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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한글의 발명 - 정광

어빈2 2021. 8. 11.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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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정광
평점 9

개요
이 책은 한글이 어떻게 발명되었는가를 세계적인 언어학자인 정광 교수가 자신의 이론을 총집산해 쓴 책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인,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훈민정음 창제에 온 힘을 쏟았고, 기적적으로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글인 '한글'을 만들었다는 '허무맹랑한 신화'는 틀렸다는게' 이 책의 골자다.

내용
이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장은 정광 교수가 주장하는 바를 일괄적으로 보여주는 개요고 2~5장은 이를 뒷받침하는 논문이다. 6장은 한글의 발명과 보급에 기여한 인물들에 대한 연구이며, 마지막 7장은 총정리다.

이 책을 읽어보고 싶은 일반인은 1장과 7장만 읽으면 된다.

저자가 머릿말에도 써놨듯이 이 책은 전문가들이 보는 책이다. 언어학에 지식이 없는 나같은 일반인들이 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특히 한자어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은 그냥 1장과 7장만 보는게 나을 정도다.

문장이 어려운 부분은 없으나, 나오는 단어들이 구글 검색에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으며, 특히 어떤 부분은 저자만의 혁신적인 이론들이라 위키백과, 나무위키에는 아예 그 내용이 등장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저자는 세조 5년에 발간한 <월인석보>가 구편과 신편으로 나눠져 있고, 구편은 세종 생전에 발간됐다고 하는데, 위키 어디를 뒤져봐도 <월인석보>가 두 권으로 나눠져있다는 말은 없다.

 

이처럼 혁신적인 이론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기존의 통념을 박살내는데 아주 좋은 장점이기도 하다. 훈민정음이 백성의 애민정신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꿈같은 소리에 이상함을 느낀적이 있다면, 이 책을 아주 강력하게 추천한다.

정광 교수의 문제의식은 이렇다.

세종대왕이 문자를 모르는 어리석은 백성들을 위하여 배우기 쉬운 새 글자를 만들어...이 문자는 세종이 혼자서 사상 유례가 없는 독창적인 문자를 만든 것이라고 믿는다.
p 15


많은 사람들은 세종이 애민정신에 입각해 기적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인 한글을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언어'는 과학의 분야다.

'기적'이란 말은 종교에서나 통하는 용어이지 학문의 세계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말이다. 왜냐하면 과학에서는 기적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p 27


이 부분이 저자의 문제의식을 명확히 드러내며 또한 학자로서의 양심을 잘 드러내고 있다.

과학적 방법론에 입각한 학문적 어프로치만이 학문의 세계에서 통용된다는, 즉 이 책도 한글의 역사를 다룬 책이고 역사는 사회과학의 분야이기에, 동시에 언어학을 다루는 과학이기에, 기적같은 소리 하지말라는 저자의 고고함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정광 교수는 무작정 한글이 독창적이지 않고 비과학적이라고 말하는게 전혀 아니다. 어느 부분까진 독창적이고 어느 부분이 과학적인가 그 선을 과학적 방법론과 학자적 양심에 따라서 가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새로운 주장들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그 주장들 중 우리가 훈민정음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을 비판하는 부분과 어떤 부분이 한글의 대단한 점인지를 구분하여 보면 좋을 것 같다.

1. 한글의 독창적인 부분은 무엇인가?
한글은 파스파 문자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글자 형태는 독창적이다. 한글이 원나라의 파스파 문자의 영향을 받아 제정된 것이라는 주장은 이미 오래전 부터 외국 학자들에 의해 주창되고 있었으나 국내 연구자들은 이를 부정하는 추세였다.

