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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슌킨 이야기 - 다니자키 준이치로

어빈2 2021. 8. 11.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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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다니자키 준이치로
평점 8

개요
일본 탐미주의 문학의 대가인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1933년 발표한 소설로 슌킨과 사스케의 이야기를 통해 숭배적인 사 랑, 더 나아가 어떻게 본다면, 변태적인 사랑을 다루고 있다.

여성숭배, 여성에 대한 마조히즘적 사랑, 발에 대판 페티시즘은 다니자키 준이치로 작품에 빼 놓을 수 없는 그의 상징처럼 되어있다고 하는데 <슌킨 이야기>에서도 잘 드러난다.

내용
이 책은 화자인 '나'가 <슌킨전>이라는 기록을 참고하여 한 사람의 인생을 시간 순서대로 다큐멘터리 처럼 조명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책이다.

화자는 오사카에 있는 모즈야 가문의 묘역을 방문한다. 거기서 슌킨, 본명은 모즈야 고토, 그리고 슌킨의 제자이자 <슌킨 전>을 쓴 사스케의 무덤을 바라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슌킨은 모즈야 가문의 6 남매 중 둘 째 딸로 태어났는데, 9살때 눈이 멀어 맹인이 된다. 춤과 음악에 큰 재능이 있었는데 맹인이 되고 난 후에 춤은 포기하고 샤미센과 칠현금에 몰두한다.

사스케는 모즈야 가문을 모시는 집안의 아들로 모즈야 가문이 대대로 하고 있던 약재상의 사환일을 배우러 와 있던 차에 슌킨의 수발을 들게 된다. 슌킨은 '사스케가 제일 얌전하고 쓸데없는 말을 안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수발을 계속 들도록 했으며 이때부터 사스케와 슌킨의 긴 인연은 시작된다.

슌킨이 검교(남자 맹인에게 내려지는 최고의 직위)슌쇼에게 악기를 배우러 다닐 때 마다 사스케는 슌킨의 최선을 다해서 간절하게 수발을 드는데, 화자는 아마도 사스케가 슌킨에 대해 남모를 연심 또는 숭배심을 가졌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사스케 또한 음악에 재능이 있어서 보다 슌킨이 바라보는 세상에 다가가기 위해 자신의 급료를 모아 연습용 샤미센을 구입하여 몰래 연습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들키게 되고 모즈야 집안 어른들에게 꾸중을 들을 찰나에 슌킨이 사스케의 연주를 들어보고 싶다고 한다. 최선을 다해 연주한 사스케는 조롱을 당할 줄 알았지만 오히려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하고, 슌킨 또한 사스케의 열정에 자신이 직접 스승이 되어 가르치겠다고 한다.

이때부터 사스케는 사환 일을 그만두고 슌킨과 주종관계로서 수발을, 사제 관계로서 샤미센을 배우게 된다.

집안 어른들은 맹인인 딸이 좋은 집안으로 시집가는 것은 힘들고, 또 장애인이기 때문에 점점 괴팍해지고 편협해지는 성격 때문에 사스케를 데릴사위로 하려고 하나 슌킨은 아랫것과 결혼할 수 없다고 극구 거절한다.

그러나 슌킨은 곧 임신을 하게 되는데 사람들은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슌킨을 나무라지만 슌킨은 고고하게 절대 입을 열지 않고 아버지가 누군지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사스케이려니 하고 사스케를 불러 다그치지만 사스케 또한 묵무부답이다.

결국 아이를 낳아보니 사스케를 똑 닮아 집안 어른들이 알아채고 다시 둘을 결혼시키려 하지만 슌킨은 오히려 아기를 다른 곳에 보내버리라고 하고 결혼하지 않을 것을 선언한다.

검교 순쇼가 죽고 슌킨에게 자신의 이름인 '슌'을 내려주면서 슌킨이 슌쇼의 뒤를 잇는다. 슌킨이 독립하면서 수발을 들어 오던 스사케와 같이 살게 된다.

이후 여러 에피소드가 지나가고...

