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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마리 앙투아네트 - 엔도 슈사쿠

어빈2 2021. 8. 11.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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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엔도 슈사쿠

평점 9

 

개요

그리스도교 소설가로 유명한 엔도 슈사쿠는 굳이 종교 문학에 한정된 작가가 아니라 역사 소설에도 일가견이 있다.

 

소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엔도 슈사쿠가 1979-80년 아사히 신문사를 통해 출간한 소설로 원래 제목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이지만 한국 번역가에 의해 <여혐의 희생자 마리 앙투아네트>라고 바뀌었다.

 

'여혐'이라고는 하나 페미니즘적 뜻은 아니고 프랑스 혁명의 광기의 창끝이 마리 앙투아네트로 치달아 갈 때 사용된 수단 이 바로 근거없는 포르노그라피고 그것이 바로 '여혐'이라는 것이다. 굳이 현대의 비슷한 의미를 찾아보자면 정치적 성향 에 따라 침묵하며 페미니즘을 오로지 수단으로만 사용하는 모리배들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책 서문에는 마리 앙투에네트에게 씌인 근거없는 포르노그라피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귀족들 과의 염문설에서 부터 시할아버지 루이 15세와의 근친, 친할아버지와의 근친까지, 심지어 마리 앙투아네트의 9살난 아들 과의 근친까지 근거없는 포르노그라피로 퍼지면서 소위 말하는 '저년 죽여라'식의 마녀사냥이 있었다고 한다.

 

이 소설은 그런 상식들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끝까지 왕비로서 위엄을 지키기 위해 행동한 마리 앙투아네트, 급진적 혁명을 좋아하는 마그리트, 혁명 속에서도 이성과 존엄을 지키려고 했던 아녜스 수녀의 이야기를 통해 과연 프랑스 혁명이 정말로 긍정적이기만 한 사건이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내용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평화를 위해 정략 결혼을 한다. 결혼 당사자는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의 아들 루이 오귀스트(루이 16세)와 오스트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막내딸 마리 앙투아네트이다.

 

14살의 어린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로 오게 되는 행렬을 지켜보던, 가난하고 가진것 없는 마그리트는 강렬한 증오에 휩쌓인다.

나는 이렇게 가난하게 사는데...저년은 도대체 뭐라고 다 가지고 있는거지?

미워 죽겠어!

 

마리 앙투아네트는 너무도 착한, 그러나 군주가 되기엔 어리석은 루이 16세를 바라보며 실망 속 베르사유 궁전 생활을 시작한다.

 

막내딸로 철없이 자란 마리 앙투아네트는 테레지아 여제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알량한, 젊은 치기에서 비롯 한 정의감에 베르샤유 궁전의 정치질에 자신도 모르게 개입하게 되고 하나 둘 정적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어느날 루이 15세가 천연두로 사망하게 되고 루이 오귀스트가 루이 16세로 등극하면서 마리 앙투아네트는 왕비가 된다. 그러나 왕이 되어서도 착하기만 한 남편을 바라보며, 또한 세간에 들리는 불온한 혁명의 움직임을 들으며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왕실이, 자신과 남편 그리고 자신의 자식이 위험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 속에 살게되고 이를 잊기 위해 사치와 향락에 몰두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프랑스는 치료할 수 없는 부패와 신분적 병폐의 늪에 빠져있었다.

 

처음엔 평화의 아이콘으로 프랑스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히려 프랑스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의 아이콘이 되며 '오스트리아 화냥년'이라는 경멸과 비난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다.

 

한편 마그리트는 가난한 생활 속 서민이 겪는 아픔을 겪으며 결국 창녀가 되나,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격렬한 증오를 계속 간직하며 오직 마리 앙투아네트를 무너뜨리기 위한 일만을 하고싶어 한다.

 

정처없이 떠돌던 마그리트는 수녀원에 맡겨 지게 되고 거기서 아녜스 수녀를 만난다. 아녜스 수녀는 기존의 그리스도교가 존재하는 부패와 악습에 침묵하고 오히려 그 선봉이 되고 있음에 불만을 갖고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다가가려고 사회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수녀이다.

 

결국 프랑스 혁명은 시작된다.

 

혁명 속에서 우유부단한 루이 16세는 혁명의회의 요구에 따르고 주변의 기회주의적 귀족들은 모두 달아나 고립되기 시작한다. 몇 번 탈출을 시도하나 모두 실패하고 오히려 프랑스 사람들의 비난만 사게되어 결국 짜 놓은 각본 속 루이 16세는 처형당한다.

 

프랑스 사람들이 혁명의 광기에 휩쌓여 피 비린내 속에서 살 때 혁명 의회는 자신들 내부의 권력다툼에 무너져가고 있었는데, 그 무너짐을 숨기고 관심을 돌리기 위해 결국 마리 앙투아네트까지 사형시키기로 결정한다.

