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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미드소마(Midsommar)

어빈2 2021. 6. 28.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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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아리 애스터

출연 플로렌스 퓨

개봉 2019년

평점 8

 

개요

미드소마(midsommar, midsummer, 하지제)는 아리 에스터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로 스웨덴의 작은 컬트 공동체 마을 '호르가'에서 벌어지는 여름축제를 다룬 공포 영화다. 

 

보고나서 느낀 것은 공포영화라고 하기에는 애매하다는 것이었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포크 호러(folk horror) 장르라고 하는데, 호러는 맞지만 감독판 기준 2시간 50분이나 되는 영화내내 감독이 보여주려고 한 것은 호러라기 보다는 컬트적인 마을 분위기와 교리로 대표되는 원시 공동체와 현대인이 어느 지점에서 부딪히는지를 보여주려고 했던것 같다.

 

내용(강 스포일러)

대니(플로렌스 퓨)는 의존적인 여성이다.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는 여동생 테리가 있으며, 여동생은 부모님과 함께 살고있다. 

 

동생을 항상 걱정하는 대니에겐 남자친구 크리스티앙(잭 레이너)이 있는데, 크리스티앙은 의지할 만한 사람이 아니다. 물론 이는 크리스티앙의 이기적인 성격이 이유이지만 대니의 집착에 가까운 의존증에 크리스티앙이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다. 크리스티앙의 친구인 조쉬, 마크도 노이로제를 느끼는 크리스티앙에게 공감하곤 한다. 

 

어느날 동생 테리한테 연락이 안되어 걱정하던 대니는 크리스티앙에게 전화로 불안감을 계속 호소하지만 크리스티앙은 별것 아니라는 식으로 안심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대니의 걱정대로 테리는 우울증을 못이겨 부모와 동반자살을 했고 대니의 마음이 무너지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인류학 전공인 크리스티앙과 조쉬 그리고 그냥 친구인 마크는 스웨덴출신 유학생 친구 펠레의 초대로 스웨덴의 작은 마을 '호르가'에서 90년에 한번 열리는 미드소마(여름 축제, 하지제)에 가게 된다. 크리스티앙은 대니의 슬픔을 환기시키기 위해 대니도 초대하고 대니도 이에 함께한다.

화사하고 따뜻한 여름에 전원적인 풍경, 흰옷을 입고다니는 호르가 마을 주민들, 대니는 곧장 평화로운 모습에 마음을 여는듯 하지만, 축제가 시작되고 나서 이 마을의 컬트적인 전통은 대니로 하여금 위화감을 느끼게 한다. 

 

같이 온 친구들과 펠레의 형인 잉마르가 데리고 온 2 명의 외부인인 코니와 사이먼도 하나 둘 행방불명되기 시작하고 대니는 계속해서 의심 하지만 짧은 기간 일어난 일이라 대니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어딘가 있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

 

축제의 마지막 날 대니는 5월의 여왕을 뽑는 축제의 백미 행사에 참여하게 되고 마을 여인들을 모조리 꺾고 승리해 5월의 여왕이 된다. 이 때 즈음 같이 왔던 친구들인 조쉬, 마크는 어딘가 행방이 불명이고 커플 코니와 사이먼도 먼저 돌아갔다는 마을 사람들의 말만 있을 뿐 행방이 묘연하다. 

 

5월의 여왕이 되고 행사의 주인공이 된 대니는 결국 크리스티앙이 마을 여자와 성관계를 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남자친구에게도 버려졌음에 오열하게 된다.

 

축제의 백미에서 결국 호르가 마을의 정체가 드러난다. 

 

행방불명 됐던 친구들과 코니와 사이먼은 90년 마다 한번씩 열리는 미드소마의 인신공양 제물을 위해 스웨덴 유학생 친구인 펠레와 펠레의 형 잉마르가 데리고 온 것이었다. 

 

크리스티앙에게 버려진 대니는 반쯤 정신이 나간 채 5월의 여왕에게 인신공양의 허락을 구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무표정으로 응대하고 마을 사람들은 이를 진행한다. 이미 죽은 친구들과 코니, 사이먼이 기괴한 형태로 장식된 채 인신공양으로 불태워질 집으로 운반되고 약에 취한 크리스티앙도 인신제물로 바쳐져 산 채로 불타게 된다.

 

이를 바라보고 있던 대니의 무표정한 얼굴에 서서히 웃음이 돌면서 영화가 끝난다.

 

느낀점

이 영화는 <13일의 금요일>같은 전형적인 슬래셔 무비의 흐름을 따른다. 

