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멋대로/책

[책리뷰] 변신 - 프란츠 카프카

어빈2 2021. 7. 5. 18:15
728x90
반응형

 

저자 프란츠 카프카

평점 6

 

개요

카프카의 변신이란 매우 유명한 책을 처음 읽어봤다. 어떤 내용인지 설정만 알고 잘몰랐는데 보고나니 난해했다. 

 

처음엔 호접지몽처럼 주인공이 바퀴벌레가 된 것이 결국 눈 떠보니 꿈이었고 그것을 계기로 다른 마음가짐을 갖는것이 결론일 줄 알았는데, 가족에게 결국 버려지고 바퀴벌레로써 죽는 모습이 굉장히 비참하게 그려지고 비극적으로 끝난다. 

 

사실 마지막에 주인공을 죽이는 것은 어쩌면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를 작가 스스로도 답을 낼 수 없으니 사용하는 방법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주인공을 죽임으로써 그 어떤 방법도 딜레마가 될 수 있는 것을 비극적이고 미학적으로 승화시키고 결국 작가 스스로가 생각한 결론을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사용되는 것 같다.

 

카프카는 유대인으로 법률가가 되어 상류사회로 가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바람에 반해 보험 영업사원을 했고 글쓰기에 전념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자본주의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영업사원을 주인공으로 가져왔고 젊을 때 아버지와 대립했던 모습들을 변신이라는 소설에 녹아 냈다고 한다.

 

느낀점

이 책을 보면서 느낀 것은 세일즈 맨의 죽음과 같이 현대 자본주의의 차가운 점과 인간소외현상이다. 

 

사실 현실 문제에 대해 글을 쓰는 작가들은 대부분 자본주의의 냉혹하고 비인간적인 점에 주목하는데, 그 어떤 내가 본 소설도 자본주의를 긍정하지 않는다는 데에서, 작가들이 책은 많이 읽는데 매번 읽는책이 다른 작가의 책이고 그 다른 작가는 내 책을 읽는데 정작 내 책과 다른 작가의 책은 자본주의 비난에 관한 책이니 사고가 고착화 되고 과학적 근거나 통계없이 마치 그럴것이다 라고 생각한 것이 진실화 혹은 사유화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각설하고 변신은 영업사원의 모습을 통해 자본주의가 가져오는 인간소외 현상을 보여주는데 이것도 사실 딜레마이다. 

 

농촌에 사는 인간이 도시로 나오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농촌에 일거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농촌에 자유가 없어서이다. 농촌에서 나는 내가 아니라 누구집 아들, 딸인 나이며 그것은 곧 서열화된 영속적인 권위주의를 뜻한다. 

 

또한 대다수의 가문이 서로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으며 내 옆집 이웃이 오늘은 뭘 먹는지, 비싼 티비를 사면 저 돈의 출처는 어딘지를 궁금해 하고 잘 아는 관계이다. 

 

언뜻 보면 아무렇지 않지만 이것이 조금만 심화되면 전방위적 감시체계가 되는데 이것이 맑스의 예언과는 달리 공산주의가 자본주의가 팽배한 도시가 아닌 농촌에서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다. 

 

즉, 농촌사회에서의 윤리체계, 내부적인 단합과 외부적인 배타성, 모두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익명성의 부재, 그것으로부터 권위주의의 상층에 있는, 집안 어른으로 대표되는 지배계층의 진리에 대한 독점이나 반증불가능성의 독재는, 공산주의의 사회현상을 절대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필연과 진리의 절대성과 부합하며, 겉으로는 공동체주의를 표방하면서 생산수단을 공유한다는 것은 결국 모두가 생산수단을 독점하려고 하거나 더 유리하게 사용하지 못하도록 감시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동체주의가 아닌 상호감시체계가 된다는 점에서 농촌사회의 특성과 부합한다.

 

이러한 농촌으로부터의 탈피가 도시이며 때문에 도시는 익명성, 합리적 무관심의 공간이며 이는 개인주의와 나의 자유를 보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부작용으로 인간소외현상이 나타나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도시에 농촌사회의 윤리를 가져와야 한다는 그것 자체가 모순이 되는 현상이 생긴다. 

 

그 중간 지점을 추구할 수도 있지만 개인은 각자 추구하는 자유의 정도가 다른 것이고 누구는 인간냄새나게 이웃집과 친하게 지내거나 이웃집 안방까지 들어가고 싶겠지만 누구는 그자체를 거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도시는 그런 거부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그 중간을 추구하는 것은 결국 원래 추구하고자 했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과 같게된다.

 

자본주의가 인간소외현상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부작용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 없이는 우리는 또다시 권위주의 적인 자유의 부재 속에서 살아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개인주의를 추구하는 자유주의자들은 국가 혹은 사회의 역할을 최소화하길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나 자신과 우리 가족만이 존재 하고 사회는 계약에 의한 개인의 집합일 뿐 사회라는 말 그 자체가 어떤 신비성이나 존엄성을 가질 수 없다는 뜻이다.

 

계속 말이 새는데 변신은 결국 그런 소외현상이 가족에게까지 버려지는 상황을 그리며 비극을 완결한다. 

 

심지어 그 가족을 위해 가장으로써 희생한 주인공이 통제할 수 없는 변수에 의해 무능력하고 혐오스럽게 변했다고 해서 그것을 견디지 못 하고 결국 주인공의 죽음을 긍정하고 밝은 희망과 미래를 꿈꾸며 그 집을 떠나는 가족을 보면 역겨울 지경이다. 

 

그러나 이 또한 딜레마인데 오랜 병에 효자없다는 말 처럼 만약 주인공이 30~40년을 그 집에서 바퀴벌레로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카프카는 이 질문에 남은 가족의 고통을 덜어주는 유일한 방법은 주인공의 자살이라고 답한다. 변신에서 주인공은 의사소통이 안되는데 만약 몸까지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인간 상태라면 어땠을까. 

 

여기서 우린 안락사라는 인간 존엄성의 문제에 다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소설은 도덕적 딜레마를 다룬 책이되는데 가족에게 조차 버려지는 모습은 자본주의의 문제가 아닌 가족 개개인의 인간성 문제, 가족의 고통이라는 사회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변신은 소재가 독특하며 결국 문제를 해결 할 수 없어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체념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잘 드러냈다는 점에서 분명 재미있는 책이다. 또한 이 문제는 안락사라는 우리 사회의 민감한 아킬레스건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신선한 책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비난하는 논리가 타 작가와 별반 다를 것 없이 상투적이라는 데엔 한계가 있고 왜 인간은 의식적으로 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추구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고찰이 부족한게 아닌가 생각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