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책

[책리뷰] 눈 먼자들의 도시 - 주제 사라마구

어빈2 2023. 2. 11.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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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주제 사라마구
평점 7

 


개요


이 책은 1998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포르투갈 출신의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대표 소설로 1995년에 발간되었다.

제목 그대로 눈이 머는 상황, 책에서는 '백색 실명(까맣게 안보이는게 아니라 우유에 빠진것 처럼 모든 것이 하얗게 보이기때문)'이라는 부르는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내용


크게 세 파트로 구분된다.

첫 파트는 도입부로, 백색실명이 시작되고 퍼지는 내용이다.

백색실명이 처음 발병한 사람의 반응은 그 공포가 오롯이 느껴질 정도로 묘사가 좋은데, 운전 중 빨간불 앞에 서있다가 갑자기 눈이 멀게 되어 당황하는 모습,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의심과 도움, 누군가 그를 도와 그의 집에 데려다 줬을 때, 자신을 도와준 사람이 오히려 도둑질을 할 수도 있겠다 생각하는 모습 등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불안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처음 발병한 사람은 아내의 도움을 받아 안과에 가는데, 안과 의사는 처음 보는 병에 당황한다. 퇴근후 집에 돌아와 동료 의사들에게 전화를 돌리면서 병을 파악하던 의사. 피곤함에 눈을 감았다 뜬 그는 곧 자신도 실명되었음을 알게되고 이 병이 전염병임을, 심각한 사태임을 깨닫게 된다.

의사의 노력으로 의사 협회가 대응하게 되고 여러 곳에서 동일한 병에 대한 보고가 올라오자 정부는 병에 걸린 사람들을 한 곳에 완전 격리해버리는 조치를 취한다.

두 번째 파트는 의사와 의사의 아내, 그리고 처음 실명한 사람 등 실명 1세대들이 비어있는 폐병원에 격리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이 부분이 책의 본론에 해당한다.

몇 가지 굵직한 에피소드를 통해 인간의 본성인 탐욕, 성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세 번째 파트는 그들이 격리되어있던 폐병원을 떠나 모든 사람이 눈이 먼 도시에 들어오고 나서 생존해가는 이야기다.

 

느낀점


디스토피아적 예술 작품이 늘 그렇듯, 심지어 좀비물도 그렇듯이 인간이 마주한 극단적 상황은 현대 사회에 대한 비유이다. 작가는 모두가 눈이 먼 상황을 통해 신뢰가 사라진 세상을 상정하고 있다.

오직 주인공인 의사의 아내만이 실명되지 않았다는 설정을 통해 눈 먼 사람들의 디스토피아를 적나라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물질적 기반은 그대로이지만 오직 시각이 없어졌다는 것 만으로 얼마나 심각한 디스토피아가 올 수 있는지를, 바꿔 말하면 인간 사회에 신뢰가 없어진다면 얼마나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시각을 신뢰로 해석한 이유는, 인간이 눈이 상징하는 것이 신뢰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의 눈이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흰자가 많은 이유는 인간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가를 통해 서로를 신뢰하는 프로세스가 생겨났다는 진화론적 가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물론 아예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엇도 인식할 수 없다는, 신뢰 상실보다 더 심각한 상황을 계속 보여주고 있지만, 그것은 개인이 인식하는 물질계에 대한 부차적인 것이고, 이 책이 보여주려는 것은 인간과 인간 관계에 대한 서술이다.

사실 책이 재미있고 상당히 잘 썼지만 어쩌면 이에 대한 감상은 크게 말해 별볼일 없는 인간의 추악한 본성이기에 끄적일 내용이 없어 조금 더 들어가 다른 감상평을 쓰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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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독서토론의 지정도서로 선정된 책이었으며, 내가 발제를 맡았기 때문에 발제로 내놨던, 이 책을 보면서 느꼈던 몇 가지 질문들을 꺼내보자면,

1. 극단적 상황이 우리가 영유하는 일상을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의 의미는 우리가 일상 속에 지키고 있는 관습적인 약속 또는 도덕 또는 규칙들이 과연 극단적 상황을 통해 만들어졌을까에 대한 질문이다.