 

문제는 큰 흐름이 그럴 뿐 영화의 모든 것이 기존 호러무비와는 반대라는 것이다. 일단 색감을 이용한 대비가 인상적이다. 보통 슬래셔 무비는 어둡고 스산한 곳에서 잔혹하게 사람들이 죽는 반면, 이 영화의 주 무대인 호르가 마을은 여름 백야가 한창이어서 낮이 길며, 푸른 산과 풀, 흰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 빛을 강조하는 블러 효과 등 도무지 죽음과는 어울리지 않는 곳처럼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붉은 피와 하얀 배경을 대비시킬 땐 오히려 그 대조효과가 주는 기괴함이 상당하다. 

 

게다가 주인공 일행들이 죽는 순간은 철저히 표현되고 있지 않다. 슬래셔무비가 케릭터들이 죽는 장면에서 오는 스릴감을 주로 표현한다면, 이 영화는 죽음의 저항에서 오는 서스펜스를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전형적인 공포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는 호르가 마을의 컬트를 묘사하는데 거의 대부분의 러닝타임을 소요하고 있다. 2시간 45분 동안 실제로 살인이 진행되는 부분은 아주 적고 마을의 모습, 구성원들의 대사와 행동, 축제의 묘사에 집중하고 있다. 때문에 알 수 없는 그림들, 마을 구성원들의 밥먹을 때 좌석배치 조차도 상징성을 갖고 있어 보이는데, 따지고 보면 별 거 아닌 모습에 상징성을 너무 부여한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묘사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런 묘사를 통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극단적인 대비는 개인과 공동체이다. 

 

현대 문명의 상징인 '개인'이 자유롭기만 하다면, 그래서 비극을 온전히 개인이 짊어지고 가야 한다면, 과연 한 개인을 뛰어넘는 극단적 형태의 비극이 덮쳤을 때 과연 개인은 이를 극복할 수 있겠는가? 

 

이런 형태의 감정 충격에 대해 호르가 마을의 원시 컬트적 방식이 해법의 하나로 제시되고 있는것 같다.

 

영화의 주인공 대니는, 여동생과 부모를 매우 비극적인 형태로 잃는다. 개인의 마음 그릇으로는 담을 수 없는 슬픔에 대니는 정신적으로 무너지는데, 이를 의지할 남자친구도 큰 위로가 되지 않는다. 슬픔을 잊기 위해 결국 호르가 마을의 미드소마에 참석하게 되는 대니에게 펠레가 말을 거는 장면이 나오는데, 펠레가 대니의 가족을 잃은 슬픔을 아주 잘 이해하며, 이마을은 모두가 가족이기 때문에 그 슬픔도 가족이 같이 갈무리한다고 말하는 장면은, 바로 현대인이 대응할 수 없는 크기의 슬픔에 대한 공동체적 대응 방식을 잘 드러내는 장면이다.

 

문명의 발전이란 자연의 공포로부터의 극복을 뜻한다. 

 

자연재해, 질병, 사고, 유아사망률, 평균 수명을 쳐다보고 있으면, 옛 사람들이 얼마나 끔찍한 일을 겪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많은 컬트가 샤머니즘, 토테미즘의 형태를 띄는 것은 자연으로부터의 공포에 대응하기 위해 이에 순응하는 공동체적 정신세계를 형상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미약함으로 바꿀 수 없는 자연으로 부터 오는 잔혹함에 순응하기 위해, 공동체만의 정신세계를 만들어 슬픔을 공유하고 무디게 하며 이것이 모두 섭리인것 처럼 포장하여 그 충격을 최소화 하는 것이다.

 

때문에 호르가 마을은 인생을 16년씩 잘라서 4계절에 비유하고 있으며, 4계절의 끝 겨울이 지나면 노인들이 자발적으로 절벽에서 죽으며, 그 죽은 노인의 이름은 새로이 태어날 아이가 물려받는 순환논리를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죽음 자체가 하나의 섭리일 뿐 슬픔이 아니라는 공동체적 정신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공동체적 정신세계에선 필수적으로 '개인'이 없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을 특정지을 수 있는 것을 삭제하려는 모습이 이 영화에 계속 나오는데,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노인들의 얼굴이 산산조각 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얼굴은 바로 개인을 구분하는 외형적 모습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한 장소에서 프라이버시 없이 공동생활을 하는 것도 개인의 없음을 형상화 하고 있으며, 모두 비슷한 옷을 입는것도 이를 뜻한다.

 

개성을 없애려는 모습도 드러나는데, 마지막 인신공양하는 장면에서 자발적으로 지원한 2명의 내부인 중 한명은 펠레의 형 잉마르, 또 한명은 울프이다. 

