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멋대로/사회

실현 가능한 영구평화란

어빈2 2021. 7. 23.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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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시점 2016년 1월 2일

 

'국가권력아래 있는 수단 가운데 가장 신뢰 할 만한 것은 돈의 힘이다.'

 

-임마누엘 칸트 <영구평화론>-

 

인문학 열풍이 거세다. 서점 베스트셀러에는 인문학 책이 항상 있고 문사철이란 단어도 인문학의 중요성이 대중화된 케이스라 볼 수 있다. 물론 인문학보단 기술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인문학이 사고력, 창의성을 향상시켜 업무에 도움이 된다는 말에 어느정도 동의하기 때문에 인문학의 필요성에도 동의한다.

 

그런데 문제는 좌익 사상이 마치 인문학 교본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비난했던 직접민주주의를 옹호하면서 '배부른 돼지가 되느니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어라' 를 인용하는 사람을 보면 참 안타까운일이다. 이런 사람들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의 형이상학적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하게(내가 보기엔 본인들도 알아듣지 못함)떠들고선 결국 이를 이용하여 자본주의를 공격하는게 인문학의 정도인것 처럼 생각한다. 

 

반면 시장경제를 긍정한 철학자들은 철저하게 무시하는데, 바스티아, 레이몽 아롱 같은 사람들은 그냥 무시하고, 무시할 수 없는 업적을 가진 칸트 같은 사람들은, <순수이성비판>같은 어려운 책들만을 떠들고 정작 칸트가 옹호했던 상업주의에 대해선 일언반구 말이 없다.

 

<영구평화론>은 1795년 71세의 칸트가 내놓은 책으로 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연맹(UN)의 설립에 철학적, 이론적 기초가 된 위대한 저작이다. <영구평화론>에는 국가가 영구평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쓰여있다.

 

1장 예비조항은 불화의 조건이 될 수있는 밀약이 없어야 한다, 상비군이 없어야 된다, 국가간의 강제적 통합은 허용될 수없다는 조건을 말한다.

 

2장 영구 평화를 위한 확정 조항에서는 공화제, 자유국가들 간의 국제법, 세계 시민권리 보장을 말한다. 그러나 이 평화가 쉽게 이루어 질 수 없다는 씁쓸한 뉘앙스가 느껴지는데, 그럼에도 칸트는 상업주의만이 영구적인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천명한다. 전쟁이 아닌 방법으로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상업주의, 자유시장경제를 통해 국제 통상으로 얻는 이익이 전쟁을 함으로써 잃는 비용을 초과하게 만듦으로써 전쟁을 할 동기를 없앤다는 것이다.

 

지금 지구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기다. 과거 비민주적이고 인권이 전혀 보호되지 않았을 때 평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노예의 평화가 평화가 아닌 이유는, 평화는 자유인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상은 모든 국가를 상업으로 복잡하게 얽히도록 만들었으며, 때문에 민주국가 사이에는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칸트의 말 대로 되어가는 것이다. 통상은 약탈을 거래로 치환했으며, 우리가 더 이상 인종과 종교, 성별을 따지지 않게 만들었다. 제품의 질과 가격이 좋은것이 중요하지 그것을 누가 만들었냐를 더 이상 쳐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칸트는 현대를 바라보며 보기 좋다고 생각할까? 아직 부족해보인다, 아니 평생 부족할 수도 있다.

 

현대의 정치는 국민들을 극단적으로 양분하고 있다. 한국만 봐도 도저히 한 국가의 국민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갖고있는 아비투스가 분열되어있다. 대체적으로 지엽적이고, 포퓰리즘적이며, 감성적인 행태들인데, 이는 대부분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을 구별하는 능력의 부재에서 오는것으로 보인다. 즉, 보이지 않는, 상업주의가 가지고 오는 영구적 평화는, 이를 분별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다수를 이루는 지금, 마치 절벽 위를 걷는것 처럼 위험한 상태에서 겨우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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