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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정의란 무엇인가 - 마이클 샌델

어빈2 2021. 8. 13.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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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마이클 샌델

평점 5

 

개요

마이클 샌델을 단숨에 국민작가로 만든 그 책!

 

그러나 사놓고 아무도 안본다는 그 책!

 

이 책은 하버드 대학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론이다. 그가 말하는 정의는 아주 좋게 봐주면 공화주의적이고 평범하게 보면 공동체주의적이나, 그 본질을 까고보면 좌익이라고 볼 수 있기도 하다.

 

느낀점

이 책보다 나중에 나온 책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먼저 읽었는데, 그 책보다 이 책이 훨씬 좋다. <돈으로 살 수없는 것들>은 전형적인 자본주의 비판이지만 이 책은 센댈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아주 디테일하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 전체에 흐르는 음울한 분위기도 이 책을 보면 설명이 된다. 센댈의 책은 어딘지 모르게 음울한데, 이는 바로 본인 스스로가 본인의 주장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좋은 책은 아니다. 이 책은 자본주의의 정말 경계에 있는 천박한 사례들을 잔뜩 가져와서 자본주의 그 자체를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고 이는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이기 때문에 그렇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제도가 완전하지 않다고 마치 유토피아가 있는것 처럼 떠든다면 이는 사기꾼일 것이다.

 

이 책은 스트라디바리우스 같은 사례를 잔뜩 조합하여 자본주의는 나쁜거야!라고 설명하는데 이는 결혼식에 낭비되는 돈이 너무 많으니까 결혼은 나쁜거야! 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 책의 나오는 예시로 폭리에 대한 비판이 있겠다. 이 책은 위급한 상황을 기회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를 예시로 조명하고 있다. 아니 빌어먹을 허리케인이 닥쳐서 다 죽게 생겼는데 폭리를 취하 는게 말이 되냐는 것이다.

 

근데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 의외로 정부가 예상했던것 보다 물자부족의 문제가 없었는데, 이유는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이 월마트의 트럭이기 때문이다. 월마트의 재해방지시스템이 제대로 가동했는데, 이 때문에 신속하게 구호물자가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럼 월마트는 어떻게 허리케인에도 무너지지 않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창고관리를 잘했을까?

 

평소에 창고 관리를 잘하는 사람이 있다 -> 허리케인이 닥친다 -> 창고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사람은 상품을 다 날리고 창고관리를 잘 한 사람은 상품을 잘 보관할 수 있었다 -> 물자가 부족해지고 가격이 오른다 -> 창고관리를 잘 한사람은 그 보상으로 상품을 비싼 가격에 팔아 폭리를 취한다 -> 폭리는 그 자체로 이 지역에 장사가 잘 된다는 신호기 때문에 타지역의 장사꾼들이 물자를 지고 온다 -> 물품 가격이 안정화된다 -> 창고 관리를 못한 사람은 이를 보고 창고 관리를 앞으로 잘 하기로 마음먹는다.

 

이게 월마트가 정부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었던 메커니즘이다. 근데 저 과정에서 폭리를 취한거만 딱 떼어서 그게 도덕적으로 부당하다고 하고 처벌한다면, 아무도 상품을 지고 오지 않을 것이며, 창고 관리를 잘 한사람도 앞으로 창고관리를 잘 안하게 된다. 다음에 또 허리케인이 닥치면 이번엔 정말로 아무 물건도 남지 않아 모두가 굶어 죽게된다.

 

마이클 샌델같은 사람은 시장의 동태성을 바라보지 못하고 정태적으로만 본다는 근본적인 오류가 있는 것이다.

 

사실 시장을 동태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문명의 발전이 이로 설명되기 때문이다.

 

배 만들기는 자연으로부터의 공포를 극복하는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바다에 나가는 것은 매우 위험했기 때문에 누구든지 좀더 튼튼한 배를 잘 만드는 사람을 선택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조선공들은 살아남기 위해 배 만드는 기술을 업그레이드 한다.

 

이 과정에서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이익만 바라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과정 의 결과는 좋은 가격에 좋은 배가 살아남게 된다. 그리고 이는 드디어 바다의 공포를 극복한 인간 문명의 발전이기도 하다. 동시에 마이클 샌델의 근시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샌델이 말하는 정의란 공동체가 공유하는 도덕을 가지고 자본주의가 잠식하고 있는 정의의 영역을 지켜내자는 것인데, 이와 비슷한 얘기를 한 사람중에 유시민이 있다.

 

유시민은 국가가 선을 위해 행동해야한다고 얘기 했는데, 그런 발상을 하는 순간 국민은 인민과 적폐로 구별된다. 왜냐하면 국가가 도덕을 알고 이를 정의의 이름으로 집행한다는 것은 곧 이에 거부하는 행위가 비도덕이 되기 때문이다. 떼 또는 다수가 정의를 독점하게 되면 그 순간 소수의 자유를 침해하게 된다. 국가나 공동체나 국가의 규모에 따라 조금 다르긴 하지만 본질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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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내가 정의니 하는 사람들을 볼수록, 정의는 신의 속성이지 인간의 속성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입으로 정의를 떠드는 인간은 그래서 항상 의심해봐야 한다.

 

조국, 윤미향, 이나영, 박원순 등 내가 정의니 내가 인권이니 하는 인간은 결국 자기 이익만 챙기는 인간들이었다. 이는 좌우 정치인과 일반인을 가리지 않는데, 인간은 정의를 행할 수 없기 때문에 정의라 불리는 것들은 강요받지않는 상태여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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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델은 왜 이런 식의 정의론을 썼을까? 그의 주장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다.

 

현대 사회는 공동체가 해체되는 사회다. 심지어 가족까지도 해체의 대상이 되어 '전통적인 가족관' 같은 말을 하면서 가족을 악마화 하는 페미라는 세력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페미 문제를 떠나서 우리 각자가 맹렬한 개인이 되기 시작한 순간 공동체적이기만 한 속성들은 자연스럽게 해체되는 수순을 밟을 수 밖에 없었다.

 

샌델은 이 과정을 타락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다시 공동체 정신을 회복할 것을 촉구한다.

 

그러나 그런 방법은 결국 전체주의로 귀결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샌델이 말하는 윤리적 자아가 되기 위해서는 각자가 자유와 개인을 온전히 이해하고 자유로운 시장경제 아래에서 각자 자신의 생업을 영유하며, 여유가 생기면 사회에 일부 책임을 지고, 자신의 취미와 관심사에 맞는 공동체를 자율적으로 찾아가는게 옳지 않을까? 옆집에 산다고, 동네 사람이라고 공동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관심사가 같은 사람이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

 

샌델식 공동체주의는 전체주의다. 샌델은 물론 그들과는 다르게 토론을 강조하긴 하지만, 토론과 누군가 선을 정하는것은 양립할 수 없다. 예를들어 우리가 토론을 통해 만장일치로 정할수 있는 도덕적 가치란 '모두가 착하게 살자' 정도 수준밖에 없다. 뭐가 착하게 사는거지? 라는 물음으로 들어가면 절대로 토론을 통해 국가가 선을 행할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한다. 그럼 우리는 그런 디테일한 문제는 서기장에게 위임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하자는데 동의하게 된다.

 

이 과정을 겪지 않으면서 우리가 서로를 존중하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자유시장경제 체제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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