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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인권도 차별이 되나요? - 구정우

어빈2 2021. 8. 13.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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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구정우
평점 4

개요
이 책은 성균관대학교 인권전문 교수가 쓴 책으로 다양한 주제를 인권에 엮어 다루고 있다.

이런 종류의 책이 늘상 그렇듯 동의할 만한 것도 있고 안되는 것도 있다. 다만 교수가 쓴 책이라 그런지 두루뭉술하게 쓰인 부분이 많은데 좋게 보면 부드럽다고 할 수 있고 나쁘게 보면 주관이 없다고도 할 수 있겠다.

보통 인권이니 차별이니 제목을 달고 나오는 책들의 수준이 낮다는 편견이 있어서...이 책도 그런게 있나 싶어서 본질에 해당하는오류 찾기를 중심으로 책을 읽었다.

내용과 비판
11개의 챕터는 각 챕터별로 중점적으로 다루는 주제들이 있다.

1. 착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많아지면 인권이 좋아질까?
이 챕터는 개괄부분으로 우리사회가 인권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를 물으면서 한국이 왜 갑질 왕국이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 예로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을 들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 이 책에 대한 첫인상이 좀 좋아진게, 보통 땅콩회항 예를 들면 재벌이 어쩌고 하면서 욕하기 바쁘다.

근데 우리사회의 갑질은 재벌의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한국적 행태다. 다행히 이 책은 땅콩 회항 뒤에 아파트 경비원 문제도 지적하면서 갑질이 전방위적인 한국인의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에 갑질이 심하고 인권에 대한 개념이 희박하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어떻게 하면 인권감수성을 높일 수 있을까? 라는 물음으로 책을 시작한다.

2. 그들에게 우리의 나라를 빼앗긴다면?
이 챕터는 난민 문제를 다루고 있다. 나름 균형잡힌 시각을 주는것 처럼 보인다.

난민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은 정당한 거부감이라 하는 반면, 외국인 범죄율이 그렇게 높지 않다면서 공포감이 과장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오히려 난민의 유입이 사회 아랫단 기피 업종에 종사하면서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도 하고 있다. 그러면서 가짜 난민에 대한 심사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왜 이슬람에 대해 우리가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지를 조명하진 않는다. 단지 이슬람이라고 해서 차별하는 것은 명백한 인종차별주의적 시각이라고 작가는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슬람이라는 종교 자체가 차별을 정당화하는 종교인지는 왜 언급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무슬림 여성들이 히잡을 쓰고 다니는건 명백한 여성 차별이다.

대한민국 내에서 무슬림 여성들이 한 명의 한국인으로서 히잡을 쓰고 다니는 것을 허가할 수 있을까? '대놓고 여성을 차별하는 종교와 이슬람 국가 특성상 종교가 생활 양식인 나라에서 자라온 남자들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이를 우리는 인종차별하지 말라는 말 한마디로 무마할 수 있겠는가'가 난민문제의 핵심이다.

현대문명의 가치는 인권만 있는게 아니다. 개인과 자유도 있으며, 개인과 자유를 억압하는 종교와 문화는 현대문명의 토대위에 서 있을 수 없다.

작가는 현재 외국인의 범죄율이 낮다는데, 이 통계가 별 의미 없는게, 미주를 찾아가 보면 조선족 범죄율 통계다. 그걸 난민에다 갖다 붙이면 되나? 그리고 이슬람은 자신들의 세력이 작을 때는 종교 전파를 위해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교리가 있으며, 이중성 있는 모호한 대답을 하여 상대를 안심하게 만드는 것도 교리에 있다(타키야, 타우리야).

지금 한국 이슬람은 소수지만 그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숫자가 되었을 때 그들의 율법이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는걸 지금, 그것도 잘못된 범죄율 통계를 들어 인권이란 이름으로 옹호하는건 문제가 있어 보인다.

3. 금수만도 못한 자들에게 인권이란?
이 챕터는 교도소에 '있는' 범죄자 인권을 다루고 있는데, 그렇게 내용이 충실한 챕터는 아니다.

범죄자의 처벌과 교화라는 딜레마적 쟁점을 두고 무엇을 중요시 해야하는가를 저자의 의견없이 전달하고 있는데, 물론 딜레마니까 저자 본인의 답도 없다.