예를들어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첫 장면을 예시로 들 수 있겠다.

첫 장면은 재미있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는 기차를 운전하고 있는 기관사가 앞에 한명과 다섯명이 있을 때 기차를 틀어야 한다면 한 명이 있는 곳으로 기차를 틀건지, 다섯명이 있는 곳으로 틀건지를 물어본다.

이를 통해 공리주의를 비판하고 있는데, 마이클 샌델이 왜 틀렸는지는 차치하고 어쨋든 여기서 저 질문과 연관시킬 수 있는 문제는, 즉 한 명을 죽여야 하는가 다섯 명을 죽여야하는가에 대한 극단적 선택에 대한 도덕적 판단들이 지금의 예의 범절 등과 어느정도 상관관계가 있냐는 것이다.

인간의 도덕이란 극단적인 상황을 통해 형성된 것이 아닌 일상적 사건들 속에서 긴 시간 성립된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친구와 직장 동료들과 부모와 지키는 관습은 매일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순간적 판단으로 형성된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 말은 이 책이 보여주는 극단적 상황들 속에 무너지는 인간성이 우리의 본성이 어떤가를 파헤치는데는 용이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현대 인간 사회를 형성하는 것과는 조금은 동떨어져있다고 볼 수있다.

2. 아무도 볼 수 없다면 우리는 도덕적일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질문이기에 상투적이다. 서양에서는 자에제스의 반지라는 일화를 통해, 동양에서는 신독이라는 개념을 통해 소개되고 있다.

자이제스의 반지 또는 기게스의 반지로 불리는 일화는 끼면 몸이 투명해지는 반지가 있다면 인간이 도덕적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신독은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예를 지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어쨋든 이런 상투적 질문을 확대하여 현대 한국에 대입해본다면, 우리가 왜 카페에 덩그러니 자기 물건을 놔두고 자리를 비워도 아무도 가져가지 않을까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다.

답은 훔쳐가면 무조건 잡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외국인에 비해 더 도덕적이라 그런 것이 아니라 온 사방에 CCTV가 있는 감시사회이기 때문이라고 보는게 맞다는 생각이다.

3. 예외 상황에서 관리된 성은 합리성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사실 상당한 리스크를 앉고 쓴 질문인데, 이 책에서 가장 길게 서술되어있는 추악한 인간의 본성이 바로 성욕이기 때문이다. 그 부분이 너무나 중요하게 또한 너무나 더럽게 서술되어있기 때문에 언급을 안하고 싶지만 또 안할 수는 없는 파트라 굳이 빙빙 돌려서 이런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외적 상황이란 시각이 마비된 책의 상황일 수도 있고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극단적 상황이 다 포함될 수 있다. 더 나아가 공창제에 대한 질문이 될 수 도 있다.

객관적으로 다른 사람이 한 말만을 적는다면 싱가폴의 총리였던 리콴유는 일본의 위안부 제도를 보고 어처구니 없지만 합리성을 지닌 제도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점령지에 발생할 수 있는 성범죄가 예상된다면 병사들의 성을 관리하기 위해 공창을 두는 것이 어쩌면 합리성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발언이다.

여하튼 이 책을 보고 느꼈던 확장된 질문들은 위와 같다. 철학적일 수도 있고 논쟁적일 수도 있는 질문들을 꺼내보고 생각해보는게 독서토론의 정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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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보기에 상당히 거북한, 거의 포르노에 상응하는 성적인 장면들이 담담하게 서술되어있는데, 이정도로 평가하는 이유는 마치 가스파 노에 감독의 <돌이킬 수 없는>과 비견될 정도로 적나라하게 인간의 추악한 성욕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추잡한 본성을 드러내기 위한 좋은 방법들이 있음에도 이정도로 적나라한 묘사가 필요한가? 또는 반대의견으로 그만큼 현실적인 묘사라고도 할법한 이 장면 때문에 이 책은 19금이 붙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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