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멋대로/사회

매카시즘의 진실

어빈2 2021. 7. 12.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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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국정원장을 상대로 한 재판에서 검사가 원세훈 국정원장에게 신매카시즘이라고 하여 매카시즘이 화두에 올랐었다. 매카시즘에 대해서 네이버 두산백과에 있는 그대로 옮겨보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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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1954년 미국을 휩쓴 일련의 반(?)공산주의 선풍. 미국 위스콘신주 출신의 공화당 상원의원 J.R.매카시의 이름에서 나온 말이다. 1950년 2월 “국무성 안에는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매카시의 폭탄적인 연설에서 발단한 것이다. 1949년 이래 수년에 걸쳐 매카시가 상원의 비미활동특별조사위원회를 무대로 하여 행한, 공산주의자 적발 추방의 선풍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이 심각해지던 상황에서 전통적인 미국자본의 시장이던 중국의 공산화와 잇달아 발생한 한국의 6 ·25전쟁 등 공산세력의 급격한 팽창에 위협을 느낀 미국국민으로부터, 그의 주장이 광범한 지지를 받았다.
 
매카시즘이 먼저 공격목표로 삼은 것은 중국정책에 영향력이 컸던 외교관, 국무성 및 중국통 정치학자 오언 래티모어, 국 제법학자 제삽 등이었는데, 대통령 H.S.트루먼도 공산주의자에게 약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당시 국무장관 J.F.덜레스를 비 롯한 많은 사람들이 매카시즘의 공포에 떨었고, 그 때문에 미국의 외교정책이 필요 이상으로 경색된 반공노선을 걷게 되었다. 유력한 정치가나 지식인들도 매카시즘에 두려움을 느끼고 그에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매카시는 육군에 도전한 것이 치명상이 되어서 마침내 1954년 상원의 사문결의에 의하여 실각하였다. 매카시는 히틀러와는 달리 아무 런 비전도 가지지 못하였으나, 보기 드문 선동가였다. 그가 미국의 대외적 위신이나 지적 환경에 끼친 손해는 막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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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카시즘과 비슷한 뜻으로 마녀사냥이란 말이있다. 위의 네이버 두산백과의 내용만 보면 맥카시가 근거없이 상대방을 공격했고 그 때문에 필요없는 비용이 발생했으며, 사람들이 소신있게 나서지 못하고 공포에 떨었으며, 히틀러랑 비교하 면서 매카시가 히틀러보다 못났다고 하고있다. 이를 통해 두산 백과의 편향성을 잘 알 수 있다. 
 
우선적으로 말하고 넘어가자면, 매카시가 국무성에 공산주의자가 있다고 한 것은 대부분 진실이었다. 그런데 백과사전엔 이에 대한 언급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매카시가 틀렸고 심지어 큰 해를 끼친 비전없는 사람이라고만 써놓고 있다.
 
매카시에게 공격 받은 존스 홉킨스 대학의 오언 레티무어란 교수가 처음으로 매카시즘이란 말을 만들어 매카시를 공격 했는데 나중에 오언 레티무어가 소련의 간첩이라는게 밝혀졌다.
 
히틀러의 전후세계구상에 대응하여 영국에선 존 매이너드 케인즈, 미국에선 해리 D 화이트가 브래턴우즈 체제라고 하는 전후 세계 경제를 설계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디. 그때 만들어진 것이 무역 및 관세에 관한 일반협정(GATT),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세계은행(WB)이다. 원래 GATT가 아닌 WTO를 만드려고 했으나 협상이 결렬되어 WTO는 이후 도하라운드에서 만들어진다.
 
여하튼 여기서 해리 D 화이트도 매카시에게 공산주의자라는 공격을 받았는데 이후 간첩활동을 한 것이 밝혀진다. 엘저 히스라는 사람도 있다. 엘저 히스는 얄타회담을 실제적으로 주도했던 미 국무부의 차관보였다. 그런데 얄타회담 전후로 소련에 정보를 팔았고 이 때문에 회담은 소련에 유리하게 체결된다. 엘저 히스는 나중에 간첩으로 밝혀진다. 얄타회담은 한국사 교과서에도 나오는데, 영국 미국 소련이 전후 세계질서에 대해 담판지었던 회담으로 미국이 소련의 태평양전쟁 참전의 약속을 받기도 했다.
 