그런데 더 중요하고, 사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문제는 감옥에 있는 범죄자의 인권이 아니라 출소를 앞둔 사람 또는 피의자에 대한 인권 문제이다.

사실 교도소에 있는 범죄자 인권은 일반 대중에들에게 별로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이 책에 나온 범죄자 인권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 통계도 범죄자가 교도소에서 얼마나 편하게 또는 얼마나 불편하게 지내고 있는지를 생각하고 대답한 질문들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정말 중요한 범죄자 인권문제는 이렇다.

출소를 앞둔 조두순에 대한 언론의 과도한 마녀몰이, 아직까지 피의자인 정인이 양부모에 대한 언론의 여론몰이, 바로 이런것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범죄자 인권문제다. 무슨 교도소 내의 인권 같은 한가한 소리 하고 앉았다.

이 나라는 범죄자 또는 범죄 피의자에 대한 인권은 개나 줘버린 수준이고 그들의 개인정보 보호에 아무런 관심이 없으며 거기에 대한 국민 수준은 0에 수렴한다.

4. 나의 양심은 국가 없이도 존재할 수 있을까?
이 챕터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중점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전파트와는 다르게 꽤 상세하게 쟁점들을 다루고 있는데 특히 병역 거부와 집총 거부를 분리해서 설명하는 것은 책의 수준을 드러내는 좋은 부분이었다. 또한 대체복무의 형평성을 고려하는 부분도 나쁘지 않았다.

물론 왜 형평성이 고려되야 하는가에 대해서 치밀한 딜레마가 존재하는데 그 점을 꺼내고 있지는 않고 짧게 '목숨걸고 나라를 지키는 것과'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은 휴전중인, 전쟁중인 국가이기 때문에 군복무가 실제적 생명을 담보로 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생명을 대체할 만한 복무가 도대체 무엇인가? 에 대한 고민은 깊게 생각해볼 만한 문제이다.

또한 우리가 현재 대치중인 국가가 어디냐에 대한것도 확대된 양심의 영역에서 생각해볼 문제다.

누구든지 양심의 자유가 있지만, 우리가 대치하고 있는 북한의 전체주의 독재체제에서는 양심의 자유를 지킬 수 없다. 만약 전쟁이 재개되고 북한이 한반도를 통일한다면 우리는 명백히 양심의 자유를 지키는 일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병역은 양심의 자유를 오히려 지키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이 점이 이 책엔 고려되고 있지 않은것 같다.

5.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가 함께 살아가려면
이 챕터는 성별문제를 다루고 있다.

처음부터 미국 캐버노 대법관 인준 문제에서 튀어나온 미투 문제를 가지고 시작하는데, 이 책이 언제 쓰인지 모르겠지만 캐버노 대법관 인준 문제에서 드러났던 미투는 결국 스캔들임이 밝혀졌다. 성폭행을 당했다는 여성 이후로 계속 다른 여성들의 증언이 나왔지만 대부분 거짓말로 밝혀졌고 이는 좌익성향 매체인 뉴욕타임즈가 결국 반성하는 칼럼을 씀으로써 일단락 되었다.

성별문제가 문제가 되는 지점이 바로 이 작가가 예시를 든 캐버노 문제이다. 미투가 정치적 권력투쟁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미투 운동의 창시자인 타리나 버크를 소개하고 있는데, 타리나 버크야 말로 2018년 미투 운동이 정치적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칼럼을 썼다.

물론 작가는 미투 운동을 가지고 과열되고 있는 성별 갈등을 걱정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의견을 밝히면서 남녀가 같이 손을 잡고 가야될 문제를 너무 극단적인 세력에 의해 분열만 가속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꽤나 상식적으로 남녀 의견 차이를 상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객관적이다. 그러나 두루뭉술하게 같이 손잡고 가야 된다는 식은 '이 책이 교수가 쓴게 맞구나' 라는걸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기도 하다.

6. 결혼만은 포기하라는 말의 의미
이 챕터는 동성애 문제를 다루고 있다.

동성애와 동성혼을 아예 분리해서 설명하고 있으며, 동성애 보다는 동성혼에 초점이 맞춰져있다는 점에서 꽤나 선진적인 서술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동성혼이 다양한 성적지향을 가진 시민들과의 공존하려는 태도이기 때문에 우리 공동체가 한단계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는 말로 지지하고 있다.

