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멋대로/사회

직지심체요절과 저작권(copyright) 그리고 지식

어빈2 2021. 7. 12.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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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를 가면 가로등마다 붙어있는 깃발, 연석 위 난간에서 '직지의 도시 청주' 라는 문구를 볼 수 있다. <직지심체요절>은 역사교과서에도 나와있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다. 아마도 직지가 제작된 곳이 청주라서 청주에서 직지 축제를 하는 것 같다.

직지심체요절은 1377년 고려 말에 승려 백운이 원나라의 승려 석옥청공이 편찬한 <불조직지신체요절>을 증보, 편찬한 책이다. 흔히 직지심경으로 알고있는데 '경'은 부처 말씀을 담은 책에만 붙일 수 있기 때문에 원나라 승려가 쓴 책인 <불 조직지심체요절>엔 '경'이 붙을 수 없고 <직지심경>도 <직지심체요절> 이라고 불러야 옳은 표현이다.

우리가 <직지심체요절>에 대해 역사책에서 배우는 세가지는
1)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이다.
2) 구텐베르그의 금속활자가 1447년 유럽에서 발명됐 는데 그보다 70년이나 앞선 금속활자이다.
3) 현재 <직지심체요절>은 프랑스에 있으며 이를 반환하기 위해 노력하고있다.

이를 통해 <직지심체요절>은 우리나라 금속활자 문명의 우수함을 가르쳐주는 유물이라고 우리는 배우고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왜 우리나라는 <직지심체요절>이후 금속활자에 대한 언급이 없고 유럽은 구텐베르그 이후 르네상스, 종교개혁 등의 지식사회의 모습을 갖게 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은 저작권이다.

특허권은 '개인에게 배타적인 권한을 줌으로서 개인의 지식을 인류 공동의 지식으로 만드는 프로세스'다. 저작권도 특허권의 일종인데 영어로는 copyright라고 한다. 책을 볼 때 맨 뒷면에 copyright를 볼 수 있는데, 보통 '이 책의 copyright는 누구에게 있으며 무단 복사 등을 할 때 법적인 책임을 질 수 있다.' 는 내용이다.

왜 저작권을 copyright라고 할까? 말 그대로 보면 복사권리라는 것인데 이게 무슨뜻일까?

copyright의 어원은 이렇다. 과거 카톨릭의 성경은 일부 성직자만 필사할 수 있었다. 유럽의 성당에 가면 일반 신도들이 있는 곳과는 구별되어있는 성역(santuary)이 있고 거기엔 큰 독서대와 거대한 성경 책이 놓여있다. 세속과는 구별된 그 장소에서 오직 성직자만 성경을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 생각하면서 필사할 수 있었다. 성경을 필사 할 수 있는 권리를 일부 성직자만 가지고있다고 해서 복사할 수 있는 권리, 즉 copyright가 나온 것이다.

구텐베르그의 금속활자가 나오기 전엔 성경 한 권을 약 25일~30일 정도 걸려서 만들었지만 금속활자 덕분에 몇 백부씩 찍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카톨릭에선 금속활자 기술을 이용해 성경을 찍어주는 대신 포르노그라피의 허가를 해주고 구텐베르그는 이를 통해 큰 부를 쌓게된다. 이후 약 100년동안 약 천개 이상의 출판사, 인쇄소가 생기며 유럽에는 문자계급이라는 새로운 계급이 등장하고 유럽은 지식사회로 접어든다.

구텐베르그의 지재권을 인정해준 도시는 베네치아였는데 이후 지재권을 통해 구텐베르그가 큰 돈을 벌게 되고 그 돈에 대한 재산권을 보장해 주면서 베네치아는 르네상스의 중심지가된다. 그 당시 베네치아가 어느정도로 지재권과 재산권을 보장해 줬는지를 잘 보여주는 문학이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이다.

