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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스타쉽 트루퍼스 - 로버트 하인라인

어빈2 2021. 8. 7.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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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로버트 하인라인

평점 7

 

개요

SF문학의 거장 로버트 하인라인의 역작이라고 알려진 <스타쉽 트루퍼스>는 1959년에 발간된 책으로 1997년 폴 버호벤 감독의 영화 스타쉽 트루퍼스의 원작이기도 하다.

 

영화는 매우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전투 장면으로 유명한데 이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발연기 문제, SF적 오류에도 불구하고 지금봐도 옛스럽지 않은 이유다. 또한 영화가 일종의 군국주의 프로파간다의 형식을 취함으로써 감독이 주고자 하는 파시즘 비판도 적절히 표현되어 있어 개봉 당시에는 큰 호응을 받지 못했지만 후대에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폴 버호벤 감독의 1997년 영화 포스터

그러나 영화를 재밌게 본 사람이 소설을 보면 다른 설정들에 실망할 수 있겠다.

 

일단 소설은 텍스트이니 만큼 영화같이 전투 장면은 별로 표현되어있지 않다. 게다가 영화는 어처구니 없게도 항성간 이동을 하는 기술력을 가졌으면서도 소총을 든 병사들이 떼거지로 돌진하여 전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소설에서 말하는 '기동보병(Mobile Infantory)은 설정이 다르다.

 

소설에선 강화복을 입고 우주선에서 캡슐을 타고 강하하는 병사를 기동보병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강화복을 입은 고도 로 단련된 기동보병 한명이 하나의 행성을 초토화 시킬 수 있을 정도의 무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영화 와 같이 多대 多형태의 전투는 없다.

 

또한 영화는 로맨스를 서브 스토리로 채택하고 있지만 소설엔 여자 케릭터는 거의 등장 하지 않으며, 주인공이 소속되어있는 기동보병엔 아예 여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외에도 상대하는 괴물들, 소설에는 아라크니드(거미)라고 표현되어있는 존재들이 지성이 있되, 영화처럼 사람의 뇌를 먹진 않으며, Skinny라는 제 3의 종족도 등장하고 있다.

 

영화완 다른 설정들이 더 있지만, 큰 틀에서는 유사한 스토리라인을 갖고 있다.

 

내용

주인공 후안 리코는 아버지에 반발하여 친구인 '칼'을 따라 입대를 결정한다. 입대를 충동적으로 결정한 리코는 아무 곳에도 적성이 없었기 때문에 기동보병에 배치되게 된다.

 

훈련소에서 뼈빠지게 훈련한 리코는 한명의 기동보병으로서 거미와의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도중에 부대 내에서 만난 선임하사 에이스의 권유에 따라 리코는 장교가 되기로 결정하고, 사관후보생이 된다.

 

그때즘 군 사령부에서는 거미들이 개미와 같은 군체로 되어있으며, 지능을 담당하는 귀족 거미 또는 여왕 거미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생포를 최우선 미션으로 삼는다.

 

사관후보생 현장실습으로 전투에 나간 리코의 부대는 귀족거미를 생포를 돕게 되고 리코는 정식 장교가 된다. 이후 소대장이 된 리코가 강하하기 전 자신의 소대원들에게 일장 연설하는 장면에서 소설은 끝난다.

 

느낀점

이 책은 주인공인 후안 리코의 성장 소설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줄거리가 정말 저게 다인것 처럼, 딱히 성장소설의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주인공 리코의 계급과 소속 부대가 변경되는 것이 눈에 들어올 뿐 주인공이 내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은 덜하다.

 

그 이유는 이 책의 주제가 주인공 리코의 성장이 아니라, 주인공 리코가 학생 때 배웠던 과목인 '역사와 윤리철학' 수업의 내용, 그리고 입대 후 종종 그 수업을 회상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에는 로맨스도 없고, 전우애를 느낄만큼 비중있는 리코의 전우도 나오지 않으며, 리코가 깊게 고민하는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역사와 윤리철학 수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작가의 생각과, 리코의 시선을 통해 디테일하게 보여주는 밀리터리 SF 두 가지가 병행된 책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역사와 윤리철학 수업의 내용에서 알 수 있는 스타쉽 트루퍼스의 세계관은 이렇다.