동성애 자체는 종교적 교리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반대하기가 힘든 지경이 되었다. 사실 동성애를 왜 반대하냐는 질문에 논리적으로 동성애가 나쁘다는 것을 말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동성혼 문제는 다르다. 결혼이 제도로써 보호되는 이유가 명확히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일본의 사례를 들어 일본은 '시민결합제도'를 별도로 운영해 남녀간의 정상적인 결합은 결혼 제도로써 보호하고 동성간은 시민결합제도로써 결혼에 준하는 결합으로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타협의 가능성이 있어보이긴 한다.

물론 혜택은 문제가 될 법하다. 결혼이 보호하고 있는 재생산이 동성혼에선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혜택을 어떻게 구성하느냐 또한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동성애는 그 자체로 에이즈라는 질병에 걸릴 확률을 매우 높힌다는 과학적 연구 결과에 대한 광범위한 안내가 필요하다. 동성애자가 에이즈에 걸릴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은 과학적 사실이다. 그러나 동성애나 동성혼이 마치 자연스러운 것처럼 계속 홍보된다면, 부작용은 쉬쉬될 가능성이 높다. 동성애가 사적 영역이라고 해도 그것을 인정하는 것과 그것을 지향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책에선 많은 학부모들이 학교에서 성소수자에 대해 가르치는 것에 대해 불안해 한다는 언급을 하는데, 바로 그 문제가 동성애에 대한 인정 문제가 아닌, 그것을 지향하는가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번외로...작가는 자세히 다루고 있지 않지만 바로 그 부분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이기도 하다.

동성애와 동성혼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진짜로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누구는 선진 사회라고 할 수 있고 누구는 가족의 해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물론 나는 가족의 해체에 좀더 무게를 싣고 보는 편이다.

그들의 주장에 우리가 동조하며 '동성애는 그래, 차별받으면 안돼'는 그들이 원하는 대답이 아니다. 애초에 조선 땅에서는 동성애가 차별받은 역사는 없다.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로 우리가 직면해야 할 현실은, 초등학교 교실에서 이성애 뿐만 아니라 동성애도 가르치라는 것이다. 학부모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게 바로 우리 피부에 닿아있는 동성애 문제다. 무슨 동성애자를 차별하지 말자! 같은 한가한 소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7. 혐오 표현도 표현의 자유일까?
이 챕터는 악플과 인터넷 실명제에 대해 다루면서 혐오발언도 표현의 자유일까? 라는 상당히 재미있는 질문을 던진다.

물론 작가는 자신의 의견을 표하기 보다는 또 두루뭉술하게 우리 스스로 깨우쳐 표현의 자유를 지키자라는 결론을 낸다. 인터넷은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중요한 공간이기 때문에 여론이 왜곡될 수 있는 가짜뉴스는 저지되어야 하고 이 때 가짜를 구별하는 능력을 키워야 때문이라고 한다. 무엇이 가짜인지, 혐오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잘하자!' 식의 다소 애매모호한 결말이 난것으로 보인다.

성공회대 김찬호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은 악플대 선플이 비율이 4:1이다. 반면 일본은 악플 1에 선플이 4이다. 네덜 란드는 악플 1에 선플이 9라고 한다.

여기서 악플이 표현의 자유의 문제인가? 라는 의문이 든다.

혐오발언과 표현의 자유를 떠나 그 이전에 한국인들은 도대체 왜 악플을 이렇게 많이 쓸까가 우선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은 왜 선플이 많을까? 선플이 많기 때문에 인터넷 여론 형성에 더 도움이 된다면 이는 표현의 자유 문제가 아니라 한국인의 국민성 문제가 되어버린다.

혐오발언의 자유도 표현의 자유로 인정되는 것이 사실상 자유주의적 정론이라고 생각된다. 혐오발언의 과정에서 일어나 는 문제들은 사인들 간의 민사 소송으로 해결되면 될 일이다. 물론 우리나란 명예훼손을 형사법으로 다루는 과잉 처벌의 국가이긴 하지만, 어쨋든 무엇이 혐오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혐오발언을 콕 찝어서 표현의 자유로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은 논리가 빈약하다.

