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멋대로/사회

아기가 타고 있다고?

어빈2 2021. 7. 2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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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하다 보면 이런 스티커를 참 많이 보게 된다. 2016년 즘 부터 유행하기 시작해서 지금도 없어지지 않았는데, 애가 차에 타고있다는 뜻이다.

 

유례는, 미국에서 교통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차량 아래에 아기가 있는걸 발견하지 못한 일이 있어서라고 한다. 

 

근데 과연 이게 실효성이 있을까? 오히려 역겨움이 느껴지는건 나만 그런걸까.

 

교통사고로 죽을 확률을 낮추는 가장 확실하고 컨트롤 할 수 있는 방법은 본인이 안전운전 하는 것이다. 다른 차가 들이 박는건 내가 컨트롤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상정하는 것은 합리적인 사고가 아니다. 내가 컨트롤 가능한 것은 내 운전 습관 뿐이다. 속도를 지키고, 신호를 제대로 주며, 뒷 차가 충분히 반응할 수 있도록 서서히 운전하는게 교통사고로 안죽는 지름길이다.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요즘엔 초보운전 스티커도 무슨 문장으로 붙이는 경우가 있는데, 참 마음에 안든다. 초보운전은 뒷 차들이 봐야할 아주 중요한 신호이고 한눈에 알 수 있게 가독성이 가장 중요하다. 재밌으라고 붙이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근데 아이가 타고있다는 스티커는 왜 시종일관 붙이고 다닐까? 맨날 아이가 타고 있는것도 아니고 그럼 아이가 없을땐 떼고 타는 걸까? 아이가 안타고 있을 때 사고가 나서 소방대가 없는 아이를 찾고 있으면 그것만큼 비효율은 또 어딨을까? 몇 번 속은 소방대원들이 나중엔 아이가 실제로 있음에도 아이를 안찾으면 어떻게 될까? 이건 보험사기와 같은 논리인데, 자신의 행동이 모든 운전자들과 소방대에게 잘못된 신호를 주어 모두가 피해를 입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저 스티커가 과연 실용성이 있냐는 것이다. 스티커를 뒷 유리에 붙여놨다는 것은 뒤 운전자보고 보라는 의도다. 근데 자동차 사고는 앞에서 박거나 뒤에서 박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사고가 크게 나서 부모가 모두 의식을 잃고 아이가 어딨는지를 찾아야 할 정도라면, 앞유리와 뒷유리가 제대로 붙어 있을지 의문이다. 

 

결국 정작 그 메세지를 가장 급하게 봐야 할 구급대원이 볼 수 없게 만들어 놓고 딸랑 뒤 운전자만 보라는 식의 그 행동이 진정으로 아기를 구해야겠다는 의도일까? 아니면 그저 유행에 편승해서 나도 깨어있는 착한 부모라는 역겨운 관종 행동일까? 후자에 가까워 보인다. 진짜 그 메세지를 붙이고 싶으면 문짝 4개에 스티커를 붙여놓으면 된다. 근데 아직까지 단 한번도 그런 사람을 보질 못했다. 

 

차 뒷유리에 스티커를 붙이는 경우는 세 가지다. 그리고 어떤 경우라도 뒷 유리에 붙이는 행위는 자기가 보려고 붙이는게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가 봐줬으면 하는 의도가 깔려있다. 

 

첫 째는 소속감을 뜻하기 위한 스티커다. 동호회 스티커가 이에 해당한다.

 

두번째는 꾸미는 용도이다. 네셔널 지오그래픽같은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사람들이 이에 해당한다. 

 

세번째는 뒷 운전자에게 신호를 주기 위한 스티커다. 여기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초보운전이나 운전연수같이 사고를 피하고 교통법규를 지키기 위한 미덕의 스티커가 있다. 

 

다른 하나는 역겨운 깨시민 코스프레가 있다. 세월호 리본같은 것이 이에 해당한다. 애도와 슬픔은 사적 영역임에도 뒷사람들도 자신의 죄책감에 동참하라는 스티커인데, 정작 자기가 볼 거였으면 앞유리에 붙이면 될 것을, 굳이 뒤에 붙여서 나 깨시민이라고 아주 광고하고 다니는 것이다. 웃긴건 뒷 유리는 자기가 보질 못하니까 정작 자신의 애도와는 실제로 상관도 없다. 

 

상징의 사용은 항상 신중해야 한다. 상징의 문맥을 읽지 못하고 그것을 디자인 요소라고만 생각하여 사용한다면 사람이 천박해진다. 아이가 타고있어요도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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