어느 미래,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는 둘 다 실패했다.

인간의 본질을 제대로 알고 난 후 그에 맞는 윤리와 도덕을 기반으로 국가를 세워야 하는데, 공산주의는 '찬란한 기만성'으로 망했고, 민주주의도 '무제한적 민주주의'의 병폐로 결국 정부붕괴라는 무정부 사태를 맞게 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공민성'에 기반한 시스템이 결국 더 나은 체제로 받아들여 졌으며, 이 체제 하에 인간은 유례없는 발전을 향유하게 되었다.

 

사실 SF의 탈을 쓰고 있지만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고, 1959년 공산주의와 자유주의의 체제경쟁 중 어느 것이 정 답인지 알 수 없던 시대에 작가가 보여주는 통찰력은 꽤나 정확하다.

 

작가의 정치성향이 Libertarian(리버테리안, 자유의지주의)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하이에크의 <Road to serfdom>(1943)이나 칼 포퍼의 <Open society and its enemies>(1945)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을 파시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아닌듯 하다.

 

이 책은 민족을 주장하거나 폭력을 찬양하고 있지 않다. 애국의 개념이 나오지만 그렇다고 국가를 위한 강제적 희생이 아닌, 자유로운 선택권을 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기동보병이 전투 강하하기 30초 전에 강하하기 싫다고 하면 말없이 전역시켜주는 내용을 다루고 있을 정도로 국가를 위한 노력은 철저히 개인의 선택할 자유에 기반함을 보여주고 있다.

 

폭력을 다루는 내용은 청소년의 교육과 국가의 폭력에 부분에 나오는데, 여기서 작가는 폭력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청 소년 범죄에 대한 처벌적 폭력조자 존재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 청소년의 교육에 좋지 않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지금도 문제되고 있는데, 미성년자라고 해서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아무것도 공개하지 않은 채 '미성년자니까 개도 하면 된다'는 식의 행태이다.

 

작가는 여기서도 통찰력을 보여주는데 예를 들어 여러 범죄를 저질러 온 만 17세는 '비행 청소년'이지만 당장 내일 만 18세 성인이 되면 '범죄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 간극을 해소하기 위한 처벌로서의 폭력을 주장하고 있다.

 

국가의 폭력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은 아래와 같다. 

폭력, 즉 순수한 무력은 역사상 어떠한 인자가 그랬던 것보다도 더 많은 문제를 해결해 왔고 이 기본적 사실을 망각한 종족은 언제나 그들 자신의 생명과 자유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 말이 경험적으로 진실이기 때문에 모든 국가는 국방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평화를 위해서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과 일맥상통한 말인데, 이를 폭력 찬양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언뜻 군국주의 파시즘의 형태를 띄고 있다고 해서 단순히 극우적 세계관이라고 보긴 어려운 것이 다. 그렇다고 이 책의 뒷부분에 이 책의 번역자이자 스스로를 SF문학 평론가라고 주장하는 자의 주장처럼, 리버테리언에 기초한 엘리트주의를 뜻하는 것도 아니다.

 

작가는 작중에 역사와 윤리철학 선생인 뒤부아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즉 높은 지능을 가진 엘리트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면 유토피아가 출현한다는 식이지. 물론 그 멍청한 주장은 곧 철저하게 틀렸다는 것이 증명되었지만 말이야.

 

이처럼 작가가 주장하는 것은 엘리트주의도 아니다.

 

작가는 시민들이 공유하는 공민성을 기초로 한 자유 공화국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평론가는 윤리적 개인의 개념에 반공산주의와 유토피아적 군대론이 덧붙여진 결과라고 했는데, 내가 보기엔 공동체주의에 자유와 플라톤적 세계관이 혼합된것 같다. '윤리적 개인'에서 시민이 공유할 수 있는 '윤리' 즉, 개인의 복지보다 사회의 복지를 우선하는 윤리를 토대로(이는 국가적 의무의 이행을 통해 증명된다) 적합한 시민의식을 가진 '시민'들만이 투표권을 가지고 운영하는 나라, 반면 투표권이 없다고 해서 자유를 침해당하지 않으며, 투표권의 유무가 삶의 자유를 결정하지 않는 나라를 그리고 있다.

