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멋대로/사회

세모자 사건과 천민민주주의

어빈2 2021. 7. 8.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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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일자 2015년 7월 29일 14시 21분

 

세 모자 성폭행 조작 사건 - 나무위키 (namu.wiki)

 

이번에 세모자 사건이라고 그것이 알고싶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다루면서 이슈가 된사건이 있다. 한 달전 쯤인가 국민일보에 두서없이 올라온 대학생 기자의 기사에서 이 일을 보고 여러 언론을 찾아봤지만 관련된 기사를 하나도 찾지 못해 좀 더 두고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기사에 댓글 단 사람들은 기사가 진실이라고 찰떡같이 믿고 정의가 실현되어

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여하튼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세모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 잠정적으로 결론짓고 마무리를 한 모양인데 세모자 사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나무위키에 잘 정리되어있다.

 

세모자 사건의 전말이 어떻게 밝혀지든 옳은 방향으로 갔으면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을 통해서 또 다시 대한민국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거의 DNA에 박혀있는듯 정신병 수준의 '아니면 말고' 감정적인 선동의 문제와 그에 비판적 사고 없이 따라가는 네티즌의 수준이라는, 바로 천민민주주의의 민낯이다.

 

얼마전에 죽은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죽을때까지 공산당 당원증을 반납하지 않은 공산주의자이지만 적어도 학자로서 팩트파인딩 정신은 확고했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주장도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여 주장 하였고 역사를 현대 입맛에 맞게 재해석하는 것을 '역사학이 핵물리학만큼이나 위험한 것임을 깨달았다'고 하면서 경계했다. 즉 사실관계는 좌우보다 선행하는 것이다. 사실이 확정되어야 그 이후의 주장이 논리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상하게 사실관계를 찾으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접근성이라는 진입장벽을 무기로 사실을 왜곡하는 사람도 많다. 물론 한 개인이 사실관계를 파악하려는 시도하는 것은 현대 사회의 복잡함 속에서는 거의 불가능 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생업에 바쁜 시민들이 언제 그런걸 찾아보고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언론이 제기능을 해야

하는 것인데 언론이 나서서 찌라시를 자처하고있으니 국민들의 수준도 덩달아 낮아지고 있다.

 

재밌는 것은 이러한 현상이 요즘와서 더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무지몽매함을 전근대성이라고 한다면 계몽은 그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전체주의적인 특성이 나타났는데 그것이 우리가 잘 아는 나치즘과 스탈

리니즘, 중국의 홍위병 같은 것이다. 

 

그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성장과 함께 중산층이 많아지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대부분의 세계가 민주화되었지만 인터넷 상의 마녀사냥, 무기명투고, 언론과 여론의 수준을 보면 오히려 과거의 망령이 살아 돌오는듯 하다. 특히 인터넷이 스마트폰이라는 내손안의 개념으로 들어오면서 심해졌다. 

 

유비쿼터스가 실현된 인터넷공간은 익명성을 바탕으로 대중의 의견을 취합하기 쉬운 놀라운 공간이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도 인터넷의 여론과 실제로 나타나는 결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특히 최근들어 인터넷에서는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선거 결과는 민주당이 참패하는 경향이 있는데 비단 우리나라 뿐만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인터넷이 현실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주로 진보성향의 젊은 사람들이 접근하기 쉬운 만큼 세대 편향된 여론만을 반영하고 있다는 뜻이다. 젊은 대학생 혹은 사회초년생들은 열정적이고 감성적이지만 그 열정을 감당할 숙고가 부족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선동당하고 옳음을 판단하는 능력이 부족하며 그것이 인터넷이라는 사이버공간 때문에 극대화 되고 있는 것이다.

 

그 중 인터넷의 가장 큰 문제점은 민주주의의 개념혼동의 문제다. 