 

울프는 마크가 철없이 조상의 묘에 노상방뇨를 하는 것을 보고 엄청난 분노를 표출했었다. 잉마르는 자신이 데리고 온 커플을 설명하면서, 원래 코니가 자기와 먼저 사겼는데, 사이먼이 뺏어갔다고 설명하며 종종 그 둘의 커플 행각을 쳐다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잉마르의 질투를 보여준다. 

 

이 둘이 인신공양 되는것은 공동체의 결속에 방해가 되는, 모가 난 개성은 정화하고 삭제하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인신공양을 하는 이유도, 자신들의 삶이 바로 거대한 자연으로 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호르가 마을의 사제들은 계속해서 자연으로 부터 '받았음'을 강조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자연으로 '돌려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공동체의 순수성을 회복하려고 하는데, 인신공양을 하면서 호르가 사제가 말하는 '불결함을 불로써 정화'하려고 하는 대사를 통해서, 선정된 9명이 상징하는 개성을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영화를 보면서 굉장히 괴이한 장면들 중 하나는 마을 구성원 모두가 한 사람의 감정을 같이 공유한다는 것이다. 절벽에서 떨어진 노인 중 한명은 잘못 떨어지는 바람에 즉사하지 못한 채 괴로운 신음을 내는데, 이때 모든 마을 사람들이 이를 지켜보면서 동일하게 괴로운 신음을 낸다. 

 

크리스티앙이 마을 여자와 성관계를 할 때 전통에 따라 마을 여성들이 참관하게 되는데, 크리스티앙과 성관계를 하는 여자가 신음을 낼 때마다 참관하는 마을 여성들도 동일하게 신음을 낸다. 

 

크리스티앙의 씨받이 외도를 본 대니는 결국 의지할 모든 것을 잃은 채 가족을 잃었을 때 처럼 오열하는데, 이때 이미 대니는 5월의 여왕이 된 이후였기 때문에 대니를 마을 구성원으로 받아들인 마을 사람들이 대니 옆에서 대니와 같이 오열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9명의 인신공양을 바칠 때 산채로 바쳐지는 잉마르와 울프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자 이를 지켜보던 모든 마을 사람들이 똑같이 괴성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우리의 예로 들자면, 옛날 상갓집의 경우 상주 앞에서 방문객들이 곡을 하곤 했는데 바로 이런 형태가 원시적 형태의 감정 을 무디게 하고 다루는 방법이다.

 

호르가 마을은 컬트적 성격을 띄면서 모두가 같은 정신세계를 공유하면서 감정적으로 함께하려는 모습들을 잘 보여준다.

 

대니가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야 비로소 영화에서 한번도 보여준 적 없는, 마치 마을 공동체 사람들과 같은 해맑은 웃음을 보이면서 끝나는 이유도, 바로 대니의 슬픔을 치유하는 것이 바로 호르가 마을의 공동체적 정신세계이기 때문이다. 대니가 그들의 공동체에 편입되면서, 그 안에서 비로소 치유받았기 때문에 대니는 마지막에 웃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나오는 호르가 마을을 단순히 괴상한 사이비라고만, 컬트 집단에 의해 살해당하는 공포영화라고 치부할 수 없는 것이다. 호르가 마을이 바로 인류의 원시 공동체를, 인류의 역사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대의 나약한 개인이 바로 이 공동체적 해결 방법을 통해 진정으로 치유받는 모습을 통해 감독은 

 

"개인주의? 그게 절대 선이야?"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호르가식 반문명적인 방식이 긍정되는 것은 아니다. 

 

호르가 마을의 경전은 의도적인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장애아가 만드는데, 그 장애아가 생각이 있어서 경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마구잡이로 낙서하고 그림그리는 것이 경전처럼 나온다. 그 막무가내 경전을 해석하는게 호르가 사제들이 하는 일이기도 하다. 즉, 거대한 섭리와 순환논리가 까고보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너무 길다. 

 

실제 원시 공동체는 깊은 상징이 없다. 이는 단지 자연의 공포로부터의 반대급부일뿐, 그 자체로 자생하는 질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감독은 여기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까고보면 별거 아님에도 마치 무엇인가 있는것 처럼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호르가 마을의 컬트를 묘사하기 위해 빌드업을 철저히 한 것은 좋지만, 뭔 별것도 아닌거에 감독의 변태적 성향을 과하게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감독의 시도는 정말 좋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현대의 개인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공동체적 방법을 공포 영화에 잘 녹여낸것 같다. 전작 유전을 보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정말 기대되는 감독이 아닐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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