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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회고록 - 마리 라로슈자클랭

어빈2 2021. 8. 11.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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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마리 루이즈 드 라로슈자클랭
평점 7

개요
이 책은 프랑스 혁명기간 중 일어났던 프랑스 서부의 방데(Vendee) 지방의 전쟁을 경험한 귀족부인의 회고록이다.

방데 전쟁이란 프랑스 혁명기에 방데 지역에 살던 농민들이 혁명 정부가 시행한 왕정 폐지, 성직자 탄압, 루이 16세 처형, 30만 징집령에 대한 반대로 일어난 반혁명을 지칭한다.

흔히들 '성직자 기본법' 시행으로 기득권을 잃게 된 성직자들이 순진한 농민들을 꼬득여 들고 일어난 반란으로 알려져있었지만 근래들어 농민들이 자신들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일어난 봉기였다는게 연구로 밝혀졌다(성직자 기본법이란 혁명정부가 성직자들에게 강요한 법으로 성직자는 혁명정부의 헌법을 준수하겠다는 선서를 먼저 해야지만 성직자로서 활동할 수 있다는 법이다. 이에 선서를 거부한 성직자들은 혁명정부에 의해 탄압을 받았다).

이 회고록은 그 농민들의 당시 움직임을 세세히 전하고 있다.

방데 전쟁은 지금까지도 프랑스에선 쉬쉬하는 역사적 금기로 전통적 역사관은 위대한 프랑스 혁명에 반기를 든 반동으로 이해했다. 다행히 방데 지역의 특수성을 이해하게 되면서 구명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방데 전쟁이 금기화 된 이유는 당시 방데 지역의 거주민 60만명 중 약 20만명의 양민이 혁명정부에 의해 학살당했기 때문이다. 그 학살의 기록은 아직까지 남아있어서 그 처참함을 더하고 있는데, 노인부터 여성, 어린이, 갓난아기까지 가리지 않고 죽였으며 그 방법도 다양해서 총검으로 찌르는것 부터 해서 익사시키거나 압축기에 넣어서 죽이는 등 사악함이 이루 말 할 수가 없다고 한다.

때문에 방데전쟁은 프랑스 혁명의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건이며 이를 생생하게 다룬 <회고록>은 1차적 사료로써 가치가 높다고 한다.

내용
번역자 서문에 이 책의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어 그것으로 갈음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총 28장으로 구성되어있다.

1장은 저자인 마담 라로슈자클랭의 출생에서부터 1789년 5월 5일 프랑스 삼신분회가 소집될 때 까지의 저자와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태어났으나 궁전의 삶을 소상하게 전하고 있지 않고 자신의 가족에 대해서 많이 서술하고 있다.

2장은 삼신분회 소집부터 같은해 10월 6일 파리 민중들이 베르사유를 공격하여 강제로 왕실을 파리 튈르리 궁으로 옮겨 버린 이야기이다.

3장은 파리로 왕실이 옮겨간 후 저자가 파리를 떠나 프랑스 중서부의 가스코뉴 영지로 내려가서 살던 이야기다. 여기서 저자는 레스퀴르 후작과 결혼한다. 저자와 남편 레스퀴르 후자은 망명을 떠나는 길에 파리에 들렸다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남아있기를 권유하여 파리에 남게 된다. 1792년 6월 20일 파리 민중의 왕궁 공격을 목격한다.

4장은 1792년 8월 10일 파리 민중이 왕궁을 공격하여 사실상 왕정을 무너뜨린 사건에 대한 이야기다.

5장부터 이 책의 주요 내용인 방데 전쟁에 대한 기술이 시작된다. 5장부터 14장까지는 전쟁의 초기 방데군이 승승장구하 며 공화파를 상대로 승전하는 내용이다. 이 도중에 남편인 레스퀴르 후작은 전투에서 부상을 얻게 된다.

15장부터 21장까지는 패배하고 도주하다가 마지막 사브네 전투의 패배로 결국 방데군이 소멸되게 되는 이야기이다. 17 장에서 남편인 레스퀴르는 결국 부상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하게 된다.

22장부터 25장까지는 사브네 전투 패배 이후 브르타뉴 지방의 농가에 숨어살다가 1794년 7월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가 끝나 그해 말 사면될 때 까지 저자와 저자의 동료들이 겪은 이야기이다.

