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멋대로/사회

영화 <대호>가 개봉한다는데...

어빈2 2021. 7. 22.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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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일자 2015년 1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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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이미지는 30대 이상만 기억할 수 있는 이미지로, 비디오를 볼 때 항상 앞에 나왔던 장면이다. 저 장면에서 나레이션은,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의 어린이들은 무분별한 불량/불법 비디오를 시청함으로써, 비행 청소년이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라고 한다. 참 재미있는, 추억 돋는 장면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메세지중 하나는 옛날 어린이들한테 가장 무서운 재앙 중 하나가 '호환'이라는 것이다. 호환은 호랑이한테 잡아먹히는 것을 뜻하는데, 옛날에는 이런일이 참 많아서 이와 관련된 단어도 굉장히 많다.

창귀(倀鬼)는 호환을 당한 혼령으로, 타인들을 호환으로 이끈다는 귀신을 뜻하고, 호식장은 호환 후 남은 유구들을 거두어 장사를 하는 의례를 뜻한다. 호식총은 호환 당한 이의 남은 유구들을 거두어 태운 후 돌로 쌓아 만든 것을 뜻한다. 물론 이 단어들은 상당히 주술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2015년 12월 최민식 주연의 <대호>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포스터만 보면 1996년 영화 <고스트 앤 다크니스>가 생각난다. 이 영화는 발킬머와 마이클 더글라스 주연의 영화로, 식인 사자를 사냥하는 두 명의 사냥꾼 이야기를 다룬다. 인간에 버금가는 지능을 가진 사자로 인해 인명피해가 끊이질 않자 최고의 사냥꾼이 사자를 사냥하는 이야기인데, 지금봐도 참 재밌다.

근데 찾아보니 그런 재밌는 스릴러는 전혀 아니고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인 '산군'을 일제로부터 지키는 내용이라고 한다.

영화의 주연인 최민식은 인터뷰에서 이런말을 했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 그 자연을 빼앗겼을때의 고통을...


조선의 얼인 지리산 호랑이, 산군이라고 부르며 숭상했던 호랑이를 일제가 들어와서 사냥하려는 것을 저렇게 표현한 것이다. 정말 경악을 금치 못할 설정이다. 호랑이는 신성한 조선의 얼인데 그걸 잔혹한 일제가 사냥함으로써 자연과 더불어 사는 조선을 괴롭히는 것이라고 해석될텐데, 그렇다면 관람객들은 필시 '일제가 조선의 얼을 저런식으로 공격했구나' 하면서 안 그래도 점점 심해지는 반일감정을 고조시킴이 너무나도 뻔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호랑이에 자주 비유되는데, 한반도의 모양을 호랑이로 묘사하고 역사, 속담, 민담까지 한국 인의 역사와 함께한 동물이기 때문이라 그렇다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호랑이가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멸종하여 동물원에서만 볼 수 있고 갇혀있는 모습은 전혀 위험한 이미지가 아니기 때문에 일종의 평화로운 환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위에 언급했듯이 '호환'은 정말로 심각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중국 고사중에 가정맹어호가 있다. <예기>에 나오는 가정맹어호야에서 유래된 말로 어떤 여성이 세 무덤 앞에서 구슬피 울고있는 모습을 보고 공자가 왜우냐고 묻자 시아버지, 남편, 아들 세명의 무덤으로 셋다 범에게 잡아먹혀서 울고 있다한다. 그래서 공자가 왜 다른곳에서 살지 않고 여기 사냐 묻자 다른 곳은 가혹한 정치, 즉 높은 세금 때문에 살기힘들어 여기가 차라리 더낫다고 대답한다. 그래서 높은 세금이 호랑이한테 잡아먹히는 것보다 무섭다라는 고사가 나온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호랑이가 사랑스러운 티거가 아니라 사람을 잡아먹는 재해라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호환이라고 하여 호랑이로 인한 피해 684건이 기록되 있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기 때문에 호랑이가 많았고 지금 멧돼지가 출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주 호랑이가 출몰하여 사람과 가축을 잡아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국가적으로 호벌대를 조직하고 착호갑사라는 호랑이 전문 사냥꾼을 양성하여 호랑이 사냥을 할 정도였다.

아래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들이다.

