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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이방인 - 까뮈

어빈2 2023. 2. 14.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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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알베르 까뮈
평점 9

 


개요


이 책은 프랑스의 소설가 알베르 까뮈가 1942년 출간한 중편 소설로 작품 해설에 따르면 출간되자마자 엄청난 호평을 받을 책이라고 한다.

보통 작품 해설을 잘 보지 않지만 책이 난해했던 관계로 작품 해설에 나온 짧은 내용을 개요로 읊어보자면,

뫼르소란 주인공을 통해 사회의 궁극적인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그 사회 속의 존재를 모순된 것으로 이야기한 작품이라고 한다.

나는 책을 잘 이해 못했으니 책의 해설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리뷰를 하려고 한다.

 


내용


1부와 2부로 나뉘어있다.

1부는 주인공 뫼르소가 요양원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어머니 장례에 참석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장례를 치른 이튿 날 주말 해수욕장에 갔다가 마리를 만나 즐겁게 지낸다. 밤에 그녀와 영화를 보고 섹스도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가까워진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 레이몽의 싸움에 휘말려 한 아랍인을 권총으로 쏘아죽이게 된다.

2부는 뫼르소가 왜 사람을 쏴 죽였냐는것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면서 뫼르소가 어머니의 사망 이튿날 여자와 섹스를 하고 데이트를 즐긴 폐륜아며, 아랍인이 무장하지 않았음에도 총을 여러발 쐈다는 것을 증거로 들어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지게된다.

결국 사형선고를 받은 뫼르소는 사형일을 기다리며 부조리 속에서 깨달음을 얻으며 소설이 끝난다.

 


느낀점


해설에는 부조리를 계속 언급하고 있는데, 이를 쓴 역자도 작품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설을 옮겨보자면,

자신의 재판을 타인처럼 즐기는 뫼르소는 앞으로 닥쳐올 미래를 초월한 자기 생의 이방인이다. 그것은 그의 의식 속에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추억만이 있을 뿐이며 앞으로의 세계에 대한 약속도 희망도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이방인의 감정이다. 즉 사회를 상대로 하는 인간의 정신이며,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정신이다. 그것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친밀한 애인의 얼굴이 이방인으로 보이는 구체성을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이 근원적인 부조리에서 얻은 비극적 결론을 낙담하지 않고 스스로 밝혀내여 실천해 간 사람이 바로 부조리의 인간 뫼르소인 것이다.

p 200 작품해설

 

이게 무슨 소리일까? 저 부분은 요약하거나 생략한게 아니라 그대로 따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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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리뷰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첫째, 이방인이 무슨 뜻일까?

둘째, 재판에서 뫼르소가 싸우는 대상, 즉, 절차적 정당성을 가진 집단이란 무엇인가?

셋째, 뫼르소가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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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방인이란 개인을 뜻한다.

개인이란 무엇일까? 근대 법리적 개념으로서의 개인은 '사적 자치의 주체로서의 개인'으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개인, individual이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이란 뜻이다. 관계가 아닌 나 그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개인이며, 신의 형상을 본떠 만들어진 나를 누구도 지배할 수 없으며 침해받을 수 없는 자유를 가진 것이 개인이다. 그래서 우리는 맹렬하게 개인으로 살기를 바란다.

그런데 문제는 개인들이 사회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공동체를 정의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구성원이 공유하는 공통의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장로교회의 경우 장로회가 인정하는 성경 말씀에 대한 믿음과 복종이라는 공통의 가치가 없다면, 장로교회의 공동체원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런데 현대의 거대 국가에서 우리가 공통의 가치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아니, 그런 시도가 과연 정당화 될 수는 있을까?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나의 양심, 나의 관점, 내가 바라보는 진실, 나의 도덕이 타인과, 공동체와, 사회와 충돌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란 각각 다른 개인들의 집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편안함을 추구하기 때문에, 누군가와 갈등하고 반목하는 것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다행히 역사에서 우리가 건질만한 몇 가지 규칙들을 발견하였고, 이를 자연법의 형태로 두었으니, 그 규칙을 지키는 한 반목하지 않고 나의 삶을 영유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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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기서 도출되는 문제는 자연법이란 우리가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뿐 목적을 정해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작가 유시민의 저서 <국가란 무엇인가>에서 국가란 '선'을 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근데 문제는 그 '선'이 무엇인지, 그것을 누가 정하는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 자유주의 국가는 목적을 갖고 있지 않다.

개인은 자신의 윤리, 도덕, 양심, 관점을 갖는 존재인데, 사회는 우리가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주는 대원칙만을 갖고 있으며 동시에 우리는 갈등을 피하려는 속성이 있으니 다음과 같은 과정을 통해 뫼르소가 겪는 집단이 만들어진다.