그 외에 루즈벨트 보좌역이었던 해리 홉킨스, CIA의 전신인 OSS의 참모장 던컨 리도 간첩이었다. 또한 내무장관 헤롤드 아이크스, 에치슨 선언으로 유명한 딘 에치슨, 헨리 월러스 미 부통령도 공산주의자였다. 오언 레티무어와 딘 에치슨은 중국과 한반도에서 미군을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철수했으며 그것이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게된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또한 레티무어는 한반도를 소련에 내주고 일본을 마지노선으로 관리하자고 했는데 그랬던 사람이 매카시를 매카시즘이라고 하면서 공격 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은 2차세계대전 중 추축국의 암호를 해독하고 소련을 감청했던 베노나(venona)프로젝트에 관한 기록들이 공 개되면서 매카시의 주장이 거의 사실이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매카시즘은 근거없이 상대방을 공산주의자라고 공격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보다는 오히려 매카시즘이라고 공격하는 사람이 실제 어떤 사람인지 주의해야 한다 라고 해석해야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조셉 레이먼드 매카시는 변호사 출신으로 판사를 했던 사람인데 유명한 일화가 있다.
 
당시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 중 농업촉진법이라고 있었다. 그 내용은 「농산물, 낙농제품은 정부가 지정한 가격 보다 싸게 팔면 불법이다.」였다. 매카시가 판사일 때 우유회사가 우유를 지정 가격보다 싸게 팔았다는 이유로 연방정부가 재소한 사건에 대해서 '우유를 싸게 팔면 소비자에게 좋은것인데 이를 가지고 재판을 하는 것은 시간낭비다' 라는 판결을 한다.
 
경제적 자유를 보호하고 소비자의 이익을 위한 자유주의를 지킨 판결이 알려지면서 매카시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정계로 진출하게 된다. 그러나 상원의원이 되고 보니 국무부에 수 많은 간첩들이 있었고 매카시는 참지 못하고 폭탄선언을 하게 된 것이다. 그 후 매카시는 자유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웠지만 화병이 들어 일찍 죽는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미국 고위층에 간첩들이 왜 이렇게 많았고 그들이 어떻게 형성됐냐는 것이다.
 
당시 간첩들은 우리가 영화 등을 통해서 보는 소련에서 자라고 소련에서 훈련받은 사람이 몰래 미국으로 넘어와 간첩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생적으로 생성된 간첩들이다. 그래서 이것이 매카시즘이 틀렸다는 이유로 쓰이고 하는데 미국의 내무장관, 부통령, 교수 등 잘나가는 고위층들이 미국이라는 최강대국에서 간첩짓을 하는 것이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근데 그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 강제력을 동원한 경제는 초기엔 그 효과가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 당시는 소련의 경제가 잘 돌아갔었고 사르트르, 앙드레 지드 등 서구의 지식인들은 공산주의에 매료되어 있었으며 인류사회는 공산주의로 가야한다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다수의 지식인들은 미국과 같은 자본주의는 공산주의로 가는 길에 단기간 운용하는 시스템이고 공산주의만이 도달해야 할 사회이며 미국에도 그렇게 생각한 지식인들이 매우 많았다.
 
당시 지식인들은 소련이야 말로 공산주의 혁명의 고향이며 사회주의의 조국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심지어 루즈벨트 조차 소련이 빈부격차도없고, 모두가 평등하면서 잘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매카시와 같은 사람이 전사를 자처하며 날뛰었으며, 이론적으론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루드비히 폰 미제스 같은 선지자들이 공산국가는 필연적으로 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소련이 망하고 간첩 활동이 모두 드러남으로써 화병으로 죽은 매카시의 원한이 풀리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 통일세력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연방제 통일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반통일 세력이다. 이석기와 같은 사람은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통일이 되고 북한의 문서가 공개되면 곤란해지는 사람도 알게 모르게 우리나라에 있다고 알려져있다.
 
매카시즘이라고 공격하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는 누구의 말처럼 '요즘 간첩같은게 있나요' 라고 생각하면서 '정신나간 국정원장이다' 라고 할게 아니라 매카시즘이라고 공격하는 그 사람 이 어떤 사람인지 자세히 살펴보고 관찰하는 자세다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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