 

약탈과 살육의 광기 속 아녜스 수녀는 자신이 바란 혁명은 이런게 아니었음을 절감하게 된다. 반면 마그리트는 혁명 시민들이 행진하며 창 끝에 어떤 귀족의 목을 꼽고 다니는 것에서 알 수 없는 기쁨과 흥분을 느끼며 함께한다.

 

결국 짜여진 모욕 속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형 판결을 받게 되고, 사형날까지 그녀를 탈출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 었느나 그 제안을 물리치고 '왕비로서 죽겠다'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끝까지 왕비의 위엄을 잃지 않은 채 단두대에서 처형되며 소설은 끝난다.

 

느낀점

책의 제목이 의도적으로 바꼈는데 다 읽고 나서는 악의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특히 소설의 뒷 부분을 읽을수록 번역가가 정치적으로 해석하여 제멋대로 붙인, 잘못된 제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이 세 명의 등장인물을 통해 정치적인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포커스는 혁명의 광기를 드러내는것, 그리고 역경 속에서 끝까지 왕비로서 위엄을 잃지 않고, 어머니로서 자식들을 보호하며, 아내로서 남편과 운명을 함께하려고 한 어느 인간의 위대함이 그려져 있는 것이지 마리 앙투아네트가 얼마나 여혐에 의해 사형당했는지를 그리고 있는 소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멋대로 바꾼 번역가는 제목을 통해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책을 읽으려는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주입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다.

 

더불어 책값이 너무 비싸다.

 

2권짜리 책으로 나왔고 한 권이 360페이지 정도 되지만 가격이 25,000원이다. 2권 다 사면 5만원이다. 600~700페이지 되는 비문학도 보통 3만원 대인걸 감안하면 소설이 5만원이라는 것은 너무 비싸다.

 

책 서문에 추천사를 적은 교수는 이 책을 지금 출간하는 이유가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 보듯이 한국도 별반 다를게 없다는 것을 느껴서라고 하는데, 그러면서 책값을 5만원을 받으면 누구보고 사서 읽으라는 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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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는 정말 대단한 소설가이다.

 

첫 부분을 읽을 때는 등장인물을 다루는 부분에서 조금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역시나 그는 대가였다. 그는 이 책에서 '과연 프랑스 혁명이 상찬할 만한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자유 평등 형제애'주장을 했던 프랑스 혁명을 마치 인간사의 위대한 사건이었던 것처럼 배운다. 그러나 엔도 슈사쿠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마그리트, 아녜스 수녀를 통해 '프랑스 혁명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진짜야?'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책이 진행 될 수록 각자의 이데올로기로 대표되는 사람들이 부딪치는 모습을 보면 치밀한 구성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또한 광범위한 사료를 바탕으로 역사소설을 쓰는 엔도 슈사쿠의 작가적 프로페셔널리즘 덕에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새롭게 알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파리에서 혁명 시민군이 조직된 후 그들이 무기고를 탈취하고 바스티유를 습격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발어지는 일들에 대한 묘사는 역사 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이 무엇인지를 잘 나타냈다고 생각한다.

 

혁명 지도자들이 유지하려고 하던 질서와 그런 질서 따윈 가볍게 무시하는 시민군들의 광기로 이뤄진 약탈과 살육은 혁명의 광기가 무엇인지를 잘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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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후기에서 이 책은 마그리트의 급진적 혁명주의, 마리 앙투아네트의 왕정주의, 아녜스 수녀의 온건적 혁명주의라고 각 인물이 세사상을 대표한다고 한다.

 

그러나 작가는 아녜스 수녀의 대사를 통해 자신이 하고싶은 말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마리 앙투아네트가 왕정주의를 대표하고 있다는 분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철없는 왕세자비가 역경을 통해 위대해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을 뿐 그녀 스스로가 어떤 정치철학이 있어서 왕비로서 위엄을 지키고자 한 것은 아니다.

 

아녜스 수녀는 수녀였지만 존재하는 병폐에 침묵하는, 심지어 용인하고 앞장서는 교회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한 끝에 수녀를 그만두고 혁명에 참여한다. 그녀는 누구보다 혁명의 길이 자신이 믿는 그리스도의 길이라고 생각했지만 혁명의 피비린내 속에서 그 길이 틀렸음을 깨닫는다.

 

이는 그녀의 몇몇 대사에서 드러난다.

하느님! 이게 제가 바라던 그 혁명입니까...

2권 64쪽 아녜스 수녀의 독백 중
"전 아녜스라고 합니다."

"전 스웨덴 사람입니다. 입헌파면 당신은 과격파 의견에는 반대합니까?"
 
