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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시민의 불복종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어빈2 2021. 8. 13.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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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헨리 데이빗 소로

평점 8

 

개요

이 책은 자유주의자 헨리 데이빗 소로의 짧은 팜플렛으로, 모든 형태의 집단주의를 거부하고 오로지 개인으로 존재하고 싶어하는 소로의 진실함이 느껴지는 저작이다.

 

1849년 발간될 당시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 러시아의 레프 톨스토이가 이 책을 재조명하면서 유명해졌다.

 

간디는 "나는 소로에게서 한 분의 위대한 스승을 발견했으며 <시민의 불복종>에서 내가 추진하는 운동의 이름을 땄다."고 말했는데, 이는 간디의 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뜻한다.

 

소로가 <월든>같은 책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미지인 '문명을 거부한 환경을 사랑한 사람'과는 다르게 이 책엔 자유주의자로서의 소로의 모습이 담겨있다.

 

이 책엔 번역가가 영어 제목을 <Civil disobedience>라고 적고 있으나 동시에 원래 제목이 <Resistance to civil govermen>임도 밝히고 있다. 두 제목은 엄연히 다른데, 원래 제목은 바로 민주주의 정부에 대한 저항을 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골자는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다수의 지배를 한 명의 개인으로써 거부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내용과 느낀점

나는 '가장 좋은 정부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라는 표어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며 그것이 하루빨리 조직적으로 실현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p 17

 

첫 문장이 상당히 유명한데, 소로의 생각이 직설적으로 드러나있다. 바로 작은 정부가 좋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뒷 부분에 나오지만 정부가 다수의 이름으로 개인을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이 자신의 뜻을 실행하기 위해 선택한 하나의 방식에 지나지 않지만, 국민이 그것을 통해 행동을 하 기도 전에 정부 자체가 남용되거나 악용되기 쉬운 것이다.
p18

 

정부는 각 시민들이 자신의 최소한의 자유를 희생하여 만든 계약임에도 오히려 국가가 주체적인 힘을 가지고 독재자 또는 대중독재를 외치는 자들이 국민들을 남용하고 부품화한다는 뜻이다. 

권력이 일단 국민의 손에 들어왔을 때 다수의 지배가 허용되고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는 실제적인 이유는 그들 이 옳을 가능성이 크거나 그것이 소수자들에게 가장 공정한것처럼 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들이 가장 힘이 세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사건건 다수가 지배하고 있는 정부는 정의에 입각한 정부라고 할 수는 없다. 옳고 그름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다수가 아니라 양심인 그런 정부는 있을 수 없는가?
p20

 

소로는 뒷 부분에 단체에는 양심이 없으나 양심이 있는 사람들이 만드는 정부는 양심이 있다고 한다.

 

이는 소로의 오류일 수도 있고 아니면 영미 계통의 유토피아적인 생각일수도 있는데, 국가가 양심이란 이름으로 무언가를 하게 되면 오히려 더 개인이 파괴되고 지옥이 된다는 점에서 오류라고 할 수 있고, 여기서 말하는 양심이 '자연법'이라고 한다면 상당히 유토피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p21

 

여기서 말하는 정의는 자연법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소로의 서술에는 보수주의적인 태도가 종종 보이는데, 국회에서 입법자가 두르려서 만드는 실정법은 '법'이라고 하고 있고 자연법은 '정의'라고 하고 있다. 우리 선조들에서부터 나에 이르기까지, 나아가 우리의 미래 세대까지를 아우르는 자연의 법을 자연법이라고 했을 때, 소로의 서술은 상당히 보수주의적인 모습이 있다.

 

우리가 먼저 인간이어야 한다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기만 하는 국민이라기 보다는 영원을 느끼는 인류에 대한 언급으로 보인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정의를 운수에 맡기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정의가 다수의 힘을 통해 실현되기를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대중의 행동에는 덕이라는게 별로 없다. 