우리는 베니스의 상인을 보면서 '살점은 떼어 가되 피는 한방울도 흘리면 안된다'라는 판결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지만 그 소설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또 다른 중요한 것은 유럽에서 가장 천대받는 유대인이 재산권을 두고 당대의 귀족과 법정에서 재판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베네치아가 재산권을 얼마나 중요시 했는지 알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직지심체요절> 이후에 유럽과 같은 지식의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는 글자 자체를 지식으로 봤던 당시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의 한계 때문이다. 이슬람 국가도 글자를 신성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나라는 대부분 서예가 발달해있다. 글자 한자 한자에 예와 도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서예, 더 나아가서 서도라 하며 숭상했고 글자를 정성들여 쓰는 것에 가치를 뒀지 그것을 찍어내서 지식을 전파하는 것을 무시했고 때문에 우리나라는 <직지심체요절>로 끝난 것이다. 중세까지만 해도 동양과 중동이 유럽보다 더 높은 문명을 누리고 있었지만 중세 이후로 세계의 중심은 서서히 유럽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 출발이 되는 동양과 서양의 결정적인 차이점 중 하나는 구텐베르그의 금속활자, 즉 지식에 대한 태도다.

미국은 건국당시만 해도 후진국이었지만 지금은 세계 최강대국이다. 미국은 1차대전 이후부터 세계의 중심이 됐는데 가장 큰 이유는 1차대전, 2차대전을 통해 수많은 유럽의 지식인들이 미국을 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미국은 지식의 중요성을 잘 알고 전통을 이어받아 지식인 계층의 이민을 잘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북한과 남한이 이렇게까지 차이가 난 이유를 6.25전쟁 당시의 지식의 이동에서 보는 주장이 있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남한에서 월북한 사람은 10만명 가량이었다고 추측하고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은 100만명에 정도라고 한다. 게다가 그 100만명은 김일성의 공산당에 반대한 지식인, 지주계급이었고 이들이 남한으로 오면서 지식의 폭발 사회가 되었다.

반면 북한은 지식결핍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말도 안되는 3대 세습 독재가 된 것이다. 그만큼 그 사회에 지식이 어느정도 자유롭게 유통되고 지식인이 많은가에 따라 나라의 장기적인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고 때문에 교육이 중요한 것다.

이런 면에서 <직지심체요절>이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라고 말하는건 좋지만 그것이 구텐베르그보다 70년이나 앞섰다고 말하는 것은 자랑스러운게 아니라 부끄러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본과 대한민국의 스코어는 현재 22대0이다. 이는 학문 노벨상을 나타내는 스코어다. 우리는 항상 일본의 노벨상 갯수를 보면서 '우리나라 교육은 이게문제야 저게문제야' 라고 하고 일본은 싫지만 일본으로부터 배울게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말 배우려고 하는걸까?

우리나라 교육이 문제인건 6살 어린이도 알고있다. 그런데 지하철을 타면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하고 베스트셀러를 보면 대부분 리더쉽, 힐링, 싸구려 인문학책이다. 일본만 해도 지하철에서 많은 사람이 책을 읽고 있다. 문제는 교육에 있기 이전에 변하려고 하지 않고 sns와 인터넷으로 배우는 지식만이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우리한테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현실보다는 이상향에 집착하는 DNA가 체화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현실에 일어나는 복잡한 현상을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스스로는 지키지도 못할 이상향을 말하며 이해하지 못할 시에는 무지한자의 무기인 음모론을 가지고 와서 입맛에 맞게 해석한다.

고등학교때 우린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자세에 대해 배운다. 요즘같은 때는 수 많은 정보의 바다에서 한 이슈에 대해 다양한 관점이나 정보를 찾기 편할수도 있지만 오히려 찾기를 포기하는 현상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면 함부러 얘기해서도 안된다. 나는 다수 대중의 의견에 따라 시류에 편승하여 무비판적으로 쉽게 얘기하는 것이지만 생각없이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 그러나 요즘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다. 헬조선이라고 비난하고 노력을 외치는 사람들에게 노력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 대통령 문제라고 하는 사람들이 무엇이 문제인지 자성하는 모습이 보여지길 기도하는 것은 정말로 기도가 아니면 이루어질수 없는 소원이 되는것이 아닌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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