26장부터 28장까지는 저자가 남편인 레스퀴르 후작의 친구이자 방데 전쟁의 총사령관이었던 앙리 드 라로슈자클랭 후작의 동생인 루이 드 라로슈자클랭과 결혼한 이후 남편이 보르도 지방의 왕정복고운동에 가담하여 활동한 이야기이다.

느낀점
이 책에서 알 수 있는 놀라운점은, 우리가 프랑스의 혁명에 대해 배울때, 강고한 신분제에서 오는 착취와 병폐, 성직자들의 타락들에 못견디고 결국 민중들이 '자유, 평등, 형제애'라는 구호 아래 일어났다고 알고 있는데 반해 방데지역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5장부터 나오는 방데 지역 전쟁이 시작되는 묘사를 보면, 혁명 초창기에 방데의 주민들도 혁명의 대의에 공감하고 찬성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성직자들에게 혁명정부의 선서를 강요하고, 왕정을 붕괴시킨데 모자라서 루이 16세를 처형했으며, 나아가 1793년 3월 30만 징집령에 분노하여 농민들이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귀족들과 성직자들은 참여하지 않았는데, 농민들의 공격이 시행되고 그들이 승리하기 위해 귀족들을 찾아와 자신들을 이끌어달라고 하자 몇몇 귀 족들은 바로, 몇몇 귀족들은 부득이하게 그러나 영지의 농민들에 대한 책임감에 지휘관으로 참여하게 되고,성직자들은 일종의 군종 신부로서 참여하게 된다.

번역자 서문에는 이렇게 서술되어 있다.

서부의 귀족들은 교과서에 나타나듯이 농민들을 착취하는 특권지배계급이 아니었다.

프랑스 혁명기에 귀족들이 망명을 떠난 것은 비겁하게 도망친 것이 아니라 반혁명군에 가담하여 혁명을 무너뜨리기 위함이었다. 레스퀴르 후작처럼 부득이하게 프랑스에 남아 반혁명군에 가담한 귀족들은 무질서한 농민군의 선두에 서서 그들을 지휘 했다.

그들은 귀족으로서의 명예는 지켰지만 목숨은 지키지 않았다.

농민들도 순수했다. 그들은 귀족들에게서 착취당하지 않았기에 귀족들을 따랐으며, 혁명이 강요한 성직자민사기본법에 선서하지 않은 신부들을 존경했다. 농민들이 '가톨릭 근왕군'에 기꺼이 참여한 것은 농민-귀족-성직자 사이에 맺어진 신뢰 때문이었다.

착취하는 귀족, 무위도식하는 성직자의 이미지는 혁명이 혁명을 정당화하려고 만들어낸 가공의 이미지였는지도 모른다.

- 역자 해제


즉 당시 방데지역은 가난한 농촌이었고 저자의 서술에 따르면 영주와 영민, 성직자들이 깊은 유대관계를 갖고 있다고 한 다. 영주는 영민의 결혼식에 소소하게 참여하여 같이 술자리를 하고, 영민들은 주말마다 영주의 성에와 파티를 하며 영주 와 춤추는 등, 물론 과장된 부분도 있겠지만 마치 우리가 디즈니 만화에서나 볼법한 귀족과 농민들의 신뢰관계가 실제로 있었던 곳이 방데 지역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농민들은 깊은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성직자들을 존경했으며, 가난한 지역의 성직자들은 신앙심으로 그 지역에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물론 전쟁 중에 야심을 드러내는 귀족과 성직자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자신의 명예와 신앙을 지키며 죽어갔다는게 농민- 성직자-귀족간의 신뢰 관계를 더 잘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5장에서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 전쟁이 혹자가 이야기하듯이 귀족과 신부들이 부추겨 일어난 전쟁이 아님을 안다.

자기들에게 소중한 모든 것이 상처를 입고 과거에 누리던 행복 때문에 더욱 무거워진 멍에를 짊어진 그 불행한 농민들은 그것을 참을 수 없어서 들고 일어났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자기들이 신뢰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우두머리로 삼았다.

- 5장 76쪽


이들의 관계를 잘 나타내는 다른 서술도 있는데, 농민군은 군율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농민들이 들고 일어났고 농민들에 의해서 지휘관으로 선택된 귀족들은 지휘부를 구성하고 있긴 했는데, 농민들에게 군대의 규율을 강요하지 않았다. 전투에서 승리하면 농민들은 가족들과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각자 다 집으로 돌아갔으며, 귀족들이 그걸 막지도 않았다.