결국에 가서 다수가 노예제도의 폐지에 표를 던지게 될 때는 그들이 노예제도에 관심이 없어졌기 때문이거나 투표에 의해 폐지될 만한 노예제도가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P 30

 

도덕과 양심은 오로지 개인에게 있다는 것이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다. 대중에게는 도덕이 없다. 대중의 혁명적 광기가 언제나 피바람을 부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적인 촛불 시위이자 심지어 문화제라고 외치면서 등장했던 광화문의 단두대 모형을 보며, 유모차를 끌고 나와 아이들을 혁명의 최전선에 세우는 광기를 보면, 우리는 대중에겐 도덕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의가 당신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불의를 행하는 하수인이 되라고 요구한다면, 분명히 말하는데, 그 법을 어기라.
P 37
 
다수가 가진 힘은 어떤 힘인가? 

나는 참다운 인간들이 군중의 강요를 받아 이렇게 또는 저렇게 살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P 51

 

이 팜플렛에서 소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세금에 대한 불복종이다.

 

논리가 참 좋은데 우리가 노예들의 폭동을 진압하는데 징집당하는 것을 조롱하고 거부하면서 동시에 정부에 세금을 내고 있는게 얼마나 웃기는 짓이냐는 것이다.

 

내가 직접 총을 들고 노예를 진압하는건 아니지만, 내가 세금을 냄으로써 그 세금이 노예를 진압하는데 쓰일 총잡이들을 고용하는데 쓰인다면, 거기서 오는 부정의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가 소로가 주장하는 바이다.

 

소로는 예를 들어 도로 사용료 같은 세금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것이 아니라 내 세금을 걷어서 그걸로 불의한 전쟁하는데 사용하고, 자기들 멋대로 퍼주고 하는게 싫다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 모습에 적용한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퍼주기 정책을 그 누구보다도 비난하면서, 동시에 세금은 꼬박꼬박 내고 있다면, 그 모순을 이해하고 국가를 향해 세금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하라는 뜻이다. 만약 그렇게 하여 내가 감옥에 갇힌다면, 의인이 감옥에 갇히는 국가는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 소로의 생각이다.

정부는 내가 허용해준 부분 이외에는 나의 신체나 재산에 대해서 순수한 권리를 가질 수 없다.

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 입헌군주제에서 민주주의로 진보해온 것은 개인에 대한 진정한 존중을 향해 온 진보
이다.

국가가 개인을 보다 커다란 독립된 힘으로 보고 국가의 권력과 권위는 이러한 개인의 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인정하고, 이에 알맞은 대접을 개인에게 해줄 때까지는 진정으로 자유롭고 개화된 국가는 나올 수 없다.
 
나는 마침내 모든 사람을 공정하게 대할 수 있고 개인을 한 이웃으로 존경할 수 있는 국가를 상상하는 즐거움을 가져본다.

그런 국가는 일부 소수의 사람들이 국가에 대해 초연하며 국가에 대해 참견하지도 않고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살더라도 이웃과 동포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한 그들이 국가의 안녕을 해치는 자들이라고 생각하 지는 않을 것이다.
P 68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 연설에서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이렇게 말한다.

"대한민국의 민주정체는 개인의 근본적인 자유를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소로의 말과 일치한다. 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민주주의로 진보해온 것이 개인에 대한 진정한 존중을 향해 온 진보라는 말은 민주주의가 개인의 근본적인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체제라는 것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자유' 민주주의만이 민주주의인 것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아마 헨리 데이빗 소로의 저서를 읽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승만이 20대 후반에 쓴 <독립정신>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가 일제로부터 왜 독립해야 하는가?

조선으로 돌아갈것 같으면 독립할 필요가 뭐가 있나?

우리가 독립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일본의 천황 전체주의가 조선 사람들의 근본적인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전체주의에서 벗어나 우리가 온전한 개인으로 태어나기 위해 우리는 독립을 해야하고 바로 그것이 독립정신이다'

 

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것이 맞다면 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민주주의로 발전하는 과정 자체에 대한 이승만의 대답이 독립정신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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