정광 교수는 파스파 문자의 영향을 많이 받은것이 맞다고 주장한다. 참 대단한게, 파스파 문자를 처음으로 온전히 연구하여 세계에 발표한 사람이 바로 정광 교수다. 이 덕에 세계적인 언어학자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정광 교수는 책에서 훈민정음을 이해하고서야 비로소 파스파 문자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몽고자운>(파스파 문자 문헌)은 파스파 문자를 제정하고 당시 중국의 표준어인 한어의 한자음을이 문자로 정리하여 편찬한 운서이다. 따라서 조선의 {해례본}<훈민정음>의 지식이 없이는 접근하기 어려운 책이다.
p 303


바꿔말하면 훈민정음이 170년 전에 만들어진 파스파 문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외국 학자들은 더 나아가 한글의 자형도 파스파 문자를 그대로 베껴왔다고 하는데, 정광 교수는 이를 부정한다.

 

파스파 문자는 티베트 문자의 영향을 받았으나, 한글의 경우는 전혀 독창적인 방법으로, 모음은 천-지-인, 삼재의 상형이고, 자음은 발음기관을 상형하여 제자하였기 때문에 파스파 글자와 다르다는 것이다.

2. 한글은 왜 과학적인가?
1) 15세기에 제정된 훈민정음은 조음음성학의 이론에 입각하여 음운을 분석하고 문자를 제정되었다.

20세기 서양에서 발달한 조음음성학은 인간의 언어를 발성기관의 조음의 매커니즘에 의거하여 조음 위치와 조음 방식으로 나누어 구별하였는데, 훈민정음은 이보다 500년 앞서 만들어졌다.

물론 이것이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한글은 고대 인도의 음성학(기원전 800~150년)에 이론적 근거를 두고 있다. 기서 한글 창제에 불교 승려들이 많이 참여했음을 알 수 있는데, 불교의 비가라론, 즉 성명학의 이론적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 인도의 음성학은 불경에 포함되어 전해진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원래 오명의 하나인 성명, 즉 섭타필태는 음성으로 의미를 전달하고 깨닫게되는 인간 능력의 하나를 말한다. 이에 대한 연구를 비가라론이라고 하고 번역하면 성명학, 또는 성명기론이라고 한다.

파니니의 <팔장>을 비롯한 비가라론은 팔만대장경에 포함되어 고려에 들어왔고 고려말 조선초에 많은 학승들이 이를 배워 알고 있었다고 한다.

고려말 조선초의 승려들은 팔만대장경 등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던 성명학의 전문가들이었는데, 바로 이들의 참여가 훈민 정음의 음성학적 이론적 체계에 큰 도움을 줬다는 것이다.

2) 중성이라 하여 모음을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하였고 음절 형성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았다.

이처럼 음운을 대립적인 구조로 보고 이를 체계적으로 파악하는 구조음은론은 20세기 서양에서 발달하였다. 훈민정음은 이 또한 500년 앞서고 있다.

3) 1970년 노암 촘스키가 주장한 생성음운론의 이론에 의거하여 설명할 수 있는 변별적 자질을 문자화한 세계 최초의 문 자로 평가된다.

 

자 이제 좋은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3. 한글은 왜 만들었는가?
동아시아에서 중국 주변 여러 민족들은 중국과의 언어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자를 사용하여왔다. 그러나 고립적인 문법 구조의 중국어를 표기하도록 고안된 한자는 교착적 문법 구조의 언어를 기록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문자였다.

여기서 고립어란, 쉽게 말하면 조사가 없는 언어를 뜻한다. 교착어란 명사와 명사 사이에 이를 성립시켜주는 조사가 필요한 말을 뜻한다. 예를 들어 한자로 '광복'은 빛을 되찾는다는 뜻이 아니라 (목적어)를 찬란히 되찾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광복은 광복주권의 줄임말이다.

이처럼 조사없이 어순을 통해서 사용된 단어의 문법적 역할이 정해지는게 고립어이고, 조사를 통해 명사들이 문법적 역할이 정해지는 말을 교착어라고 한다.

동북아시아의 여러 민족들은 중국의 거대한 한자문화에 흡수되지 않으려고 한자를 고쳐 쓰거나 한자가 아닌 새로운 문자를 제정하는 등 피나는 노력을 통해 자신들의 고유 문화를 유지하려고 하였다.