첫째, 자아가 강해질수록 사회의 윤리 코드와 부딛히게 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의 관점을 갖지 않는 '좋은게 좋은거지'란 처세의 인간이 만들어진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에 나오는 요조와 같은 사람을 뜻한다.

둘째, 각 개인이 갖고 있는 윤리코드가 없는 틈에 어디선가 만들어진 윤리 코드가 자리잡게 된다. 나만의 관점을 갖는 것은 어렵지만 누구나 관점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셋째, 그렇다면 어디선가 만들어진 윤리코드는 무엇일까? 관점에 대한 큰 고민없이, 그 윤리코드를 장착하기만 하면 사회가 설명되고 내가 누군가에게 깨어있는 사람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게 되는 '사회 정당성'코드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지금 이시점에선 이를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부른다.

마지막 네번째를 통해 뫼르소가 겪은 재판정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정의된다.

인간은 다르기 때문에 공통된 윤리 코드를 갖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공통 윤리는 개인을 억압하는 경향을 갖는다. 이견을 허용하면 대들보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옳은 삶'인가에 대한 스스로의 진지한 고민 없이 무엇이 '옳은 삶'인지를 가르쳐주는, 외부에서 만들어진 윤리 코드를 장착하게 되면, 도덕적 정당성을 가진것 처럼 보이는, 그러나 이는 self-righteous(자기 정당성)이라 불리는 특징을 띄게 되는데,

첫째 자신이 천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론이 허가될 수 없다는점, 둘째, 누군가 진실을 기반으로 한 과학적 방법론을 제기했을 때 이를 다수 또는 떼의 힘으로 찍어누를 수 있다는 점.

이는 진실에 기반하지 않아 충격에 대한 취약성을 강하게 띄기 때문에 더욱 광적이고 집단성을 가지며, 이것이 바로 뫼르소가 맞닥드렸던 재판정 대중의 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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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방인에서 재미있는 점은 뫼르소는 한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유일하게 진실을 말하는 것은 뫼르소이며, 개인의 관점을 가진 것도 뫼르소이다.

뫼르소의 깨달음은 여기서 나온다.

자신의 관점을 가지고 늘 진실을 말한 뫼르소는 절차적으로 째깍째깍 돌아가는 집단에 의해 사형 판결을 받는다. 책에선 기계처럼 돌아가는 관료시스템이란 비유가 나온다. 여기서 절차적이란 뜻은, 어떤 개인도 무엇이 '옳은가'에 대해 천착하지 않고 그저 사회적으로 주어진 윤리를 빌려 쓰면서, 그 안에서 상정된 절차를 통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그래서 절차라는 수단만 뚫어지게 쳐다 볼 뿐, 그 결과로 도출되는 목적에는 관심을 갖지않는 체계를 뜻한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오직 자신만이 진실이며 그를 찾아온 카톨릭 신부로 대표되는 종교 등의 사회적 집단에는 진실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비록 그들에 의해 희생당할지언정 오로지 진실한 것은, 관점을 지킨 것은, 자신이라는 데에 대해 희열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이것이 뫼르소가 항용 느낀 부조리이기도 하다.

첫 장례식 장면부터 뫼르소는 계속 상식에 반하는 생각과 행동을 하는데, 핵심은 그것이 반사회적이거나 비상식적인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생각이 사회적으로 통용될 수 없으니까, 즉 집단의 논리에 부합하지 않으니 죽어야한다는 결론까지 인도되는 떼의 '상식'이 부조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포인트에서 작품 해설을 보면, 솔직히 말해서 횡설수설이다. 그는 자기 생의 이방인이 아니라, 그 누구보다도 진실에 충실했던 개인이었다. 개인의 가치가 진실에 기반한다면, 그래서 소중하지만, 이것이 개인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회라면 그는 떼의, '상식'의 사회로부터의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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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에 나온 책이기 때문에, 이 시대는 1870년부터 이어진 개인의 타락이 2차 세계 대전으로 극에 달한 시대로 이해해야 한다. 근대의 역사가 '개인'을 중심으로 서술되는 한, 예민한 작가들이 느꼈던 순수성의 훼손은 한 인간이라는, 한 개인이라는 존재에 초점이 맞춰져있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역사는 떼의 역사이기에, 기적적으로 발견된 개인임에서 쫓겨나 국가, 민족이라 불리는 하나의 집단, 떼, 민중에 돌아가게 된다면, 누구보다 맹렬하게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나'임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이방인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이 작품이 주는 음울함이자, 동시에 죽음 앞에서도 신 앞에 떳떳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진실되게 살아온 '나' 라는 희망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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