인기 예능이었던 <비정상 회담>에 이와 비슷한 질문이 나왔었는데, 미국 대표인 테일러가 아주 전형적인 자유주의적, 과연 미국인이다 싶은 대답을 내놓은적이 있다. 표현의 자유는 케이크 같이 한조각 잘라서 이건 규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연 명답이라고 할 수 있다.

8. 장애인 앞에 놓인 장애물을 없애려면
이 챕터는 장애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다소 원론적이긴 하지만 이 책에서 순수하게 작가에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예전 살던 곳에 우진학교라는 장애인 학교가 들어온 적이 있는데, 아파트 한 가운데 그런 시설이 들어온 것을 최근 그 옆 을 지나갈 일이 생기면서 다시 생각해볼 계기가 되었던 적이 있다.

벌써 그게 20년 가까이 된 일이니 참 선진적이었다 싶었다. 난 기억이 잘 안나지만 어머니 말씀으론 딱히 지역의 반대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하셨다. 나는 어렸을 때 우진 학교의 수영장을 민간에도 개방했기 때문에 수영장을 다닌 기억이 있다.

이 책은 장애학교가 집값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통계를 이야기 한다. 확실히 지금보면 그 말이 맞는거 같다. 장애시설은 처음부터 혐오시설이 아니었던거 같다.

9. 공정한 채용을 위한 차별은 정당할까?
이 챕터는 스펙과 블라인드 채용을 얘기하면서 능력주의에 대한 말을 에둘러 하고 있다.

우선 좋았던 점은 스펙을 쌓기 위해 들어간 사람들의 노력도 인정되어야 한다는 서술이다. 과도한 스펙경쟁은 문제지만 그 스펙을 쌓기 위해 들어간 노력이 평가되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블라인드 채용 자체는 긍정적으로 보고있다.

이전 챕터와는 다르게 공감가는 데가 별로 없는 챕터였다. 첫째는 경쟁에 대한 이해고 둘째는 블라인드 채용에 대한 이해다.

과도한 경쟁은 나한테도 기회가 있다는 것과 동의어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그 기회는 나한테도 공정하게 온다. 가만히 냅두면 좋은 기업일수록 공정하게 좋은 인재를 뽑는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이 망하기 때문이다.

너무 과열된 경쟁을 탓하고 그게 극단으로 치달으면 문제가 되지만 이는 경쟁의 문제가 아니라 그 만큼 취업할 곳이 없는것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예를들어 삼성에 입사하고자 하는 경쟁률이 몇 백대 일이라면서 과도한 경쟁을 탓한다면, 해결법은 삼성이 10개 50개가 되면 될일이다. 순전히 정치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둘 째로 블라인드 채용은 절대로 공정성을 담보하는 채용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업이 사람을 뽑는 기준은 자신들이 볼 때 적합한 인재를 뽑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적합성은 스펙으로 증명될 수 밖에 없고, 1차적으로 스펙으로 걸러진 사람들에 한해 면접으로 적합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블라인드 채용이 문제인 것은 첫째, 아무것도 모른다면 결국 학연, 지연, 혈연이 작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누굴 뽑 아야 되는데 아무것도 모른다면, 결국 국회의원 전화 한통에 그 사람을 뽑을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블라인드로 채용하면 나한테 기회가 올 것처럼 생각하는데, 오히려 치열한 경쟁이 기회를 줄 가능성이 훨씬 높다.

두 번째는 도덕적인 문제다. 대학은 중요한 스펙이지만 대학생활 내에 또는 내가 획득한 자격증을 더 중요하게 보는 경우도 있다. 그것이 성실성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10대 후반은 철이 없어 대학을 제대로 못갔을 수있지만, 그 이후에 내가 쌓아온 스펙을 가지고 내가 바뀌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블라인드 채용은 공부안해도 취업하고 싶다의 다른말에 불과 하다. 그리고 이는 도둑놈 심보라고 불린다.

10. 파업할 권리와 불편하지 않을 권리
이 챕터는 외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노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첫 파트부터 김용균법을 들고와서 위험의 외주화를 지적하고 있는데...위험의 외주화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다.

예를들어 내가 가게를 한다고 했을 때 내가 가게의 위생을 신경쓰는것 보다 CESCO가 와서 가게의 위생을 신경써주는 것이 훨씬 좋다. 거기가 전문가 집단이기 때문이다. 외주는 기업이 자신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검증된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기도 하다는것이다.

