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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몽십야 - 나쓰메 소세키

어빈2 2021. 8. 13.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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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나쓰메 소세키

평점 8

 

개요

일본 근대문학의 아버지 나쓰메 소세키의 단편소설 몽십야(夢十夜)는 1908년 7월 25일부터 8월 5일까지 아사히 신문에 연재되었던 소설이다.

 

30페이지 분량의 단편이며, 제 一夜(첫째 밤)부터 제 十夜(열째 밤)까지의 꿈을 몽환적으로 풀어내었다. 각 꿈은 주제가 있지만, 상당히 함축적이고 상징적으로 쓰인 데다가 문체의 유려함까지 더해져서 계속 곱씹어 읽어야 하는 소설이다.

 

내용

첫째 밤 부터 열째 밤까지 각 주제별로 꿈의 내용을 적고 있다. 짧은 책이기에 누구나 쉽게 읽게 접할 수 있는 책이라 인상 깊었던 첫째, 셋째, 여섯째 밤의 내용만 옮긴다면...

 

제 1야

이런 꿈을 꾸었다.

 

여자가 남자를 바라보며 '곧 죽을거에요' 라고 말한다.

 

남자는 멀쩡한 여자의 모습에 죽을 거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여자는 또 말한다 '내가 죽으면, 기다려주세요. 만나러 올테니'.

 

남자가 대답한다 '얼마나?'.

 

여자가 말한다 '백 년 기다려주세요. 죽고 나면 진주조개로 땅을 파 저를 묻고 묘비석을 별 조각으로 해주세요'.

 

이어코 여자가 죽는다. 남자는 여자의 말에 따라 진주조개로 땅을 파고 여자를 묻는다.

 

하늘을 바라보니 해가 뜬다. 그리고 해가 진다. 해가 또 뜨고 해가 진다.

 

남자는 문득 생각이 든다. '이 여자가 나를 속인게 아닐까?'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해가 뜨고 지는것을 봤지만 아직 백 년은 멀었다.

 

돌 아래서 파란 줄기가 뻗어나와 남자의 가슴께에 멈추고 새하얀 백합 꽃봉오리가 꽃잎을 활짝 벌렸다. 남자는 백합에 입을 맞췄다. 문득 하늘을 보니 새벽별이 하나 반짝이고 있었다.

 

'백년은 벌써 지나 있었구나' 남자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제 3야

이런 꿈을 꾸었다.

 

여섯살이 되는 아이를 업고 있다. 이 아이는 분명 내 아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아이는 장님이다.

 

등 뒤에서 아이가 말했다. '논으로 접어들었군' 아이의 말투는 아니다.

 

'어떻게 알았니?'

 

'그야 백로가 울고 있잖아'

 

아니나 다를까 백로가 두번 정도 운다. 업고 있는 아이가 조금 무서워졌다.

 

이 아이를 업고선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아이를 어딘가에 던져 버리고 싶어진다. 앞에 어둠 속 커다란 숲이 있다.

 

'후훗'

 

'왜 웃는거지?'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아이는 답한다.

 

'아버지 무거워?'

 

'무겁지 않아'

 

'곧 무거워질거야'

 

숲속을 걷는다.

 

뒤에서 말한다. '돌이 서 있을건데, 왼쪽이 좋을거야' 정말로 돌이 서있다.

 

속으로 생각했다. '장님 주제에 모르는게 없네'

 

뒤에서 아이가 말한다. '장님은 불편해서 안좋아'

 

'그래서 업어주는거니 상관없잖아'

 

'업어주는건 고맙지만 아무래도 사람들한테 무시를당해서 좋지 않아, 부모에게까지 무시를 당하니 좋지 않아'

 

왠지 얄미워졌다.

 

뒤에서 아이가 말한다. '조금 더 가면 알 수 있어'

 

'뭐가?'

 

'뭐가라니, 알고 있잖아?' 그러자 왠지 알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런 밤이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것 같지만 알아서는 큰일이니 알기 전에 얼른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비가 온다.

 

뒤에서 말한다. '여기다, 바로 저 삼나무의 뿌리 부근이야' 정말로 삼나무가 있다.