어느날 밤, 슌킨의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게 되고 깜짝 놀라 깬 사스케가 슌킨의 방에 들어가보지만, 슌킨은 괴한에 의해 습격당했고, 괴한이 던진 뜨거운 물이 든 주전자에 얼굴에 큰 화상을 입는다. 사스케에게 추해진 얼굴을 극구 보이려고 하지 않는 슌킨, 사스케 또한 슌킨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절대 보지 않는다하며 이 사건을 막지 못한 자신을 탓한다.

맹인에 오로지 자신의 외모가 아름답다는 자부심으로 살아온 슌킨에게는 화상이 큰 상처가 되었고 특히 사스케한테 만은 자신의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았지만, 사스케의 수발 없이는 살 수 없었기 때문에 슌킨의 마음은 병들어간다.

결국 사스케는 바늘로 자신의 눈을 찔러 스스로 맹인이 되고 이제 자신도 스승님과 같은 맹인이 되었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수발을 들며 살아가겠다고 하고 이에 슌킨은 한동안 말없이 깊은 생각에 잠긴다.

시간이 흘러 슌킨은 병을 얻게 되고 58세의 나이에 사망한다. 사스케는 슌킨 사후 검교가 되어 살다가 83세에 생을 마감 한다.

느낀점
이 책 만큼 책 내용을 요약하기 어려운 책이 없었던거 같다.

탐미주의 문학은 문체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요약으로 그 분위기를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책은 화자가 <슌킨전>의 기록을 통해 상황을 설명하는 척 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어서, 마치 사실적 기록에 있는 것을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듯한 상황을 연출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실에 대한 화자의 추측과 느낀점이 뒤따라오는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때문에 사스케와 슌킨 사이의 많은 감정들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요약만 보면 사스케와 슌킨이 서로 사랑하는것 같지만 소설에서 둘의 사랑은 표현되어있지 않고 연심 정도로만 되어있다.

사스케가 슌킨에게 갖고 있던 연심은 마치 여신을 숭배하는 듯 한데, 그 표현들이 과장되지 않고 절제되어 담담하게 전달되되 우리가 상상만으로 그 아련함을 더듬어갈 수 있게 한 작가의 문체는 가히 놀랍다.

슌킨의 얼굴이 화상으로 망가진 이후 결국 사스케는 자신의 눈을 바늘로 찌르는데 여기에 대한 표현이 일본 특유의 탐미주의적 사고방식이 잘 드러나있는것 같다.

슌킨은 점점 기가 꺾여갔고 사스케는 이러한 슌킨을 보기가 애처로웠다. 하지만 슌킨을 가엾고 불쌍한 여자라고 여길 수는 없었다고 한다.

분명 맹인인 사스케는 현실의 눈을 감아버리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관념의 세계로 넘어갔던 것이다. 그의 시야에는 과거로 기억되는 세계만이 존재했다.

만약 슌킨이 재앙으로 인해 성격이 변해버렸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슌킨이 아니었다.

사스케는 어디까지나 과거의 교만한 슌킨만을 기억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금도 그가 바라보고 있는 슌킨의 아름다움이 파괴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사스케는 현실의 슌킨을 매개로 삼아 관념의 슌킨을 환생시켰기에 대등한 관계를 피하고 주종의 예의를 지켰다.

- 26장


책 마지막엔 사스케의 죽음을 다루면서 슌킨과 사스케 사이에 2남 1녀가 더 있었다고 하는데, 1녀는 태어나자마자 죽었고 2남은 젖먹이 때 다른 곳으로 보내버렸다고 한다. 사스케는 슌킨이 죽은 이후에도 자식을 데려오려 하지 않았고 만나지도 않았다고 한다.

여러 문장이 계속해서 그 둘의 연심의 지극성과 신성성을 이런식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자식들은 둘의 연인관계, 주종관계, 사제관계의 기억 속에선 그저 짐일 뿐인것 처럼 묘사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소설을 통해 보여주려는 일본적 아름다움의 극치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첫 문장인 "국경의 긴 터널을 지나니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 까지 하얘졌다. 신호소에서 기 차가 멈췄다"를 보자마자 느껴지는 그 아련한 아름다움이 슌킨 이야기에서는 책의 줄거리로 구현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이 책을 이렇게 평했다고 한다.

다만 탄식할 뿐,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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