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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 무라카미 류

어빈2 2023. 2. 24.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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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무라카미 류
평점 6

 


개요


이 책은 일본의 작가 무라카미 류의 데뷔작으로 1976년 24살 미술학도였을 때 쓴 책이다. 그해 이 책은 아쿠타카와 상을 받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상당히 퇴폐적인 책으로 데카당 문학의 계보를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책에는 19금 딱지가 붙어있지 않지만, 마약, 범죄, 난교 묘사만 봐도 이 책은 남다를 수위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를 증명하듯 1976년 상을 받은 직후 한국에 발간되자마자 일주일 만에 '미풍양속을 해치는 외설'이란 이유로 판매 금지 조치를 받았던 역사가 있는 책이다.

 


내용


주인공 류의 시점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류의 애인으로 나오는 창녀 릴리, 그리고 류의 친구인 오키나와, 레이코, 모코, 가즈오, 요시야마, 케이 등이 있다. 각자는 서로 커플인 경우도 있으나 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섹스를 지향한다.

그들이 미 공군 기지 주변에 살면서 류가 어레인지 한 미군들과의 파티에서의 난교, 그리고 그들의 범죄행위, 마약, 그리고는 광란이 지나간 후 몰려오는 고독 속에서의 저주스러운 삶에 대한 인식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느낀점


일본 전후 세대의 우울감을 나타내는 데카당 문학이다. 어빈 웰시의 <트레인스포팅>과도 유사한 면이 있는데, 적어도<트레인스포팅>에서는 주인공 혼자만이라도 영국 할렘의 폭력, 마약에서 탈출하여 정신을 차리지만, 이 책은 마치 모든 것이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는 우울감만이 지배하고 있다.

상당히 퇴페적이며, 작품 내 짙게 깔려있는 현실에 대한 우울감과 역겨움이 가감없이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책에 나오는 음식들은 모두 상해있으며, 상한 음식을 모르고 먹었을 때의 역겨움이 아주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다.

또한 주인공을 비롯한 그 친구들은 밥보다 마약을 더 자주 먹는데, 그래서 늘 작은 충격에도 구토를 하곤 한다. 부패와 구토, 이것은 그들이 이 세상을 인식하는 태도다.

왜 그들은 세상을 그렇게 인식하는 걸까? 이 책에는 그런 배경이 자세히 나와있지 않다. 뒤에 짧은 해설을 보면 마치 교과서적으로 자본주의 사회, 물질사회에 대한 비판이라고 써놨다. 잘 모르겠다. 1970년대 일본 전후세대 문학에 깔려있는 감정을 나는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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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들이 세상을 모나면 정맞는 꽉막힌 사회, 평소에는 자유롭지만 한걸음만 들어가도 정해진 길로만 가야되는 비자유적 사회라 본다 해도, 그들이 하고 있는 폭력, 마약, 목적없는 삶 등이 긍정될 수 있는가이다.

이는 미국의 히피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과도 동일한데, 사회에 부조리와 억압이 있다고 해서 일탈이란 이름으로 폭력, 마약, 퇴폐가 논리적으로 도출 될 수 있냐는 것이다.

우드스톡, 지미 헨드릭스, 짐 모리슨 등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히피들을 쳐다보고 있으면, 그들의 순수성이 무엇이든 간에, 그들의 일탈은 오히려 철없어 보이는데, 왜냐하면 사회의 윤리와 개인의 윤리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개인에 대한 천착이 일탈이란 답을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충돌 그 자체에 대한 우울감과 회피를 위해 일탈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즉, 근원적 긴장에서 오는 고민과 사유가 그들을 일탈의 길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각하기를 포기한 태도가 일탈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아무 철학이 없다. 고독함 속에서 그들이 느끼는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 이를 표현하는 예민한 감수성은, 그저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사회가 얼마나 거대하고, 자신은 무기력한지를 설명하고 있을 뿐, 실제로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에 대한 이해는 전무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이 책엔 두 가지 키워드가 있다. 하나는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즉, 제목이며, 다른 하나는 류가 두려워하는 '검은 새'이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마지막에 류가 자신의 피가 흐르는 유리 조각이 새벽에 비치는 공기에 반사되는 모습을 보며 읊조리는 상당히 감수성이 뛰어난 표현인데, 이는 류가 그의 퇴폐적 삶에서 그나마 더듬거리고 있는 순수성을 뜻한다.

검은 새는 류가 바라보는 세상이다. 검은 새는 너무나 거대해서 새의 콧구멍도 겨우 보일 정도며, 자신이 이상적으로 꿈꾸는 도시를 파괴하고 먹어치우는, 그래서 결국 도시가 검은 새가 되어버리는, 코스믹 호러적 세상을 뜻한다.

그러나 책에는 그 순수성이 무엇이며, 검은 새가 암시하는 사회가 어떤것인지 나타나있지 않다. 그저 자신은 세상에 적응을 하지 못했으며, 그래서 마약과 폭력, 섹스에 미쳐있고, 그 와중에 드문드문 마약이 주는 감정과잉의 압도적 외로움과 고독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세상으로 부터 도망가고 싶어하는 것이다.

검은 새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가 서로 대칭적 관계에 있는데, 정작 주인공은 '검은 새'의 본 모습을 모르니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도 추상적이기만 할 뿐인것이다.

붉은 피가 흐르는 유리조각을 블루로 보는 마치 인상주의 화가와 같은 상대주의적 표현에 비춰 봤을 때 주인공 류는 검은 새가 검은색인지 조차 알 수 없는거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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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 작가의 표현력이 정말 무시무시하다. 이 부분을 보면서 마치 영화 <찰리 컨트리맨>이나 <레퀴엠>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24살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의 천재성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특히 주인공 류의 여자친구처럼 나오는 릴리의 모습이 이 부분만 보면 류의 상상속 인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마약으로 인한 정신 착란적 모습을 글로 잘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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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엔 뒤에 짧은 해설이 있는데 소설가 박인홍이란 인간이 쓴 해설이다. 나는 살면서 이런 태도의 해설을 처음 봤는데, 미친놈인줄 알았다. 그가 쓴 해설을 사진으로 첨부하자면

 


이런식의 원초적 증오와 차별의식, 적대감정, 비하와 조롱을 탑재하고 있으면서 인간의 내면을 탐구한다는 문학을 하고 있으니 석자 이름조차 알리지 못한 초라한, 이름만 소설가에서 그의 필모그래피가 끝난게 아닐까?

남의 책에, 자신이 번역한 것도 아니면서 이런 해설을 써놓는 태도는 정말이지 소름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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