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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 - 박정훈

어빈2 2021. 8. 11.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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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정훈
평점 1

개요
이 책은 제목에서 잘 드러나듯이 페미니즘 책이다. 독서토론 책으로 선정되었기에 어쩔 수 없이 읽게 되었는데, 하는 말은 뻔하다. 가부장적인 남성 문화가 여성을 차별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골자이다.

저자가 페미니즘 이슈를 자신의 sns 에 적은 글들을 주제별로 모아 출판한 책으로 저자 서문에 따르면 관계, 젠더 폭력과 역차별론, 일상 속 여성혐오, 반성 네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엮은 책이라고 한다.

남성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지던 일들이 왜 여성혐오인지 밝히고자 노력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여성과 평등한 관계를 맺을 줄 아는 새로운 남성성이 구축됐으면 좋겠다는것이 작가의 바람이다.

근데 읽다보면 도대체 뭘 기준으로 주제를 나누었는지는 희미하다.

내용
4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평등한 관계가 그렇게 어려우세요?'라는 제목으로 여성들이 많이 차별받아왔고 우리 사회에 은연 중 존재하는 남 녀에 따른 시각 차이가 바로 가부장제 때문에 생겨난 여성 차별이라고 한다.

2장은 '단언컨데 남성 혐오는 없다'라는 제목으로 1장과 내용의 차이는 없다.

3장은 여성과 남성의 일상은 결국 다르다 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1장과 내용에 차이는 없다.

4장은 도태와 변화 그 사이에 놓인 남자들이라는 제목으로 남자들도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느낀점
이런 책이 의례 그렇듯 동의할 만한 것도 있고 말이 안되는 것도 많다.

책 대부분이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일반화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허수아비 오류도 상당히 보인다. 전형적인 선동용 책이 보통 이런 몽타주 구성을 띄는데, 착실하게 이 책은 이를 잘 실현하고 있다. 극단에서 발생하고 있는 여러 주제별 사례를 가져와서 하나의 목적에 끼워맞춘 다음에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예능, 드라마, 사법판결, 여경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는 몇가지 사례를 한 실타래로 묶어 이 모든게 남성문화, 가부장제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다.

책에 나온 몇 가지 사례들을 비판해보자면 이렇다.

1장에서 남자는 둔감하고 여자는 예민하며, 남자가 둔감한건 괜찮은데 여자가 예민한건 피곤하다는 식으로 사회가 규정한다고 일반화를 하더니 여성의 예민함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성차별이라고 한다.

여기서 사용하는 예민함의 정의가 뭔지 모르겠는데, 조금만 주변을 돌아봐도 예민함이 성별에 따라 나오는게 아니라 사람의 성격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통설로 자리잡히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여성 자취와 남성 자취를 비교했을 때 누가 더 청결한가라는 것에서 보통 여성이 자취할 경우가 더 더럽다는것이다(나도 경험적으로 동의한다). 반면 내 어머니는 나보다 훨씬 청결하다. 누가 더 예민한가? 성별이 아니라 타고난 특성과 주변 환경으로 구별되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불현듯 내 책장을 보니, 내가 보유하고 있는 장서 중 여자가 쓴건 5%도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책이 비문 학인데, 예를 들어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트러스트>는 시장경제가 바로 신뢰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시장경제가 '신뢰'라는 가치를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만들어내고 그것이 사회 수준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발견을 해낸 '예민 함'은 작가가 생각하는 예민함의 영역이 아닌가?

또 황당한 책을 소개하면서 전형적인 허수아비 오류를 범하고 있다.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를 들어 주류 경제학이 성차별적 관점을 옹호하고 있다고 한다는데 동의를 표하고 있다.

시장경제가 위대한 이유는 인류사에서 여성을 해방한 가장 명징한 제도가 바로 시장경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장경제에선 어떤 물건을 인종, 성별의 구분에 상관없이 그냥 싸고 잘만들면 살아남는다.

