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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 마르케스

어빈2 2021. 12. 12.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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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평점 7

 


개요

이 책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 콜롬비아의 국민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중편 소설이자 르포다. 제목에 '연대기'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이유는 실제로 벌어진 사건에 대해 마르케스가 취재한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시간순서로 나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51년 1월 22일 콜롬비아 수끄레 시에서 남자 둘이 미남 의대생 카예타노를 칼로 찔러 죽였다고 한다. 범인인 두 남자는 여교사 마르가리타의 오빠들인데, 마르가리타의 결혼 첫날 밤, 처녀가 아니라는 이유로 신랑 레예스 발렌시아에게 쫒겨난 것이 살인 동기라고 한다.

즉 명예살인이라는 것이다.

이 사건에 주목한 마르케스는 글을 쓰려고 했으나, 어머니의 반대로 못썼다고 한다.

그리고 30년 후, 카예타노의 어머니가 죽고서야 비로소 어머니가 마르케스로 하여금 글을 써도 된다는 허락을 하였다고 한다. 마르케스는 2년 뒤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라는 이름의 소설을 통해, 자신이 그 당시 사건의 화자로 참여한 형식으로 일종의 르포를 발간했다.

 


내용

화자인 나는 산티아고 나세르 살인사건이 일어난지 30년 이후 마을 사람들의 증언을 하나하나 수집해가며 사건을 재구성하기 시작한다. 소설은 이 증언으로 조합된 그 당시의 일들을 시간 순서로 나열한다.

산티아고 나세르는 부잣집 아들이다.

주교가 그 마을을 방문하는 날 산티아고 나세르는 두 명의 남자 형제에 의해 살해되는데, 그들의 살해 동기는 바로 여동생이 결혼하기 전에 산티아고 나세르랑 잤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여동생이 결혼한 날, 처녀가 아니라는 이유로 쫓겨 친정에 다시 돌아오게 된다. 어머니와 오빠들이 그녀를 다그쳤고, 그녀의 입에서는 산티아고 나세르의 이름이 나온다.

참 재밌는 것은 이 두 형제가 산티아고 나세르를 죽이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녔고, 많은 마을 사람들, 심지어 경찰들까지도 이 두 형제가 나세르를 죽일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의문을 품은 화자는 도대체 무엇이 이 형제들을 살인 범죄로 내몰았는지를 조명한다.

 


느낀점

'예고된 죽음'이라는 것은 두 형제가 산티아고를 죽일것이라고 예고했을 때 마치 귀신에 홀린듯 모든 마을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유도한것 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다. 누구는 때마침 다른 일을 하다가 나세르에게 경고해야함을 까먹고, 가장 친한 친구는 나세르를 찾으러 다녔는데, 나세르가 어디 간다는거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급하게 찾을 그 시점에는 어디 간다는지를 까맣게 잊었다던가, 나세르가 두 형제한테 쫒겨 집으로 도망올 때 나세르가 집에 있는 줄 안 엄마는 두 형제가 달려오는 것을 보고 긴급하게 대문을 닫아버린다던가...

마치 모든 것을 신이 안배한것 처럼 나세르의 죽음으로 인도했다는 것이 이 제목이 '예고된 죽음'인 이유다.

번역자는 이 책에서 마르케스가 말하고자 하는 바, 주목하고자 하는 바는 '명예를 지키기 위한 살인이 가능한 것인가'와 '왜 살인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공공연하게 마을 사람들이 알게 되었는데 아무도 막지 않았는가' 라고 한다.

뭐 그 시대야 여자가 정조를 지키지 못했을 때 죽음으로서 갚아야 한다는게 그렇게 말이 안된다고 보진 않는다. 지금도 이슬람권에서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명예살인이 이를 잘 방증한다. 그래서 여자가 정조를 지키니 마니 하는건 이 책에서 굳이 이슈가 될 문제는 아닌듯 하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첫째, 여동생이 두 오빠와 자신의 엄마 앞에서 자신의 정조를 빼앗은건 산티아고 나세르라고 했을 때, 결국 화자가 밝힌것 처럼, 그게 진짜 산티아고 나세르인지 단 하나의 증거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평소 산티아고의 행동을 봤을 때 산티아고가 그 여자에게 관심이 있었던적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실제 산티아고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무도 벌어지는 살인을 막지 않았다.

마치 오늘날 한국의 성인지감수성을 보는듯 하다.

둘째, 두 형제는 거의 모든 마을사람들에게 공공연하게 산티아고를 죽이고 여동생의 명예를 되찾겠다 하고 다녔는데, 그렇게 한 이유가 바로 그 두 형제야말로 누군가 살인을 막아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본 화자의 관점이다.

끌로띨데 아르멘따는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시장이 그 형제를 잡아두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시장의 경박한 태도에 몹시 실망하고 말았다. 이뽄떼 대령은 그녀에게 최종변론을 하듯이 압수한 형제의 갈을 보여줬다.

"이제 그 형제들에게는 사람을 죽일 만한 무기가 없잖소?"

"그래서 그런게 아니에요. 그 가엾은 청년들이 자신에게 부과된 무시무시한 의무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위해서라고요"

p 75


사회가 광기로 휩쓸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식과 용기다. 그리고 그 상식과 용기는 광기로 휩쓸리는 시작단계에서 보다 쉽고 정중하며, 이성적으로 발휘될 수 있다.

이 소설에 비유하자면, 그 형제가 산티아고를 죽이기로 마음먹고 칼을 들고 나왔을 때, 그리고 그 형제가 광기에 물들기 전 누군가가 그들의 호언에 진지함으로 임했다면, 용기를 갖고 그들을 잡아두었다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단계를 놓쳐버리는 순간 광기는 겉잡을 수 없이 커지고 결국 무고한 이의 피를 부르는 법이다.

결국 정조를 잃은 여동생과 잔게 산티아고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화자는 여동생이 산티아고의 이름을 댄 것이 부자 집안의 산티아고를 자신의 오빠들이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는 의도라고 보고 있다. 이처럼 모든 사람들이 살인이 일어나지 않기를 내심 바라고 행동했지만, 아무도 실제적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고 옮기더라도 판단 착오로 타이밍을 놓인게 한 두개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에서 벌어지는 일은 '악의 평범성'과도 일정부분 주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가 사회의,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비상식과 비도덕이 행해지려는 조짐이 있을 때 용기를 갖고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이는 마치 신이 안배한것 처럼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홀로 사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결국 우리가 사회에 속해 있는 한, 우리는 사회적 동물로서 갖고 있는 종의 한계를 인지하고 이로부터 도출되는 공동체적 의무 또한 알고 있는것이 좋겠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나 스스로가 그 광기의 목표가 되었을 때 아무도 나를 위해 나서지 않을 것이며, 죄없는 이가 광기의 희생양이 된다면 이는 무고한 사람들의 핏값 위에, 거짓의 토대 위에 우리 사회가 세워짐을 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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