태종실록 1405년 호랑이가 한양의 근정전의 뜰로 들어왔다

명종9년 1544년 양주, 양근 지방에 호랑이가 다니며 해친 사람이 서른명이 넘는다

선조 4년 1571년 경기에 호랑이에 의한 피해가 많아 군사른 일으켜 사냥하게 하였다

선조 36년 1603년에 창덕궁 소나무 숲에서 호랑이가 사람을 물었다

인조 16년 1638년 의주에 호랑이가 떼를 지어 넘어와 사람과 가축을 해쳤다

효종 8년 1657년 춘천 횡성 홍천 원주 등 고을에 사나운 호랑이가 횡행하여 민간에 출몰하면서 우마와 사람을 잡아먹었다

숙종 30년 1704년 춘천에서 흉악한 호랑이가 몇달 사이에 25명을 잡아먹었다

영조 11년 1735년 이때 8도에 모두 호환이 있었는데 가장심한 영동지방은 호랑이에게 물려죽은 자가 40이 넘었다

영조 27년 1751년 호랑이가 경복궁에 들어왔다

정조1년 1777년 호랑이가 궁궐 담장 밖 군보의 병졸을 물어갔다


심지어 20세기 들어서도 호환 기록들이 남아있다.

  동아일보 1924년 6월 24일 경기양주군에서 호랑이가 가축을 많이 물어가다

동아일보 1927년 9월 9일 경남 진주에서 호환이 나자 경찰에게 의뢰하였다

동아일보 1936년 6월 5일 묘령의 임산부가 평남 대동군의 산골짝에서 톱으로 베인 듯 두 다리만 남고 몸통이 없어진 사건이 났다  


이처럼 호환은 국가적인 재난이었고 그 피해가 20세기 초까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호랑이가 일제시대를 거치며 사라지게 되는데 그 이유는 일제의 해수구제 정책 때문이었다.

조선총독부 자료에 따르면, 1917~1918년을 제외한 1915~24년까지 8년 동안 연평균 13.8명이 호랑이나 표범의 공격으로 사망하거나 부상당했고 때문에 1917년 11월에는 일본에서 ‘정호군’이라는 대규모 민간 호랑이사냥대가 도착해 함경도, 금강산, 전남 일대에서 호랑이를 토벌 했다.

아마 대호 영화속 일본군은 실제로는 이들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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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토테미즘은 반댓말이다.

배를 타고 나가 물고기를 잡는 어부들은 더 먼곳으로 안전하게 가기 위해 보다 튼튼한 배를 구하고자 배를 더 잘만드는 사람의 배에 보다 높은 가격을 쳐주고 그 사람들이 경쟁에서 이기게 됨으로써 더 좋은 방향으로 문명은 발전한다. 즉 바다에서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원초적인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을 문명이라고 한다.

호환도 없애는 것이 문명의 발전이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호랑이를 산군이라고 불렀던 것은 그것이 우리의 힘으로 통제하기 힘든 압도적인 위협이었기 때문이고 그 반발작용으로 오히려 숭상하고 신격화하는 경향이 나타나는데 그것의 대상이 호랑이라는 동물이어서 산군이라는 토테미즘으로 나타난 것이다.

태양숭배, 곰숭배, 자연숭배 등 표현하는 언어만 다르지 똑같은 논리구조다 통제할 수 없는 자연에 대한 공포가 그 본질이다.

그렇다면 실재적인 위협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기술로써 해결하지 못해 '산군'이라고 부르는 것이 조선의 얼을 지키는 것이라면 그것이 지킬 가치가 있는 것이며, 과연 그것을 지키는 것이 조선사람 대다수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일까?

내 가족과 이웃이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것이 자연의 일부로 자연과 더불어 산다고 표현하는 것은 인간이 호랑이의 먹이사슬 중 하위에 있는게 당연하다는 뜻인가? 그걸 또 가져와서 일제가 억압하고 착취했다고 표현하는건가?

일제시대가 좋다는게 아니라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를 똑바로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의 무능함을 직시하고 교훈을 얻기보다는,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우리는 순결했다고 주장하거나, 심지어 그 순결함을 대호와 같은 소재를 가지고 왜곡하여 일제가 총칼을 들고 강제로 뺏은것 처럼 자위하는것이 얼마나 비열하고 졸렬한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채호가 말했다고 알려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우리에게 한 말이라는 것을 잊지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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