 

즉 공화국적 시민으로 증명된 사람들이 자유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을 지키되, 그 보상으로 투표권이 주어지는 나라이다.

 

작가는 '시민'에 대해서도 새롭게 정의하고 있는데, 플라톤이 말하는 귀족 이상의 계급과 동일하다.

힘든 사회봉사를 통해서, 자신의 개인적 이익보다 자신이 소속된 집단의 복지를 우선적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증명한 사람들인 거야.

 

이는 무제한적 민주주의 비판과도 상통하는 말인데, 누가 투표할 자격이 있느냐는 무제한적 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한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대학교의 총학생회장을 뽑는 선거에서, 그 대학교의 학생이 아닌 주변 주민들이 투표권을 달라고 하거나, 옆 초등학교 학생들이 투표권을 달라는게 말이 안되는 것을 우리가 직관적으로 아는 것 처럼, 국가의 투표권이 비록 모든 국민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지만, 이런 사람도 나와 같은 한표로 투표한다는 것에 절망감을 느끼는것과 마찬 가지로 국가의 투표도 자격이 있는 사람이 해야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작가의 주장처럼 민주주의는 유권자가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무제한적 민주주의가 불안정했던 이유는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는 방법에 대해 그 시민들이 책임을 지지 않았기 때문인데 민주주의 국가가 갖고 있는 선거의 딜레마를 해결하면서(투표권의 허들을 둠으로써) 동시에 자유를 지키기 위한 군대를 공동체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시민들로 유지하는 국가가, 이 책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국가이다. 

자유는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주기적으로 애국자의 피에 의해 회복되지 않는 이상 자유는 언제나 사라져 버리지. 자유의 획득이 쉬웠던 적은 일찍이 없었고 그 대가가 무료인 경우는 절대로 없다.

 

물론 작가가 주장하는 이런 국가관은 정확히 작가가 비판하는 공산주의 국가와 데칼코마니라는 점에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즉 윤리를 잣대로 한 시민의 선정과 그 시민들이 투표권을 가지고 운영하는 국가는 반드시 독재로 타락하며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리버테리언의 가르침을 그대로 어기고 있다는 것이다.

 

공산주의가 독재로 귀결되고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국가가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 수단의 사회화 못지않게 중요한 인간의 사회화를 통해 공산주의는 강력한 도덕으로 무장된 프로레타리아트 독재를 주장하는데, 다수에 의한 독재는 스탈린, 히틀러와 같이 곧 다수를 대표하는 영도자 한명의 독재로 이행된다. 공산주의 자체가 역사의 진리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독재자가 선정한 국가의 목표는 곧 진리이다.

 

이를 어기는 사람은 적폐 또는 반동이 되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는 붕괴한다.

 

작가가 말하는 '시민'도 인간 사회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인간이 극단적으로 사회적이라면 사회의 요구에 따라 인간이 개조될 수 있다는 믿음'이 바로 작가가 그리고 있는 스타쉽 트루퍼스의 국가가 가지고 있는 큰 오류이다.

 

장점

▶책이 생각보다 재밌다. 전투하는 장면은 거의 없고 죄다 훈련받는 내용 뿐이며, 특히 리코가 실제로 겪는 일과 리코의 회상에서 등장하는 뒤부아의 말은 괴리가 크지만, 그럼에도 시니컬하게 쓰여져 불편함 없이 보기 좋다.

 

▶지금은 일상화되어 강화복에 대한 개념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 때만 해도 그런 개념은 없었다고 한다. 작가의 상상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단점

▶책이 난잡하게 쓰여있다. 중요한 사건들이 한 문장으로 지나가거나 하는 경우가 많아서(충격적인 효과를 주기 위함이라고 보이는데) 책을 설렁설렁 읽으면 흐름을 놓치지 쉽다. 한 문장으로 휙휙 장면을 넘기는 경우가 많다보니, 케릭터들의 대사가 뒤죽박죽인 부분이 있다.

 

▶작가의 정치적 통찰력은 이 시대의 작품이라기엔 섬뜻할 만큼 정확하고 그 해결책으로 그리고 있는 세계는 일견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정확히 작가가 비판하는 그 수준만큼 위험한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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