"네 물론 혁명에는 찬성했었죠. 프랑스에서 위선과 착취와 빈곤이 지속되는 한, 진정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실 현되지 못할 테니까요. 하지만 혁명이라는 이름하에 살육과 폭력이 당당히 자행되는 걸 보고, 전 그것도 하나의 적폐라고 생각지 않을 수 없었어요. 아무리 선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한계를 넘어서면 악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코뱅 당에는 찬성할 수 없습니다."
 
"그럼 당신은 입헌파로서 군주제 폐지에는 반대하는 거군요?"
 
"아뇨. 언젠가 군주제도 사라져야한다고 생각해요. 비록 국왕과 왕비에게 죄가 없더라도 국왕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조직은 역시 악에 속하니까요."
 
"그럼 국왕과 왕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과격파들은 재판에 회부해서 단죄해야 한다고..."

"아뇨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은퇴하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당신은 역시 국왕과 왕비에게 죄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두 분 다 너무나 순진하셨겠지요. 백성들이 빈곤에 허덕이고 굶주림에 기쁨도 희 망도 없이 살아가는 프랑스의 실상을 알지 못하셨죠. 그러나 순진하다는게 곧 무죄임을 뜻하는건 아니에요. 그 분들은 국왕이고 왕비시니 하나의 상징이죠. 상징인 이상 죄가 있다고 생각해요. "
 
"그렇다면 죽음으로 죄를 보상해야 합니까?"
 
"아뇨. 자진해서 왕위를 버리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한 개인으로 살아가시면 된다고 생각해요. "

"그럼 당신은 왕과 왕비를 단죄하고 처형하는 것에는 반대하는군요?"

"그렇죠. 그건 지나친게 아닐까요? 그 사람들을 죽이는게 과연 이 혁명에 꼭 필요한 걸까요? 상징은 근본적으로 제거해야 한다고 과격파들은 말하지만 그 방법은 인간을 정치적인 면에서만 바라보고 하나의 인격으로 바라보 지 않는 태도입니다. 인간을 단순히 정치의 도구로만 여기고 인격으로 간주하지 않는 혁명이란, 그리스도교 신자인 제겐 정말 끔찍한 것으로 여겨져요. "

2권 중 아녜스 수녀와 페르센 백작의 대화 중

 

작가는 의도적으로 중심인물들이 우연적인 만남을 통해 정치적 이야기를 하도록 종종 구성 하고 있는데, 이는 문학으로써는 문제점임과 동시에 이 책이 순수 문학이 아니라 작가의 정치적 사상을 이야기 하는 책임을 뜻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이 대단한점 중 또 하나는 마그리트라는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프랑스혁명 군중의 심리를 지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혁명주의자들이 무슨 거대한 이상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 마음 깊은 곳엔 오직 원초적 르상티망(앙심)만이 있다는 것이 마그리트로 잘 형상화 되어있다. 이 책은 수시로 다양한 인물들의 르상티망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이는 평 소 수동적인 마그리트가 오직 마리 앙투아네트를 향한 증오가 실현되는 방향으로만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그녀가 광기와 피비린내 속에서 미소를 짓는 모습을 통해 극대화되고 있다.

 

그리고 아녜스 수녀의 처형과 마리 앙투아네트의 처형을 바라 보는 마그리트의 심경을 통해 그녀가 가지고 있던 앙심은 다만 부질없는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작가는 여러 묘사를 통해 대중을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 파리 백성들로 부터 사랑을 받는다고 느끼며 실제로 그들에게 사랑받는 왕비가 되고자 하며 파리의 백성들도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습에 환호하지만, 그 호의는 거짓과 왜곡을 바탕으로 순식간에 하늘을 찌르는 증오로 변한다. 애초에 처음부터 그들의 마음속에는 단지 가십거리가 필요했을 뿐 그 가십의 언어와 감정이 어떤것인지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작가는 책에서 "대중은 이런 가십거리 에 자진해서 속고 싶어한다"고 하며 대중의 심리를 아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결국 짜놓은 각본 속에서도 자신은 왕비로서 죽겠다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의연함과 위대함은, 이를 단두대로 보냈던 파리의 혁명정부가 보여주는 비인간성과 비교되면서 '그래 니들이 프랑스에 만연한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혁명을 한다는건 알겠어. 근데 그래서 너네들이 이룬게 뭔데? 인간의 위대함을 거짓과 왜곡으로 짓밟고 피비린내 속에서 이루고자 한 게 진짜 자유와 평등이냐?' 라고 말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어렴풋이 느끼게 해 주었다. 

안녕 마그리트, 안녕 내가 사랑한 민중들.

혁명은 옳아.

하지만 그건 인간을 존중하기 위해서지 인간을 모욕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야.

2권 292쪽 아녜스 수녀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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