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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예의 바른 나쁜 인간 - 이든 콜린즈워스

어빈2 2021. 6. 22.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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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든 콜린즈워스
평점 5
 
개요
이 책은 언론인인 콜린즈워스가 현대의 도덕이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 1년간 공부하다가 결국 실패하게 되는 책이다(내가 실패했다 느끼는게 아니라 진짜 저자가 마지막에 실패했다고 함;). 저자는 도덕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가양한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찾아가려고 한다. 상당히 많은 주제를 다루는데, 사회의 윤리, 돈, 섹스, 정치, 과학, 전쟁, 가족, 동성애, 로봇 등 거의 다루는 모든 분야에 한번씩은 인터뷰를 진행한다. 이를 통해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정리하는 방법으로 책을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주제를 다루면서 이를 일통하는 도덕이 무엇인지를 찾으려다 보니까 책이 상당히 난잡하게 쓰여있고 저자의 생각도 중구난방이다. 특히 뒷 부분에 갈 수록 주제가 주제의 꼬리를 물고 계속 물음을 제기하는데 앞의 물음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넘어가기 때문에 마치 포기하고 넘어가는 듯한, 또는 읽는 사람에게 모든걸 다 떠넘기고 가는 모양새로 보인다. 
 
내용
인간은 선한 존재일까? 우리는 언제 어떻게 왜 나쁜짓을 할까? 도덕의 패러다임을 뒤엎는 섹스, 시시각각 바뀌는 도덕의 기준, 도덕의 미래라는 총 5개의 챕터에 각각 세세한 카테고리가 3~6개정도로 나눠져있다. 
 
안간은 선한 존재일까 에서는 왜 우리가 스스로를 착하다고 생각할까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어느 살인범과의 인터뷰로 처음을 시작하면서 아주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할 수 있겠다. 저자 본인의 생각이 뚜렷히 나타나있진 않은데, 윤리와 도덕을 구분하고 있고 인간은 그 존재자체가 이기적이기 때문에 도덕심도 이기적 진화의 전략중 하나라는 언급도 들어있다. 이 챕터의 마지막 부분에선 종교가 과연 인간을 선하게 할까라는 물음도 던지고 있는데, 저자는 종교를 상당히 나쁘게 보고 있지만 종교가 없이 우리 이성만 가지고 인간의 가치 시스템을 만들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을 거라는 상당히 괜찮은 의견을 갖고 있다. 
 
우리는 언제, 어떻게, 왜 나쁜짓을 할까는 전형적인 자본주의 비판처럼 보인다. 탐욕을 비판하고 있지만 그 대상이 자본주의에 집중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에 관련된 수 많은 악행의 예를 드는데, 그 중에 가장 많은 예시가 월스트리트다. 그러면서 왜 돈에 관련되서는 사람들이 도덕적이지 못해질까라는 순진한 물음을 던지는데, 이런 모습은 마이클 샌델과 비슷해 보인다. 
 
왜 사람들이 돈과 관련하여 수많은 악행을 저지르고 탐욕에 빠져서 남을 상하게 할까? 이 질문은 인간에 대한 중요한 질문이다. 근데 그게 자본주의의 문제일까? 저자는 이를 자본주의와 연결해서 이야기 한다. 그런데 과연 중세시대에는 탐욕이 없었고 모두가 평등했을까? 우리는 종종 이를 잊어버린다. 신분제와 법적 절차 없는 사적인 집행, 재산권의 보호가 없고 노예가 있던 세상에서 공공연하게 이뤄졌던 탐욕이 왜 지금엔 없을까? 왜 약탈이 거래로 전환되었을까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 우리 삶에 있다. 
 
도덕의 패러다임을 뒤엎는 섹스는 불륜을 다루고 있다. 상당히 고리타분한 부분이며 저자의 보수적인 연애관이 잘 드러난다. 이 부분부터는 도저히 무슨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을 정도로 혼란스러워진다. 
 
시시각각 바뀌는 도덕의 기준은 어쩌면 이 책에서 가장 재밌을 뻔 했던 파트로, 첫부분부터 왜 연예인들은 유명해지면 꼭 시상식에 나와서 누굴 가르치려고 하는걸까? 라는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아주 재미있는 질문으로 실제 리키 저베이스의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매우 유명하다. 

