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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 - 제바스티안 하프너

어빈2 2021. 8. 9.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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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제바스티안 하프너
평점 8

개요
이 책은 독일인 기자 출신이 쓴 히틀러 전기로, 1978년에 출간된 책이다.

오래된 책이라 이후 히틀러에 대한 새로운 분석에 의해 통념이 갱신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히틀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왜 그랬는지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은 히틀러 현상에 대해 설득력 있는 분석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단순히 히틀러를 유대인 학살 범죄자라고 생각하며 그 이상의 논의를 진행하지 않는다. 물론 이는 민비, 이완용, 김구 등에도 동일하게 진행되고 있는 사항이라서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사실 어떤 인물의 평가에 대해 일일이 책을 보고 알기도 쉽지 않은 일이니 만큼, 이해가 안가는 현상은 아니다.

그러나 이 책 작가의 표현 대로 "좋든 싫든, 오늘 이 세계는 히틀러의 작품이다"라는 불편한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단순히 '유대인 학살자' 라는 지식으로는 힘들다.

구성
이 책은 생애, 성과, 성공, 오류, 실수, 범죄, 배신이라는 7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든 챕터는 한 흐름으로 연결되 어있다. 그래서 마지막 챕터로 갈수록 우리는 정태적으론 이해할 수 없는 히틀러의 결정에 대해 '아 이래서 그런거구 나!'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데, 이에 다다르게 하는 작가의 필력이 놀랍다.

내용
1. 생애- 인간성이 없는 히틀러
히틀러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부분, 로맨스나 우정이 인생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거의 없다. 히틀러는 친구가 없었으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결혼하지 않아 아이도 없었고, 그 어떤 직업을 가진 적도, 구하려 애쓴 적도 없다.

이 책의 표현에 따르면 위인을 더욱 위인답게 해주는 풍부한 인간성이 히틀러에는 아예 결핍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결핍을 충족하기 위해 소모되는 에너지를 전부 정치적 인간으로 대체한 인물이 히틀러인데, 생애 챕터에서는 정치적 인간으로서의 각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충격적인 부분은, 히틀러는 '자신의 정치와 정치 시간표를 지상에서의 자신의 예상 수명에 맞췄다'는 점이다. 이 말인 즉, 국가와 민족은 개인의 수명을 뛰어넘어 존속하기 때문에 보통의 정치인을 비롯한 인간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가 요구하는 사명에 충실하고 좋든 싫든 그 존속을 전제하고 활동하는 반면에, 히틀러는 자신의 독일을 자신의 수명에 맞췄다는 것이다.

책의 표현에 따르면, 히틀러는 모든 것을 대체불가능한 자신의 유일함에 맞췄다.

그랬기 때문에 히틀러는 상당한 시간적 압박을 받게 되었고, 지나치게 서둘러서 부적절한 선택들을 내렸다. 이 충격적인 말은 이후 히틀러의 잘못된 선택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2. 성과-독일 국민은 왜 히틀러에 열광했는가?

성과챕터는 도대체 왜 독일 국민들이 히틀러에게 열광했느냐를 설명해주고 있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왜 독일 국민들이 히틀러를 지지하고 선거에서 승리하게 해주었을까?

이유는 진짜 경제적, 군사적, 외교적 업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600만의 실업을 구제했으며, 군비를 확장하였으며, 베르사유조약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독일인들의 치욕감을 해소해주었다. 그 결과 1920년대 5%의 지지율을 받았던 히틀러는 10년이 안되어 독일 국민 90%의 지지를 얻게 되었다.

작가는이 부분에서 흥미롭게도 히틀러가 가지고 있던 사회주의적 모습을 잘 설명하고 있다. 히틀러는 생산수단을 사회화 (국유화)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이 부분만을 가지고 히틀러를 극우라고 부르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생산수단의 사회화 만큼 중요한 것은 인간의 사회화이다. 이는 사회주의 국가가 늘상 갖고 있는 큰 오류인데, 인간의 개인적인 모습을 깡그리 무시하고 극단적으로 사회화 할 수 있다는 믿음 하에 현대사에는 끔찍한 실험이 행해져 왔다. 스탈린이 대표적이다. 작가는 히틀러 또한 다양한 공동체와 집단주의적 시도를 통해 독일인들을 사회화 하는데 큰 노력을 기울였고 실제로 히틀러가 '인간의 사회화'를 언급한 기록을 소개하고 있다.