 

'아버지, 바로 저 삼나무의 뿌리 부근이었지?'

 

'응 그래' 하고 나도 모르게 대답했다.

 

'분카 5년(1808년) 무진년 이었지?' 과연 분카 5년, 무진년인듯 여겨졌다.

 

'네가 나를 죽인건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 전의 일이야'

 

나는 이 말을 듣자 마자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분카 5년 이런 어두운 밤에 이 삼나무 뿌리 근처에서 한 장님을 죽였다는 것이 갑자기 생각 났다.

 

'나는 살인자였구나' 깨닫는 순간 등 뒤의 아이가 갑자기 돌부처처럼 무거워졌다.

 

제 6야

이런 꿈을 꾸었다.

 

1200년대 조각가인 운케이가 절의 산문에 인왕을 새긴다는 소문이 있어서 이를 구경하러 갔다. 구경하러 가는 사람들은 메이지 시대의 사람들이다(1870s). 운케이가 조각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제각각 칭찬을 한마디씩 한다.

 

어느 누가 이렇게 말했다.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끌을 움직여서 생각한대로 눈썹이나 코를 잘도 만들어내는군'

 

그러자 다른 누군가 대답한다. '아니야, 저건 눈썹이나 코를 끌로 만들어내는게 아니야. 저렇게 생긴 눈썹과 코가 나무 속에 묻혀있는 것을 끌과 망치의 힘으로 캐낸 것 뿐이야'

 

나는 조각이 그런것이라면 누구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느꼈다. 끌과 망치를 들고 장작으로 쓰려고 쌓아둔 나무를 하나씩 깎기 시작했지만 불행히도 인왕은 찾아내지 못했다.

 

마침내 메이지의 나무에는 인왕이 어디에도 숨겨져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랬기에 운케이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이유도 대충 짐작이 갔다.

 

느낀점

이 책은 귀신이 쓴 책이다.

 

우리가 꾼 꿈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기억하더라도 상당히 개연성 없고 기괴하게 기억하는 것 처럼, 이 소설도 정말 꿈 처럼 쓰여져있다.

 

첫째 밤을 읽고 느낀 것은 '아 이건 나쓰메 소세키가 쓴 게 아니라 귀신이 쓴 책이다'라는 것이었다. 종종 문학을 접할 때 소설이나 시에 귀기가 서려있는 경우가 있는데, <몽십야>가 전형적인 귀기가 서려있는 또는 귀신이 쓴 소설이다. 아마 읽어본 사람은 충분히 동의할 만한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총 10개의 꿈을 짧게 서술하고 있지만 각 꿈이 함축하고 있는 주제는 깊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봐도 사실 뭔말인지 알기 어렵다. 오히려 기괴해서 소름이 끼친다. 함축하고 있는 것이 크다 보니 해석도 제각각인것 같다. 개인적으론 기다림, 깨달음, 죄의식, 허상, 잘못된 믿음, 타락 등이 주제라고 느껴졌다.

 

특히 6야는 정말로 인상깊었다.

 

6야는 타락을 말하고 있다. 과거에 누군가가 모든 정성을 쏟아 종교적 깨달음을 위해 새겼던 가치, 이 가치는 어떤 것이라고 명확히 정의할 수는 없지만 '이데아'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 메이지 시대에는 모두 사라지고 없다는 것을, 그리고 오직 선대의 고결함 깨달음을 지금의 우리가 불완전하게 더듬어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정말 천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메이지의 나무에는 인왕이 어디에도 숨겨 져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운케이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이유도 짐작이 갔다' 참 무시무시한 표현력이다.

 

일본 소설은 이렇다. 한국의 근대 소설의 시초인 이광수의 <무정>은 그것이 최초라는데 의의가 있을 뿐 수준이 높지 않다. 물론 재미는 있지만 깊이가 없다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우리가 대단하다고 자위하는건 대부분 가볍고 휘발성이 강한 분야다. 아직까지 우린 노벨 문학상은 커녕 진지한 분야에 아무 상이 없다. 우리는 진지함이라는 불편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하는 인간의 운명을 외면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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