7세기의 티벳 문자, 요의 거란문자, 금의 여진문자, 위구르 문자, 파스파 문자가 모두 그런 이유로 제정되었고, 한글은 이 전통을 이어 만들어진 발음기호이다.

고려 전기는 중국 북송과 한자의 발음이 유사하여 한문으로 서로 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원나라의 건국으로 북경이 수도가 되면서 북경의 언어가 새롭게 중국의 공용어가 되었다. 이 언어는 원나라 북경의 토박이말로, 북송이나 당나라의 표준어와는 전혀 다른 발음의 언어였다.

따라서 같은 한자라도 발음이 달라서 한문으로 서로 통할 수가 없었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나랏말쌰미 딍귁에 달아 문쟈와로 서로 샤맛디 아니할셰"의 진짜 의미이다.

세종은 중국의 한어음을 고칠 수는 없으니 우리 한자음을 고치려고 한 것이다.

때문에 한글은 사상 유례가 없는 문자도 아니고 독창적인 것도 아니며, 우리말을 표기하려는 목적보다는 어디까지나 한자 교육, 그것도 백성들에게 새롭게 가르쳐야 하는 개정된 한자음의 표기를 위한 발음기호로 제정되었다(물론 나는 아래에도 서술하겠지만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4. 한글의 진실
1) 세종의 애민정신으로 새로운 글자를 만들었다?
훈민정음 <언해본>에 나오는 '나랏말쌰미'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 세종이 불쌍한 백성들을 위해 새롭게 '글자'를 만들 었다는 것은 틀렸다.

훈민정음에서 '음'이란 한자는 어떤식으로도 '글자'로 해석될 수 없으며 '정음'이란 당대 중국의 왕조가 표준어로 지정한 발음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훈민정음은 중국 당대의 왕조(명나라)가 표준어로 지정한 북경 지역의 중국어 발음을 하기 위한 '발음기호'라는 것이다.

고려 전기까지 사서오경으로 배운 한문으로 중국인과 소통이 가능하였는데, 원나라 이후 북경의 한어 발음이우리의 전통 한자 발음과 매우 달라서 이 말과는 전혀 통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 한자음을 수정하여, 예전처럼 한문 학습에 의하여 중국과의 의사소통이 어느정도 가능하게 하려는의도로 동국정운식 한자음을 구상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p 17


이후 '변음토착'의 난제를 해결한 다음에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월인석보>를 거쳐 우리말 표기에도 사용 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되면서 비로소 '언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새로운 중국어의 한어음(한자를 읽는 당 대 왕조의 바른 중국어 발음)을 표기할 때에 사용한 새 문자이기 때문에 정음이라 불렀고, 동국정운식 한자음을 표음할 때는 훈민정음이라 불렀으며 우리말과 우리 한자음을 적기 위한 것으로 최종적으로 발전한 것을 언문이라고 불렀다.

훈민정음을 낮춰 부르는 말이 '언문'이라는 말들이 있는데, 이는 틀린 주장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변음토착의 난제 해결이란, 기존에 한국어에 있는 조사를 기존에 是, 之 등의 한자를 차용해서 쓰곤 했는데, 훈민정음이 이 조사를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예를들어 '세종어제 훈민정음'에서 國之語音 異平中國이라고 하면, '나라의 말소리가 중국과 다르다'라는 뜻이지만, 변음토착의 난제를 해결함으로써 우리 고유의 교착어를 훈민정음으로 國之語音 異平中國 같이 조사를 붙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발음기호로 만든 훈민정음이 우리나라 말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추후 깨닫게 되면서 비로소 우리가 알고 있는 한글이 되었다는 것이다.

2) 세종이 어느날 뚝딱 혼자서 훈민정음을 만들었다?
집현전 최만리의 상소를 통해 봤을 때, 집현전 학자들이 훈민정음 창제에 도움을 주진 않았다.