미 북부 주들이 왜 노예제도에 반대했을까? 에이브라함 링컨 같은 사람은 그것이 자유주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했기에 반대했다. 그럼 그 링컨을 따랐던 수 많은 사람들도 다 그렇게 생각했을까? 아니다. 북부는 농업이 아닌 상공업 중심이었고, 노예를 사고 관리하는데 들어가는 비용보다, 단순히 임금을 주고 일을 시키는 계약관계가 훨씬 비용이 적었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가 지금도 인정받는 이유는 그 정수를 '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자신의 이익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라는 단 한문장에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성별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 마치 아담 스미스가 성별문제를 등한시 한것 처럼 묘사하는 것은 형적인 허수아비 오류이다.

2장 도입부에서 불법 몰카 동영상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불법적인 성행위 장면 촬영과 이를 유포하는 것은 문제이다. 그 러나 이 책은 근원에 대해 지적하지 않고 있다.

첫째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소위 '국산' 야동이라 불리는 것들이 불법 촬영인지 아닌지 보는 사람은 알 도리가 없다.

둘째로,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그렇게 중요시 하면서 포르노 업계에 종사하는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존재하지 않는것처럼 여기는 태도이다. 대부분의 불법은 그것이 음지에 있기 때문에 존재 하는 경우가 많다. 포르노는 그 자체로 성욕을 순화시키는 기능이 있는데, 불법으로 일본과 미국의 야동이 돌아다니는걸 뻔히 보면서도 한국 내의 포르노 산업은 불법화 시켜놓고 있다.

여경 문제도 나오는데, 사실 여경문제는 전형적인 시장의 문제이다.

경찰의 가장 기본 업무는 치안이다. 만약 경찰을 민간에 맡겨놨다면 결국 시장에서 선택되는 것은 건장하고 무장했으며 규율이 잡혀있고 도덕적인 남성 집단으로 이루어진 단체가 치안을 맡을 확률이 가장 높다. 용병 산업에 종사하는 기업(PMC)에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가 그래서이다.

안을 시장에 맡겨놓으면 시장 실패가 일어날 수 있다는 가정 때문에 국가가 경찰력을 독점하고 있을 뿐 경찰의 수요와 공급은 시장의 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 책은 경찰이 하는 일은 치안 뿐 아니라 지능 범죄 등 많다면서 체력검사 같은 것을 기준으로 세우는게 말이 안된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저자는 범인을 실제로 잡을 뿐만 아니라 지능범죄 수사도 가능한 남경을 뽑기보다 체력이 안되서 범인을 잡는건 못하지만 지능범죄 수사가 가능한 여경을 뽑는것이 왜 말이 되는지 부터 설명해야한다.

대중음악 시장도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하여 평론가 서정민갑의 말을 빌려 '음악은 음악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바로 이 작가야말로 여성이 덜 뽑혔으니 여성을 더 많이 뽑으라고, 음악을 음악으로 인정하는게 아니라 오로지 성별의 차이만으로 비율을 맞추라는 성차별을 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낙태에 대한 문제도 이 책에 나온다. 겨우 최근에 들어서야 낙태죄가 폐지되었다고, 국가는 최근까지도 수십년 간 여성의 몸을 불법으로 규정해왔다고 하는데, 낙태는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태아를 인간으로 볼 것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생명 존엄성의 문제이기 때문에 낙태죄가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을 성별의 문제로보는 작가의 태도가 결론에 모든 것을 끼워맞추는 식이 이런 데서 잘 드러난다.

웃긴게 반지성주의를 꽤 길게 설명하면서 김어준을 비판하고 있다. 김어준이 팬덤정치를 형성하고 반지성주의를 부추기 면서 음모론을 생성한다는 것이다. 이런 반지성주의적 행태들이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남성들이 귀를 막고 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근데 안타까운것은, 많은 사람들은 극단적 페미니즘이야 말로 반지성을 대표하는 포스트모더니즘에 근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3장부터는 이 책은 도대체 뭘 말하는지 모르는 단계에 들어선다. 황교익을 비판했다가, 뚱뚱한 사람이 편견없이 잘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던가, 샤넬과 스타벅스를 좋아하는 여성을 사치 부린다고 욕하는건 잘못되었다던가...일상적으로 존재하는 문제를 다루는건지 잘 모르겠다.