점령지의 경비도, 보초도, 순찰도 없었다. 정찰은 소수의 귀족들이 했으며, 공화파 군대가 쳐들어오면 각 지역에 파발을 돌리고 그러면 농민들이 너나할거 없이 각자 무장을 하고 식량을 챙겨 집결지에 모였다. 말 그대로 막장 군대라고 할 수 있으며, 그들이 이성으로 싸운게 아니라 정말로 자신들이 받은 상처를 참을 수 없어서 일어났음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그들은 전투 중에는 군율에 복종했다. 이 때문에 처음엔 공화파에 대한 학살을 자행하기도 했지만, 나중 가서는 무질서가 없어지게 된다. 약탈의 경우, 귀족들이 농민들의 사기를 올리고자 약탈을 허용해도, 약탈을 하면 신의 심판을 받는다는 생각 때문에 약탈을 저지르지 않는 모습들을 보면 이 농민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 전쟁에 참여했는지를 알 수 있다.

농민들의 순수함을 나타내는 또 다른 서술은 어떻게 보면 좀 웃프기도 한데, 전투 중에 적군 지역에 있는 십자가가 보이면 돌진하는 와중에도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고 다시 일어나 돌진하는 묘사가 있다. 그들의 신앙심이 어느정도 였는지를 잘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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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회고록인만큼 난잡하게 쓰인데다가 전쟁을 다루다보니 이름과 지명이 많이 나와서 잘 모르는 입장에선 복잡하게 느껴진다. 또한 방데 지역의 귀족의 입장에서 쓴 글이다보니 편파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많다.

방데 농민들은 선량하다는 직접적 서술이 많은데 실제로 그들이 그렇다 하더라고 이는 신뢰도를 깎아먹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뢰성을 높여주는 서술도 많아서 과장된 표현은 과장되었을 뿐 그 본질은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기도 하다.

이 책엔 마담 라로슈자클랭 본인의 처참함과 부끄러움이 많이 서술되어있다. 예를들어 전쟁터에서 도망가는 와중에 같은편 병사가 누군지 못알아보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막자 '자신은 임신한 불쌍한 여자니 도망가게 보내달라'고 처참하게 말하는 부분, 혁명 와중의 파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혁명 구호를 외치면서 도망갔다는 점은, 자신의 치부도 적나라하게 쓴 다는 점에서 신뢰성을 높여주는 부분이다.

물론 이 책은 회고록이기 때문에 편파성이 장점 또는 단점이라고 지적될 수는 없고 읽는 사람이 감안해서 읽어야 할 부분이다. 회고록은 일종의 증언이기 때문에 증거로서 밝혀진 사실을 더욱 풍부하고 잘 설명하는 역할을 할 뿐 그것 자체만으로 확고한 사실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방데 전쟁은 이미 방데 반란에서 '전쟁'이라는 명칭으로 격상되었고 파리 혁명의 폭력성은 사실로 밝혀졌기 때문에 이 책은 폭력성이 어느정도였는지를 풍부하게 설명해주는 좋은 1차 사료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책은 말했듯이 1차 사료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거나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혁명의 심리와 혁명의 폭력성에 관심이 많고 개인이 민중 속에서 어떻게 사라지는가에 대해 더 알고 싶기 때문에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사서 보게 된 것이지, 그런데 관심이 없으면 사볼 수 있는 종류의 책은 아닌거 같다. 이 책은 연구자들을 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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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이 정도의 책이 번역되어 나온다는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이 책을 번역한 김응종 교수의 저작과 번역서들의 목록을 보니 그래도 한국에 지적 충실성이 높은 교수가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엔 좋은 책이 나오면 몇 년 되지않아 모조리 절판된다. 최근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가 절판되었다가 <상상된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재출간 되었는데 언제 절판될지 또 모르는일이다. 너무 쉬운 책만 읽히고 뇌근육이 아파오는 책은 버려지는게 안타깝다.

장점
▶ 프랑스 혁명의 폭력성을 한 여인의 경험으로 잘 드러나 있는 책이다.

▶ 1차 사료로써 가치가 높은 책이고 한국에선 찾기 힘든 귀한 책이다.

단점
▶ 인명과 지명이 많고 문맥이 난잡하다.

▶ 일반인이 아닌 연구자들이 읽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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