3. 성공-그러나 단 한번도 제대로 이겨본 적 없는 히틀러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히틀러는 단 한번도 더 강하거나 질긴 적을 상대로 성공을 쟁취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1차 대전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을 차지하게 된 것도 이미 망해가고 있던 공화국의 승계구도에서 승리한 것이며, 2차대전 개전 후 프랑스를 6주만에 함락시킨 것도 이미 내부적으로 망해가고 있던 프랑스를 점령했다는 것이다.

4. 오류-히틀러의 두 가지 확고한 잘못된 생각
히틀러는 열정적으로 자신의 두 가지 잘못된 생각을 따랐고 자살할 때 까지 그 두 생각을 실현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하나는 정치철학으로서의 '히틀러리즘'으로 '인간의 역사는 민족의 생존을 위한 민족간의 투쟁'이라는 것이다. 어느 민족이나 자신들의 생존 공간을 위해 전쟁하며, 국가와 평화는 전쟁을 위한 준비수단 또는 기간에 지나지 않는다. 민족 전쟁에 승리한 민족은 세계를 지배하며 패배한 민족은 노예가 되거나 멸종 되어야한다.

다른 하나는 국제주의와 평화주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등을 동원한 '유대인'이 아리안 민족들의 주요 과제와 임무에서 벗어나게(민족 전쟁)하고 있으니 독일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유대인을 멸종시켜야 한다는 반유대주의이다.

5. 실수-히틀러의 두 가지 실수
히틀러는 독일에 호의적이던 유대인과 적대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 전 세계 모든 유대인을 적으로 돌렸고(첫 번째 실수)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전쟁을 외통수로 몰았다(두 번째 실수).

히틀러는 독일 유대인들의 평판을 증오로 바꾸어놓았고, 유대인 친구들에게 신의를 지킨 독일인들까지 적으로 만들었다. 이 때문에 독일의 평판은 떨어졌으며, 문학계, 과학계의 인재 유출이 심각했다. 단순히 유대인 과학자만 떠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동료나 제자들도 스승을 따라 떠났으며 이전까지 독일로 들어오던 외국인 학자들도 사라졌다.

1941년 12월 11일 히틀러는 미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이 결정으로 히틀러는 제 무덤을 파게 됐는데, 바로 몇일 전에 러시아 전선에서 처음으로 패배했으며 아직 영국이 건재한 마당에 미국까지 불러들이게 된 것이다.

사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1941년 이전부터 영국을 지원하는 등 독일과 전쟁을 원했지만, 국내의 저항으로 전쟁을 시작할 수 없었다. 때마침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하면서 오히려 미국의 시선도 일본과의 전쟁으로 쏠렸 다. 그런 마당에 오히려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루즈벨트에게 선물을 주게 된 것이다.

사실 이는 가장 이해가 안되는 히틀러의 선택이기도 한데, 작가는 1941년 11월 27일 히틀러의 발언을 소개하면서 히틀 러가 왜 그렇게 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도이치 민족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스스로 피를 흘릴만큼 충분히 강하고 또 희생의 각오가 되어있지 않다면 이 민족은 스러져서 더욱 강한 다른 세력에게 파괴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도이치 민족을 위해 단 한방 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을 것이오.


실로 공포스러운 말이 아닐 수 없다.

즉, 히틀러의 두 가지 확고한 생각 중 하나인 우수한 민족이 열등한 민족을 멸종시키고 세계를 지배해야된다는 히틀러리즘에서 독일이 그 열등한 민족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1941년 러시아 전선에서 2차대전 중 독일군이 처음으로 패배하면서 이 전쟁에서 더 이상의 승리를 기대할 수 없다고 직감한 히틀러는 오히려 독일 민족을 완전하게 파괴하기 위해 미국까지 끌어들이는 선택을 했다는 무시무시한 해석이 도 출되는 것이다.

이는 이후 '배신' 챕터에서 잘 나타나있다.

6. 범죄- 학살
미국까지 끌어들여 패배가 확실해지자 히틀러는 1942년부터 정치적 활동을 모두 중단한다. 더 이상 대중에게 모습을 보 이지 않았으며 자신의 예상 수명에 독일의 운명을 동일시 하여 항상 시간이 부족했던 히틀러는 오히려 승리를 위한 전쟁이 아니라 시간을 벌기 위한 전쟁을 45년까지 벌인다.

여기서 참 무서운 작가의 통찰력이 빛나는데, 히틀러의 두 가지 목표 중 하나인 민족전쟁은 이미 패배했기 때문에 첫 번째 목표를 포기하고 두 번째 목표인 유대인 멸종(반유대주의)에 집중하게 됐다는 것이다.