김용균같은 안타까운 죽음이 있는 이유는, 외주 업체에 줘야 할 돈이 정규직들의 주머니로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공기 업같이 정규직의 권한이 막강할수록, 외주업체에 가는 돈은 적어진다.

정규직이 비정규직, 실업자, 구직자를 착취하고 있는것이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비정규직 사망사건도 이 책에 나와있는데, 그 친구가 왜 사망했는가? 원래 2명이 1조를 이루기 때문에 같이 일했어야 함에도 같이 일할 시간에 다른 정규직 한명이 노조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서 자리를 비웠다는 것이 실제 판결문에 나온 내용이다.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

이 파트에서 보여지는 문제점은 더 있다. 중간 부분에 전태일이 분신자살한것을 다루는데, 1판 전태일 평전에 의하면 전태 일은 자살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전태일의 몸에 불을 붙인것으로 나와있다.

물론 귀족노조에 대한 비판도 균형감을 찾기 위해 들어가있다. 상세하게 다루고 있진 않지만, 노조의 대체근로 허용, 점거 농성 금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11. 일터 괴롭힘은 누가 없앨 수 있을까?
이 챕터는 직장 내 따돌림 문제를 다루면서 정부의 개입을 주장하고 있다.

근데 사용하는 예시가 다소 이상한데, 직장 카톡 방이 있어서 업무 이후에도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과 간호사들이 파벌을 만들고 소위 '태움'이라는 행위를 하는 것을 병렬적으로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간호사들의 태움은 그 자체로 직장내 괴롭힘이자 범죄에 가깝다. 이는 분명 근절되야 할 것이 맞다. 근데 직장 카톡방에서 퇴근 후 업무 지시가 이것과 동일한 직장 괴롭힘으로 봐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어느정도 개입하라고 아예 명시를 해놨는데, 모든 직장인은 퇴근시간 이후에는 카톡이 되지 않는 법인폰을 지급받는다 뭐 이런식으로 하라는건가? 만약 회사의 명운이 달려있는 일이 퇴근시간 이후에 발생하면 어떡할 것인가?

우린 모두 충직의 의무를 지고 있다. 물론 말도 안되는걸로 카톡을 통해 업무시간 외에 업무를 지시하는 등은 지양되고 고쳐져야 하지만, 거기에 정부가 개입해서 해결된다는 보장은 없다.

느낀점
다양한 주제를 억지로 인권에 껴맞춘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대부분의 내용은 균형감 있게 잘 적고 있다. 공감 가는 부분이 꽤 있기도 하고 '혐오발언의 자유' 같은 문제는 재미있었다..

그러나 아주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다.

이 책 어디에도 '북한 인권'에 대한 언급이 없다. 난민 파트에만 한국도 탈북자라는 특이한(?) 형태의 난민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문제가 있는 발언으로 첫째, 북한 사람은 현행법상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에 난민이 아니라는 점, 두 번째로 탈북 문제는 난민 어쩌고 하면서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의 위구르나 중동에서 일어나는 인권 문제 등은 뭐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니까 차치하고라도, 북한 인권문제는 바로 우리가 지금도 탈북자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동포라는 점에서 우리의 문제이다.

근데 책 제목에 '인권'을 걸고 나온 주제에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고 있지 않다.

북한인권문제야 말로 대한민국인 모두가 각자 어깨에 지고 있는 아우슈비츠이다. 나중에 통일이 되고 나서 북한 정치수용 소가 개방되면 그때가서 '와...선넘네' 이러고 있을건가?

북한 인권은 정말 심각한 문제고 우리의 업보이기도 하다. 동포에게 저질러지는 반인륜 범죄에 대해서는 단 하나의 도덕적 판단을 하고 있지 않으면서 젠더니, 노조니 이딴 소리를 하는게 정합성이 있는지 모르겠다.

책 내용에 있어서 다른 문제로는 통계를 잘못 갖다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통계를 정확하게 인용하고 있지 않은데, 외국인 범죄율 통계라던가, 20대 남성의 문재인 지지율이 20대 여성의 문재인 지지율 보다 매우 낮은 것이 성별 때문 이라는 식의 단순화는 이 책이 통계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전체적으로는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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