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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G 이드리사 게예 사건으로 본 성 소수자 문제

어빈2 2022. 5. 24.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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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G 게예, '성 소수자 지지' 유니폼 착용 거부로 결장 논란

PSG 게예, '성 소수자 지지' 유니폼 착용 거부로 결장 논란, 문화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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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프로축구 1부 리그 르샹피오나의 절대 강자 파리 생제르망(Paris Saint-German, PSG)의 선수 이드리사 계예가 자신의 종교를 이유로 성 소수자 지지 유니폼 착용을 거부하였다는 보도가 나왔다.

르샹피오나의 구단들은 국제 동성애자 및 성전환자 차별 반대의 날인 5월 17일을 기념하여 2년 연속 이 유니폼을 착용하는데 동참했다고 한다. 그러나 게예는 유니폼을 착용해야하는 경기가 있는 날에 출전하지 않았다.

PSG의 감독인 마우리시오 포체티노는 개인적인 사유로 게예가 출전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지난 시즌에도 동일한 유니폼 착용 경기 때 게예는 위장염을 이유로 결장했었다. 그러자 성소수자 지지 거부 때문에 그런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게예는 무슬림으로 알려져있는데, 모국인 세네갈에서 동성애는 불법으로 처벌받는다고 한다.

이 일이 알려지자 세네갈 대표팀의 동료들은 게예를 지지하며 나섰고, 세네갈 대통령도 게예의 종교적 신념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반면 프랑스축구협회는 게예의 행동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본인의 의사를 밝혀달라고 했다.

이어 "소문이 사실이라면 당신의 행동이 미치는 영향과 함께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다는 점을 자각해야 할 것...이 연대를 거부하는 것은 성소수자 집단에 대한 반대뿐 아니라 차별적 행위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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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정치적 올바름은 우리 사회에 많은 것들을 바꿔놓고 있는데, 가장 두드러지는 현상은 언더도그마다. 그래서 무슬림에 대해서 쉬이 말하면 안되고, 인종, 성 소수자도 나쁘게 얘기하면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풍토가 조성되었다.

심지어 코메디의 영역도 침범당하고 있는데, 부정적 개념을 웃음으로 승화하여 사회 전체적 갈등과 분노의 정도를 낮춰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코메디임에도, 불편한 코메디라 낙인찍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다수와 상대적 소수라는 구도가 아닌 소수자와 소수자 간의 갈등은 어떨까?

이번 사건은 소수자라고 여겨지는 집단들간의 충돌이기에 여러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한다.

첫째, 소수자가 과연 '정의로운가' 이다.

언더도그마란 소수자이거나 약자이면 무조건 정의롭고 옳다는 생각을 뜻한다. 대기업과 노동자 간의 갈등에서 노동자의 상대적 지위가 약자라는 환상 때문에 마치 노동자의 투쟁이 무조건 정의롭고 옳다고 여기는 행태가 좋은 예다.

그러나 알다시피 노조의 행패는 처음부터 정의로움을 신경쓰지 않았고, 단지 그들의 이익만을 위해 도덕적 구호의 외피를 걸치고 있을 뿐이다.

사실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원래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다. 때문에 누군가 도덕적 구호를 지속적으로 외칠 때는 그 이면에 무슨 이권이 걸려있는지 항상 의심해봐야 한다. 왜냐하면 사명감 만을 갖고 일을 지속하는 것은 인간 본성에 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사익과 공익의 방향이 가능한 비슷한 사람을 정치인으로 뽑는게 최선이다. 다행히 시장의 도덕은 개인들이 이익을 추구하더라도 '규칙과 법의 테두리 안'이라는 경계를 따르도록 한다.

그러나 집단과 떼거리를 이루면 개인의 도덕적 기준이 마비된다. 즉, 개인이 이익을 추구할 때보다 거리상으론 정의로움과 훨씬 멀어지는 상태가 된다. 심지어 떼거리를 이루면 폭력에도 무감각해져 혼자서라면 절대 할 수 없었던 일도 집단의 이름으로 아무렇지 않게 행한다.

거기에 언더도그마적 외피를 하나 걸치면, 사회적으로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절대자가 등장하게 되는데, 절대자라 함은 그들의 서식지를 성역화하고 소수결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단을 이룬 소수자는 '정의로움'과 가장 먼 형태의 기득권이 된다.

둘째, 집단을 이룬 소수는 정의로움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소수자의 이름으로 다수에게 소수의 의견을 강요하는 것은 부정의한 폭력이고,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사실 소수자와 다수를 카테고리화 하는것 부터가 웃기는 짓이다. 같은 의견을 가진 소수자 집단이 존재하고 그 외에 다른 사람을 하나로 뭉뚱그려 '다수'라고 하는 것인데, 그 다수는 사실상 연대되지 않은 각 개인의 집합적 표현형일 뿐이다.

어떤 아젠다에 대해 특정 소수자들이 집단을 이뤄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다수'라고 프레임 짓고 소수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의 실제는, 소수자 집단처럼 보이는 '다수'가 다수처럼 보이나 연대되지 않은 각 개인들에게 그들의 의견을 강요하는 것에 다름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성애 단체가 있다고 해보자. 그들은 동성애 차별금지 또는 혐오반대 등을 기치로 집단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애초에 동성애에 대해 별 생각이 없기 때문에 동성애 차별 또는 혐오 등으로 집단화되어있지 않다.