그러나 세종의 친간팔유로 불리는 신숙주, 성삼문 등 학자들이 큰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다. 또한 세자를 비롯한 아들과 딸, 집안 식구들의 도움이 컸으며, 이 책은 큰 도움을 준 집단으로 불교의 학승(학문을 배우는 승려)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한글이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세종의 생존 시에 여러단계에 걸쳐 조금씩 사용 범위를 넓혀갔으며, 적어도 십여 년의 세월의 실험을 거듭하여 세상에 나온 것이라고 한다.

3) 10월 9일이 한글날이라고?
10월 9일을 한글날로 하고 있는 이유는 해례본<훈민정음>이 간행된 정통 12년(1447년, 세종 29년) 9월 상한을 훈민정음이 반포된 날로 보고 이를 양력으로 환산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언해본<훈민정음>이 <월인석보>의 권두에 부재되어 간행된 것이 신문자의 반포라고 본다. 세종 28년 10월 <월인석보>의 구권이 간행되었고 이때를 훈민정음의 반포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해례본<훈민정음>은 성삼문, 신숙주 등이 참여하여 만든 것으로, 세종이 훈민정음 반포 2달도 안되어서 <운회>라는 것을 번역하라고 명하자, 최만리 등 신하들이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반대한것에 피드백을 얻어 신하들에게 설명하고자 만든 것이다. 그래서 <해례본>은 일반 백성들 보고 이해하라고 만든 것이 아니라 한자가 많고 성리학 이론이 깊게 베여있다. 즉, 관리들을 위한 해설서라는 것이다.

그 한달 뒤인 <언해본>이 월인석보 구권이 간행되면서 권두에 붙어 나오는데, <언해본>이 백성들이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북방 민족들이 새로 문자를 제정하여 반포할 때는 왕의 이름으로 나오는게 일반적인 관례인데, <해례본>은 왕의 이름으로 나온 것이 아닌 해설서일 뿐이다.

4) 한글이 독창적인 문자라고?
한글은 고대 인도의 음성학 이론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글자이다.

불교에서는 비가라론 또는 성명기론, 성명학이라고 부르는 고대 인도의 발달된 음성학이 팔만대장경을 통하여 이땅에 소개되었고 당시 학승들은 이에 대하여 깊은 지식을 갖고 있었다. 신문자의 반포를 불경인 <월인석보>를 통해 간행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또한 한글이 동아시아 여러 민족의 표음문자 제정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제정된 것으로 본다. 특히 한글보다 불과 170년 전에 제정된 '파스파 문자'가 한글 발명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한다.

파스파 문자와 한글과의 비교가 큰 비중으로 이 책에 다뤄지고 있지만, 이는 내가 더 이상 이해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서 여기 옮겨적진 못할 것 같다.

세계의 문자학계에서는 이미 한글을 파스파 문자의 영향을 받은 북셈(northen semitic)문자 계통으로 본다고 한다.

 

파스파 문자는 몽고가 세계를 정복한 이후 만들어졌다. 칭기스칸 시절만 해도 위구르 몽고 문자를 이용하여 몽고의 통치 문자로 사용했지만, 이후 쿠빌라이 칸은 제국 문자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1269년 팍스파 라마를 시켜 41개의 자모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파스파 문자이다. 1269년 발표된 황제의 조령은 아래와 같다.

우리들이 북방에서 국가를 창업하여 속되고 간단한 옛 그대로의 것을 숭상하고 문자를 제정하는 데 게을러서 지금에 쓰이는 문자는 모두 한자의 해서나 위구르 문자를 사용하여 이나라 말을 표시하였다...그러므로 국사 팍스파에게 몽고신자를 창제하라고 특명을 내려서 모든 문자를 번역하여 기록하라고 하였다.
p 304


이렇게 만들어진 파스파 문자는 몽고의 지배언어가 되었고, 고려 또한 몽고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고려 말과 조선 초에 이미 한반도에서는 광범위하게 지배계층이 알고 있는 문자였다고 한다. 실제 기록들에 파스파 문자에 대한 역관 시험이 있었다는 점이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명나라가 들어서면서 명태조 주원장은 원나라 문화를 대대적으로 파괴하고 숙청했으며, 이때 파스파 문자로 기록된 것들이 대부분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멀쩡한 파스파 문헌은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에 있는 <몽고자운>이라고 하는데, 정광 교수가 그간 주목받지 못하던 <몽고자운>을 연구하여 세계에 알림으로써 파스파 문자를 온전하게 밝힌 최초의 학자가 된 것이다.

