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멋대로/사회

가치의 위계질서

어빈2 2024. 4. 9.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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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은 후 도저히 동의할 수 없어서, 그를 이해하기 위한 다른 접근법이 필요한가? 라는 생각에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정확히는 포스트-구조주의에 대한 글을 몇 개 읽었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따르면 가치에는 위계질서가 없다. 상대주의적 관점인데, 논리적으로는 가치에 위계질서가 없는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예를들어 누군가 '인권'이 가치 중에서는 최상위라고 말했을 때, 인권의 출발인 존 로크의 '천부인권'을 과연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을 본따 만들어졌기 때문에 인간 위에 인간이 있을 수 없으며 그 무엇보다도 고귀하여 양도할 수 없는 신이 부여한 권리를 지녔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냐는 것이다. 
 
이쯤되면 우리가 발견한 근대의 가치들은 증명의 영역이 아니라 섭리의 영역임에 동의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즉 증명 불가라 하더라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고 행했을 때 실제로 그것이 증명된것과 같은 결과가 발현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섭리라는 종교적 관점이 이성으로는 증명될 수 없기에 결과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이 주장하는 '가치에는 위계질서가 없다'라는 말에 동의할 수 밖에 없게된다. 
 
하지만 제 2의 자연이라 불리는 사회에서 우리는 가치의 위계질서 없이 사회를 구성할 수 있을까?(여기서 제2의 자연이란 마치 자연처럼 인간 삶의 기본 조건이란 뜻이다) 아니 그 전에 만약 가치의 위계질서가 없다면 우리는 올바른 삶을 살 수 있을까? 물론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에서 본다면 '올바른'이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가치에 위계질서가 없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론 옳으나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인간의 삶을 설명해주지 못하는 철학은 방법론적으로 유의미한 분석 도구가 될순 있지만 주류를 이루는 철학이 될 수 없다.
 
심지어 그들이 '해체들'의 관점을 가지고 모든 가치들이 사실은 위계가 없다고 했을 때, 그렇게 해서 모든 가치들을 박살내놓고 나면 유일하게 남는 것이 '해체들'이라는 것 뿐인데, 그럼 '해체들'을 해체하는 것이 가능한가? 즉, 모든 가치들을 평등하게 만들어 놓고 그 가치들을 평등하게 만든 도구만이 남았을 때, 오히려 그 도구가 모든 가치 위의 위계를 갖는다면, 자기 모순에 빠지는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만약 '해체들'을 해체할 수 있는게 가능하다 하더라도, 우리가 사회에서 보는 바, 모든 가치를 해체하고 난 존재는 유일무이한 기득권을 가진 존재로 남게 된다. 그 시점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자신이 해체할 수 있을까? 인간의 역사로 봤을 때 이는 불가능해보인다. 
 
우주엔 동서남북이, 좌표가 존재하지 않지만, 동서남북을 정하고 좌표를 찍음으로서 비로소 우리는 우주를 여행할 수 있다.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가치들이 서로 위계가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지만, 그 중 보편적인 것들에 대해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는다면, 삶을 살아갈 수 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라는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선 자유, 평등, 인권 등의 가치가 위계를 갖고 우선하게 된다는 데에 동의할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인생과 인간 사회의 여기 저기에 이정표를 세워놔야 갈 곳을 정할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럼 이게 샌델이 말하는 공동선이란 것일까? 비슷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를 둘러봤을 때 공동선을 정하기 위한 연대는 언제나 한명의 독재자를 만들어냈고, 그 뒤로 수 많은 슬픔과 피를 불렀었다. 

 

니체가 말한대로 개인들은 천 개의 도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공동선이라고 해봤자 '진실에 대한 존중' 정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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