 

젊은사람들이 하는 착각중에 다수 대중의 의견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민주주의는 오직 자유민주주의만이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라는 어미가 붙어있다고 다 같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다수 대중의 의견이 민주주의라면 결국 국가 시스템은 정치로 귀결된다.

 

예를 들면 어젯밤 한일 축구 시합에서 일본에 3:0으로 패배했는데 다음날 아침 일본인이 한국인을 잔혹하게 살해했다면, 또 그것을 다수 대중이 판결한다면 어떤 판결이 나올까. 죄를 지은 만큼만 처벌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이렇듯 대중민주주의 혹은 참여민주주의는 결국 인민민주주의, 대중독재의 다른말일 뿐이다.

 

다수 대중의 의견에 반하는 소수의 의견도 중요하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출발이다. 인간은 실수를 하고 내가 틀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상대방이 옳을 가능성을 인정하는 상대성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그것을 무시하고 시청앞 광장에서 시위하고 촛불을 키고 앉아있는 것은 시대정신이 아니라 전염병인 것이다. 조용한 저녁을 보낼 시민의 권리도 있는 것이고 차도를 이용할 운전자의 권리도 중요하다. 그것을 다수 대중이 촛불을 들고 시위한다고 해서 침범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양심을 빙자한 전염병이 퍼져있다고 해서 그걸 시대정신이라고 부를수는 없는 것과 같다.

 

잘못된 대중민주주의적인 사고방식은 중등 교육에서도 나타나는데 우리는 흔히 그리스의 민주주의에 대해 공부할 때 직접 민주주의가 좋은데 여건이 안되서 간접민주주의를 하는 것 처럼 배운다. 그러나 직접민주주의가 좋은데 여건이 안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민주주의가 지닌 문제점이 너무 많기 때문에 안되는 것이다. 

 

그리스는 직접민주주의의 방식을 취했지만 일종의 엘리트민주주의에 가까웠다. 노예, 여자, 군인은 참여하지못하고 성인남자 시민만이 참여가능했다. 또한 그리스는 전쟁와중에도 총사령관의 임기가 다 되면 바로 바꿀만큼 냉철한 민주주의를 했다. 전쟁을 통해서 영웅이 나타나는 것은 민주주의를 해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선거방식으로 선출하지 않고 추첨이란 방식을 통해 포퓰리즘이 들어올 여지를 만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의 죽음처럼 대중민주주의가 판을치고 삼류들이 활개치는 등 민주주의의 타락현상이 일어났던 곳이 그리스다. 지금 대한민국에 일어나는 현상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사람들은 그리스의 디폴트를 보면서 그리스의 포퓰리즘을 비웃겠지만 그리스의 국민들도 우리나라 정치를 보면서 비웃을 것이다. 

 

이처럼 인터넷 공간에서의 민주주의의 타락 현상의 유일한 해결 방법은 성숙한 시민 의식을 갖는 방법밖에 없어보인다. 그리고 그를 위한 가장 증명된 방법은 경제 성장이다. 정신과 물질은 따로 갈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은 어느정도의 소득에 다다르면 소득을 더 늘리는 것 보다 개인의 취미, 자기계발, 가족과의 활동 등 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유를 통해 보다 성숙한 시민의식을 지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반시장적인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고 국민들 정서 또한 성장보다는 분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또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이 먹혀들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국민연금, 공무원 연금 개혁 최저임금 1만원 등이 대표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운명은 여기까지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요즘들어 깨시민, 아몰랑! 이런 유행어가 인터넷에 많던데 이런 용어들이 유행한다는 것이 다행스러우면서도 씁쓸하다. 깨우친 시민 코스프레라는 말과 아몰랑이란 말을 통해 생각없이 따라가는 것에 대해 스스로 자정작용이 되고있다는

점에서 다행스럽지만 이런 용어가 나올 수 밖에 없는 인터넷의 특성 중 천박성이 씁쓸한 것이다. 

 

대중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달고 마치 정언명령처럼 되어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한번 더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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