느낀점
이 책은 평생 살면서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어려운 책 top3에 들어간다.

철학서를 보면서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그 저자의 사고를 따라가지 못해 어려움을 느끼는 책이 있고, 아예 다른 언어로 쓰여서, 예를 들면 물리학 책같이 이해할 수 없어서 어려운 책이 있다.

우스갯소리로, 이과는 수학과 과학의 아예 다른 언어로 쓰인 어려움을 내세우고 문과는 베베꼬은 말의 난해함 또는 상징성을 내세워서 문과vs이과 와 같은 개그 코드로 사용되곤 한다.

이 책은 문과가 다른 언어로 책을 쓰고 있는, 문과인 사람이 과학적 시선으로 봐야하는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문체가 어려운건 없지만, 알아먹을 수 없는 단어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1장과 7장이라는 일반인도 알아먹을 수 있는 부분의 책 표지로 감싼 2~6장의 전문서적, 두 가지 책이 하나로 합쳐져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어려운 문장은 한 곳도 없다. 그러나 한 곳도 이해할 수 없다...2~6장은 다 이런식으로 서술되어있다.


이 책을 비록 다 읽었고, 정광 교수의 주장을 이해했지만, 그 이해의 근거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읽을 수록 비참해지기도 했고, 언어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이 정도로 대중과는 떨어져있는지도 처음 알았다.

그러나 이 책은 반드시 조명받아야 하는 책이다. 특히 최근에 영화 <나랏말싸미>가 개봉하면서 실제로 훈민정음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순진한 인식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2019년 개봉한 영화 <나랏말싸미>는, 송강호와 박해일 듀엣이라는 기대감을 내세웠다가 역사 왜곡 영화라는 뭇매를 맞고 혹평을 받았다. 당장 유튜브에 <나랏말싸미>를 찾아봐도, 사극의 완성도를 논하는 영화평보다 '감히 세종대왕의 한글 을 깎아내리고 역사를 왜곡해?'라는 평이 더 많다.

근데 그렇게 영화를 까내리는 사람은 <한글의 발명>을 읽어 봤을까? 이 책을 읽어보고 평을 해야하는 이유는, 영화 감독이 직접 <한글의 발명>을 많이 참조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영화 내적의 스토리, 갈등구조, 연출 등 영화 자체에 대한 비판이 아닌 역사 왜곡을 주로 이야기 할 요량이면, 적어도 <한글의 발명>을 읽어보고 비평을 해야되며, 만약 이걸 읽어봤으면 그런식으로 비평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물론 이 책에는 승려 신미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불가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불교 집단이 훈민정음 창제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지, 신미 혼자서 무언가를 했다는 식의 주장은 이 책에 없으며, 그 부분은 감독의 각색으로 보인다.

상식적으로 세종이 아무리 대단한 천재였다고 하더라도, 중국의 속국이었던 조선의 왕이 아무런 문맥도 없이 혼자 골방에 처박혀서 모든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글자'를 만들어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종교적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뜻한다.

게다가 이를 떠받치는 것이 세종의 애민정신인데, 세종의 '대왕'이라 불리는 이유는 백성의 왕이 아닌 양반들을 위한 왕이었기 때문이고, 세종이 해왔던 대명사대주의적 행동들은 그가 결코 중국의 뜻을 거스르고 독자적인 노선을 타는 것이 말이 안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런 사정을 잘 모르면서 뮤지컬 <1446>같은 세종을 다룬 작품에서는 연신 애민정신을 떠들면서 한글 창제의 위대함을 찬양하고 있다. 

정광 교수는 이에 대해 아주 아픈 질문을 던진다.

