농민들이 공동소유의 이름하에 수년, 수십년간 경작하고 있었는데 이제와서 그런식으로 존재하지도 않았던 소유권을 분배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농민들의 반발이 생기면서 농민공 문제는 아직도 난항 중이다.

교과서에 북한의 토지개혁이 우리보다 나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중국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는지를 직시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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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지식의 독점은 독재정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독재로 가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자신들만이 진리기 때문에 다른 의견들은 진리에 반하다는 생각을 갖고있어서다. 오직 자신이 진리를 알고 있는데, 감히 자기를 비판하면 그것은 진리를 거부하는 불의이자 적폐가 되는 것이다.

이런 형태의 역사 법칙주의는 역사의 흐름을 예측 가능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자기만의 유일한 진리만을 주장하고 그 어떤 비판도 거부하기 때문에 합리적일 수 없다. 또한 절대적 진리는 존재할 수 있으되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과학적 비판을 견뎌낸 것을 현재 상태에서의 진리로 받아들이는데 역사법칙주의는 비판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진리에 가깝지도 않다.

교과서는 현재 다양성이 아닌 거짓말로 가득차 있다. 그리고 서로 어떤 의견도 받아들이지 않고 낙인찍기에 바쁘다. 바로 비판을 거부하는, 자신만이 진리라 생각하는 현상과 동일하다.

그러나 역사는 항상 모순을 갖고 있으며 부끄러운 역사도 우리 역사고 그것을 제대로 직시 했을 때 우리는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특히 남북이 갈라지던 시기 일제시대를 미국이라는 강대국을 통해 벗어났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미국을 제국이라 비난하고 북한에 정통성이 있다고 말한다.

북한의 정통성은 정확히 일제 이전 조선 후기로 돌아갔다는 점에서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정통성이란 명분하에 전근대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과 문명에 대한 모욕이다. 그랬던 역사를 부끄럽다하여 면책하기 위해 거짓을 지어내고 현실을 부정함으로써 기억이 자신을 속이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역사문제의 본질이다. 그런 유아적인 세계관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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