근데 이 책은 질문을 던져놓고 대답을 안한다. 어디서 부터 무너지는지가 잘 보인다 하겠다. 
 
이 부분에서 기억났던 내용은 슬랙티비즘에 대한 이야기였다. 
* 슬랙티비즘: 게으름뱅이와 실천주의를 결합한 말로 실제로 행동하지는 않으면서 사회운동에 기여했다는 자기만족을 느끼기 위해 하는 행위(세월호 리본을 달고 다니는 등) 또는 그런 성향.
 
죄의식은 개인의 양심문제이다. 그러나 SNS의 발달로 개인의 슬픔과 죄의식이 사회 전체의 죄의식으로 변질되는 상황이 상당히 많이 일어나는데 대표적으로 세월호와 정인이 사건 등이 있다. 같이 애도하지 않으면 뭔가 안될거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그 과정에서 옳은 말을 하면 몰매를 맞는다. 나같은 경우 정인이 사건 때, '정인이 사건은 정말 슬픈 사건이지만 정인이 사건의 피의자들에 대한 인권이 이런식으로 지켜지지 않는건 말이 안된다'했다가 댓글로 몰매를 맞은 기억이 난다. 
 
이런 정의 완장질이 영어 단어로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마지막 챕터는 저자가 자신이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그래, 그래도 우린 희망이 있어'식의 아주 나이브한 결말로 책이 마무리된다 .
 
느낀점
현대 사회의 도덕 문제를 잔뜩 흩뿌려놓고 제대로 마무리한게 단 하나도 없는 책이다. 그러나 그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읽어볼 가치는 있는 책이다. 뭘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양한 문제에 대한 도덕적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는 말이 이 책에 대한 욕인지 칭찬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루려는 주제에 비해 책이 상당히 쉽게 쓰여있다. 인터뷰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그런거 같은데, 나중가면 저자가 자신이 다루는 주제를 버거워해서 인터뷰도 점점 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이 책의 서문에는 저자가 왜 도덕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물음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맹렬한 에고를 갖고 있는 개인들이 어떻게 인류라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가 바로 그 문제의식이다. 물론 이렇게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진 않지만 작가가 도덕에 대해 혼란을 느낀 곳이 이 부분이다. 
 
교회를 예로 들자면,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단 하나의 조건에 동의하고 그 조건이 맞는 사람들끼리 공동체를 형성하게 된다. 공동체 구성원이 되는 조건은 믿음이고 믿음을 져버리는 순간 공동체의 일원에서 탈퇴되게 된다. 즉 공동체란 최소한의 베이스먼트에 있는 가치에 대한 동의가 있는 사람들이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인류라는 공동체는 어떨까? 우리가 단순히 동물이기만 하다면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이름이 공통의 조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상징의 동물이기 때문에 생물학적 공통 조건이 공동체의 근간이 될 수는 없다. 옛날엔 각 지역별로 종교가 이 역할을 대신했다. 아우구스투스의 <신시>도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이거였다. 유럽의 모든 나라들이 하나의 크리스찬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거대한 공동체를 꿈꿨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당장 대한민국만 봐도 종교를 조건으로 걸 수 없는 사회이다. 그럼 단 하나라도 공통의 조건이 될 수 있는 가치를 찾아낼 수 있을까? 바로 이 물음이 저자가 도덕에 대해 혼란을 느끼고 대답을 찾아야겠다고 시작한 이유이다. 
 
니체는 이에 대한 대답으로 진실에 대한 존중을 걸었다. 즉 진실 그 자체에 대한 인정과 내가 틀렸을때 받아들이는 팩트풀니스 정신이 인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하나의 도덕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비록 우리가 그런 것을 염두해두지 않더라도 시장경제가 만들어내는 자생적 질서로 돌아가고 있다. 개인의 자유와 사유재산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는 신뢰를 형성하게 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사회가 도덕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게 한다. 저자는 책에서 자신이 시장경제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고 하는데, 내 생각엔 그래서 저자는 답을 찾지 못한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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