이 책의 유일한 장점은, 바로 좌파 기득권에 의한 성폭력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안희정을 몇 번 언급하고 있다. 박원순 성희롱 사건 전에 쓰여져서 그런지 박원순의 성희롱 사건은 나오지 않는다.

4장에서는 남자들이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계속 강조하는데, 사실 내가 생각하는 정답은 남자가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하는게 아니라, 모든 인간이 자유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개인과 자유를 아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름에 대해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 나의 자유가 중요한 만큼, 나의 자유가 남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만 작동한다는 원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속된말로 '남이 뭘 하던 내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 ㅈ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자유주의자는 국가에 의한 개인의 자유 침해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현재 한국 페미니즘이 남성들한테 거부되는 것은, 페미니즘이 법과 국가를 등뒤에 업고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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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가장 큰 문제는 첫번째로 집단 죄의식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어머니 세대가 큰 차별을 받아왔다는 것을 잘 안다. 물론 그것도 의도적인 차별이라기 보다는 자연 그 자체에 저항하기 위해 남-녀로 이루어진 가족이 역할을 구분하고 지속해왔던 일종의 관습이라고 볼 수 있지만, 어쨋든 지금까지 그것이 내려온다면 이는 차별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현재 존재하지 않거나, 아니면 40~50대들의 태도에서 나오는 고착된 성차별적 사고방식을 모든 남자의 책임이라 고 돌린다는 것이다.

4장에 작가는 남자가 페미니즘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또한 계속 해야될 것이 반성, 반성 그리고 또 반성이라고 하는데, 반성은 개인의 영역이고 개인이 죄 지은데 대해 반성하는거지, 성별로 집단을 나누고 그 집단의 죄를 개인보고 반성하라는 것은 전형적인 집단 죄의식의 강요다.

게다가 모든 남성이 남성이라는 이유로 남성 문화를 향유해 왔다고 하는데, 그럼 수 많은 남성이 현재 직면해 있는 극단적 문제들인 자살, 노숙자 등과 같은 문제들은 설명되질 않는다. 이 말은, 모든 남자를 '남자'라는 집단 하나로 묶는게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두 번째로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 여성들은 생리통을 겪지만 남자는 이를 겪지 않기 때문에 생리통에 대해 남자는 입을 열지 못한다. 모르기 때문이다.

여성이 받아왔던 차별을 남자는 알지못한다. 그러나 알지 못한다고 마음대로 떠들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양성 평등을 얘기하고있는데, 양성 평등은 분명 추구해야 할 가치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페미니즘의 문제는 상당한 영역에서 여성 우월주의를 주장한다는데 그 문제가 있다.

세 번째는 그 어디에도 자기반성이 없다는 것이다. 작가는 1장 챕터 3 '왜 안 만나 주냐고 협박하는 김유정의 후예들'에서 이렇게 서술한다.

가부장제 사회는 여전히 정상 가족을 만들어 가족을 지키고 생계를 부양하는 남자다움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남자다움을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보편적 주체가 되지 못하는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 남성들은 '피해자 되기' 방식을 택한다.

- 1장 33쪽


즉 현대에 이르러 여성의 사회진출이 확대되면서 여성의 뛰어남이 증명됐고, 평소에 여성을 자기 아래라고 생각했던 남성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는 뜻이다.

근데 이 책 전부에 걸쳐서 여성의 경우는 그 어디에도 자기반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문제는 남자탓, 남성문화탓, 가부장제 탓이라고 하면서 1장에서부터 남성이 남탓을 한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들어 맘충이란 단어의 경우, 물론 단어 뒤에 -충이라는 어미를 붙여 벌레라는 의미를 사용하는건 안좋지만, 맘충 자체는 존재하는 현상이다.

