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멋대로/책

[책리뷰] 지하로부터의 수기 - 도스토예프스키

어빈2 2021. 8. 5. 18:21
728x90
반응형

저자 도스토예프스키

평점 8

 

개요

이 책은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200쪽 분량의 짧은 책인데, 1부가 50쪽정도, 나머지가 2부이다.

 

1부는 지하에서 홀로 독백을 하는 부분이고 2부는 지하로 들어가기 전의 스토리다.

 

이 책은 작품의 초기에서 중후기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작품이라고 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사형선고를 받고 8년 동안 옥생활을 한 다음 나온책이라서 그런데, 그 기간동안 도스토예프스키의 가치관 자체가 변했기 때문이다.

 

짧지만 어려운 책이었다. 특히 1부는 굉장히 많은 걸 담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 중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통찰에 소름이 끼쳤던 것은 이성을 중시하는 구성주의자에 대한 비판, 즉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과 개인에 대한 통찰이었 다.

 

내용

1부의 대부분 내용은 굉장히 정치적이다. 마치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보는 거 같은 느낌인데, 그 중 1부 8장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여러분, 이성은 좋은 것이다. 이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성은 단지 이성일 뿐이고 인간의 사유 능력만을 만족시킨다.

하지만 욕망은 모든 삶, 즉 사유와 긁적임을 포함한 인류의 모든 삶을 반영한다. 이러한 반영 속에서 우리의 삶이 부분적으로 어리석게 흘러간다 하더라도, 삶은 여전히 삶이지, 제곱근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중략)
이성은 알아차리는데 성공한 것만을 안다.

 

수 많은 인간들이 사춘기를 거치면서, 자신의 폭발하는 에고(ego)와 사회가 맞닿는 면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개인과 사회가 마주치는 그 접합면을 어떻게 해야할까? 어떻게 해야 우리의 개인성과 사회의 집단성 사이에 일어나는 문제를 해 결할 수 있을까?

 

이성을 맹신하는 합리주의자들은 인간의 조막만한 뇌로 설계한 세상이 유토피아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좌익의 사고방식이 여기서 나오는데, 사회주의자들은 사회를 어떻게 구성하냐에 따라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공산주의의 경우 자본주의의 발달이 결국 프로레타리아트 혁명을 초래할 것이며, 노동자에 의해 지배되는 유토피아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이성의 문제가 드러나는데 첫째, 역사흐름의 법칙을 알고 있다는 자만이다. 공산주의가 필연적으로 대중독재로 가는 이유는 지배계층이 역사가 어떻게 흘러갈지를, 즉 역사의 진리를 자신들만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필시 혁명을 가져 올 것이며, 궁극에는 프로레타리아트 세상(에덴)이 올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법칙을 알고있는 지배계층의 말을 따라야 하며, 따르는 사람을 인민, 따르지 않는 사람을 적폐라고 구분한다.

 

아니 역사가 어떻게 흘러갈지 알고, 정답을 알고있는 세력이 독재를 하는것에 어떻게 반대할 수 있을까? 마치 천국에서 하느님이 독재한다고 욕하는 것과 동일한 수준인 것이다.

 

참고로 여기서 '내가 정의요 내가 도덕적이요' 하는 인간들이 왜 위험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나 혼자 정의롭다면, 그 외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처단 대상이 되는데, 이번 정부가 그런 형태를 보이고 있다.

 

둘째, 사회가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오류이다. 인간은 원래 평등하게 태어났으나, 자본주의를 거치면서 도처에 불평등이 만연하게 됐다는게 좌익 사고방식의 전제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천박한 모습을 많이 목격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과거보다 지금이 더 나빠졌는가? 대부분의 통계가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이다. 그러나 좌익은 점점 지옥으로 가고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들이 나서서 설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셋째, 자신들의 조막만한 뇌로 설계하면 유토피아가 온다고 생각하는 오류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위 문장을 통해 좌익의 설계주의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자유주의를 옹호하고 있다. 이성은 이성일 뿐, 이성이 모든 것을 대체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으며, 우리가 가져야 할것은 이성에 대한 맹신이 아니라, 삶에 대한 겸손이라고 말한다.

 

특이한 것은, 동시에 욕망을 얘기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 아담 스미스의 말이 생각난다.

 

우리가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자신의 이익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인간성에 호소하지 않고 그들의 이기심에 호소하며,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 자신의 필요를 이야기하지 않고 그들의 이익을 이야기한다.

 

욕망은 무슨 성욕 이런게 아니라 이기심을 뜻한다. 누구나 자신의 이기심에 따라 행동했으나,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오히 려 사회의 부가 증진하고 심지어 더 도덕적이 되었다는게 자유시장경제의 우월성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비록 욕망을 추 구하는 삶이 때때로 어리석게 흘러가더라도(자본주의의 천박한점이 드러나더라도)...'라는 말을 하면서 자유주의를 옹호 한다.

 

이와 연결된 통찰은 9장에 이어 나온다.

 

여러분은 인간에게 과거의 습관을 버리고 과학과 상식이 요구하는 대로 그의 의지를 수정하도록 만들고 싶어한다. 그런데 당신은 왜 인간을 개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조할 필요가 있다고 알고있는가?

 

바로 러시아에 볼셰비키 혁명이 터지면서 저런 사고방식을 베이스로 한 USSR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보면,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은 오히려 자신의 조국 러시아가 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예민하게 느끼고 이에 대한 불안과 반대 심리로써 표출된게 아닌가 생각된다.

 

위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넷째, 좌익이 가지고 있는 이성의 오류 중 하나는, 바로 자신들의 설계에 따라 실제로 인간을 사회적인 동물로 개조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집단 수용소, 정치 수용소가 이런 사고방식의 결과인데, 좌익들은 인간이 자신의 욕심, 이기심을 버리고(=개인을 버리고), 공동체와 집단, 사회적인 존재로 진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꿀벌, 개미와 같이 오직 공동체와 사회를 위해서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쓰여진 책이다. 특히 도스토예프스키가 감옥을 갔다온 다음 우익이 되었다는 것은, 그가 감옥에서 개인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거칠지만 그의 깨달음 이 1부 전반에 걸쳐 드러나고 있다. 사실 2부는 1부의 보조 정도의 역할을 하는것 같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