"한글이 과학적이라고? 도대체 뭐가 과학적인지 대답해봐라"

이 질문은 일반인에게 아픈 질문이다. 우린 한글을 가장 과학적이라고 하지만 뭐가 과학적인지 말을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어서 정광 교수는 전문가들 한테도 아픈 질문을 던진다

"훈민정음이 왜 ㄱ으로 시작하는지 대답해봐라"

이 지점이 바로 경계선이다. 일반인은 그저 훈민정음이 애민정신에 입각한 세종의 '대왕적'행동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전문가는 "ㅇㅋ 그건 알겠는데, 그래서 왜 ㄱ으로 시작하는데?"라는 질문을 던진다.

여기서 우리는 훈민정음이 더 이상 '신화'의 영역이 아니라 '과학'의 영역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참고로 정광 교수에 따르면, 파스파 문자는 티베트 문자의 영향을 받았는데, 티베트 문자는 인도 음성학의 이론에 의거하 여 제정된 것이라고 한다. 파스파 문자의 영향을 받은 한글도 당연히 티베트 문자와 이에 녹아있는 인도 음성학의 영향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7세기 티베트 문자, 13세기 파스파 문자, 15세기 한글이 모두 첫 글자가 ㄱ으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너무나 어렵다. 책 리뷰를 쓰면서 이해도 못하면서 그저 타닥타닥 쓰는 것이 마치 대학생때 인터넷 베껴가면서 과제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정광 교수의 주장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아마도 정광교수의 훈민정음/한글에 대한 분석이 사실에 더 가까울 것이다. 한국 역사는 국뽕을 걷어내야 대체로 맞다. 여기서 맞다라는 것은 '세계에 내놔도 객관적 시선으로 보기에 모순이 없다'라는 뜻이다.

이 책을 계기로 훈민정음에 대한 민족주의적, 국수주의적 이해를 벗고 객관의 눈으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어떤 것의 위대함과 유용성이 대단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것의 탄생의 고결함을 증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장점
▶한글 창제를 이유로 세종을 신격화를 반박할 수 있는 이론서이다.

▶한글창제의 비밀을 알 수 있다.

▶민족의 개념이 없던 시기에, 사서오경에 '백성'이 계속 강조된다는 이유로, 정말로 왕족과 양반무리들이 백성을 신경쓴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들은 계속해서 조선 판타지를 창작 중이다.

그러나 역사학이 보여주는 모습은 그와 정반대이다. 이 책은 언어학이 보여주는 그와 정반대의 모습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단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내용이지만, 책은 우리들이 읽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책의 문체가 어렵거나 안읽히는것은 아니지만, 언어학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이 많아서 도대체 무슨 단어인지조차 알 수 없는, 구글링에도 나오지 않는 내용들이 많다.

▶정광 교수의 한글에 대한 주장은 아직까진 정광 교수만의 가설로로 남아있는듯 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어학계는 정광 교수에게 반박을 하지는 못하는 상태다.

▶내 생각인데, 정광 교수가 주장한 동아시아의 전통을 이어 독자적 문화를 지키기 위해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주장은 틀린거 같다. 세종은 그 정도로 독자적이고 중국으로부터 조선을 떼어내어 하나의 독립국으로 생각한 사람이 아니다. 이는 이영훈 교수의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라는 책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세종은 지성사대의 시대를 시작한 사대주의자이지 조선이란 독립국의 국왕이라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 말인 즉, 세종 일생의 일관성에 비춰 봤을 때 그는 정광 교수의 주장대로 중국의 발음을 정확하게 발음하기 위해서 훈민정음을 만든 것이며, 이는 동아시아의 문자 제정 전통과는 무관한 것이란 뜻이다.

 

▶정광교수는 백성들을 교육하기 위해 언해본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이후 세종의 행보를 봤을 때 타당한 주장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이후 세종은 백성들에게 훈민정음을 교육하기 위한 그 어떠한 교육기관을 설립한 적도 없고 설립하려고 시도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설명문만 만들어놓고 이를 교육하기 위한 어떤 실천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실제로 세종이 백성들에게 가르치고자 한게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드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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