유대인을 멸종시키기 위해 전쟁을 질질 끌었다는 분석이다. 이를 증명하듯 1942년 1월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 명령이 나왔다. 여기서 최종 해결은 가스실을 뜻한다.

1939년 9월 1일 독일에 있는 환자들을 죽이라는 히틀러의 문서명령이 나왔고 2년 동안 10만명의 사람들이 살해 처리되었다. 같은 달 집시에 대한 근절작전이 펼쳐졌고 기록에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대략 5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1939년 10월에는 폴란드의 지식인과 지도층 인사들에 대한 대량학살이 시작되는데 저자는 약 100만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러시아와의 전쟁 이후 러시아 주민에 대해서도 폴란드와 동일하게 지식인과 지도층 인사를 학살했으며 약 56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별도로 러시아 전쟁 포로에 대해서도 학살이 진행됐는데, 516만의 러시아군 포로 중에서 47만명은 처형되었고, 300만명 정도는 포로수용소에서 대부분 굶어죽었다.

유대인 학살은 1941년 이후 폴란드와 러시아의 유대인에서 부터 시작했는데 1942년 초부터 독일과 나머지 점령지역의 유대인으로 확대되었다. 약 400만명에서 많게는 600만명이 죽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7. 배신- 철저한 독일 파괴
끔찍한 학살의 마지막 종점은 독일 그자체의 파괴로 귀결된다. 히틀러는 우수한 민족이 세계를 지배하고 열등한 민족은 멸종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 열등한 민족에 독일 민족도 포함될 수 있다고 하였다. 1941년 러시아 전선에서의 첫 패배로 이미 이 전쟁이 승리할 수 없다고 판단한 히틀러는 유대인을 멸종시키고 첫 번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독일 민족의 완전한 파괴를 지향하였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아르덴 공격이다. 동서로 연합군의 공격이 죄여오던 1944년 8월 히틀러는 서부 전선에서 아르덴 공격을 시행하는데, 이 공격으로 마지막 군사력을 다 소모하였다. 동부 전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부전선의 온 병력을 아르덴 공격에 전부 투입시켰고 결국 독일을 방어할 병력이 없어지게 된다.

독일 방어가 불가능해지자 독일 국민들은 1차 대전과 같이 항복을 원했다. 1차 대전은 독일의 본토가 침략받지 않은 채 항복하여 끝나는데, 독일 국민들은 2차 대전도 같은 종류의 항복을 원했던 것이다. 독일 국민들의 항복의사를 파악한 히틀러는 민족전쟁에서 패배하여 더 싸울 생각을 하지 않는 국민들이 죽음으로 그 벌을 받아야 된다고 결심했다.

전쟁에 패배한다면 민족도 패배하는 것이다. 도이치 민족이 가장 원시적인 생존을 위해 필요한 기반까지 고려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런 것들을 스스로 파괴하는 편이 낫다. 민족이 허약하다는 판정이 났고, 미래는 더욱 강한 동쪽 민족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전쟁 뒤에 남는 것은 어차피 열등한 자들이다. 우수한 자들은 전사했으니까.

작가가 소개하는 기록으로는, 독일 국민이 전쟁 막바지에는 연합군을 더 무서워 한 것이 아니라 독일 친위대를 더 무서워 했다는 기록이다.

느낀점
이 책의 통찰력은 놀랍고도 무섭다.

히틀러라는 인간이 단순히 유대인을 학살한 광인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믿었던 두 가지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고 실제로 이를 행했다는 점에서, 인류의 역사에 이런 인간이 존재 했다는 것 자체가 소름끼칠 따름이다.

특히 그의 칼 끝이 마지막엔 독일인을 향했다는 점에서, 자신의 신념을 실행하기 위한 서슬퍼런 결기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그래서일까 독일은 지금도 히틀러의 공포 속에서 살고 있다. 국가를 부르지 않고, 국기에 경례하지 않으며, 애국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작가는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히며 책을 마무리 한다.

많은 독일 사람들이 히틀러 이후로 애국자가 되려는 마음을 품지 못하게 된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그럼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히틀러의 마지막 의지와 유언을 실현하고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장점
▶히틀러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준다.

▶딱딱한 사회과학 문헌보단 기자의 르포처럼 쓰여있어서 흡입력이 강하다.

▶220p가량의 분량에 진지한 내용이 담겨 있어서 독서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단점
▶형용사 또는 수식어가 딸린 긴 문장이 많아서 한번 읽은 부분을 또 읽어야되는 일이 종종 있다.

▶주석이 한 개도 없다.

▶짧은 책이다보니 사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어 위키백과들 들쳐봐야되는 일이 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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