결국 동성애 단체는 소수라는 이유로 자신들의 의견을 동성애에 별 관심도 없어서 혐오하지도 차별하지도 않는 각 개인들에게 강요하는 형태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동성애를 혐오하고 반대하는 집단화 되어있는 단체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도 소수자들을 규정짓는 관점에서 보면 집단을 이룬 소수일 뿐이다.

도대체 누가 소수자들에게 어떤 권한을 부여했기에, 자신들이 다수에게 자신의 의견을 강요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누구도 그런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

셋째, 그러나 소수자들은 정의의 이름으로 너무나 쉽게, 자주, 폭압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 프랑스 축구 협회는 아주 지들이 무슨 신이라도 되는것 처럼 말했다.

소문이 사실이라면 당신(게예)의 행동이 미치는 영향과 함께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다는 점을 자각해야 할 것...이 연대를 거부하는 것은 성소수자 집단에 대한 반대뿐 아니라 차별적 행위를 인정하는 것


누군가에게 차별을 하지 말라면서 종교적 양심을 짓밟고 행위를 강요하는 것은 자신들의 기준엔 심각한 실수처럼 보이지 않나 보다.

현생 인류를 Homo Sapiens라고 한다. 여기서 sapiens는 지혜롭다는 뜻인데, 그 어원은 라틴어인 sapio이다. sapio는 분별력이 있다, 현명하다라는 뜻이지만 1번 뜻은 '맛이 나다, 맛을 보다' 이다.

왜 맛을 보는 것이 분별력이 있고 현명한 것일까?

우리 인간은 하루에도 몇 번씩 선택을 한다. 어떤 것이 나에게 더 좋고 아름다운 것일까? 모든 사물이 우리의 판단에 얽혀있을 경우 우리의 취향(taste) 맞게 선택을 한다. 맛을 보는 행위(taste)가 바로 판단과 선택을 하는 행위인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현명한 사람이란 뜻이지만, 그 본질은 취향에 맞게 판단하고 선택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즉, 우리는 매사에 나에게 있어서 좋은 것과 안좋은 것을 구분하는, 사물을 구별하고 차별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 말은, 차별(구별의 뜻은 구분하여 차별함이란 뜻임)이 인간이란 존재의 본질에 해당됨을 뜻한다.

차별금지법이 성립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서 도출될 수 있는데, 차별을 금지하라는 것은 인간 본질에 대한 반동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어떤 대상에 대해 차별하고 혐오하는 '생각'을 갖는 것과, 그것이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자유'를 발견했고, 자유는 상대방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지점에서 정의될 수 있기에, 누군가를 행위로 차별하는 것은 자유에 의해 부정당한다. 그래서 우리는 차별금지법이 없어도, 헌법적 또는 도덕적 가치 안에서 누군가를 차별하는 행위를 하면 안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소수자들은 더 나아가 우리가 무언가를 판단하고 선택하는 생각 그 자체를 뜯어고치려고 한다. 그리고 상술했듯이 그런 권한을 누구도 그들에게 부여하지 않았다. 드러난 차별을 시정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에 공감 받을 수는 있어도, 누군가의 생각을 규정짓고 고치려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 폭력이다.

넷째, 종교의 자유는 곧 양심의 자유고 이는 자유권의 이름하에 누구에게도 침해받을 수 없다.

소수자 집단이 비록 정의를 주장한다 하여도 양심의 자유는 그들의 목소리보다 훨씬 선행하는 가치다. 이슬람이 동성애를 죄악시 하고 게예가 이슬람을 믿는다면, 게예가 동성애자들을 직접적으로 차별하거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한, 게예의 생각은 그 자체로 침해받을 수 없다.

자신의 양심에 따라 지지하는 유니폼을 입지 않을 권리가 게예한테 있다. 싫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하라고 강요하는것이야 말로 이 사건에서 드러난 가장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지지여부가 중요한것도 아닌게, 동성애는 각자의 선택이고 자유의 영역이다. 때문에 그것은 누군가 지지함으로서 성립하는 것도 아니고 지지하지 않는다고 성립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프랑스 축구협회는 시건방지게도 지지 여부와 관계없는 동성애를 '지지'하기 위해, 인류 모두가 지지하고 보호해야 하는 '양심의 자유'라는 가치를 짓밟은 것이다.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 누군가에게, 프랑스 축구협회는 집단의 이름으로 무지개 유니폼 착용을 강요했고, 거부하자 '경고'라는 이름으로 협박했다.

마지막으로, 동성애라 하면 뭔지 알겠는데, 성소수자는 도대체 뭘까?

성 소수자의 스펙트럼은 정의될 수 없다. 누군가는 어떤 정의된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것 처럼 얘기하면서 소아성애와 같은 이상성애는 거기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데, 그건 말그대로 지들 생각이라는 것이다.

정의될 수 없는 개념은 지지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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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동성애를 하던 뭘 하던, 아무도 뭐라 안하니까 알아서들 하세요...사실상 퀴어축제를 보면 그들이 동성애자 카테고리 안에서 보호받는다는 이유로 그들의 성 도착증을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는 케이스가 비일비재하다.

적당히좀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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