우리는 아기를 데리고 다니는 여성을 맘충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 지위를 이용하여 말도 안되는 짓을 하는 사람을 맘충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럼 어느 선에서는 자기 반성이 시작되어야 하는거 아닌가?

마지막으로 이 책은, 인간과 남자에 대해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저자가 남자인데도 남자를 이해하지 못하는건 좀 특이한 현상이긴 하다.

젊은 남자들이 원하는건 합리성, 공정성, 이성이지 감성, 떼법, 마녀사냥이 아니다. 많은 남자들은 윗세대에 존재했던 남녀 차별에 대해 동의한다. 그러나 지금 여성이 받는 임금이 남자에 비해 70%라던가, 여성 CEO가 없는 이유는 유리천장 때문이라던가 하는 식의 비이성적인 주장은 거부한다.

인간의 경우, 스포츠와 같아서 예를 들어 축구의 경우 우리가 축구장 안에서 발로 축구를 하는 동안 어떤 플레이든 자유이지만, 공을 손으로 잡으면 안된다는 원칙이 있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인간이고 진화의 산물이기 때문에 생물이 가지고 있는 종의 특성과 한계가 있다. 남녀간의 차이는 대부분 거기서 기인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이를 고려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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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존재하는 래디컬 페미니즘은 막시즘과 동일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이데올로기다. 막시즘이 제시하는 인간은 이렇다.

"인간은 계급투쟁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속에 발버둥치다가 스러져가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종적이고 필연적으로 오게 될 계급투쟁의 역사를 해방하는 프로레타리아트 혁명에 헌신하는것 만이 인간이 구원받는 유일한 길이다"

페미니즘은 이렇다.

"여자는 남녀 투쟁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 속에서 발버둥치다가 스러져가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종적이고 필연적으로 오게 될 남녀 투쟁의 역사를 해방하는 페미니즘 운동에 헌신하는 것 만이 여성이 구원받는 유일한 길이다"

이런 사고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는 성별 문제로 치환된다.

많은 남자들은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파괴적인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이는 그들이 갖고있는 행태들이 막시즘에 그 베이스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막시즘의 베이스는, 설령 막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르상티망(앙심)이다.

또한 사고방식의 일차원성은 인류가 가지고 있는 생물학적 또는 진화적 역사와 한계를 모조리 부정하고 있는데, 인간 또한 600만년에 걸친 진화의 산물인 만큼 종의 한계가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진화 과정속에서 축적된 본성을 이해함으로써 오는 과학적 이해를 부정하고, 현재 눈에 보이는 문제들은 모두 가부장적 남성문화, 나아가 특히 서구에서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남성문화가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남성문화는 아주 어릴 때부터 사회 구조에서 오는 남녀 성역할 세뇌 및 교육 때문이라고 주장하는데, 웃긴건 양성 평등이 실제로 실현된다면 오히려 반대의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남녀의 자율적인 선택이 확대될 수록 성별간의 차이는 커진다.

예를들어 여성을 부당히 차별하여 벽돌공이 되는 것을 막는 사회는 분명 나쁘다. 우리는 여성이 벽돌공이 되는데 부당한 차별이 없는 사회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부당한 차별이 없어진다는 것은 여성이 벽돌공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이를 선택하는 비중이 증가할 것이라는 것을 전혀 증명해주지 못한다.

즉, 모든 직업에서 남녀간의 사회적 차별을 없앤다면, 여성은 자신의 특성을 사용할 수 있고 관심사를 확대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고, 남성도 동일하다. 어느 여성이나 벽돌공이 될 수 있다고 해도 대부분의 여성은 벽돌공이라는 직업을 기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에 기인한다.

스칸디나비아의 사례가 이를 잘 드러내는데, 어느 나라보다 양성 평등에 가까워지고 있는 스칸다니비아 국가들에선 오히려 남성과 여성의 직업 선택에 있어서 차이가 커지고 있다.

이 책은 마지막 문장에서 이 책을 보는 남성들 모두가 페미니즘을 공부하라고 하는데, 나는 이 저자에게 자유주의가 뭔지 공부하라는 말을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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